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진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음 >
‘일도 잘하는 밴드’의 녹화 현장.
김별은 해외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처음엔 조금씩 나오다가, 어느샌가부터 못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빈 자리가 크긴 하나, 나머지 멤버들만으로도 촬영은 여전히 순항을 하고 있었다.
“서연아, 정아 씨 어때? 잘해? 곡도 네가 준 거라고 했지?”
녹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저녁 식사 시간.
식당 TV앞에 출연진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김석희는 모두를 대변해 서연에게 물었다.
“네, 곡은 제가 썼죠. 그리고 정아 언니 잘해요.”
“오! 그래? 어떻게 잘하는데? 근데 주연으로 영화 찍으면서 데뷔 준비까지 같이 한 거야?”
서연은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유정아가 평소에 어땠는지 떠오른 까닭이다.
“언니가··· 좀 독하게 열심히 하거든요. 방송 보시면 알 거예요. 영화 촬영이 끝나서 그 모습이 제대로 나올진 모르겠지만.”
방송이 시작되기 직전.
이종락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요즘 어딜 가든 유정아 씨 얘기 뿐이더라. 어떻게 된 게 대중들보다 이 바닥 사람들이 훨씬 더 궁금해해. 자기 거 아니면 별로 관심도 없는 양반들이.”
그의 말을 김석희가 받았다.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정아 씬데. 가요계는 당연하고 영화 쪽이나 예능, 드라마 판, 다 유정아 씨한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아마 이 바닥 사람들 거의 다 지금 우리처럼 TV앞에 앉아 있을걸?”
같이 보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여기 있는 모두가 이 바닥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지.
방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방송이 시작되자,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시작된 1회.
가수로서의 유정아를 처음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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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박범준 감독.
곧 이하영 주연의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기 때문에 한창 바쁜 와중에도, 그는 TV앞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주연, 유정아가 나오는 ‘비포 앤 애프터’를 시청하기 위함이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어디에도 공개한 적 없던 호화스러운 그녀의 집이 나오고.
잠에서 깨어난 유정아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은 채로, 눈곱을 떼고는 밥을 먹었다.
된장국을 데우고, 흔히 볼 수 있는 밑반찬을 꺼내어 평범하게 식사한다.
‘여기까진 뭐, 평범하게 유정아스럽네.’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대중들이 익히 예상하고 있던 모습이었다.
집이 호화스럽기는 해도, 행동에 가식이 없고, 별것 아닌 것에도 왠지 시선을 끄는 스타성.
그녀는 직장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침부터 무척이나 바빴다.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부엌을 정리하는데,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를 대충 던져두고는 그대로 욕실로 직행.
곧이어 생얼로 나온 그녀가 머리만 말리고는 기초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추리닝을 입고 집을 나섰다.
누가 봐도 연습하러 가는 복장.
머리도 대충 아무렇게나 말리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아서 자칫 추레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유정아여서 그런지, 이마저도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였다.
그리고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예고편에서 봤던 인터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떻게 가수를 준비하게 됐는지.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연습실에 도착할 때까지도.
박범준은 다리를 떨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못했으면 좋겠네.’
‘경쟁자의 불운을 바라는 것만큼 못난 것이 없다’는 게 평소 그가 갖고 있던 지론이었고.
감독으로서의 자존심 또한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평소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연습실에 들어간 유정아.
댄서들이 그녀를 반겨줬고, 유정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카메라 있다고 신경 좀 썼네요?
-하하! 네? 평소랑 완전 똑같은데요?
-전 완전 그대로예요!
-와. 근데 정아 씨는 정말 똑같네요?
-연습하는 데 방해예요. 가뜩이나 실력도 모자란데.
오로지 연습만을 바라보며 똑바로 달려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연습 외의 것들엔 조금의 관심도 없고, 머릿속에 연습밖에 없는 듯한 모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기에 올 때까지도 그랬고, 지금의 대사와 어조도 그러했다.
‘연기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유정아가 구태여 이런 이미지 메이킹을 할 리도 없다.
아직 그녀가 실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여기까지만 봤을 때도 더없이 흥미롭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자신은 초조함과 불안함이 높아져가고 있지만 대중들은 엄청 재밌게 보고 있겠지.
-자, 바로 시작하죠.
-네!
-파이팅!
-파이팅!
아직 티저도 공개되지 않은 그녀의 데뷔곡.
바로 지금 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부분이 공개되지는 않겠지.
집중력이 한껏 끌어올려진 가운데, 그녀와 댄서들이 댄스를 시작했다.
“···!”
이어서 그녀의 보컬이 딱 한 소절 흘러나왔을 때.
화면이 바뀌었다.
“아···!”
당연히 모두 공개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나.
막상 여기서 끊기니, 자신마저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방금 전 짧게나마 봤던 퍼포먼스가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눈앞에 아른거렸다.
박범준 감독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반칙이지···.”
한 소절의 노래, 그리고 짧게나마 보여준 댄스로도 충분했다.
“왜··· 잘하는 거야.”
그녀는 진지했고, 심지어 잘한다.
대중들이 사랑하는 유정아가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타나려 한다.
만약 자신이 일반적인 시청자였다면.
그녀가 가수로 나오는 영화를 무조건 보러 갈 것 같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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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앤 애프터’의 장동준 피디와 윤CP, 그리고 이국장.
이들은 국장실에 모여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TV엔 유정아가 댄서들과 함께 추어탕을 먹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와. 맛있네. 사실 별로일 줄 알았는데.
-크으! 소주가 없는 게 아쉽네.
유정아가 댄서들의 호평을 들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부추랑 콩나물이랑 김치랑 같이 먹어봐요. 내 말 들어서 나쁠 거 하나도 없으니까.
이국장은 큭큭 웃으며 말했다.
“정아 씨가 뭘 좀 아네. 추어탕은 저렇게 먹어야 맛있지.”
“국장님, 우리도 이따 추어탕에 소주 한잔 할까요?”
싱글벙글 미소가 내려가질 않는다.
허나, 이렇게 유쾌한 장면도 잠시.
다시 그녀가 연습을 시작하며, 몰입감이 커졌다.
이번엔 반주 없이 ‘원 투 쓰리 포’, 입으로 소리를 내며 동작을 맞추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울을 바라보는 유정아.
진지한 표정으로 디테일을 다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는 엄청 잘되겠네요.”
“잘되면 우리 덕이지.”
이국장의 말에, 장피디와 윤부장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국장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둘의 시선을 피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 아니었어도 잘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다는 거잖아.”
“그건 그렇죠. 잘될 걸 더 잘되게 만드는 거니까.”
화면이 바뀌고, 다시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자막엔 질문이 떠 있었다.
[연습을 엄청 열심히 하시던데 평소엔 어떻게 연습했는지.]
TV속 유정아는 말했다.
-평소에도 비슷하게 연습해요.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유진이가 댄스 알려주고, 별이가 노래도 가끔 봐줬는데, 걔네들이랑 너무 비교돼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들이 특별해서 좋았겠어요.]
-하! 좋다고요? 뭐··· 어떤 면에서는 좋죠. 알려주는 것도 알려주는 건데, 서연이가 곡도 만들어주고 유진이가 안무도 만들어주니까. 그런데···.
유정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멘탈을 단단히 잡아야 돼요. 안 그럼 무너져요. 자극도 자극 나름이지. 천재들 옆에 있어봐요. 진짜 재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 거예요.
[유정아 씨도 연기 천재잖아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그래서 저도 재수없다는 소리 자주 들어요. 천재라서. 그래도 지금은 가수로서 도전하는 거잖아요. 재능은 걔네들에 비해 모자라다는 걸 인정하는데, 전 어떻게 해서든 따라잡을 거예요. 이렇게 계속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되겠죠. 저도 재능이 있다고 했거든요. 유민 오빠가.
[같은 동료들을 라이벌로 생각하시는 건지.]
-네. 동생이고 동료인데, 라이벌이고 목표이기도 해요. 연예계로 따지면 후배고 가수로서는 선배고, 제 선생님이기도 하죠.
[많이 아끼시나 봐요?]
유정아의 얼굴이 순간 클로즈업됐다.
잘게 떨리는 눈동자. 그녀는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아뇨, 딱히.
“크흐흐흐.”
“하하! 유정아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이국장과 윤부장이 웃음을 터뜨렸고, 장동준 피디도 낮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렸죠? 날것 그대로도 대박이라니까요.”
***
잘나간다는 공중파 예능의 시청률은 보통 12프로 내외.
좀 더 기세가 좋으면 10프로 후반까지 가기도 하고, 기세가 아주 좋으면 20프로 초반을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잘나가는 예능에서도 특히나 대중들의 시선이 모일 때가 있다.
이번 유정아의 녹화 같은 경우였다.
[‘비포 앤 애프터’ 자체 최고 시청률 달성! 30.3%]
[유정아 효과 톡톡히 본 VBC. 다음주엔 과연?]
[‘스타는 다시 무대로’ 개봉 D-1. 연달아 유정아에게 쏠리는 대중들의 관심.]
[언론시사회서 기자들 찬양일색. “영화 자체로서도 최고지만 영화 외적인 스토리가 더해지니 유달리 특별한 재미가 느껴진다.”]
반응이 펑, 펑, 터지고 있다.
화제에 붙은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예능도 그렇지만, 어제 열린 언론시사회가 장작을 추가로 넣어준 덕분이기도 했다.
‘기분 좋아 보이네.’
일반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사회의 첫날.
정아는 어린아이 같이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으로 핸드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뭘 보는 걸까요?”
유진이가 내 귀에 속삭이듯이 물었다.
나도 그런 그녀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적어도 영화에 대한 건 아닐 거야. 쟤가 영화로 저런 적이 없거든. 예능에 나온 반응들 보는 거겠지.”
모두가 함께 있는 대기실이다.
감독님도 계시고 제작사 대표님도 계시고, 다른 출연진들도 함께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 시사회에 와서 출연진이 다른 일로 정신이 팔린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건만.
우리 모두는 그런 정아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독님과 대표님은 거의 애교를 부리는 딸을 바라보듯이 정아를 보고 있었다.
정아 덕분에 영화의 화제성이 무서운 기세로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예쁘게 보일 수밖에.
나는 핸드폰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정아에게서 시선을 떼고, 옆에 있는 유진이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
지금 정아의 파격 변신에 대한 화제성이 너무 뜨거워서 유진이가 묻힌 감이 있긴 하다.
가수 활동으로는 여전히 최정상을 달리고 있으나.
영화 출연으로 인한 이점은 별로 얻지 못한 상태.
어제의 언론 시사회 이후에 유진이를 향한 극찬이 쏟아지고 있긴 했는데.
대중들은 심드렁하게 넘기고 있어서 문제였다.
대부분 연기가 아닌, 댄스 장면에 대한 극찬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유진 댄스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음ㅋㅋㅋ
-기자들이 호들갑이 좀 심하네. 이유진 댄스 잘하는 거 전국민이 앎.
-알아요 기자님. 안 그래도 볼 거임ㅋㅋ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언론 시사회 간 기자들 죄다 가요계 까막눈이냐? 뒷북 쩌네.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음. 얼마나 잘 추면 이렇게 기자들이 이유진으로 난리겠냐고.
└아니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미 이유진이 미친듯이 개잘추는 걸 알고 있다는 거지.
기자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대중들은 ‘왜 저러나’하며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헛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선배?”
“사람들이 너에 대한 기대를 안 하는 게 신기해서. 평소에 너무 잘해버리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아아.”
유진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요. 이렇게 된 게 다행이죠.”
그래, 어떻게 보면 다행이긴 하다.
우리는 혹여나 그녀가 데뷔 활동만으로 뜨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여 개봉 전에 데뷔 날짜를 잡았었다.
영화가 후속타가 되어 유진이의 활동에 뒷심을 발휘할 줄 알았지.
그런데 유진이는 떠도 진작에 떠버렸다.
영화의 도움 없이도, 음원 차트에서 압도적인 1위로 뿌리 내려버린 상태.
그뿐이랴? 빌보드에서도 별이가 기록했던 68위를 넘어 59위에 들어섰다.
더할 나위가 없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난 유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기자들도 까막눈이 아니거든? 이미 네가 잘하는 줄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난리법석인데, 관객들도 다를까 싶네.”
“···.”
유진이의 데뷔활동이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은 성과를 얻은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유진이의 댄스 장면에 경악한 연예부 기자들처럼, 그때 촬영을 준비하던 스탭들의 몸을 얼어붙게 한 것처럼.
이미 유진이가 잘 춘다는 걸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새삼 새로운 충격이 될지도 모르지.
나는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과연, 입소문이 어떻게 퍼질까?
아마 지금의 기자들처럼 답답해 죽으려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 귀에 대고 소리쳐봤자, ‘이유진 잘 추는 거 나도 알아’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테니까.
“하하. 재밌겠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얼굴에 씨익,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왠지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듯 즐거운 느낌이었다.
< 이유진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음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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