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90화 (90/124)

< 직접 확인해보면 될 거 아냐 >

카메라가 즐비하게 설치된 이하영의 집.

오늘은 NBC의 관찰 예능, ‘비하인드 더 씬’의 촬영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영화 홍보를 위한 촬영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하영은 침대에서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이미 얼굴엔 기초화장이 되어 있는 상태.

커튼을 치고 아침햇살을 맞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그대로 머금으며 이쁘게 기지개를 켰다.

“으음! 잘 잤다.”

마치 화보와도 같은 이상적인 아침.

그녀는 귀여운 곰돌이 잠옷을 위아래로 입은 채 슬리퍼를 신고 부엌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커피머신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거실로 향했다.

급히 구한 스피커 앞에 선 하영이 전원을 켜고는 잠시 버벅거린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였지?’

분명 사용법을 배웠는데.

‘왜 블루투스 연결이 안 되지?’

미리 블루투스를 연결해 놨으면 바로 연결이 되었을 텐데, 하영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블루투스를 켜면 바로 연결이 될 줄 알고 굳이 해두지 않은 것.

“···피디님, 다시 할게요. 매니저, 이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이하영은 관찰 예능에 자체 NG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10분 뒤 다시 시작된 씬.

하영은 다시 침대에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커튼을 젖혀,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잘 잤다.”

일련의 과정이 다시 반복되고, 그녀는 블루투스로 음악을 틀 수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소파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커피향을 음미했다.

“역시 1악장이 잔잔해서 마음이 편해져.”

피디는 뒷목을 잡았다.

***

유진이가 케이팝 콘서트에서 그 무대를 보여준 뒤.

해외에서 인기를 확 끌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미국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인지, 미국에서도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데.

데뷔곡부터 빌보드에 오를 줄은 몰랐지.

우리가 유진이에게 큰 기대를 한 건 맞지만, 이건 우리가 기대했던 그 이상의 성과였다.

이 사실을 유진이에게 전하니, 그녀는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입을 열었다.

“네? 무슨 보드요?”

“빌보드.”

“···빌보···드? 그게 뭐였더라?”

그녀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내가 아는 것 말고··· 다른 게 생겼나? 뭐, 새로운 유튜브 채널이에요?”

“네가 아는 그 빌보드라고. 핫 100차트에 81위로 진입했어.”

“헉!”

빌보드는 위클리 차트. 우리는 핫 100차트에서 81위로 진입했다.

유진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운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에이. 거짓말이다. 농담이죠? 별이도 68위에서 그쳤는데, 제가 어떻게 81위를 해요. 그것도 진입을. 하하!”

“···.”

“···몰래 카메라 같은 거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예요.”

“진짜야.”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차트를 띄운 핸드폰을 직접 그녀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진짜네. 이게 왜 진짜죠?”

한국에서 슈퍼스타가 되고 있는 와중, 미국에서도 기세 좋게 81위로 진입했으니 믿기지 않을 만하다.

그것도 데뷔곡이었으니 더더욱.

“나도 안 믿겨. 근데 네 무대가 미국인들 취향을 저격했나 봐. 여자로 환생한 마이클 잭슨이니 뭐니.”

“춤 잘 추는 아이돌은 지금까지 많았는데요?”

“네가 제일 충격적이었나 보지. 그리고 아직 81위야. ‘여자로 환생한 마이클 잭슨’이라는 말이 나와도 진짜 모든 미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사실 여기엔 인지도 문제가 제일 커. 활동 시작하면 또 어디까지 올라갈지 몰라.”

유진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고는 물었다.

“그럼 저 미국 가요? 그런데··· 첫 해외활동으로 미국에 가는 게 맞아요?”

자기가 물어놓고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린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짐짓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 곧 영화도 개봉하니까 여러 가지 홍보 일정은 해야지. 그리고 연말이라서 연말 스케줄도 다 해야 하고. 그것까지 다 끝나면 그땐 미국에 가야 할지도 몰라.”

당장 미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영화는 유진이의 또 다른 홍보 수단이 될 거다.

그러니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또한 연말 스케줄도 빠지면 안 된다.

이 또한 국내 팬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팬들까지 주목하는 무대였으니.

유진이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선배는 왜 그렇게 태연해요? 안 놀랐어요?”

난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지금도 심장 터질 것 같아서 자제하는 중이야. 여기서 더 흥분하면 진짜 터질지도 몰라서.”

유진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참나. 너무 심하게 좋아하시네.”

“그럼 좋지, 안 좋아? 너도 좋잖아.”

“뭐··· 그렇죠. 진짜 너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낄낄 웃었다.

여자로 환생한 마이클 잭슨.

언젠가 그런 수식어 없이 그냥 ‘이유진’이라고 불리우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 당장은 과분하고도 기분 좋은 타이틀이었다.

***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개봉 날짜가 다가오며 유정아의 팬들과 이유진의 팬들이 들뜨고 있는 가운데.

기타리스트 한상수 또한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차렸다.

지겨운 원룸에서 홀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도 벽에 걸려 있는 티셔츠가 눈을 즐겁게 한다.

구서연의 홍대 버스킹 때, 유정아에게 사인을 받았던 티셔츠.

그녀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니, 대뜸 자신의 몸을 돌리고 어깨에 사인을 해주었다.

한상수는 그 뒤로 이 티셔츠를 한 번도 입지도 않았고, 빨지도 않았다.

예전부터 유정아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고 있던 그는, 그때 이후로 더욱 열렬한 팬이 되었다.

밥을 다 차린 그가 식사를 시작하려 할 때, 그는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틀었다.

유정아의 영상을 하도 봐서 그런지,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정아의 영상이 주르륵 뜨고 있다.

이번엔 뭘 볼까, 고민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헐!”

예능 ‘비포 앤 애프터’의 예고편에 유정아의 얼굴이 떡하니 떠 있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양.

그녀의 관찰 예능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고.

그는 바로 영상을 틀었다.

까만 배경.

유정아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유정아입니다.

관찰 예능 중간중간에 나오곤 하는 인터뷰 장면 같았다.

자막으로 질문이 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엄청 바쁘게 지내죠. 연습하느라고요. 하필이면 주변에 천재들이 너무 많아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살짝 짜증이 좀 나죠.

한상수의 입에서 풉, 웃음이 터졌다.

첫 질문부터 짜증난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젓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다른 연예인이라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중들은 유정아에게 관대했다.

종종 이러한 연예인들이 있는데, 유정아가 그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한상수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여졌다.

“연습? 천재?”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인터뷰는 이어졌다.

[천재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우리 회사 애들이요. 별이랑 서연이랑 유진이.

의문이 깊어진다.

이어서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걸 보시는 시청자분들이 많이 궁금해하실 텐데, 어떤 계기로 가수를 준비하게 됐나요?]

“뭐? 가수?”

수저는 놓은 지 오래.

그는 핸드폰을 양손으로 붙잡고 눈 앞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GO엔터에 들어왔을 때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왔어요. 애초에 아이돌이 꿈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연기 수업을 받다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배우가 된 거예요. 덕분에 즐겁게 배우 활동도 하고 뜨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가수라는 꿈에 미련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믿을 만한 매니저였던 유민이 오빠한테 가서 말했어요. 저 좀 아이돌로 키워달라고.

입이 떡 벌어지는 와중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유정아가 진짜 아이돌로 활동하겠다니.

실감도 나지 않고 믿기지도 않았다.

화면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유정아의 옆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까만 반팔 티셔츠, 그리고 화장기 없이도 맑고 깨끗한 얼굴.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있기도 했다.

-하아. 하아.

정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 뒤.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암전이 된 화면.

예고편은 거기서 뚝, 끊겼다.

“···.”

까만 핸드폰 화면이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내가 뭘 본 거야? 이게··· 진짜라고?”

가슴을 간질이고 있는 감각.

흥분이 온몸을 휘몰아치고 있었다.

***

[유정아 솔로 가수 데뷔? 진짜인가?]

[네티즌 “<비포 앤 애프터> 예고편을 거기서 끊는 건 선 넘었다. 당장 더 풀어라!”]

[2000만뷰를 넘긴 <비포 앤 애프터> 예고편.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다!]

예고편만으로 모든 화제를 집어삼켰다.

이에는 유정아가 관찰 예능에 출연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정아가 인터뷰에서 입에 담은 ‘아이돌’이라는 단어 때문.

이는 정아가 단지 노래만 부르는 가수로 그칠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했고.

이어서 보이는 연습실에서의 장면 또한 이를 알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영화에서 가수 캐릭터라며. 홍보 때문에 가수 찍먹하는 거네ㅋㅋ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음방까지는 안 뛰겠지?

-단순히 홍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부터 아이돌 연습생이었고 꿈이었다잖아. 진지하고 본격적일 것 같음.

-그래서 댄스는 잘 추나? 미치겠네 진짜. 영화 예고편이고 예능 예고편이고 정작 제일 궁금한 건 보여주지도 않네 ㅡㅡ 홍보 이렇게 하는 거 아님.

-홍보 너무 잘되고 있긴 한데··· 암튼 홍보 이렇게 하는 거 아님! 빨리 풀어라 이놈들아!!!

-전에 김별 노래 커버한 거 보니까 노래는 잘하던데. 빨리 발매해라ㅋㅋㅋㅋ 개궁금하네 진짜.

영화 홍보 때문에 찍먹하는 거라는 의견과, 원래부터 연습생이었던 점부터 진지하고 본격적일 것 같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언쟁이 커지며, 여러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는 풀린 정보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댄스 영상 안 푼 이유가 있다니깤ㅋㅋ 연기만 하던 애가 실력이 있겠냐? 그리고 GO엔터도 아이돌 안 시키고 배우 시킨 이유가 있겠지. 그냥 못하는 거임.

└ㅋㅋㅋㅋㅋ너 유정아가 찍은 작품 하나도 안 봤냐? 간첩이세요? 댄스 실력이랑 무관하게 그런 연기를 보면 배우 시키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누가 연기 못한대? 댄스 못할 것 같다고 했지.

└지능 왜 이러냐. 네가 쓴 글을 읽어봐. 지가 댄스 못한다는 이유로 배우 시킨 것처럼 써놨으면서. 그런데 댄스를 못해서 배우가 된 게 아니라 연기를 개잘해서 배우가 된 거라고.

└저능아는 너 같은데? 이해를 못하네.

유튜브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그리고 ‘안 봐도 뻔하다’, ‘궁금하지도 않다’라고 말하는 헤이터들도 있었지만.

얘네는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애들이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의견들이 있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였다.

-일단 뭐라도 보자! 영화든 예능이든 뮤비든 음방이든 직접 확인해보면 될 거 아냐.

< 직접 확인해보면 될 거 아냐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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