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96화 (96/124)

< 우리 같이 무대 하는 거 보면 >

2층 창가 자리.

바로 바깥에 주차장이 있고, 그 너머에 도보가 있어서, 사람들이 여기에 우리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당에 갈 때면 창가 자리를 피하고 숨다시피 해야 하는 우리들이 오기엔 적당한 장소.

물론 이는 우연에 불과했다.

그냥 정아가 쭈꾸미 볶음을 먹고 싶다고 밀어붙여서 온 곳이거든.

“정아 언니, ‘잠든 사이’ 반응 보셨어요? 언니 영화보다 못하더라고요.”

유진이가 말을 꺼내자, 정아는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응을 내가 왜 찾아봐? 내가 찍은 게 더 잘나가는 건 당연한 건데.”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다.

아무래도 진작에 찾아본 모양이다.

“야, 너 갔던 나라 중에 어디가 제일 재밌었냐?”

서연이 별이에게 물었다.

“다 재밌었어.”

“아니 진짜 솔직하게 말해봐. 여기에 우리밖에 없잖아.”

“진짜 솔직하게 다 재밌었다니까?”

“···진짜 노잼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대화가 오가고 있던 와중, 우리 앞으로 쭈꾸미 볶음과 밑반찬이 놓여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다들 철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실 뿐.

조금 기다리며 슬슬 먹음직스럽게 익혀졌을 때.

우웅- 핸드폰이 진동을 하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네, 황실장님.”

태연하게 전화를 받던 나는 전화의 내용에 목소리를 키우고 눈을 키웠다.

“네? 넷이서요? 오!”

이런 내 반응에 그녀들의 시선도 내게 꽂혔다.

내가 이런 그녀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짓자, 그녀들의 눈에 호기심이 더욱 짙어졌다.

“네, 알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마침 같이 있으니까 그건 바로 결정해 볼게요.”

전화를 끊자, 유정아가 득달같이 물었다.

“뭔 내용이야? 딱 보니 우리 말하는 것 같은데.”

“맞아.”

난 입가에 띤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별이를 바라봤다.

이런 제안이 온 건 그녀 때문일 터.

라이브 방송이 화제를 낳아서, 이렇게 실제로 무대에 설 수 있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번 KBC 가요대축제에 너희 네 명이서 합동 무대 한 번 하자.”

“···!”

“어!?”

“오! 진짜요?”

난 정아를 흘끗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음. 괜찮네.”

살짝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정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항상 별이, 서연이, 유진이와 비교하며 자신의 실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데뷔를 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며, 1위까지 하고 있으니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다.

아니면 얼마나 화제가 될 수 있는지를 직감하고, 그 이득을 생각하고 있거나.

난 다 익은 쭈꾸미 볶음을 그녀들의 접시에 듬뿍 떠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너희 보면서 걸그룹 같다는 생각은 전부터 가끔 해왔어. 재밌을 것 같아. 팬들도 엄청 좋아할 거고.”

기회가 이렇게 찾아와버렸다.

비록 우리의 오리지널 곡은 아니지만 그래도 커버곡이나마 넷이서 함께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으니, 기대가 되었다.

“와! 진짜 맛있네.”

“내가 말했지? 여기 맛있을 거라고.”

“역시, 정아 언니예요. 여기 오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다들 전투적으로 식사를 시작하면서도 눈은 나를 향하고 있다.

이 무대에 대해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얘기하기 전에 한 젓가락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오! 엄청 맛있는데?”

정아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렸다.

나는 그 미소를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근데 곡은 아직 미정이야. 우리 하고 싶은 거 하라는데, 뭐 할래? 하고 싶은 거 있어?”

서연이가 답했다.

“그냥 걸그룹 커버곡이 무난할 것 같은데요?”

별이가 대꾸했다.

“그건 당연하지. 걸그룹 커버곡 중에 뭘 할 거냐고 물으신 거잖아.”

“야! 꼭 걸그룹 커버곡을 해야 한다는 법 있냐?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한 거잖아.”

“그럼 차라리 판소리 말고 가요를 하자고 말을 하지. 판소리 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그거랑 이거랑 같냐? 진짜 유치하게!”

정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무슨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야 조용히 안 해? 어디 신성한 밥상머리 앞에서 침을 튀겨!”

“···죄송합니다.”

“넵.”

생각해보니, 꼭 걸그룹을 한다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린 비록 이번 무대에 한정해서 뭉치기로 한 거지만, 만약 그녀들이 진짜 걸그룹이 된다면?

라이브 방송 때나 언제고, 이런 엉망진창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다.

‘아니··· 이런 것도 좋아해 주시려나?’

너무 유치해버려서 웃길 정도였다.

난 단숨에 제압된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데뷔한 지 좀 된 선배 걸그룹 곡이 좋지. 대중들이 잘 아는 히트곡이면 더 좋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중요한 무대긴 했지만 그렇게 신중하게 결정할 만한 문제도 아니어서.

커버할 곡도 간단하게 정해졌다.

그리고 이제 연습 일정이랑 파트 분배에 대해 말을 더 이으려 할 때.

“어!”

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탄성을 냈고.

우린 모두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눈이다.”

각자의 자리에 놓여진 두꺼운 패딩.

다들 추위를 싫어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눈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순조롭게 이어지던 회의가 뚝, 끊기고.

모두 창밖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예쁘게 내리네.”

유진이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함박눈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고 포근하게 내려앉고 있다.

‘정말 예쁘긴 하네.’

지금의 이 풍경이 너무 예뻐서.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12월의 눈을 감상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일이었다.

하지만 5일은 한 곡에 호흡을 맞추는 데에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 애들처럼 각자의 실력이 오를 대로 올라, 대중들의 인정을 받을 만큼만 된다면.

“정아 언니, 너무 급해요. 거울 보면서 같이 맞춰야 돼요.”

“별아, 동작 크게 크게 해야 돼. 어깨엔 힘 빼고.”

“음. 서연아, 넌 잘하고 있어.”

심지어 우리에겐 유진이가 있었다.

자타공인 모두가 인정하는 춤꾼.

그녀가 연습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모두는 이미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았었던 만큼 잘 따라갔다.

“하아. 하아. 왜 구서연만 칭찬하는 거야. 하아.”

“언니도 잘하고 있어요.”

넷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들 솔로로 활동했기 때문일까, 어색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댄서들과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크게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이제 밥 먹는 거죠? 오빠, 같이 드실래요?”

“김별. 왜 오빠한테 물어봐? 나한테 물어봐야지. 오늘은 김치찜이야.”

“···독재자.”

“뭐라고!?”

물론 과정이 모두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모두가 순둥순둥하지만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리 심각한 일 또한 아니었다.

나와 네 명은 연습실 한 켠에 놓인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했다.

“이 씨. 이 구린 테이블은 언제까지 써야 되는 거야?”

습관적으로 내뱉는 정아의 투덜거림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별이와 유진이가 한 귀로 흘리며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는 가운데.

서연이는 김치찜을 입에 한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이 테이블, 회사 이사하기 전부터 잘만 썼던 건데 왜 그래요, 새삼스레.”

정아의 말을 못 들은 척하던 별이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맞아요. 추억도 있고 좋은데요. 예전에 서연이 오기 전에 저만 있었을 때는 엄청 작은 테이블이었어요. 그건 둘이 먹기에 딱 좋았는데.”

“그거 나 때도 있었거든? 정아 언니 추어탕 들고 처음 놀러왔을 때까지도 있었어.”

“아, 그랬나?”

그간 연습만 한 것도 아니다. 우리 애들이 누군데.

각자 스케줄을 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틈틈이 연습실에 모이곤 했다.

아무리 대중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해도, 5일이란 시간은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기에 그리 여유로운 시간인 건 아니었으니까.

‘스케줄이 없다면 모를까.’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올해 첫 번째 가요대축제 날이 다가왔다.

***

재수없는 얼굴을 또 보게 됐다.

GO엔터의 박수한 대표.

하얗게 샌 머리, 깊은 눈, 허스키한 목소리.

그가 겉으로나마 젠틀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 김사장. 얼굴 좋아졌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내가 밑에 있을 때는 몰랐다.

이 바닥에서 꽤나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내가 존경까지 했었는데.

나와서 보니, 최이사나 이 사람이나 그게 그거였다.

그러니 둘이 오랫동안 짝짜꿍 붙어 먹었겠지.

관계자석.

그는 내 주변에 앉으며 여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WE엔터는 좋겠어? 이번 시상식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 워낙 빵빵 터뜨렸어야지. 하하. 정아는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야? 하여간 능력 좋아.”

누구보다 배 아파했을 게 뻔한데, 어떻게든 위에서 여유롭게 내려다보려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시상식은 그때 가서 기대해보려고요. 벌써부터 기대하면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아서요.”

“하하! 그래? 그럼 나라도 대신 기대해줄게. 한창 좋을 때 상 많이 받아놔. 그래야 더 위를 바라볼 의욕도 살지.”

우리가 평범한 관계라면 나도 말 그대로 좋게 받아들였겠지만, 우리는 서로 좋은 말을 건넬 사이가 아니다.

그러니 저 말은 돌려 까는 거겠지.

한창 좋을 때 상 많이 받아놓으라는 말은 ‘오픈빨이고 반짝스타니까 지금 즐겨둬라’는 말로 바꿔 들을 수도 있고.

더 위를 바라보라는 말은 ‘너희가 잘나봤자 대상은 우리 몫이다’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다.

뭐, 이번에 와인드업이 또 대상을 받을 테니 후자는 받아칠 수 없었다.

국내 차트나 몇몇 국가에서 우리가 조금 앞섰더라도, 앨범 판매량과 뮤비 조회수 같은 건 아직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전자는 아니지.’

저건 그냥 억지 비난일 뿐이다.

“한창 좋을 때라뇨. 우린 이제 막 시작한 건데. 아직 무대 안 보셨나 보네요?”

난 안목이 쓰레기냐며 비웃었고.

그는 내가 미처 받아치지 못한 말을 건넸다.

“잘하고 있으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지. 초심 잃지 말고. 그나저나 이번 시상식엔 어디까지 갈 것 같아?”

“잘 모르죠. 일단 정아 덕분에 내년 영화 쪽 대상은 따놓은 것 같기는 한데.”

“···.”

그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잘 아시다시피, 제 경력이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긴 하잖아요. 다 제가 키웠으니까.”

와인드업도, 유정아도, 김별, 구서연, 이유진도.

난 이 말을 생략했지만, 그는 용케도 알아들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중년 남성의 홍조 띤 얼굴을 계속 마주 보고 있을 만큼, 내 비위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난 속에서 차오르는 역함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 한 번 돌리는 것으로, 눈은 말끔하게 정화되었다.

저기, 우리 예쁘고 자랑스러운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으니까.

***

테이블에 앉은 김별은 가득 찬 장내의 관객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아직 무엇도 시작되지 않은 현장.

관객들의 볼거리라고는 가수석에 앉은 여기밖에 없긴 하지만, 시선이 유난히 이쪽에 쏠린 것 같았다.

‘착각인가?’

김별은 시선을 살짝 내렸다.

같은 테이블에 유정아와 이유진, 그리고 구서연이 함께 앉아 있었다.

‘···착각이 아닐 수도.’

우리가 인기가 많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긴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시선이 더 뜨거운 느낌.

구서연도 이를 느끼고 있는지, 입을 열어 말했다.

“확실히 네가 방송에서 말한 게 영향이 크긴 했나 봐. 우리가 같이 모여 있는 것 때문에 저렇게 좋아하시는 거 아니야?”

이유진이 말을 받았다.

“그것도 그런데, 우리 여기 들어올 때도 같이 들어왔잖아. 아까 대기실에서도 같이 사진 찍어서 올리기도 했고.”

비록 생중계가 되는 레드카펫은 따로 입장해야 했지만 같은 차에서 내리는 걸 팬들이 보긴 했다.

사진도 많이 찍혔고.

오늘따라 이쪽을 보는 관객들의 눈빛이 뜨거운 건 그 때문인 듯했다.

유정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이 무대 하는 거 보면 뒤집어지겠네.”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맺혔다.

아직 관객들은 자신들이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벌써부터 관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기대감이 더욱 차올랐다.

‘이게 서프라이즈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무대 위에서 팬들의 표정을 자세히 지켜봐야겠다.

그런데, 문득 머리에 한 가지 걱정이 스쳤다.

오늘 무대는 시크하고 카리스마 있어야 한다.

“저 무대에서 표정 관리 안 될 것 같아요. 웃으면 어떡해요?”

웃으면 안 되는데, 팬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 실실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었다.

“···.”

“···.”

“···.”

다들 대답이 없다.

분명 들었을 텐데도.

김별은 유정아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언니, 웃음 참는 팁 같은 거 있어요? 언니 연기 천재잖아요.”

“우리 무대 컨셉에 집중하면 돼. 웃음을 못 참는 건 그만큼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거야. 알겠어?”

“···네.”

왜일까? 어째선지 저 대답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김별의 눈앞에 불길한 그림이 떠올랐다.

만약 네 명 다 웃음을 못 참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설마 정아 언니까지 웃으려고.’

김별은 고개를 털며 짧은 의심을 거두었다.

안 웃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집중해야지.

유정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웃지 말아야 한다.

팬들이 아무리 귀여워 보이더라도.

“꾹 참아야지.”

< 우리 같이 무대 하는 거 보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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