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95화 (95/124)

< 우리가 걸그룹이라면 >

멕시코시티에서의 공연이 끝난 뒤 호텔.

김별은 해외활동을 하며 김유민에게 특히 연락을 더 자주 하곤 했다.

이번에도 평소대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이 자정이 다 되어가니, 한국은 오후 2시쯤일 터.

그런데 신호음이 몇 번을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바쁘신가?”

하긴 요즘 많이 바쁘다고 말했었다.

김별은 전화를 하는 대신, 라이브 방송을 켜기로 했다.

이제는 매니저들의 도움 없이도 혼자 하곤 한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빠르게 점검하고 방송을 켜니, 시청자 수가 쭉쭉 차오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멕시코시티예요.”

팬들이랑 소통하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가끔 눈에 밟히는 채팅도 있긴 하나, 긍정적인 감정이 압도적이다.

“이제 해외활동 다 끝났어요. 바로 한국 갈 거예요.”

-돌아와서 활동은 해요?

-너무 바쁘게 일한다. 언제 쉬어요?ㅠㅠㅠ

-일도 잘하는 밴드는 합류하나요!?

외국어 채팅을 비롯해, 많은 채팅들이 쏟아진다.

김별은 그중에 하나의 채팅을 캐치하여 대답했다.

“일도 잘하는 밴드는 바로 복귀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저 활동하는 거 재밌어요. 하나도 안 힘들어요.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가득하게 맺혀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할 때면 항상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다.

방금 킨 것 같은데 벌써 20분째.

오늘은 1시간 이상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정아 데뷔한 거 봤어요?

“정아 언니 데뷔한 거 당연히 봤죠. 우리 언니 되게 잘하죠? 영화도 엄청 재밌게 봤어요. 여러분도 보셨어요?”

유정아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유진으로, 이유진에서 구서연으로.

같은 회사이기도 하지만 모두 서로서로 관련이 되어 있기에, 팬들도 김별도 그녀들을 언급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들이 모두 친한 걸 팬들이 알기도 했고.

이렇듯, 친한 걸 알고, 그녀들의 이름을 계속 언급했기 때문일까.

시청자 중 몇몇이 이러한 채팅을 올렸다.

-걸그룹 라방 같은 분위기네ㅋㅋㅋ

-방송에 없는 멤버 언급하는 느낌.

-넷이 걸그룹하면 재밌겠다ㅋㅋ

“걸그룹이요? 음.”

짧게나마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걸그룹··· 재밌긴 하겠네요.”

김별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연이가 곡 만들고 유진 언니가 안무 만들면 되겠다. 그쵸?”

-메인 보컬은 별이!!!

-메인 댄서는 이유진ㅋㅋ

-유정아는 리더가 딱이네.

팬들의 채팅이 빨라졌다.

같이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으니 몇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아예 숙소도 같이 쓰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전 데뷔하게 된다면 걸그룹으로 데뷔할 줄 알았거든요. 뭔가 로망도 있고, 재밌을 것 같아요. 아예 숙소 쓸 때부터 데뷔할 때까지 카메라로 찍으면 재밌겠다. 그쵸?”

-신인 아이돌 그룹엔 리얼리티가 필수죠!!

-리얼리티 찍으면 넷이 피크닉도 가요ㅋㅋㅋㅋ

“피크닉이요? 좋은 것 같아요! 저 요리는 좀 할 줄 알거든요. 같이 요리해서 도시락도 가져가면 재밌을 것 같아요. 돗자리 깔고, 게임도 하고.”

상상일 뿐인데, 팬들과 함께 얘기를 하다 보니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근데 너무 그럴듯한 거 아니에요?ㅋㅋㅋ 한 번 진짜로 뭉치면 좋읗 듯.

-말만 해도 너무 재밌다ㅋㅋ 진짜 추진하면 안 돼요?

-넷이 뭉치면 인기 장난 아니긴 하겠다ㅋㅋㅋ 무대 어떨까?

이번엔 대화 주제가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한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물론 실제로 이 상상이 이뤄질 일은 없겠지만.

-ㅋㅋㅋㅋㅋ이거 퍼지면 다른 팬들도 난리 나겠네.

김별의 눈에 이 채팅이 확 들어왔다.

이유진, 구서연, 유정아의 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다들 재미로 생각해 주세요.”

채팅 분위기도 대부분 가볍게 장난을 치듯 재미있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

한편 그 시각.

서연은 마침 김별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녀 또한 김별이나 팬들과 다르지 않았다.

“와. 진짜 재밌긴 하겠다. 포지션도 딱 나눠지네?”

김별과 이유진, 유정아,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차례대로 떠올려보고.

각자가 가진 장점을 가상으로 버무려봤다.

‘내가 도입부에 들어가고, 정아 언니는 나 다음 벌스 부분 하고···. 유진 언니는 후렴 부분 빵 터뜨리기 직전에 넣으면 딱 좋을 것 같고··· 별이는 후렴이랑 R&B 파트도 넣으면 잘할 것 같은데···’

피식 피식 웃으며 무대를 상상해봤다.

어떤 퍼포먼스를 해야 좋을지는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넷이 함께 무대에 설 때, 어떤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릴지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멋있겠는데? 한 번 뽑아볼까?”

집에 있던 서연은 컴퓨터 앞에 앉아 낄낄거리며 장난스레 곡을 써내려갔다.

진지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완전 러프한 버전이라서 뚝딱 뽑히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들이 가진 색깔이 모두 뚜렷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저 각자가 가진 장점 중 핵심이 되는 부분을 도드라지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룹 곡을 작곡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기에 유정아의 곡을 작업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봤다.

이것저것 다른 색깔을 마구 덧대어 꿰매어버리는 것.

하지만 그때가 특별했던 걸까, 마구잡이로 이어버리니 매끄럽지가 않다.

‘그럼 이음새만 좀 만져볼까?’

손이 닿으니 톡 튀어나왔던 부분이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이 정도 작업은 이제 서연에게 있어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작업한 게 얼만데.

절대적인 양만 보면 다른 작곡가들과 비교할 수 없이 적겠지만, 그녀는 멜로디와 편곡을 직접 짜기도 했고, 심지어는 전체적인 컨셉을 짜며 아예 프로듀서 역할까지 했다.

작업한 양에 비해 숙련도는 쭉쭉 올라버린 것.

이 때문일까?

서연은 느낌이 가는 대로, 손길이 닿는 대로 만들었을 뿐인데.

“어···?”

느낌이 너무 좋다.

러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비어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시간을 쏟아야만 하는 작업.

다른 말로 하면, 시간만 쏟는다면 눈부신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저장해둬야겠다.”

정말로 넷이서 걸그룹을 하며 이 곡을 쓸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곡이니까, 언젠가 쓸 날이 올 수도 있다.

재편곡을 해서 솔로 가수용으로 바꿔도 되고, 아니면 적당한 그룹한테 줘도 되겠지.

서연은 키보드를 두들기며 이 음악에 이름을 붙여 저장했다.

[우리가 걸그룹이라면]

***

김별의 라이브 방송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파장을 남겼다.

김별의 팬은 물론이고, 구서연, 유정아, 이유진의 팬들에게까지.

라이브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콕 집어 편집한 영상들, 그리고 자막을 단 스크린 샷이 인터넷에 쫙 퍼졌고.

네티즌들은 그녀들이 걸그룹이 되면 어떨지, 갖가지 상상을 하며 떠들어댔다.

글들이 파도처럼 쏟아지는 모양새.

화제가 됐다는 뜻이다.

-와ㅋㅋㅋㅋㅋ 인기 쩔긴 하겠다ㅋㅋㅋ 개인으로도 탑스타 된 애들인데.

-게다가 다 천재들임. 구서연이 곡 작업하고 이유진이 안무 짜면서 메인 댄서 하고, 김별이 메인 보컬!!! 그런데 리더가 유정아야ㅋㅋㅋㅋㅋ 와ㅋㅋㅋㅋ

-진짜 구멍이 없네ㅋㅋㅋ 넷 다 보컬도 잘하고 댄스도 잘 추고 비주얼도 미쳤음.

-그런데 진짜 현실 가능성 제로긴 하다. 혼자서도 미친듯이 잘나가는 애들인데 WE엔터가 이걸 하겠음? 지금도 잘되고 있는데. 지금 유정아 전세계에서 기세 미쳤잖아. 이유진도 빌보드 떡상 중임.

└왜? 합치면 더 잘될 수도 있지.

-그냥 재미로 생각합시다ㅋㅋ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고.

각 팬들의 분위기가 모두 비슷했다.

다들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즐거운 상상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멤버 구성이었고, 그녀들의 관계성만 보면 걸그룹을 하기에 딱이었으니.

다만, 모두가 상상만으로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12월. 일주일 간격으로 진행되는 공중파의 가요대축제.

그중 첫 번째 순서는 KBC였다.

“이건 해볼 만한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신준열 피디.

그는 인터넷의 반응을 더 볼 필요도 없이, 곧장 회의를 열기로 했다.

“다들 모이라고 해요. 특별 무대 하나 기깔난 거로 뽑아보게.”

어차피 뽑아야 하는 특별무대. 어차피 해야 하는 합동 무대.

대중들이 가장 원하는 그림을 만들면 좋지 않겠는가.

‘라인업이 죽여주긴 하네.’

개인적으로도 크게 기대가 되긴 하지만, 피디로서 이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만약 그쪽에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올해의 가요대축제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화제를 낳으며 대박을 거둘 수 있을 테니까.

‘만약 진짜로 합쳐지게 되면··· 우리 무대가 시작점이 되는 건가?’

짧게 망상을 펼치던 신준열 피디는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털었다.

“에이, 설마 그러려고.”

***

유정아의 쇼케이스가 끝난 뒤 며칠.

정아가 음악방송을 포함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할 동안 난 그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쇼케이스 날 밤, 진심이 뚝뚝 떨어지는 말을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순간이라면 모를까, 이걸로 어색해질 만한 사이가 아니다.

그녀를 못 만난 이유는 이제 우리 직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따라붙지 않아도 스케줄을 소화하는 데엔 전혀 무리가 없거든.

‘연말이라서 나도 바쁘기도 하고.’

그래도 오늘 점심은 스케줄이 빈다.

나뿐만이 아니라 정아랑 서연이, 유진이까지도.

마침 별이도 귀국한 상태.

이제 당분간 이렇게 동시에 스케줄이 빌 때가 없을 테니, 그 전에 회포도 풀 겸, 만나서 재밌게 얘기도 할 겸.

우리는 다 같이 스케줄이 비는 오늘 점심, 모여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는 다 마쳤으나, 지금 나가기엔 아직 시간이 이르다.

그래서 난 핸드폰으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이제 모니터링은 그냥 습관 같은 거지.

마침 어제는 쇼케이스를 준비하며 찍은 ‘비포 앤 애프터’가 방송되었으니, 모니터링을 할 만한 것도 많았다.

물론 방송이 끝나고 바로 모니터링을 하긴 했지만, 보고 또 봐도 지겹지가 않다.

-돈 타령하는 사장 vs 팥죽 타령하는 유정아ㅋㅋㅋㅋ

-유정아 쇼케이스 이렇게 보니까 또 감동이네···. 진짜 준비 빡세게 한 것 같더라. 개잘해.

-ㅁㅊ유정아 재발견이다. 실력 같은 거 말고 이렇게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타입인 줄 몰랐음.

내가 볼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영화,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최대 라이벌이 될 예정이었던 이하영 주연, 박범준 감독의 신작에 대한 반응도 보면 볼수록 재밌었다.

스릴러 영화, ‘잠든 사이’.

드디어 개봉을 했고, 대중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볼 이유도 없지.

난 대중들의 반응만 확인하면 됐다.

-개재밌음!!! 완전 쫄깃쫄깃함. 역시 박범준&이하영 조합 미쳤네.

-재밌긴 하네. 나름 볼 만했음.

-근데 왜 뭔가 아쉽냐.

└지금 경쟁작이 미쳐서 그럼ㅋㅋㅋ 저긴 그냥 빵빵 터지잖아. 유정아고 이유진이고.

└이 영화도 재밌긴 한데 스타는 다시 무대로에 비할 바는 아니지.

나름 반응도 나쁘지 않은데, 딱 그 정도였다.

우리 영화 때문에 묻히게 된 것.

그 밋밋하고 감질나는 반응에 큭큭,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는 영화 외적으로도, 영화 내적으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화젯거리들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그러니 라이벌이 될 수가 없지.

그리고 또 하나.

“별이 방송으로 시끌시끌하네.”

난 피식 웃으며 반응들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내가 예전부터 상상해왔던 걸, 이제 팬들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팬덤 하나 부정적인 반응이 없다.

멤버들 사이에 인기면에서 차이가 심하면 ‘왜 우리 애가 손해를 봐야 돼!’라며 극구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애들은 모두 다 잘나가거든.

“그런데 같이 뭉칠 기회가 있으려나?”

사장인 주제에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타이밍이 안 맞으면 굳이 무리할 생각도 없다.

이렇게 화제가 되는 와중, 팬들도 재미로만 그치는 이유가 그랬다.

다들 혼자서도 잘나가고 있으니까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이제 나가면 딱 되겠네.”

시간을 보니 이제 나갈 시간이 되었다.

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을 나섰고.

식당에 도착하니, 그녀들이 이미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일찍 온다고 일찍 왔는데, 제일 늦게 와버렸다.

“오빠!”

“사장님, 우리 미리 시켰어요!”

“선배, 술은 안 시켰는데 선배가 시키면 같이 먹을게요.”

별이와 서연이, 유진이가 나를 반겨주었다.

정아는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아직 안 늦었거든?”

“미리미리 와 있어야지!”

난 큼지막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자리에 앉았다.

별이가 툭 던진 말이 화제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녀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왔으니까.

이게 걸그룹의 힘인가?

< 우리가 걸그룹이라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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