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83화 (83/124)

< 이유진 씨가 이렇게 춤을 잘 춘다고? >

혼자 사는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온갖 사치품들이 즐비한 집.

유정아는 일어나자마자 씻고 먹는 대신, 둠칫둠칫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잠옷조차 명품.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로, 이 넓은 거실을 무대로 삼고 있었다.

헤드셋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제는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라고 해서 짜증이 확 솟구쳤었는데.

막상 곡을 들어보니 그 짜증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지금 듣고 있는 건, 그때 들었던 반주도 아니고 서연이가 가이드까지 해준 곡.

반주만 있었을 때보다 압도적으로 더 좋았다.

이 곡이 내 곡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아서.

정아는 적당히 춤을 추며 즐기다가 영국에 있는 김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이면 당연히 들어봤겠지.

-어, 정아야. 곡 들어봤어. 미쳤더라.

“크흠. 그냥 잘 있나 해서 전화해봤는데, 들어봤구나?

-아··· 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구나. 그래···. 나는 잘 있지.

“그래서 곡은 어때? 자세히 말해봐. 좋다, 라고 짧게 말하고 끝낼 만한 입장은 아니잖아? 그럴 만한 곡도 아니고.”

-곡은 서연이가 만들었는데 아주 자부심이 넘치네.

웃음을 흘리며 하는 말에, 정아의 미간이 좁아지고,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불만이야? 내 곡인데!”

-누가 불만이래? 아무튼 곡이 너랑 너무 잘 어울려. 멜로디가 계속 바뀌는 걸 넘어서, 아예 컨셉 자체가 훅, 훅, 바뀌는 것 같은데 이게 또 그렇게 세련되게 느껴지더라.”

“서연이가 이건 나밖에 제대로 못 살리는 곡이래. 내 배우 정체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곡이라서 다른 가수들도 제대로 살리기 힘들고. 대중들이 내가 배우인 걸 아니까 공감하고 이해하기도 좋을 거래.”

정아는 빙글빙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싸구려 같지가 않다는 거야. 서연이가 곡을 잘 쓰기도 잘 썼는데, 내가 불러서 오리지널리티가 확 사는 느낌이야. 뭔 말인지 알지?”

-···어, 알지, 그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불러서 컨셉이 완전해졌잖아. 이건 쉽게 말해서 그냥 명품이야. 내가 봤을 때, 이건 엄청 잘될 것 같아.”

무덤덤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톤이 자꾸 올라간다.

-엄청 마음에 드나 보네. 잘됐어. 이제 너만 잘하면 되는 거 알지? 너한테 제일 잘 어울리긴 해도 완벽하게 소화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

정아는 거실을 거닐던 걸음을 멈추고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토할 정도로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너 열심히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어.

“아니야. 잘해야지. 잘할 거야. 결국엔 결과가 전부거든.”

노력이 다가 아니다. 노력은 잘하기 위해서 하는 것.

그녀의 눈에선 열정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

광고를 찍고 돌아온 호텔.

나와 박실장님, 그리고 별이는 내 방에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노트북을, 박실장님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때의 공연 뒤로 별이를 대하는 업계의 태도가 명확해졌다.

거의 탑스타와 같은 대우를 해준다.

인기가 많은 토크쇼도 세 개나 출연했으며, 스타급이 아니면 잡기 힘든 굵직한 스케줄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캣 게일은 진짜 팬처럼 활동해주네요.”

박실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또 SNS에 뭐 올렸어요?”

“네. 토크쇼에서 보여준 무대 엄청 좋다고 썼네요.”

세 곡을 펼쳤던 라이브 공연.

이를 찍은 직캠이 영국에서 기세를 타며 인기를 얻었고, 캣 게일도 SNS에 별이와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지원사격을 해줬다.

그리고 이젠 다른 가수들도 하나둘씩 별이의 팬임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UK차트 1위를 기록한 ‘Bad’. 기세가 좋다.

“사장님, 이제 선택지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좀 더 활동하는 것도 좋고, 빌보드에도 올랐으니 미국을 노려보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일본, 남미, 동남아로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박실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미국은 건너뛰죠.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국 아이돌들이 빌보드에 자주 이름을 올려서 이 정도 순위로 진출하는 건 크게 메리트가 없으니까요. 차라리 기세 좋은 유럽시장에 집중하거나, 말씀하신 대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직원들에게 시장조사와 분석을 시키긴 해야 하나,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은 정해줘야 한다.

밥을 먹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모니터링을 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 와중에도 뱃속에 음식을 쑤셔넣는다.

그런데 워낙 잘 풀리고 있다 보니, 이렇게 워커홀릭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즐겁기만 하다.

식사가 끝나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얘기도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을 때.

별이는 내게 물었다.

“오빠는 내일 들어가시는 거예요?”

“가야지. 해외 활동도 안정됐고, 이제 곧 있으면 유진이 데뷔도 있어서.”

이제 곧 있으면 유진이가 데뷔한다.

이건 내가 가봐야지.

“아···.”

별이는 잠시 말없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K팝 콘서트’ 때는 볼 수 있겠네요.”

“그렇지. 얼마 안 남았어.”

매년 열리는 ‘K-pop Concert’는 방송으로도 중계되는 큰 무대다.

모든 해외 팬들이 주목하는 무대.

이번엔 미국에서 열리는데, 그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방금 전에 얘기했던 별이의 다음 행보도 이 콘서트 뒤에 이어질 스케줄에 대한 것.

우린 거기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땐 별이랑 서연이, 그리고 유진이도 함께 하겠지.

우리는 이미 케이팝 콘서트에 유진이의 무대를 약속 받아놨다.

그 PD가 ‘AMAM’의 피디거든. 우리 회사에 대한 호의가 아주 크다.

‘이래서 연예계가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지.’

또한 업계나 대중들이나 우리 회사에 거는 기대들이 크다.

아직 유진이가 데뷔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우리도 신인을 내기만 하면 화제를 끌어 모을 터.

회사의 규모라면 몰라도, 이 바닥에서 우리의 입지는 이미 GO엔터 못지않은 완연한 대형 기획사였다.

***

국내로 돌아온 뒤, 나와 정실장님, 황실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정실장님이 내게 물었다.

“GO엔터가 저희랑 척을 지긴 했죠?”

“그렇죠.”

“GO엔터가 저희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것도 맞죠?”

“예.”

“그럼 GO엔터는 저희를 망하게 하기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을까요?”

“이건 애매하죠.”

황실장님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 정도는 할 마음이 있나 보네요. 하하.”

[와인드업 김호영 싱글 앨범 ‘With me’, 발매와 동시에 전 스트리밍 차트 올 킬!]

[와인드업 메인 댄서의 위엄. 안무 연습 영상 조회수 2000만 돌파.]

유진이의 데뷔곡 발매일이 일주일 남은 시점.

와인드업의 메인 댄서, 김호영이 솔로곡으로 컴백했다.

“얘네는 우리가 뭐 할 때마다 겹치네요.”

정실장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일부러 겹치려는 게 아니라 우연일 수도 있긴 한데, 대충이라도 날짜는 비슷하게 맞추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요. 이런 건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니까요.”

박수한 대표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우리가 내놓는 신인이 자기네들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유진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거고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뻔하죠. 도망가라고 비웃고 있겠죠. 컴백하는 것도 아니고 팬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완벽한 생신인이 데뷔하는 거니까요.”

황실장님이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별이가 결국 서도현을 완전히 꺾어버렸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그래서 더 훼방을 놓으려나 봅니다.”

정실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별이가 와인드업이랑 대등하게 경쟁했었던 것도 별이 팬들이 엄청 많아져서 가능했던 건데, 유진이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쪽에선 그냥 여유롭게 비웃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자존심 따져서 뭐 하나요. 데뷔하면 누구나 그렇죠. 한 발 물러나는 게 맞을 수도 있어요. 여차하면 정아 데뷔한 바로 뒤에 데뷔해도 될 거예요. 영화 개봉한 뒤에 정아가 데뷔하면 화제도 이어져서 타이밍도 그리 나쁘지 않고요.”

황실장님이 미간을 좁히며 수긍했다.

“맞아요. 이렇게 모든 걸 완벽하게 뽑아놓고, 이에 걸맞는 화제 한 번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죠. 나중을 기약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황실장과 정실장이 나를 바라봤다.

걱정과 고민을 가득 안은 눈으로.

난 바로 답하지 않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했다.

원래 오늘 티저를 내기로 예정됐으니,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다.

톡, 톡,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출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입을 빤히 바라보는 그들에게, 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도망치면 안 됩니다.”

“사장님, 자존심-“

“자존심 때문이 아니에요. ‘K-pop Concert’가 있잖아요. 도망가기에는 이 기회가 너무 커요. 어쩌면 저쪽이 노리는 게 이거일지도 모르고요.”

‘K-pop Concert’는 전세계에 있는 K팝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유진이를 모르는 이들에게 무대를 보여줄 수 있고, 유진이를 알긴 알지만 무대를 제대로 못 본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그냥 일반적인 대중도 아니고, K팝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홍보의 효과가 아주 확실하다는 거다.

“으음. 우리도 자신 있으니까 이것도 좋긴 하죠. 그때 유진이 무대를 보여주기만 하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처음에 조금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반전을 노릴 수 있겠네요. 어차피 영화도 남았으니-“

내가 방향을 정하자, 그들이 말을 덧붙이며 선선히 수긍했다.

희망회로 뿐일 수도 있지.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안전하게 보통의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니다.

보다 더 높은 곳.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는 더욱 높은 곳을 노려야 한다.

“유진이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다들 곡도 들어보셨고 퍼포먼스도 보셨잖아요.”

내 말에 둘의 얼굴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내 확신이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모양이다.

“그렇죠. 뮤비도 미쳤고.”

“너무 좋죠. 완전 대형 신인 취급 못 받으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실장님들 생각도 압니다. 너무 좋아서 혹시라도 묻힐까 봐 피해가자고 말씀하신 거겠죠. 그냥저냥 무난하게 뜨는 정도로는 너무 아까워서요. 그런데 또 모르긴 합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이 다 무의미해질 수도 있어요.”

내 말에 정실장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하하! 그러네요. 괜한 걱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모든 게 너무 좋아서, 이에 맞는 성과를 얻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마찬가지로 모든 게 너무 좋아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김호영이랑 1위 경쟁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 이건 첫 술에 너무 욕심인가?

아무튼, 우리는 예정대로 오늘 티저를 내기로 결론을 지었다.

***

김별과 구서연을 좋아하는 팬들 중엔 라이트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흔히 대중 팬이라고 부르는 폭 넓은 분류 안에는 앨범도 사지 않고, 콘서트, 팬미팅도 가지 않고, 그저 인터넷으로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이들도 많다.

단지 빠짐 없이 모든 걸 볼 뿐.

이종산 역시 비슷했다. 허나, 그는 인터넷으로 즐기는 걸로 만족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곳에 갈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그는 ARMnet PD였으니까.

이종산은 ‘AMAM’를 직접 담당하여 핸들링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K-pop Concert’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그러니 김별과 구서연의 팬이라고 한들, 직접 오프라인을 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일하면서 자주 마주했고, 이종산의 팬심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피디님, 지금 WE엔터 신인 티저 떴습니다.”

“아, 그래? 어때? 괜찮아? 반응은?”

이종산은 이유진을 안다.

GO엔터의 매니저였을 때부터 미모가 뛰어나기로 유명하기도 했고, 김유민 밑에서 알짜배기를 맡고 있는 매니저였으니.

그녀가 WE엔터에 있을 때도 봤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서 관둔 줄 알았었는데, 가수로 데뷔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지.

“반응은 지금 막 올라와서 이렇다할 건 없고요. 얼굴이 안 보이긴 한데, 제가 보기엔 이 사람도 구서연 씨나 김별 씨처럼 크게 될 것 같습니다.”

얼굴이 안 보이는데 크게 될 것 같다고?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할까.

아니 그보다, 이유진의 얼굴을 왜 가릴까?

‘그게 얼마나 큰 무기인데.’

이종산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그는 바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어 구독해두었던 WE엔터 채널에 들어갔다.

[이유진 - I Am Addicted (Teaser)]

30초짜리 티저 영상.

담담한 손길로 영상을 틀었다.

또랑또랑하고 선명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반주가 깔린다.

다른 티저들이 으레 그러하듯, 보컬은 나오지 않는 듯했다.

다만, 여타 티저들과의 차이점은 가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실루엣?’

얇은 천 뒤로 조명이 그녀의 전신을 비추며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주에 맞춰 춤을 출 뿐인 영상.

“···.”

기대가 되기도 했고, 기대가 안 되기도 했었다.

매니저였던 그녀를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구서연이나 김별처럼 크게 될 거라고 말한 근거를 알 것 같다.

춤선이 미쳤다. 그리고 몸매도 미쳤다.

“이유진 씨가 이렇게 춤을 잘 춘다고···?”

실루엣 댄스가 끝난 뒤, 까만 화면에 발매 날짜가 떴다.

30초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이종산 피디는 홀린 듯이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이건 몇 번 더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 이유진 씨가 이렇게 춤을 잘 춘다고?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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