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닝 커피와 베토벤 >
유정아가 촬영 중인 ‘비포 앤 애프터’의 장동준 피디와 최영희 작가.
그리고 CP인 윤부장과 이국장까지, 넷이 함께 극장을 찾았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영화관.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이국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사람들이 많구만. 개봉날이라서 그런가.”
윤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오늘만 그러겠습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시사회 리뷰에서도 다들 엄청 극찬했잖아요.”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 시사회 때도 그랬지만, 관객들이 직접 예매해서 본 시사회에서도 아주 극찬에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진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유정아에 대한 찬사도 당연하다는 듯이 쏟아졌다.
‘얼마나 재밌길래.’
장동준 피디와 이들이 개봉날에 모여 영화를 보러 온 것은, 현재 유정아를 촬영 중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말로 영화가 어떤지, 영화에서 그녀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보면 알겠지.’
유정아가 주연을 맡은 데다가 이런 호평들이 쏟아지고 있는 이상,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몇 분 뒤.
‘스타는 다시 무대로’를 상영한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장동준과 일행은 그들의 얼굴을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잔뜩 상기된 얼굴,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다들 비슷한 말들을 하고 있었기에.
“유정아 엄청 잘하네. 진짜 아이돌인 줄 알았어.”
“내용도 재밌긴 한데··· 이유진 그거 뭐냐? 와···. 아직도 소름 돋아. 우리 이거 다시 볼래? 그 장면은 당분간 인터넷에 안 풀릴 것 같은데.”
“이유진-“
“유정아···.”
공통적으로 이유진과 유정아를 입에 담으며 감탄하는 관객들.
장동준과 일행들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져갔다.
얼마 뒤 영화관에 들어온 그들.
좌석은 남는 자리 하나 없이 꽉 찼고.
기대감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조명이 꺼졌다.
광고가 시작되는 동안, 장동준 피디는 다른 생각에 잠겼다.
‘영화 다 보면 잘 봤다고 정아 씨한테 말해주고, 자막이나 연출에서도 참고할 수도 있겠어. 영화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하면서 이해할 수 있겠지.’
직업병이었으나, 이런 작은 차이가 센스를 만들고 디테일을 만든다.
또한, 이런 점을 WE엔터에서 좋게 본다면, 다음에 김별이나 이유진, 구서연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고.
이득과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광고가 끝났다.
극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장동준 피디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굳이 집중력을 끌어올리지 않았어도 딱히 상관이 없을 뻔했다.
첫 장면부터 나온 유정아의 모습이, 그녀가 내뱉는 목소리가.
강제로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으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직업병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한 명의 관객으로 영화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장동준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
“···.”
“···.”
모든 관객들이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크린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데, 누구 하나 바로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장동준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움직이고 싶지가 않다.
이 여운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이대로 영화관을 나가면 이 여운이 조금이라도 옅어질까봐.
하지만 계속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관객들은 천천히 영화관을 빠져나왔고.
장동준 피디는 아까 전에 봤던 광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 그리고 넋을 놓고 있는 표정.
최영희 작가도, 윤부장님도, 이국장님도, 다른 관객들도, 그리고 자신도.
모두 영화 속 인물, 류지혜(유정아)와 성희주(이유진)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
폭발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랐다.
대중문화예술계에선 때때로 그 분야에서 한 획을 긋는 일이 나오곤 한다.
물론 개인의 기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남들이 난리를 치는 명작이 누군가에겐 심심풀이도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대중적으로 히트를 치지 못했더라도 열광적인 마니아층이 생기는 작품도 꽤나 있다.
여기서, ‘스타는 다시 무대로’가 명작이냐 하면, 그건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다.
열광적인 마니아층이 국내에서만 하루마다 수십만 명씩 생기고 있고, 세계로 따지면 그보다 더 되겠지만.
아직 영화계에 길이 남을 명작들에 비해선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
일단 보수적으로 봤을 때, 순수한 작품성이 명작급에 미치지 못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중성으로 봤을 때는 또 모른다.
이제 막 개봉을 했으니,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계에 국한하지 않고, 대중문화예술계로 범위를 넓혀보자면.
우리는 길이 남을 명작에 바짝 다가섰는지도 모른다.
만약 OST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기록을 세운 거라면, 이 또한 영화계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좀 더 복합적이었으니까.’
[‘스타는 다시 무대로’ 전세계 동시 개봉 D+3. 각국에서 일어나는 신드롬의 전조.]
[전세계 유튜브, SNS, 음원차트에서 유의미한 차트 변화 추이. K팝에 더욱 주목하는 전세계!]
[다시 한번 K팝 열풍을 이끌어내려 하는 ‘스타는 다시 무대로’. 그 주역은 유정아와 이유진.]
기사 타이틀이 머릿속에 쾌감을 쭉쭉 주입시키고 있었다.
거대한 주사기를 정수리에 꽂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모니터링을 하며 기사와 칼럼을 접하고.
직원들의 보고를 받으며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
나를 부르는 유진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쫙 빠져 있었다.
허나, 그녀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이 빨갛게 젖어 있고, 눈동자엔 나처럼 희열이 요동치고 있었다.
오늘은 유진이의 마지막 음악방송.
데뷔 시즌이라 더 많은 무대 영상을 남기기 위해, 유진이의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 우리는 음악방송 출연을 참 오래도 끌었다.
사실 이 정도의 인기를 얻었으면, 진작에 끝내도 됐을 텐데.
그녀는 나를 바라봤고, 나도 그녀를 바라봤다.
우리는 동시에 함박미소를 지었다.
“···됐어.”
“···대박 터졌어요.”
이걸 고작 ‘대박’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대박의 기준을 가뿐히 넘어섰다.
그녀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고,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내 손에 쥐어진 핸드폰.
화면엔 유진이의 뮤직 비디오가 떠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조회수에 주목했다.
1억 7천만.
누군가는 이 숫자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한 숫자냐며 실소를 터뜨릴 수 있으나.
영화가 개봉한 날을 포함하여 4일 동안, 무려 1억의 조회수가 늘어난 거다.
“이건 미쳤어···.”
당연하게도, 이 숫자가 모두 영화를 본 관객들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열렬한 극찬과 입소문, 그리고 이러한 반응에 따른 언론의 설레발 등이 모두 겹쳐진 효과였다.
더 대단한 것은, 이 기세가 아직 절정에 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아니 이거 시너지 효과가 미쳤는데?ㅋㅋㅋ 영화 본 사람들은 무조건 이유진 찾아보고, 이유진 본 사람들은 뮤비 보고, 입소문 타서 뜨면 또 다른 사람들이 이유진 보고, 그중에서 일부가 또 영화 보고.
-와 씨! 기자들이 이유진 댄스로 아주 난리 부르스를 추더니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다. 실루엣 댄스 그거 진짜 미쳤더만.
-죄송합니다 위대하신 기자님들. 이유진 댄스 잘 추는 거 모르는 사람 없다고 말했었는데 제가 틀렸네요. 예. 이렇게까지 미친 장면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유진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떨었다.
“선배, 저 빌보드··· 몇 위까지 올라갈까요?”
아직 집계가 나오지 않은 상태.
이제 얼마 뒤면 주간 차트가 업데이트 될 것이다.
난 입술을 떼었다가 붙이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빙긋 미소 지었다.
“글쎄? 미국에서 활동 시작하기 전까지는 못해도 20위 안엔 들어가지 않을까?”
“그건 너무 갔어요. 미국에서 뼈 빠지게 활동해도 20위 안엔 못 들어갈 텐데.”
“너야말로 너무 겸손해. 지금 기세 몰라서 그래? 미쳤다니까 그냥?”
“···그래도요.”
“혹시 모르는 거지. 기대만 해보자고.”
유진이는 내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내 물음에 유진이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정아 언니는 어떨까요?”
“정아?”
내 입꼬리도 쭉 올라갔다.
“글쎄?”
전세계에 포진해 있는 정아의 팬들, 그리고 이번 영화를 본 사람들과 기존의 K팝 팬들까지.
모두 특정 날짜의 특정 시간을 목 빠져라 고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의 규모는 지금 이 시간에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
“그건 나도 예상 못하겠네.”
정확히 말하면, 감히 예상을 할 수가 없는 거였다.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광기를 내가 어떻게 계산하겠나.
다만, 그날이 오기를 나 또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아직 ‘비포 앤 애프터’의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
아주 뽕을 뽑으려는 듯, 제작진들은 CP와 국장까지 동원해 ‘한 번 더’를 계속 외쳤고, 우리는 이에 선선히 동의했다.
개봉날에 맞춰 직접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는 정성 때문은 아니었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침을 튀길 듯 감상을 쏟아내는 모습이 고맙긴 했는데,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지.
우리가 촬영을 계속 하는 이유는 대중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좋았을 뿐더러,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연습을 하던 장면들을 찍었고, 다음엔 영화 홍보를 위해 스케줄을 뛰던 모습을 찍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촬영 중이었다.
“으음. 뭐, 괜찮네. 마음에 들어. 저기가 기자들 있을 곳이고, 저기가 팬들이 앉는 곳이지?”
정아가 장내를 스윽 훑으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비포 앤 애프터’의 카메라는 정아와 함께 서 있는 나까지 찍고 있었지만,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얼굴이다.
굳이 피할 이유도 없지.
난 정아에게 물었다.
“쇼케이스가 무대만 한다고 끝이 아니야. 인터뷰도 하고, 팬들이랑 소통도 할 거야. VCR도 좀 찍어둬야 돼.”
“나도 알거든? 누굴 진짜 신인으로 보나.”
“가수로는 신인 맞으면서 아는 척하긴···.”
“뭐? 오빠 지금 뭐라고 중얼거렸어! 내 욕했지!”
이제 곧 앨범 발매일.
하루하루 무섭게 커져가는 관심 속에서 우리는 정아의 네임 밸류에 걸맞게, 화려한 쇼케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돈이 무진장 깨지는 쇼케이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거지.
“내 돈···.”
“어휴. 그놈의 돈 타령. 됐고, 밥부터 먹자. 오늘은 팥죽이야.”
“그놈의 팥죽 타령.”
“뭐!?”
아직 리허설 준비가 되지 않은 공연장을 빠져나와, 대기실로 들어갔다.
정아가 팥죽을 제 맘대로 시킬 동안, 나는 TV를 틀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TV 속엔 우리의 최대 라이벌이 될 예정이었던 이하영이 나오고 있었다.
개봉을 3일 앞둔 거장 박범준 감독의 스릴러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나온 모양이다.
“뭐야! 재수없는 년 치워!”
이하영이 나오자마자 정아가 뾰족한 목소리를 터뜨렸다.
“잠깐만.”
나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막 잠에서 깬 듯, 침대에서 눈을 뜨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메이크업을 했네···?”
“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정아의 시선도 TV에 고정됐다.
그리고, 우리는 한참이나 멍하니 TV를 지켜봤다.
어안이 벙벙했다.
정아가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이거··· 리얼리티 아니지? 드라마야? 아니, 시트콤인가?”
난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몰라···. 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
모닝 커피와 베토벤을 음미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정아는 눈치 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얘 스릴러 찍었다고 했지? 영화 홍보 제대로 하는 것 같네. 나 소름 돋았어.”
고도의 전략이었군.
내 몸에도 소름이 돋았다.
< 모닝 커피와 베토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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