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
유정아는 인터넷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신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한 쪽으로 제쳐두고, 가수로서의 자신을 대중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앨범이 발매된 지 아직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순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음원 사이트의 앨범 리뷰에는 이미 댓글로 가득하다.
유튜브의 뮤비에도 다양한 언어들로 댓글들이 적혀 있었다.
생중계가 된 쇼케이스 또한 반응이 뜨거웠고.
팬 카페, 커뮤니티, SNS 등을 모두 돌아다니며 음미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내려왔음에도 공허한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보통 가수들은 무대가 끝나면 공허한 마음이 든다던데, 아직까지는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잘 감이 오질 않았다.
계속 웃음만이 나오고 있어서.
‘행복해.’
행복하다. 가수가 될 수 있어서. 이런 좋은 곡을 낼 수 있어서.
좋은 뮤비를 찍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유정아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사장이 됐음에도 직접 운전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김유민.
스케줄은 몇 시간 뒤 새벽에 잡혀 있는데, 그가 직접 집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그도 시선을 돌려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운전에 집중해야지. 사고 날 일 있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뾰족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웃음을 짓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입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나 운전 베테랑인 거 몰라? 걱정하지 마.”
“하여간 이쁜 건 알아가지고.”
“···이제 네가 쳐다봐도 절대 안 돌아보고 빡집중할게.”
“가끔은 쳐다봐도 돼.”
“운전하니까 말 걸지 마. 집중해야 돼.”
“···.”
그리고 마침내, 곡이 발매한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정아는 내가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한 시간 지났어. 차트 한 번 볼까?”
“응. 보자.”
보자는 말 외에 무얼 덧붙여 말하진 않았다.
순위가 좋을 건 당연한데, 과연 1위도 가능할까?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또 모른다.
예상보다 조금 떨어지는 순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만약 자신 있게 말했다가,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이 더욱 커질 테니까.
“···1위야.”
“뭐?”
마침 신호가 걸려서, 난 몸을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정아가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줬다.
[ 1. Face – 유정아 (New)]
[ 2. I Am Addicted – 이유진 (↓1)]
유진이를 꺾고 정아가 1위로 진입했다.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정아의 입에서는 즐겁다는 듯한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때? 난 예상하고 있었어.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목소리에서 기쁨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
설마 유진이를 꺾고 1위를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나도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초대박.
반짝 1위일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역시 유정아’라고 할 만했다.
유진이가 잠깐이나마 꺾인 게 아쉽기는 해도, 기뻐할 일인 건 분명하다.
유진이도 얻을 건 이미 다 얻었으니까.
빠앙-!
클락션 소리가 울려서 신호를 보니, 초록불로 바뀌어 있었다.
“운전 집중하라니까.”
“알겠어. 하하.”
난 다시 운전에 집중하려는데, 자꾸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옆에서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렇게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그녀는 말했다.
“나 이제서야 가수가 됐어.”
씩 웃으며 나도 말을 꺼내려 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 웃었던 사람 같지 않게, 그녀의 눈시울은 촉촉해져 있어서.
그녀는 당황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오래 걸렸어. 그리고 만족스러워. 오빠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믿어주고 데뷔시켜줘서.”
그녀의 목소리에선 물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 진심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부드럽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나 들어가볼-“
“나도 고마워. 날 믿어주고 따라와줘서.”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을 열고선 손을 흔들었다.
“내리지 마. 혼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 지금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조금 어색하고 민망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
컴퓨터 앞에 앉은 이하영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방송에 대한 반응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얘 뭐 하냐ㅋㅋㅋㅋㅋ 너무 심하게 작위적이라서 오히려 진짜 웃기네ㅋㅋㅋ
-1악장이 잔잔해서 마음이 편해진대ㅋㅋㅋㅋ 개뿜었네.
-유정아랑 너무 심하게 비교되네···. 비교를 안 하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음.
-진짜 전형적인 배우병 아님? 지겹다 이제.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유정아랑 비교된다고?”
그 이름 석 자가 적힌 댓글들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자신의 전성기를 빼앗아버린 유정아,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그녀.
이하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방송은 보고 싶지도 않아서 보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마음. 아니, 댓글들을 보다 보니, 더욱더 보기가 싫어졌다.
유정아가 찍은 영화나 드라마가 호평일색일 때도 까기 위해서 봤다가 더욱 짜증만 깊어진 경험을 몇 번이고 했었다.
‘비포 앤 애프터’도 비슷하겠지.
다만, 음악에선 모른다.
‘분명 깔 게 있을 거야.’
이하영은 조회수 하나를 올려주는 것도 싫어서 굳이 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까기 위해서라도 봐야겠다.
이하영은 유튜브로 유정아의 뮤직 비디오를 틀고선 곧바로 팔짱을 꼈다.
눈에는 색안경을 꼈고, 미간은 트집을 잡기 위해 좁혀져 있었다.
그리고 뮤비가 시작된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서 내리는 얇은 발목. 이어서 보라색 드레스가 드러났다.
커다란 까만 모자를 쓰고, 양산을 손에 든 유정아.
그녀가 빨갛게 칠해진 입술을 비틀었다.
구두를 신은 다리를 우아하게 옮기며,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음악.
그 옷차림 그대로 댄서들과 함께 가볍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자칫 댄스와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아니었다.
유정아가 제일 잘하는 ‘연기’를 접목하고 있었으니까.
이하영은 유정아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
이하영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아니, 시대와 캐릭터가 바뀌었다.
조명이 비추는 클럽. 빽빽하게 찬 사람들이 흥겹게 몸을 흔들고 있고.
유정아는 몸에 착 달라붙는 탱크탑을 입고 있다.
과한 악세서리와 한 쪽으로 정갈하게 넘긴 긴 생머리.
유정아가 도도한 표정으로 살랑살랑 리듬을 탄다.
“···씹!”
이하영의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뮤비 감독이 천하의 명감독인 모양이다.
유정아는 무조건 구려야 하는데 과하게 포장을 하고 있다.
그 이후도 비슷했다.
갖가지 캐릭터가 툭, 툭, 튀어나오고 유정아는 이를 전부 다 소화하고 있었다.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냥 평범하게는 안 되겠으니까 연기 쓰네. 쿨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졸렬하기 짝이 없어.”
기껏 잡은 트집이 이거였다.
논리라곤 아무것도 없었으나, 뭐라도 비난을 내뱉지 않고선 답답해 말라죽을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 클라이막스가 나왔고.
“어···?”
이하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입매가 얇은 호선을 그렸다.
“이거···.”
다시 돌려서 들어봤다.
역시나, 보컬이 곡을 제대로 못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지! 곡만 좋으면 뭐 해! 가수가 안 받쳐주는데!”
희희낙락. 이하영은 쾌재를 외쳤다.
싱글벙글 웃으며 바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신상을 들킬 염려도 없는 곳.
솔직히 말해서 다 좋은 편이긴 한데, 이건 트집을 잡을 만한 건덕지임이 분명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하영은 이 점을 꼬집는 글을 작성해서 올렸다.
그리고 바로 댓글이 달렸다.
-ㅋㅋㅋㅋㅋㅋ쇼케이스 무대나 보고 와라.
“음···?”
-이렇게 또 억까를 하네ㅋㅋㅋ 요즘엔 안티들도 똑똑한데 얜 그냥 멍청한 듯.
-사실 지능적 팬 아닐까?ㅋㅋ 음원으로 그 부분 계속 들어보면 진짜 좋더라.
-ㅇㅇ그 부분 계속 귓가에 맴돌고 있음. 갈라진 목소리 들으려고 음악 한 곡 반복 중.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녹음한 거더만. 역시 김유민이 성공한 이유가 있다. 아니 구서연이 한 건가?
여기서도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이하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노가 일기는커녕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 목이 갈라졌는데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댓글에서 말하는 쇼케이스 영상을 찾아봤다.
혹시나 라이브 무대에서 실수가 있지 않을까, 실력이 처참하지 않을까 실낱 같은 기대를 하며 봤는데.
열 받게도 깔끔했다.
‘그래도 여기선 실수하겠지.’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던 클라이막스.
댓글들로 말미암아, 그녀가 나름 잘 넘겼다는 걸 알게 됐으나, 유정아가 어물쩡 넘어갔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립싱크를 했거나, 대충 숨을 고르는 척하면서 넘겼거나, 음정을 낮췄거나 하며.
그런데.
“···!”
그녀는 불안했던 음원과는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하게 소화해버렸다.
이럴 거면 왜 음원에선 그 따위로 녹음했을까.
“···짜증나네, 진짜.”
어쩌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노리고 그랬을 수도 있다.
뮤비를 찾아보기 전보다, 짜증이 몇 배는 더 커졌으니까.
***
멕시코시티.
연말이라서 곳곳에서 파티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규모를 한눈에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를 높여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김별.
야외 무대라서 목소리가 울리지도 않을 텐데, 무대 아래에서 오를 준비를 하던 김별의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이어를 매만졌다.
반면, 박실장님과 스탭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얼룩져 있었다.
관객들이 내뿜는 열기가 그들에게 직격으로 꽂힌 모양이다.
그동안의 해외 활동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이 무대가 이번 활동의 마지막 해외 스케줄이었으니.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니까 유종의 미 거두고 가자.”
“네.”
이제 이것만 끝나면 국내로 돌아가야 한다.
가요대축제, 그리고 시상식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그동안 밀린 일정들도 다 소화해야 한다.
광고를 다시 찍는 것도 그렇고, 새로운 광고도 찍어야 하고, 해외활동에 대한 인터뷰도 해야 하겠지.
김별은 무대 위로 걸음을 옮기며 입꼬리를 올렸다.
즐겁고 행복한 해외활동이었다.
타지에서 활동하는 거라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는 팬들이 있으니 좋을 수밖에.
이번 해외활동으로 인해 얻은 건 너무나도 많았다.
인지도와 인기가 특히 그러했다.
여기 멕시코에서도, 처음엔 이런 대규모 무대에 설 줄도 몰랐고,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줄지 몰랐다.
그러나 짧은 활동만으로도 멕시코인들은 자신을 알아봐주고 사랑해줬다.
무대에 올라온 지금, 관객들의 입에선 격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중엔 얼마 전까지 자신의 음악을 듣기는커녕, 이름과 얼굴도 몰랐던 이들도 수두룩할 터.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자신을 열렬히 환영해주는 팬이 되어 있었다.
지금껏 거쳐온 나라들 중 대부분이 그랬다.
언제나 그 나라를 떠날 때면, 이렇게 수많은 팬들이 만들어진 뒤였다.
반주가 흘러나온다.
정규 1집의 타이틀 곡, ‘Bad’.
또 한 번 관객들 사이로 열광이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김별은 노래했고, 댄서들과 함께 춤을 췄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 이번 무대도 후회가 남지 않게.
자신을 반겨주는 팬들이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지 않게.
행복한 여운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이제 명실상부 글로벌 스타가 됐지만, 김별은 무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이런 과분한 인기를 얻고, 과분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게, 자신 혼자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곧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일까.
김별의 눈앞에, 문득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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