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나도 가수다 >
드디어 오늘이다. 유정아의 가수 데뷔일이자 쇼케이스.
대기실, 거울 모서리를 둘러싼 전등이 정아의 조막만한 얼굴을 비추고 있다.
난 그녀의 바로 뒤에 서서 가만히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해외 팬들과 해외 차트를 의식해 자정에 음원을 내는 게 요즘 추세이기도 하고, 그녀를 주목하는 해외 팬들도 모래알처럼 많았으나.
우리는 국내 팬들을 위해 오후 6시에 음원을 발매하기로 했다.
뮤비 또한 그때 동시에 나오고.
이제 한 시간 뒤면, 그녀는 공식적으로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정아는 담담한 얼굴로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맞추며 나를 불렀다.
“오빠.”
“어.”
그녀는 시선을 살짝 들어올려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입맛을 다시다가 재차 입을 연다.
“···아냐.”
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 미묘한 모양이었다.
대기실 바깥은 이곳과 달리 시끌시끌했다.
관객들도 모이고 있고, 기자들도 모이고 있다.
대기실엔 그녀와 나, 그리고 스타일리스트와 댄서들.
지금 이곳의 분위기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긴장감과 기대, 흥분, 불안함이 공존하는 듯하다.
이는 정아 또한 마찬가지겠지.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속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아야.”
“응.”
“어려울 거야. 쇼케이슨데, 립싱크도 아니고 라이브 무대니까. 댄스랑 같이 노래 부르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
“알아. 그래도 많이 연습했잖아. 잘해야 돼.”
목소리가 단단해지고 얼굴이 살짝 굳었다.
자신감은 아닐 터.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잘해왔으니까. 행여나 실수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다른 면에서 훨씬 유리한 포지션을 갖고 있잖아.”
그녀는 배우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실수 정도는 대중들도 눈을 감아줄 수 있다.
또한, 신인이기도 하다. 라이브 무대, 그것도 데뷔 쇼케이스 무대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대중들은 이해를 하고 다음에 다시 그녀를 바라봐줄 것이다.
그녀는 신인임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탑스타였으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겁 먹을 필요 없어.”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과해. 걱정도 격려도. 지금까지 이런 적 없었으면서 왜 그래?”
“그거야 네가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잘할 거야. 잘해야 돼.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는 지금 아무런 상관이 없어. 언제나 결과가 말해주는 거야.”
그녀가 겪어온 길이 그러했고, 그녀가 봐온 연예계가 그러했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이렇게 말한다면, 나 또한 계속 이렇게 말할 거다.
“미끄러져도 돼. 다음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잘할 거라고. 실수 안 할 거야.”
“그러면 좋지. 그런데 대중들은 이미 영화로 네 실력을 한 번 봤었잖아. 예능으로도 그렇고.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까지 그렇게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대중들은 이미 네가 잘하는 걸 알고 있거든.”
그녀는 굽히지 않는 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눈매가 옅게 휘어져 있었다.
“진짜 고집불통이네. 알았어···.”
난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얼마간 기다리고 있으니, 황실장님이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준비 다 끝났어요. 이제 올라가야 합니다.”
정아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묵묵히 대기실을 나섰다.
대화는 충분히 나눴고, 연습도 차고 넘칠 정도로 했다.
이제 보여줄 차례. 더 이상의 말은 사족이나 다름없었다.
대기실에서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등장할 때 나오기로 했던 음악 소리만 흐르고 있을 뿐.
기자들이나 관객들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정아가 나오길 기다리며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바로 아래에 다다랐을 때.
정아는 내게로 몸을 돌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갔다 올게.”
정아는 다시 몸을 돌려, 성큼성큼 다리를 뻗었다.
***
박기자와 최기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공연장에 꽉 찬 관객들을 바라봤다.
박기자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쇼케이스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요? 와아. 역시 유정아라 이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유정아한테 이 정도면 엄청 겸손하게 쇼케이스 하는 거야. 지금 유정아한테 쏠린 시선들이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래?”
“하긴··· 관심이 엄청 쏠려 있긴 하죠. 라이브 무대에서 실력 들통날 거라고 저주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기도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선배님은 어느 쪽이에요?”
“우리 같은 기자야 뭐, 아주 잘하거나 아주 못해야 좋지. 쓸 기삿거리가 많고 대중들도 우리 기사를 찾아보려 할 테니까.”
최기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나 예능에서처럼 잘했으면 좋겠어.”
“왜요?”
“팬이거든. 이번 영화 보면서 찐팬 된 것 같기도 하고.”
박기자와 최기자는 좀 더 가까운 주변을 둘러봤다.
기자들 중 일부는 승냥이 같은 눈빛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자신처럼 기대 어린 시선을 무대 위로 보내고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던 공연장.
그때 조명에 슬슬 힘이 들어갔다. 번쩍번쩍 공연장을 천천히 훑던 조명이 무대 위로 모아졌다.
이에 따라, 모두의 시선도 조명을 따라 무대 위에 시선을 모았다.
“나왔다!”
부담스럽지 않은 무대의상을 입은 유정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감인지 연기인지 모를 자연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고서, 그녀는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등장했다.
“우와아아아아─!”
“꺄아아아! 유정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지금까지의 침묵을 확 뒤집어버리듯, 그녀는 등장만으로 장내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유정아입니다.”
함성과 환호가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감이 이 넓은 공연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보통 배우와 가수의 존재감은 다르게 발산되고는 하는데, 그녀는 양쪽의 스타성을 모두 갖고 있나 보다.
‘아니··· 아직 몰라.’
어쩌면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진정한 무대 장악력은 무대가 시작됐을 때 나오는 것이니.
지금 이 존재감은 배우로서, 그리고 탑스로서 발산하는 존재감일 수도 있다.
유정아는 떨림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첫 번째 무대네요. 이렇게 많은 관객들 앞에서 무대를 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녀는 씩 웃으며 천천히 눈을 움직였다.
관객들과 기자들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했어요. 많은 분들이 실망하시지 않도록, 좋은 무대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제목은 ‘Face’입니다.”
“와아아아─!”
“유정아 파이팅─!”
드디어 무대다.
조명이 바뀌며, 스크린도 바뀌고, 무대 위로 댄서들이 등장해 그녀의 곁에 섰다.
영화로 따지자면 지금이 클라이막스.
그동안 꽁꽁 숨겨놓고 감질맛 나게 맛보기만 보여줬었다.
대중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기대를 높였다.
그리도 드디어.
지금 베일을 벗고 무대를 펼치려 한다.
제발 잘해라.
잘해주면 좋겠다.
기분 좋게,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
최기자는 속으로 빌었다.
***
어떻게든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을 가장할 수 있었다.
목소리고 표정이고 걸음걸이고, 모두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모두 연기력 덕분이었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이렇게 뛴 적이 없다.
긴장감일까? 아니, 아까까진 그랬을지 모르지만 댄서들과 함께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은 다르다.
희열이고 환희였다.
꿈에도 그리던 장면이다.
관객들 앞에서 무대를 보이려 하고 있다.
음악이 시작됐다.
그동안 수도 없이 연습했던 안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내달렸다.
인이어를 끼고 있어서인지, 관객들의 환호성이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하늘 높이 내뻗고 있는 팔은 잘 보인다.
그들의 열기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제발 잘하자.’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장내에 퍼졌다.
관객들의 열기가 더욱 뜨겁게 달궈졌다.
이게 무대인가. 가수들이 매일 같이 보는 광경인가.
더러 많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올라오려 했지만, 유정아는 자신의 재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은 무대에 집중해도 모자라다.
자신은 김별, 구서연, 이유진과 같은 천재가 아니기에.
유정아는 이유진에게, 그리고 댄서들에게 지적당했던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긴장감을 바짝 조였고.
김별과 보컬 트레이너, 그리고 김유민에게 지적당했던 보컬 디테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배에 힘을 줬다.
보여지는 광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황홀한 광경이다.
관객들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의 눈에는 그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무대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했던가.
자신이 아니면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고도 했다.
배우인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컨셉이었다.
그리고 이 말에는 자신도 공감했다.
여러 컨셉을 연기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
무대가 이어지며, 점점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감이 차올랐다.
관객들은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류지혜’를 겹쳐서 볼 수도 있고, 그동안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겹쳐서 볼 수도 있다.
이 또한 자신만이 가진 장점이라면 장점일 수도 있겠다.
다만, 자신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간 연기해왔던 캐릭터가 담겨 있지 않았다.
‘가수로 데뷔한 배우’가 아닌, ‘가수를 꿈꿨던 유정아’.
가수로서 배우의 재능을 십분 활용하기는 하나, 이 무대는 오롯이 유정아, 자신의 것이었다.
머리가 새햐얘질 정도의 즐거움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된 것일까.
문득 기자석에 있는 누군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입술은 쩍 벌어져 있다.
유정아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눈매를 짙게 휘었다.
탑스타로 자리매김하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가슴 한 켠에 응어리졌던 미련이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해소되고 있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무대가 끝나고 인이어를 빼자, 그제서야 관객들의 함성이 제대로 귀에 들어왔다.
‘아···!’
그러고 보니,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갈라진 보컬을 그대로 녹음했던 부분.
그 부분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걸, 무대가 끝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집중한다고 집중했는데 많이 흥분했었나 보다.
유정아는 아차, 하는 표정을 숨기며 티 나지 않게 주위를 훑어봤다.
댄서들, 관객들, 기자들, 그리고 김유민의 표정까지.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제대로 했나 보네.’
비로소, 유정아의 얼굴에서도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제 나도 가수다.
< 이제 나도 가수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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