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86화 (86/124)

< 이것이··· K팝? >

현재 유진이의 차트 순위는 24위.

위에 김별, 구서연, 그리고 와인드업이 가득한 가운데.

이제 갓 데뷔한 신인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놀랄 만한 성적이다.

무지막지한 댄스 실력과 비주얼, 이에 더불어 매니저와 안무가로 활동했던 게 약간의 화제가 된 덕분이었다.

이에 슬슬 탄력을 받기 시작했는데도 이 정도 순위인 것은 위가 너무 탄탄하기 때문.

그런데.

‘그것도 이제 끝이지.’

LA에서 열리는 케이팝 콘서트.

우리가 노리고 있던 일발역전의 기회였다.

유진이는 여기서 탄탄한 콘크리트 층을 뚫고 올라갈 것이다.

언제나 확신은 금물이나, 유진이의 곡이 나오고 안무가 나온 순간부터.

난 그녀의 대박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서연이와 유진이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여기엔 유진이뿐만 아니라 서연이랑 별이도 함께 출연한다.

호텔에 들어와, 서연이와 유진이가 잠에 빠진 가운데.

나는 시간에 맞춰,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온 별이를 맞이했다.

“오빠!”

차에서 헐레벌떡 내리는 별이.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목소리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우리의 얼굴에서는 동시에 미소가 번졌다.

“별다른 일은 없었어?”

“네. 오빠는요?”

“나도 없었지. 유진이 활동 때문에 바쁜 것 빼고는.”

난 그녀의 뒤에 있는 박실장님과 다른 스탭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푹 쉬세요.”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보안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층을 썼다.

서연이와 유진이도 같은 층.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에 들어갔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 별아.”

-오빠, 안녕히 주무세요. 이 말 까먹어서요.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도 잘 자.”

마음 같아선 얼굴을 마주 보며 하루종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는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차 적응을 하며 컨디션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별이는 더욱 그래야 한다. 곡이 많아서 무대도 길게 하거든.

이 공연은 유진이에겐 일발역전의 기회였지만, 별이와 서연이에겐 달랐다.

그녀들이 왜 이런 거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사람들이 그녀들을 왜 최고라고 부르는지.

그녀들은 이 무대로 다시 증명해야 했다.

***

LA 스테이플스 센터 공연장 대기실.

우리는 모두 한 대기실을 같이 쓰기로 했다.

별이와 서연이, 그리고 유진이가 같은 대기실을 쓰는 건 또 처음이라서 그런지, 느낌이 새로웠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들이 나란히 앉아 재잘재잘 얘기를 하고 있다.

다만, 회포를 푸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충분히 풀었으니.

그녀들이 지금 얘기하고 있는 주제는 일관됐다.

“언니, 갑자기 이런 큰 무대에 서면 엄청 떨릴 수도 있거든요? 실수는 꼭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예요. 안 그럼 실수 한 번 할 때 엄청 당황할 수가 있거든요.”

서연이가 조언을 하고, 별이도 덧붙였다.

“언니는 잘할 거예요. 저희가 본 게 있으니까요. 큰 무대라고 너무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만족 못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연습하던 대로만 해요. 그렇게 해도 언니 무대는 엄청 좋을 거예요.”

무대에 대한 조언이다.

아직 음방 무대도 충분히 뛰어보지 못한 유진이기에, 그녀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유진이의 무대는 오프닝.

첫 번째 무대였기에 더욱 떨릴 것이다.

유진이는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선배, 선배는 해줄 말 없어요?”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언제는 매니저 짬밥 무시하지 말라며. 네가 다 알고 있는 조언들이야.”

“정 없다, 진짜. 선배, 자꾸 이럴 거예요?”

그녀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노려보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널 믿어서 그래. 잘할 거라고 믿지 않았으면 이때 데뷔시키지도 않았겠지. 잘하고 와. 부담 팍팍 가지고. 내가 볼 때, 넌 흥분해서 고삐가 풀려야 120%가 나오는 것 같아.”

유진이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요. 큰 무대에서 강해야 슈퍼스타라고 하던데. 제가 또 무대 체질이잖아요.”

“그리고 별이랑 서연이 말도 맞아. 실수해도 되고, 연습한 대로만 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흥분하면 그런 거 다 상관없게 되긴 하겠지만.”

유진이와 댄서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낸 퍼포먼스가 눈앞을 스쳤다.

그걸 보고 어떻게 안 믿어.

유진이는 알아서 잘할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조언도 필요 없다.

그냥 해달라고 해서 해주는 것뿐.

그렇게 잠시 후, 유진이가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할 때가 됐을 때.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저 모습이 떨리는 척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대단한 걸 준비했으면서 긴장은 무슨.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마지막으로 응원 한 번 해줘. 끝판왕 나가신다.”

별이와 서연이도 미소를 띠며 말했다.

“댄스의 신 나가신다.”

“최종보스 나가신다!”

유진이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는 불안함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

엠마는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가장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해서 속이 쓰렸지만, 와인드업을 보기 위해서 이 정도 지출은 감당할 수 있었다.

‘빨리 나와라.’

사실 다른 가수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기 있는 관객들 중 절반 이상이 이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장내가 어두워지며 VCR이 지나가고, 첫 번째 무대가 막 시작되려 할 때.

엠마도 두근거리며 흥분되기는 했다.

점점 와인드업의 무대가 가까워진다는 뜻이니까.

‘음?’

스크린에 이유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흡사 괴성과도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엠마에게는 생소한 가수가 이런 반응을 얻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자신을 포함해 여기 있는 이들 모두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여긴 ‘K-pop Concert’.

누가 나오든 간에 여기 나올 정도면 팬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엠마의 눈이 살짝 커진 이유는 스크린에 보이는 이유진 때문.

역시 K팝 아이돌이라서 그런지, 외모와 분위기가 흥미를 끌어당겼다.

엠마는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육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댄서들과 이유진, 그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그리고 그때, 반주가 흘러나오며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눈이 의심스러웠다. 베이스와 드럼에 맞춰서 흐물흐물 움직이고 있다.

아니, 분명 흐물흐물한 것 같은데, 어째선지 격렬하게 역동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엠마의 머릿속은 깨끗해졌다.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무대를 응시했다.

이건 무대 위에 있는 그들이 만들어낸 집중이었다.

순식간에 시선을 사로잡으며 몰입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니, 오프닝 무대로 적합했다.

또랑또랑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퍼포먼스는 한 번의 변화를 보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인 모양이다.

원래 스페셜 무대는 전주를 늘리기도 하니까.

“와, 와우!”

그와 동시에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엠마는 김호영의 영상에서 이러한 댓글을 본 적이 있었다.

진짜 잘 추는 댄서가 춤을 출 때에는 도무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엠마의 눈에도 김호영의 댄스가 그렇게 보였었다.

어느 정도 과장이 담기긴 했으나, 김호영의 댄스는 봐도 봐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티끌 만큼의 과장도 없었다.

엠마의 눈에 이유진이 그러했다.

도무지 사람 같지가 않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부모님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열광했다고 한다.

온몸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고.

엠마는 와인드업을 보며 그 말에 공감을 하고는 했었는데.

지금 온몸을 관통하고 있는 이 느낌에 비할 수는 없었다.

“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1절이 끝나고, 마침내 댄스 브레이크.

장내를 출렁거리게 만드는 박력에 엠마의 입이 떡 벌어졌다.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K팝?”

이건 엠마가 알고 있던 K팝이 아니었다.

혁명. 이건 혁명이었다.

***

“이제 시작이네요.”

장영기가 말했다.

대기실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관객들이 꽉꽉 들어찬 공연장이 보인다.

정면 대결에서 자신들을 꺾었던 김별과 구서연을 제외하면, 다른 가수들에게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와인드업의 멤버들이었으나.

지금은 평소와 달리, 김별과 구서연이 나오지도 않는데도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곧 이유진이 나올 테니까.

그녀는 와인드업의 매니저이기도 했었지만, 그들이 집중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 잘 추던데.”

“···엄청났지.”

뮤비를 보고 다들 놀랐고, 음방을 보고 또 놀랐다.

‘나보다 잘 추는 것 같은데···.’

김호영은 흥분인지 긴장인지 모를 심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현재 차트로 봐도 뭐로 봐도 그녀는 아직 상대가 안 됐지만.

이제 막 데뷔한 신인과 이런 걸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오직 그녀의 실력이었다.

실력을 비교하자면, 절대 자신의 밑이 아니었으니까.

“나온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방때와는 다른 시작.

멤버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눈매를 좁히며 무대를 봤다.

그리고.

“···.”

“···.”

“···.”

“···.”

무대가 시작될 때부터 분위기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더니.

무대가 모두 끝난 지금은 경악으로 귀결됐다.

‘어떻게 저렇게···!’

김호영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당장은 호승심보다는 경외감이 앞서고 있었다.

***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연이 이어졌지만.

무대가 모두 끝난 뒤.

관객들의 머릿속엔 하나의 무대만이 남아, 잔상처럼 눈앞을 아른거렸다.

“이유진은 완전히 미쳤어. 우리는 전설의 시작을 본 거야.”

“마이클 잭슨이 환생해도 이건 안 돼. 그녀는 이 시대의 마이클 잭슨이 될 거야.”

“수십 년 뒤에 우리는 레전드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 그녀가 미국에 상륙한 걸 직접 두 눈으로 본 축복받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멍청아! 수십 년 뒤가 아니야. 그녀가 전설이 되는 건 당장 몇 년도 안 걸릴걸?”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진지하고도 뜨거운 눈빛으로 이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돈이 아깝지가 않아. 그런데 왜 그녀의 무대는 이렇게 짧은 거냐고! 한 곡만 하는 게 말이 돼? 그게 너무 아쉬워!”

“맞아. 유진은 무대에 좀 더 오래 섰어야 했어.”

누군가는 그녀의 무대를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워하고 있었고.

“넌 유진을 알고 있었어?”

“난 이미 그녀의 뮤직 비디오를 봤었어. 미쳤었지. 그런데 이 무대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어. 이유진 다음부터는 제대로 무대를 보지도 못했다고.”

누군가는 멍한 눈빛으로, 몇 시간 전의 무대를 떠올리며 여운을 끌어올리고 있었으며.

“뭐라고!? 이런 애가 한국에선 제대로 인정받지 못 하고 있다고? 한국인들은 죄다 눈이 삐었대?”

“아니 인정을 받고 있긴 한데, 아직 그만큼 활동을 안 해서 반응이 올라오지 않은 거야. 이것도 신인 치고 엄청 빠르게 인지도 쌓고 있는 거래.”

“장난해?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나다는 건 무대 한 번만 봐도 알아! 그녀는 이렇게 알아주지도 않는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어. 미국에 와야 해. 내가 장담하지. 그녀가 미국에서 활동하면··· 그녀는 빌보드를 휩쓸어버리는 슈퍼스타가 되어 있을 거야.”

누군가는 분통을 터뜨리는 척을 하며 그녀가 빨리 미국에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현장에서 무대를 직관했던 이들 만큼은 아니었으나.

이러한 반응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이미 한국의 인터넷이 이유진의 얘기로 들썩거리고 있었으니까.

< 이것이··· K팝?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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