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것 그대로 내보내도 대박 >
방송국 근처의 횟집.
장동준 피디와 메인 작가 최영희, 그리고 나와 정실장님이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좋으시겠어요. 어떻게 매번 그렇게 성공을 하세요?”
“하하.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죠.”
본론이 쏙 빠져 있는 대화.
이런 서론은 술이 한두 잔 들어갔을 때 끝이 났다.
저쪽은 더 그렇겠지만 우리도 이야기가 빨리 빨리 진행되는 편이 좋거든.
“보통 ‘비포 앤 애프터’가 몇 회분으로 방송되죠?”
다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저쪽도 내가 이를 다 알고 물었다는 것을 안다.
“분량이 얼마나 뽑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2회분이 일반적이고, 3회, 4회까지 나갈 때도 있어요. 때에 따라선 이틀 촬영하고 1회 나갈 때도 있고, 하루 촬영해도 2회 나갈 때도 있고요.”
“음. 혹시 방송 날짜도 조정이 가능한 건가요? 아무래도 영화 개봉에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장동준 피디와 최영희 작가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설마, 하며 좀 더 긴장감을 머금은 얼굴이었다.
장동준 피디는 애써 여상한 어조로 물었다.
“’스타는 다시 무대로’ 말씀하시는 거죠? 개봉이 언제인가요?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데.”
“아직 확정은 안 됐는데 대략적인 날짜는 나왔어요. 4주에서 5주 정도 뒤에 개봉합니다. 그래서 방송 날짜는 3주에서 4주 정도 뒤에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당연히 힘드시겠지만, 영화 홍보 사정이라는 게 저희만 조율하는 게 아니라서요.”
이 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어려운 조건도 아니었다. 다들 그러니까.
또한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제작사에 일정을 맞추고 주연 배우로서 홍보를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건 우리의 선택이었지만.
“어휴. 당연히 알죠. 날짜도 3주에서 4주 뒤면 저희가 맞추기도 쉬워요. 딱 정해진 날짜에 하는 것도 아니고.”
맞다. 이 정도면 널널한 거다.
원래 정확한 날짜에 나가길 원하는 게 대부분이니까.
또한 우리는 정아가 가수로서의 데뷔 준비를 하는 걸 보여주려 하기 때문에 널널한 거기도 했다.
이건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보여줘도, 일주일 전에 보여줘도, 어차피 엄청난 화제가 될 걸 아니까.
날짜는 크게 상관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참다 참다 못 참겠는지, 최영희 작가가 입을 열어 끼어들었다.
“사장님, 그래서 누구인가요?”
장동준 피디가 침을 꿀꺽 삼켰고, 옆에 있던 정실장님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난 그들에게 바로 대답하는 대신, 그들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유정아입니다.”
“···!”
“지, 진짜요!?”
다만 놀라는 건 아직 이르다.
저들은 정아가 단순히 영화 홍보 때문에 나오는 거라고 알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이 식사 자리를 가장한 미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꺼냈다.
“저희가 가장 걱정하는 건 보안입니다.”
“예?”
“보안이요. 방송에 나가기 전까지 그 어느 곳에도 촬영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탭들 사이에서 나오는 입소문까지도요.”
“출연··· 사실에 대한 보안 말고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 장동준 피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촬영 내용에 대해서요. 보안, 잘 지켜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보안에 대해서 걱정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장엔 이런 요구가 불쾌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가면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내 걱정은 오히려 그들의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건지, 그들의 상체가 바짝 앞으로 당겨졌다.
“보안은 저희가 철저하게 지키겠습니다.”
비밀이 완벽하게 지켜질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지켜질 것이다.
어느 프로그램을 가든 사정은 똑같을 터.
나는 궁금증으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정아가 솔로 가수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예?”
놀라움보다는 잘못 들었는지 귀를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말이 이어질수록, 그들은 점차 내 말이 사실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곧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보면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프로그램을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파심에 다시 물어보는 거지만··· 보안은 확실하겠죠?”
피디와 작가는 목이 끊어질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꼭···! 보안은 지키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요.”
눈동자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WE엔터의 연습실.
곳곳에 카메라가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유정아는 카메라는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평소 하던 대로의 일상을 반복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대중들에겐 넘치도록 자극적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언니!”
먼저 연습실에 와 있던 댄서들이 들뜬 얼굴로 정아를 맞이했다.
정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카메라 있다고 신경 좀 썼네요?”
“하하! 네? 평소랑 완전 똑같은데요?”
“전 완전 그대로예요!”
댄서들이 유정아를 격 없이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평소에 이들의 분위기가 어땠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와. 근데 정아 씨는 정말 똑같네요?”
쌩얼, 그리고 편한 연습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정아의 비주얼은 여전히 빛났다.
“연습하는 데 방해예요. 가뜩이나 실력도 모자란데.”
담백하고 짧게 끝난 인사.
정아는 바로 몸을 풀고는 말했다.
“자, 바로 시작하죠.”
“네!”
“파이팅!”
“파이팅!”
한없이 진지해진 유정아의 얼굴.
곧이어 연습실에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카메라는 이들의 연습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숨을 가쁘게 내쉬며 연습 장면을 모니터링하는 유정아와 댄서들.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여유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쌩얼에 연습복.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 장면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내가 너무 묻히는 것 같지 않아요? 저 분명 힘 준다고 줬는데.”
“정아 씨, 발 내디딜 때 힘을 줘서 몸을 살짝 띄운다는 느낌으로 해볼래요? 이렇게 탄력 주면서.”
쿵.
“이렇게요?”
“오! 네!”
쿵. 쿵.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감을 잡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다시 해보죠.”
‘탑급 여배우의 일상’답지 않은 유정아의 일상.
꾸밈도 없고, 가식도 없고, 요가도, 필라테스도, 커피도, 힐링도 없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스탭들의 눈에는 그녀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었다.
***
오전의 연습이 끝난 뒤의 점심 시간.
댄서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자기들끼리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딱 김치찌개가 좋을 것 같지?”
“한식집에서 시키자고?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인데? 거기엔 메뉴도 다양하니까!”
“음. 저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럼 난 뚝불 먹어야겠다.”
로봇과도 같은 목소리.
그들은 유정아를 흘깃흘깃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아 씨는 어떤 거 드실 거예요?”
유정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 매끈한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툭, 말을 꺼냈다.
“추어탕.”
“···!”
“오늘은 추어탕이 좋겠어요.”
워낙 단호한 대답에, 댄서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가 잘 아는 집 있어요. 우리 힘내야 하잖아요. 원기회복에도 좋고, 갈아만든 거면 거부감도 없는데. 그리고 특대로 시키면 김치찌개 서비스도 줘요. 같이 드실 분 있어요?”
김치찌개를 언급했던 댄서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녀는 손을 들며 말했다.
“저, 저요.”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무슨 추어탕 집이 김치찌개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된장찌개 먹는다고 할걸!’
유정아는 주위를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먹기 싫으시면 안 먹어도 돼요. 각자 원하는 거 시키죠.”
댄서들의 낯빛이 밝아졌다.
뒤에 따라오는 말만 아니었으면 더욱 좋아졌으리라.
“둘이서는 특대로 못 먹는데, 진짜 같이 먹을 사람 더 없어요? 밑반찬도 많이 줘요. 부추, 콩나물, 김치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
“저, 저도 먹을게요.”
“저도요. 추어탕 좋죠. 하하. 근데 연준아, 넌 안 먹냐?”
“···저도요. 근데 은지야, 너는 안 먹어?”
“저···도 좋아요. 근데 정은아, 너는?”
“···그냥 다 같이 먹죠?”
구석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제작진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어떻게 된 게 버릴 분량이 하나도 없었다.
***
첫 번째 녹화가 끝났고, 두 번째 녹화는 며칠 뒤.
제작진들은 오늘 이례적으로 다 같이 모여 간단히 회식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가 더 바빴지만, 이는 보안을 잘 지켜달라는, 일종의 기름칠이었기에 빼먹을 수 없었다.
여기 있는 스탭들 전부가 오늘의 녹화가 초히트를 칠 것임을 직감했다.
못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회식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망한 드라마의 쫑파티마냥, 신나는 분위기 대신 고요한 적막이 식당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중에 장동준 피디는 특히나 더 근엄하고 비장한 얼굴로 고요하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최영희 작가도 눈빛을 착 가라앉히며 음식을 씹었다.
“이건 초대박이야.”
“4회로 할까요?”
“그래. 4회가 좋겠어. 아니, 16회로 갈까?”
“무슨 다큐 시리즈 찍어요?”
회식 같지 않은 회식이 막 시작되고 있을 때.
가게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남성이 성큼성큼 발을 움직였다.
“국장님!”
“부장님!”
VBC 예능국의 이국장과 CP인 윤부장.
둘이 식당 중앙에서 멈추더니, 눈에 횃불을 켠 채로 주위를 찬찬히 눈에 담았다.
모두들 그 둘을 쳐다보며 한 명씩 눈을 마주치는 가운데, 이국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보안이 생명입니다. 만약··· 이게 새어나간다면, 어떻게든 추적해서 책임을 물을 생각입니다.”
윤부장도 입을 열었다.
“홍보를 명분 삼아서 살살 꼬시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홍보는 필요도 없어요. 화제가 안 될 걱정은 미세만큼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들.”
조용히 들어와 대뜸 경고부터 한 둘은 장동준 피디 옆에 앉았다.
장동준 피디가 보기에, 가장 열의가 가득한 건 이 둘이었다.
형형한 눈빛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
이국장은 물었다.
“···어때?”
많은 의미를 함축한 물음이었다.
이에, 장피디는 선선히 입을 열었다.
“정아 씨가··· 그렇게까지 진심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잘할 줄도 몰랐고요.”
“그 정도야?”
“아뇨. 국장님이 지금 뭘 예상하시든지 그걸 뛰어넘을 겁니다. 여러모로요. 저도 그랬거든요. 말만 들었을 때보다 직접 보는 게 충격이 훨씬 심합니다.”
윤부장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무 정보도 없는 시청자들은 아주 펄쩍 뛰겠구만?”
“펄쩍 뛰다뿐이겠습니까? 대한민국이 들썩들썩할 겁니다.”
“아니, 유정아 팬이 우리나라에만 있어? 세계가 들썩이겠지.”
모두 입을 다물며 방송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까, 잠시 상상해봤다.
그리고 이들의 흥분은 점점 더 높아졌다.
“장피디. 편집도 평소랑 다른 느낌으로 해야 돼. 무조건. 이건 넷플릭스 다큐 영화 느낌처럼 가자. 장피디 잘하는 거 있잖아. 연출. 이번에 역작 찍는다고 생각하고 찍어봐.”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아니, 더 해. 제작비도 팍팍 써서 최대한 때깔 죽여주게 만들고. 이번 녹화,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거야.”
“제작비를 쓸 데가 별로 없는데요? 우리 프로그램 장점이자 단점이 ‘리얼하다’는 점이잖아요.”
이국장이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긁었다.
“카메라나 장비라도 더 지원해줄게. 제작비든 뭐든 욕심 좀 부리고! 빵빵하게! 어떻게든 돈도 갖다 쓰란 말이야! 얼마든지 갖다 쓰라고! 가져가!”
장피디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자세히 모르셔서 그래요. 그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자세히 모를 것 같으면 설명을 더 해보든가.”
“뭐랄까···. 분위기가 독특해요. 베테랑이랑 신인이 오묘하게 섞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베테랑의 여유랑 신인의 열정이 엄청 매력적으로 뒤섞여 있어요. 거기다 유정아 특유의 매력도 여전하고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장피디는 말을 이었다.
“그냥 이건 날것 그대로 내보내도 대박이라는 말입니다.”
< 날것 그대로 내보내도 대박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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