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81화 (81/124)

< 그럴 줄 알았던 구서연 >

올림픽 체조 경기장.

34살의 직장인 장진영은 벅찬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내가 여기 있다니···!’

어마어마한 경쟁을 뚫고 김별의 첫 콘에 올 수 있었다.

그것도 가장 좋은 자리 중 한 곳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행인이 없다는 것.

그런 사소한 문제 하나뿐이었다.

김별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지금, 그녀의 음악이 장내에 울려 퍼지고 있는 가운데.

장진영의 왼쪽 좌석에 누군가가 자리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콘서트장에 온 건 난생 처음이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렇게 인사를 하는 건가?

‘뭐 아무렴 어때.’

어깨를 으쓱이며 정면을 보고 있자니, 오른쪽에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자리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여자와 남자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오빠, GO엔터 사람이 여기에 와도 돼?”

“안 될 게 뭐 있어. 더군다나 난 재무팀인데.”

GO엔터라는 말에 귀가 쫑긋 기울여졌다.

그런데 귀가 얼마나 좋은지 왼쪽에 앉았던 남자도 그쪽을 흘깃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물었다.

“전 ‘세상을 비추는 별’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세요?”

“어! 알아요! 매번 엄청 장문으로 후기 글 쓰시는 웹소설 작가님 맞죠?”

무심코 크게 낸 소리에, 오른쪽에 있던 남녀가 이쪽을 바라보며 슬쩍 말을 건넸다.

“’세상을 비추는 별’님이세요?”

“네, 혹시 그쪽은··· GO엔터 분이세요?”

“아···. 하하. 네. 그런데 전 김별이 회사에서 나온 뒤에 입사했어요. 다들 아시는 그 일이랑은 무관합니다.”

레모네이드 데뷔조 때의 일이 잘 알려져 있기에, 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후 네 명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프라인에서 친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던데, 이게 그런 경우인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조명과 음악이 바뀌며 곧 공연이 시작된다는 것이 느껴지자, 언제 대화를 나눴냐는 듯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바빴다.

그리고.

“‘Bad’다!”

“우와아아아!”

“시작부터···!”

이번 정규앨범의 타이틀 곡, ‘Bad’의 전주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자.

김별이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음에도 전율이 온몸을 강하게 훑고 내려갔다.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

모두 기대감, 흥분, 소름을 느끼고 있는지 장내는 뜨거운 열기로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대감이 절정을 쳤을 때.

마침내 김별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웹소설 작가라는 왼쪽 사람과 오른쪽 남매,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 체면 따윈 집어던지고 목이 터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Bad’는 김별의 장점인 보컬이 부각된 댄스곡.

댄서들과 김별이 음악에 맞춰 안무를 추기 시작하며, 기술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완벽한 보컬이 귀를 황홀하게 파고들었다.

스크린에 보이는 그녀의 표정.

관객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관객들보다 더욱 행복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장진영은 육안으로 그녀를 눈에 담기도 하고, 스크린에도 쳐다보기도 하며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 이거지.”

취미생활이 없던 직장인 장진영에게도 취미가 생겼는데.

그건 음향기기를 구입하며 음악에 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건 구입할 수 없었기에, 이어폰, 헤드셋, 스피커 모두 각각 100만 원 선에 맞춰 구입을 했었다.

이 기기들로 김별의 직캠이나 무대, 뮤비, 음원을 들을 때면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런데 역시 현장을 따라올 수 없었다.

이곳의 스피커 시스템은 수억, 어쩌면 그 이상이 들었을지도 모르니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만.

물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김별이었기 때문에 귀가 녹아내리는 것일 터.

눈앞에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곧장 귀에 꽂힌다는 점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런 고급스러운 취미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핀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던 그녀가 핸드 마이크를 들고 댄서들과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왔다.

360도로 열린 콘서트장의 정중앙.

바로 진영이 앉은 자리의 코앞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악!”

“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자신과 주위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댄스는 댄서들만 추고 있고, 김별은 핸드 마이크를 든 채로 사방에 앉은 관객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윽고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노래를 부르는 김별이 씨익 웃었고.

장진영의 머릿속엔 세계에서 가장 화력이 센 폭죽이 꽝! 하고 터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김별을 좋아하길 잘했어.’

노래도 노랜데, 역시 비주얼도 노래 못지않게 사기적이었다.

***

“하아. 하아. 하아.”

무대에서 내려온 김별의 얼굴이 발갛게 젖었다. 일렁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한다.

생애 첫 콘서트의 열기를 그대로 뒤집어쓴 듯한 모양새.

그녀는 아마 가수의 꿈을 키웠을 때부터 오늘과 비슷한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을 것이다.

연습생 땐 이 꿈이 좀 더 구체화되었을 것이고, 가수로 데뷔한 뒤로는 더욱 뚜렷해졌겠지.

마침내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는 팬들과 눈빛과 표정, 목소리로 소통하고, 가수가 지금까지 쏟아냈던 모든 노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때이다.

그녀가 받은 자극은 아마 다른 가수들의 첫 콘서트 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솔로 가수가 첫 콘서트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잘했어. 너무 잘했어. 천천히 옷 갈아입고 조금 쉬어. 정말 너무 잘했어.”

그런데 나도 막상 입을 여니 목소리가 떨리고, 숨결이 거칠어져 있었다. 말도 빠르게 나온다.

생각해보니 나도 회사를 차린 뒤 첫 콘서트다.

이건 그녀의 콘서트이기도 하지만, 내가 GO엔터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피부로 체감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그녀의 흥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내 앞에 선 그녀 또한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겠지.

별이는 코앞에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술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다녀올게요.”

“그래.”

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러 가자, 그녀의 빈 자리를 대신하듯 다른 이들이 내 앞에 자리했다.

서연이와 더불어, 김석희, 이종락, 김성혁까지.

‘일도 잘하는 멤버’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서연이는 나를 포함해 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콘서트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요? 와! 진짜 대박이다! 아! 떨려요! 어떡하지?”

관객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콘서트장은 마력이 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흥분을 감염시킨다.

서연이만 흥분한 게 아니라 멤버들 모두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잔뜩 흥분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초대해주셔서 저희가 더 고맙죠. 안 그래도 이 멤버로 큰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와. 이게 얼마만에 콘서트냐. 하하!”

“후우! 형들 진짜 실수하면 안 돼요.”

“하하! 너나 잘해.”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자.

관객들은 또 한 번 열기를 훅! 끌어올렸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겠지만,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분들이다.

열정적이기도 하지.

‘일도 잘하는 밴드’가 첫 번째로 선보인 곡은 서연이의 데뷔곡이자, ‘AMAM’에서 기타 솔로 무대로 유명했던 곡, ‘Escape’였다.

지금 무대 위에 김별이 없긴 하나, 관객들의 머릿속엔 다른 곡도 이어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김성혁이 만들고 그들이 직접 녹음한 김송송송의 헤비 메탈, ‘Get It!’.

그러니 이들이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이 미쳐 날뛸 수밖에 없지.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자, 서연이의 솔로 기타도 다시 이 자리에서 재현됐다.

“언제 들어도 미쳤네, 이건.”

별이의 무대와는 다른 결이다.

피를 거칠게 끓어 올리는 무대.

듣는 이의 감정을 직접 손으로 연주하듯, 장내 모든 이들의 가슴에 강렬한 울림을 주고 있었다.

“잘한다, 내 가수.”

갈수록 뜨거워지는 분위기.

콘서트의 열기는 도무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꿈만 같던 이틀 간의 콘서트가 끝난 뒤.

우리는 새벽에 회식을 가지기로 했다.

“별아, 그냥 집에서 쉬어. 많이 힘들잖아.”

가게에 우리 직원들이 막 도착하여 붐비고 있을 때.

난 차에서 내리기 전에 별이를 살펴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딱 봐도 안 괜찮은데 뭘.”

그녀는 내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몸은 많이 힘들긴 해요. 그런데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는 잠도 못 잘 것 같아서요.”

큰 공연을 끝낸 가수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무대 위에서 그렇게 엄청난 희열을 느낀 뒤에 조용하고 어두운 집에 누워 있으면, 허무함이 온몸을 들이닥친다고.

어제 그녀는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 가게에서 졸리면 졸리는 대로 바로 자도 돼.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싶다고 언제든지 말하고.”

“네, 고마워요. 오빠도 졸리면 바로 주무세요. 계속 옆에 있을게요.”

“하하. 난 안 그래줘도 돼.”

그녀의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아무튼 너무 잘했어, 별아. 수고 많았어.”

“···아쉬운 점도 많았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가수로선 첫 콘서트니까 아쉬운 점이 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우리도 그렇고, 관객들도 그렇고,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생각할 거야. 완벽했어, 정말로.”

“정말요?”

“응. 정말 최고였어.”

그녀가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정 아쉬우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앞으로 콘서트 세 번 더 남았잖아.”

“네. 다음주부턴 아쉬움 안 남게 해야겠어요.”

그렇게 미소 지은 채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난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도 들어갈까?”

“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별 씨! 너무 멋있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공연 너무 잘 봤어요! 최고!”

“별아, 너무 수고했어. 장하다!”

“축하해. 너무 잘했어.”

별이를 향해 직원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다들 얼굴에 커다란 웃음꽃을 피고 있었다.

그들 또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일 터.

사장인 내가 보기에 이렇게 흐뭇한 광경이 또 없었다.

회식 자리에는 이틀 동안 공연에 게스트로 와준 ‘일도 잘하는 밴드’의 멤버들 또한 있었다.

나와 별이는 그들의 옆에 자리했고.

A&R팀의 정세현 팀장은 내게 계속 눈치를 보냈다.

‘사장님!’

‘···알겠어요.’

난 서연이를 흘끗거리며 바라봤다.

그녀는 별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야, 보통 이럴 땐 음식은 잘 안 들어가지 않냐? 넌 진짜 언제나 잘 먹는 것 같애.”

“힘들었으니까 잘 먹어야지.”

“···안 힘들 때도 잘 먹잖아.”

“힘들었을 땐 잘 먹어야 돼.”

“그러니까 항상 잘 먹는다는 거잖아.”

“힘들었으니-“

“알았어. 많이 먹어.”

난 정세현 팀장의 쏘아보는 눈빛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서연아.”

“네?”

“잠깐만.”

난 바깥으로 눈짓을 했고, 서연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날 따라왔다.

서연이와 함께 차에 들어오자, 주변의 소음이 먹먹하게 작아졌다.

“왜요?”

“그··· 혹시-”

내가 여기까지 말을 꺼냈을 때.

“아!”

서연이는 무슨 말을 꺼낼지 눈치 챘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정아 언니 데뷔곡 때문에 그러죠?”

“···!”

“하! 뭘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에요. 어차피 저한테 말할 줄 알았어요. 이제 딱 정아 언니 곡 구할 시기잖아요.”

“···.”

“참나. 맨날 부탁해 놓고선 왜 눈치 보는 척해요? 그리고···.”

그녀는 씨익- 입매를 말아 올렸다.

“정아 언니 곡은 못 참죠. 이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거였는데.”

하긴 정아의 곡이라면 작곡가들이 제발 내 곡 좀 써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도 있겠다.

서연이의 커리어에도 큰 족적이 새겨지겠지.

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그거 써줄 수 있어?”

“저를 뭐로 보고. 그럴 줄 알고, 미리 써놓고 있었죠.”

“진짜!?”

눈이 확 커졌다.

너무 놀라서 무심코 그녀의 얼굴 가까이 훅, 다가갔다.

“흡···! 뭐, 뭐예요! 깜짝이야!”

그녀는 나보다 더 놀란 모양이다.

놀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눈을 커다랗게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곡은 썼어? 얼마나 완성됐는데?”

“아직 아이디어만 좀 짜놓은 정도예요. 제가 진짜 누르면 나오는 줄 아는 자판기도 아니고.”

실망과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아직 뚜렷하게 나온 게 없다는 데에서 오는 실망감, 하지만 다름아닌 서연이가 아이디어를 조금이나마 짜놓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기대감.

난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지금은 그 정도로 됐어. 아무튼 정아 곡도 한 번 제대로 써봐. 이번엔 다른 작곡가들한테도 넣어볼 거야. 정아 데뷔는 영화 개봉이랑 맞춰야 해서 미룰 수가 없거든. 어떻게든 시일에 딱 맞는 곡을 얻어야 돼.”

“그럼 이번엔 제 곡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만약 다른 곡이 더 좋을 경우엔.”

서연이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혀로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흐음···. 뭐, 아무나 다 데리고 와보세요. 저보다 잘 쓰는 사람은 많겠지만 저만큼 정아 언니를 잘 아는 작곡가는 없을 테니까.”

가늘게 뜬 그녀의 눈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기대감이 조금 더 크기를 키웠다.

말마따나, 전세계를 뒤져봐도 서연이만큼 정아를 잘 아는 작곡가는 현재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 그녀의 의욕이 고취된 것은 내게 있어 호재이자, 청신호였다.

< 그럴 줄 알았던 구서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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