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82화 (82/124)

< 곡 제목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

김별의 첫 번째 콘서트 투어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출국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서의 별이의 인기는 줄어들긴커녕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해외가 이렇다니까.’

해외는 대체로 국내보다 음악의 소비 속도가 느린 편이다.

빌보드 차트가 길면 십 몇 주 동안 순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였다.

콘서트 때문에 해외진출을 늦춘 우리의 입장에선 다행이라는 거지.

“처음부터 영국이네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별이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표정이 멍해 보인다.

처음으로 해외 진출하는 국가가 영국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틀 전에 끝이 난 투어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는 이유가 더욱 클 것이다.

모든 가수들이 으레 겪는, 짜릿한 쾌감 뒤에 오는 허탈감은 그녀에게도 피해가지 않을 테니.

난 입매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허탈하지?”

“네?”

“원래 가수가 그래. 앨범 발매, 투어, 앨범 발매, 투어. 이것저것 곁가지가 많이 생겨난 거지, 가수 활동의 본질은 원래 이걸 반복하는 거잖아. 좀만 더 하다 보면 이것도 적응될 거야.”

“이런 느낌이··· 적응이 될까요?”

“아니,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는데, 내가 말하는 건 허탈감이 안 느껴진다는 게 아니라, 그런 허탈감을 느끼는 게 적응된다는 거야.”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분위기도 무겁지 않았다.

이 허탈함은 콘서트에 그만큼 열정적으로 임하고, 공연이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일 테니.

“당분간은 그런 기분 못 느끼겠네요. 다시 공연하고 싶다···.”

콘서트를 떠올리는 듯, 눈빛이 몽롱하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지금 쉬러 가는 게 아니라 해외 진출하러 가는 거야. 거기 공연 스케줄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첫 번째 국가로 영국에 진출한다.

인기가 많은 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영국을 처음으로 가는 이유는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글로벌 슈퍼스타들이 많이 배출되는 나라이기에, 여기서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겠지.

지금 일본에 가는 것보다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 가면,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터.

그때는 시기가 상관이 없게 된다.

“영국에서도 국내 콘서트 같은 느낌 받을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별이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는 눈치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봤자 국내에서의 인기만 못하고, 이번 콘서트 때와 같은 열기를 거기서 겪는 건 이번 활동에서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으니.

사실 이것만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 성공을 거두더라도 국내에서 만큼은 아니겠지.

다음 앨범이 나올 때면 또 모르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자.”

“네.”

스탭들과 함께 우리는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우린 이때까지 몰랐다.

국내 콘서트 때 못지않은 열기를 영국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아니, 그건 거의 열광과 광기의 경계에 있는 무언가였다.

***

“우리한테 세 가지 곡을 콕 집어서 부탁했습니다. ‘Get It!’, ‘그렇다고 말해요’, ‘Bad’입니다.”

영국에서 라디오와 인터뷰를 끝낸 뒤, 첫 번째로 하는 공연 스케줄이다.

여타 음악 페스티벌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스포츠 브랜드의 이름으로 열리는 공연이었다.

작은 공연도 아니고 대형 공연.

우리는 여기서 고작 세 곡밖에 하지 못하게 돼서, 아쉬움은 있을 지언정 그리 큰 불만은 없었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라인업에 대형 가수들도 많이 이름을 올렸기에, 여기엔 엄청난 규모의 관객들이 몰려올 터.

별이도 영국 스트리밍 차트에 3위로 이름을 올렸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이것저것 까다롭게 가릴 처지도 아니지.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기회였다.

박실장님의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메탈은 인기 많을 줄 알았는데, 트로트까지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우리 곡이 외국인들이 거부감 느낄 정도로 정통적인 트로트가 아니라서 그럴 겁니다. 외국인들이 듣기엔 신선하게 다가왔나 봐요.”

‘그렇다고 말해요’가 잘 먹힌다는 건 영국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공연 관계자가 다른 곡들을 제치고 콕 집어 말할 만큼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던 거지.

‘아무래도 상관없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무대를 기회 삼아, 별이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거였다.

“그런데 곡 하나하나가 색깔이 너무 달라서 별이를 모르는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영 감이 안 잡히네요.”

메탈과 트로트, 그리고 이번 정규앨범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댄스곡까지.

각 곡의 색깔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세 곡을 연달아 보여주면 별이를 모르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좋은 충격이 됐으면 좋겠는데.’

***

야외 공연장.

공연은 이틀간 이어지는데, 우리의 공연은 첫째 날이었다.

공연은 오전부터 시작된다. 다행히 우리가 배정받은 시간대는 좋았다.

한창 무르익기 시작할 저녁 6시.

별이는 대형 가수들 중간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

별이는 한껏 달아올라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지금 공연하고 있는 가수는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빌보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슈퍼스타.

지금 관객들이 쏟아내고 있는 환호는 별이를 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내 콘서트 때와는 상황은 달랐지만, 그래도 이런 무대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듯 보였다.

콘서트가 떠오른 탓이겠지.

“전 이 반응의 반 정도만 나오면 좋겠어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만약 반응이 시원치 않아도 재밌게 즐겨. 그래야 팬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네 얼굴은 몰라도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을걸?”

“그럴까요?”

“그럼. 우리 스케줄 쏟아지고 있다니까? 너 여기서도 충분히 스타 급이야.”

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 위를 바라봤다.

저 가수와 비교하면 확실히 별이의 인기와 인지도가 낮긴 하나, 그녀 또한 여기서 반짝 스타급은 된다.

사실, 어느 정도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건지는 우리도 정확히 판단하긴 어려웠다.

이제 막 영국 활동을 시작한 거기도 하고, 그녀를 향한 업계의 대우가 대중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미 큰 스타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겨우 3곡을 배정받은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활동을 하며 업계에서의 대우도 균일해지겠지.

지금은 그 과정에 놓여 있었다.

여기서 그녀가 어떤 무대를 하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에 따라 또 달라질 터.

때문에, 이 무대는 큰 기회임과 동시에, 영국 내에서 그녀의 위치를 좌우할 시험대이기도 했다.

“사장님, 이제 곧 올라가야 합니다.”

박실장님이 말했다.

대형 가수는 이미 무대에서 내려왔고, 관객들은 이제 쉴 타임이라고 생각하는지 서서히 열기를 식히려는 듯 보였다.

우리는 준비하고 있다가, 스탭이 신호하기 전에 별이에게 말했다.

“별아, 재밌게 즐기다 와.”

“네.”

이왕이면 아주 박살을 냈으면 좋겠다.

대형 가수들 중간에 낀 그녀가 쉬어가는 시간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잡아먹었으면 한다.

어려울 테지만, 그게 내 바람이었다.

***

김별의 다음 순서인 ‘Cat Gayle’.

그녀는 무대에 막 올라서는 김별을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봤다.

‘K팝 스타네.’

그들이 인기가 많다는 건 알고 있으나, 캣 게일의 음악 취향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다.

호감도 비호감도 아닌, 아예 관심이 없는 장르.

그렇기에 그녀는 한국 가수의 인기가 얼마나 많든, 차트에서 몇 위를 차지하든 시선을 주지 않았고, 이는 많은 대중들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그런지, 관객들의 반응도 두 개로 갈렸다.

그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들.

다만 그 간극은 매우 컸다.

‘인기가 엄청 많은가?’

아는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과 같이 기대 없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그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가 스피커에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듯한 드럼 소리, 그리고 한 장르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운드.

“헤비··· 메탈···?”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얼떨떨한 충격이 뒤통수를 때렸다.

그리고 마침내 김별의 입술이 열린 순간.

“뭐야!”

무대 뒤에서 보고 있던 캣 게일은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이는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

“이야아아아─!”

바로 전 무대를 깨끗하게 잊힐 정도로 단번에 열기가 끌어올랐다.

김별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처럼 충격에 빠진 사이, 김별을 알고 있던 이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기 바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관객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아졌다.

원래 김별을 알고 있던 사람이나, 모르고 있던 사람이나.

모두가 다 화끈한 사운드에 취해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Oh, My god···.”

이런 무시무시한 메탈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지 반주 뿐만이 아니다.

저렇게 어리고 예쁜 소녀의 입에서 저런 미친 보컬이 나올 줄이야.

다른 이들도 아니고, 락의 종주국인 영국인들에게 메탈의 피를 끓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중반부가 넘어갈 즈음엔, 관객들 사이에서 거의 광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건 미쳤어···. 그런데 왜 하필 내 무대가 저 락커 다음이냐고!”

케이팝 스타가 아니라 락커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캣 게일.

하지만 그녀의 착각은 다음 곡이 시작된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락커가 아니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전의 무대와는 결이 전혀 다른 음악.

그러나 장르가 바뀌었음에도 관객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전, 그 화끈한 무대를 한 사람 같지가 않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그런데, 아직 가장 큰 충격이 남아 있었다.

“뭐야! 케이팝 스타 맞잖아!”

캣 게일의 입에서 숫제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익히 알고 있던 케이팝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전과는 별개로, 캣 게일은 저 가수의 무대를 보며 심장이 들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캣 게일의 시선은 관객들을 향했다.

마치 원래부터 케이팝에 열광했었다는 것처럼, 저 가수의 콘서트에 온 열성팬들처럼.

그들은 모두 눈을 희번득거리며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

“···.”

“···.”

누구도 쓰지 않아, 자연스럽게 구서연 전용이 된 WE엔터의 작업실.

서연은 체한 것 같은 얼굴로 옆에 앉은 이를 흘끔흘끔 바라봤다.

“···언니,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서연의 물음에, 유정아는 답지 않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미안해. 불편했지? 이제 나갈게. 포도 맛있게 먹고,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 편하게. 알겠지?”

정아는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연습하고 있을게. 서연아, 파이팅!”

“···네, 언니.”

정아가 작업실을 나가자, 서연은 진이 빠진 얼굴로 의자에 축 늘어졌다.

“절대로, 여기 다신 안 와야겠다. 무조건 집에서 작업해야겠어.”

유정아의 곡을 만들고 있다고 하니, 그녀의 태도가 봄날 햇살처럼 따스하게 변했다.

누가 연기 천재 아니랄까 봐,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

서연은 오히려 그게 더 못 견딜 만큼 불편했다.

“부담스러워, 진짜. 그렇다고 지금 나갈 수도 없고.”

밖에 나가는 순간, 그녀가 달라붙어서 물을 것이다.

왜 벌써 가는 거냐고, 어디까지 만들었냐고.

안 봐도 뻔해서, 마치 감옥에 갇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으···. 차라리 화내면서 재촉하면 편할 텐데.”

서연은 진저리를 치며, 작업을 꾸역꾸역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저 악마가 성녀 같은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본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그런데.

“왜 잘 나오지···?”

서연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다.

어째, 손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나를 만들면 다른 하나가 생각나고, 그것까지 만들면 곁가지가 두세 개씩 떠오른다.

“음.”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배우. 아이돌로 변신. 언제든지 원할 때마다 180도로 변할 수 있는 여자. 예쁘고 잘났고 인기 많고 돈 많고 능력 있고. 음. 내 입장에선 오히려 나쁜 게 편하고 착한 게 더 불편했고···.’

미리 만들어 놨었던 아이디어들에 껍데기를 입혀보며 변형시켜봤다.

해지고 찢어진 옷에 아무 옷감이나 냅다 덧대어 기운 것처럼.

어울리는 걸 따지지 않고, 서연은 일단 손이 가는 대로 꿰매어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머릿속에 컨셉이 너무 명료해서, 딱히 색깔을 일관되게 맞출 필요가 없었다.

마구잡이로 덧댄 옷이 명품이 되는 것과 같은 모양새.

서연은 자기가 만들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뭐지? 어떻게 이게 되지?’

설령 가수로 데뷔한다고 하여, 유정아는 배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체성을 매력으로 살리는 음악.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유정아와 가장 어울리는 음악.

유정아가 아니면 안 되는 음악.

그녀이기 때문에 어울리는 음악.

서연의 손은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서연아, 작업은 잘 돼가? 너 왜··· 손도 떼고 멍 때리면서 앉아 있어? 아! 배고파서 그렇구나? 밥 먹고 마저 할래?”

작업실 안으로 들어오며 살가운 미소를 짓는 유정아.

서연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연 헛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응?”

“이번 영감은 너무 괴롭고 불편했어요.”

“···그게 뭔 소리니?”

눈매가 옅게 휘어져 있는데, 왠지 서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서연은 그 미소를 당당히 마주하며 턱을 치켜올렸다.

“완성됐다는 소리예요. 언니 데뷔곡.”

“지, 지, 진짜!? 벌써!? 정말 제대로 만든 거 맞지?”

나름 혼자 정해본 가제가 있었다.

‘아수라 백작’, 혹은 ‘지킬 앤 하이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짬짜면’, ‘Two Face’.

서연은 씩 웃으며 말했다.

“언니, 곡 제목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좋겠어요.”

“···야. 너 치킨으로 맞아본 적 없지?”

“···!”

< 곡 제목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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