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진짜 혁명이에요! >
제목은 ‘I Am Addicted’.
유진이의 데뷔곡이었다.
가사까지 다 나온 건 물론, 녹음까지 끝낸 상태.
이제 남은 건 뮤비에 더해, 그녀의 가장 큰 어필 포인트가 될 안무 뿐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우르르 연습실로 가는 중, 정실장님과 황실장님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좀 오래 걸렸네요.”
“오래 걸렸어도 잘 나왔으면 상관 없죠. 정실장님도 만드는 과정 좀 보지 않았어요? 걱정할 필요 없겠더라고요. 감을 못 잡는 것 같으면 안무가들한테 시안 받자고 사장님한테 말씀드리려 했는데.”
“저도 봤죠. 유진이가 연습실에 살다시피 하니까 못 볼 수가 없던데요. 하하.”
안무를 대충이나마 본 건 다른 직원들 일부도 그러한 듯, 대체로 표정들이 밝고,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본 게 같은 안무일지는 의문이다.
나 또한 볼 때마다 달라지는 안무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으니까.
데뷔하는 신인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회사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러면서 분위기 또한 전혀 무겁지 않았다.
서연이를 믿고 작곡을 맡긴 것처럼, 유진이의 안무 역시 매우 믿을 만하다는 걸 그녀 스스로 증명해낸 까닭이다.
직원들과 함께 연습실에 들어가니, 나를 발견한 유진이와 서연이가 득달같이 다가왔다.
유진이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선배, 저 안무 별로면 꼭 별로라고 말해줘요. 시안 몇 개 더 있거든요?”
“어련하겠어.”
서연이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언니, 다 좋은데 첫 번째가 제일 좋다니까요. 그게 별로일 리가 없어요. 진짜 걱정을 사서 한다니까요. 언니는 좀 자신을 믿을 필요가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최선을 다하려는 거지.”
직원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기에, 시간을 더 끌 순 없다.
이젠 안무를 봐야 할 때.
난 살짝 허리를 숙이며 유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여기 직원들 표정 보여? 이미 다 네 팬이야. 다 기대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어디 한 번 네가 만든 작품 좀 뽐내봐. 멋지게. 알았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건네주니,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곤 연습실 중앙에 선다.
“사장님, 언니 진짜 열심히 준비했어요.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완전 만 점짜리 안무예요. 이건 진짜 혁명이에요!”
서연이가 옆에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말했다.
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하는 서연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곤,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진이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자.”
“네.”
모두가 기대와 함께 지켜보는 가운데.
음악이 틀어지고.
그녀가 모든 열정을 바쳐 만든 역작이 펼쳐졌다.
‘이건 나도 한 번도 못 봤던 안문데···.’
다른 안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안무, 또한 어디 가서 본 적 없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안무.
‘이걸 정아한테 줬으면··· 무조건 포기했겠네.’
색다른 개성이 돋보여서 가히 새로운 트렌드가 될 만했다.
골반이 눈에 띄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섹시함과 동시에 세련됨과 고급스러움까지 함께 갖추었다.
‘저거 숨은 쉬어지나···?’
난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숨을 쉬고 라이브를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노라고.
***
“혁명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어요!”
뮤비 제작사, ‘플라워 프로덕션’.
유형중 감독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숨이 가빠졌다.
그의 눈이 번들거리는데,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진이는 유형중 감독의 너무 커다란 반응에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하하! 감독님 반응이 너무 좋아서 별이랑 서연이가 보면 섭섭해 하겠는데요?”
“그···게, 그 두 분보다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다 좋은데요! 그-”
당황한 눈이 지진인 난 듯 흔들리는데,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유진이의 댄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서연이의 곡, 그리고 누구나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안무 때문일 터.
나도 깜짝 놀랐었다.
고급스럽게 세련됨과 동시에, 이렇게나 섹시하고 멋질 수가 있다니.
이건 댄스에 조금도 관심이 없던 일반인이 보기에도 중독성이 강했다.
‘미쳤지, 진짜.’
그녀는 댄서뿐만이 아니라, 안무가로서도 절정을 찍어버렸다.
“아무튼··· 이건 예산이 어떻게 됩니까?”
유감독님이 물었다.
난 유진이와 유감독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묻고 싶은 게 그겁니다. 모든 게 다 최고인데, 뮤비도 이 정도 수준에 맞추려면 얼마가 필요할까요?”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는 입술이 마르는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그걸 말씀해달라는 겁니다. 저희는 얼마든지 맞출 수 있어서요.”
“···!”
“···!”
유진이와 유감독님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많이 놀란 모양.
그런데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다른 모든 게 최고의 퀄리티로 깔려 있으며, 댄스고 안무고 음악이고 모두 해외 팬들에게 어필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니.
뮤비도 이에 맞춰서 최고로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닥 내색은 안 했으나, 난 이 곡을 저 안무와 함께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모든 걸 베팅해도 된다는 것을.
***
유진이의 뮤비 세트장.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스탭들과 눈을 맞추며 일일이 인사하는 유진이.
매니저로서 익혔던 처세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런 약간의 기름칠이 3일간의 촬영에서 노력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에게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인성 논란에 휩싸일 일은 없겠다.”
“그럼요. 매니저도 해봤어서 오히려 더 롱런할지도 몰라요.”
난 그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가수처럼 꾸민 거 보니까 좀 어색하네.”
“영화도 촬영했었는데요, 뭐.”
“영화랑 뮤비는 스타일링이 확연하게 차이 나잖아.”
그녀는 씩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쁘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선배, 그런 건 대놓고 말해도 돼요.”
“참나.”
픽 웃음을 흘리며 대답을 흘렸으나.
내 가수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꾸미고 있으니 비주얼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매니저 때도 그녀의 비주얼은 빛을 발했었다.
아무리 피곤에 절어도, 전혀 꾸미지 않았어도, 그녀는 이쁘려고 별 짓을 다 했던 연예인들보다 더 시선을 잡아 끌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꾸미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난 얘가 이쁜 줄은 진작에 알았었는데, 이렇게까지 엄청나게 이쁜 줄은 몰랐었다.
“그런데 선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무슨 별이나 서연이도 아니고. 신인한테 이렇게 쏟는 건 GO엔터에서나 보던 건데.”
그녀가 세트장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쩔 수 없이 그린 스크린을 많이 이용하기로 했으나, 세트와 소품을 통 크게 만들기도 했다.
착장도 많이 만들어서 비용이 꽤 많이 들었고, 댄서도 100명 이상을 섭외했다.
“그만큼 우리도 기대하고 있다는 거지. 자신이 있기도 하고.”
“선배가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아요. 왠지 잘될 것 같은 느낌?”
그녀와 이런 현장에 나온 적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가수로 온 적은 이번이 처음.
그리고 이렇게 꾸민 상태로 온 것도 처음이라서, 그녀를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여러 곳을 다녔을 때의 그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시야에 겹쳐졌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얘가 이런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네가 내 밑으로 안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냐. 생각해보니까 내가 진짜 운이 좋았던 것 같네. 우리 회사로 데려온 것도 잘했어.”
“저희 아직 결과 안 나왔는데요? 성공할 거라고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에요? 기대는 해도 좋은데 적당히 기대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러다 실망도 커질라. 그리고 직속 선배는 선배 아니어도 많았어요. 선배한테 믿음이 있어서 따라온 거지.”
“너 데뷔하면 GO엔터는 진짜 배 아파 죽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애를 매니저로 썩히고 있었으니.”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리고 아직 결과 안 나왔다니까요? 저 슬슬 부담되려고 해요. 적당히요, 선배. 그리고 저 매니저 일도 잘했어요. 썩은 건 아니다.”
“얼씨구? 네가 매니저 일을 잘해봤자 얼마나 잘했다고?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잘 안 했으면 왜 데려왔을까?”
그녀와 도란도란, 투닥투닥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준비가 끝났고.
촬영은 곧 시작됐다.
그리고 난 한 번 겪어봐서 낯설지는 않지만 조금도 질리지 않는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촬영 때, 몸풀기 같지 않은 희대의 몸풀기로 인해 벌어졌던 광경.
스탭들이 모두 유진이를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난 주위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는 비주얼을 빼고 보더라도 댄스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인데.
이렇게 화려하게 꾸며놓은 상태로 무대까지 깔아주니, 어찌 눈이 황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탭들이 세팅한 무대 위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과 재능을 쏟아내며 날뛰고 있는 유진이.
난 경악과 환희가 고요하게 몰아치고 있는 현장에서, 홀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감을 아무리 많이 품어도 그 이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김별의 국내 단독 콘서트.
일주일 간격으로 열리는 콘서트의 순서는 서울이 첫 번째, 그 다음이 부산, 광주, 인천이었다.
오늘의 공연은 투어 일정 중 유일하게 이틀 간 열리는 서울 콘.
장소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었다.
“첫 콘서트부터 여기라니. 진짜 꿈만 같네.”
새삼 그동안 우리가 쌓은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 지 규모를 통해 제대로 실감이 난다.
정실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360도죠.”
훨씬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
웬만한 스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는데, 별이의 국내 인기는 이것마저 순식간에 매진시켜버렸다.
‘진짜 다른 건 몰라도 국내 인기만큼은 누구도 안 부럽지.’
콘서트의 대기실.
스탭들이 내는 소리, 초대 가수들이 내는 소리, 관객들이 내는 소리, 그리고 콘서트장에 틀어놓은 음악소리까지.
여러 가지 소음들이 뒤섞여 대기실을 비집고 들어오는 가운데.
별이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오빠.”
“어? 나 불렀어?”
별이가 눈을 감은 상태로 날 부른 것 같아서 대답했는데.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다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여전히 눈은 감고 있었다.
“오빠.”
“응.”
그리고 잠시 뒤 또 한 번.
“오빠.”
“응.”
그제서야 그녀의 눈이 뜨였다.
흔들림 없고 맑고 투명한 눈이 내 눈을 응시한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해요. 잠시 마인드 컨트롤 좀 했어요. 무대 위에서 너무 떨리면, 눈 감고 마음 속으로 불러보려고요.”
“응?”
“오빠를 찾아도 안 보일 수도 있잖아요. 콘서트 시간이 기니까요. 그럴 때 써먹으려고요. 괜찮은 아이디어죠?”
대기실에 함께 있는 실장님들이나 스탭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난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한 술 더 뜨기로 했다.
대망의 첫 콘서트인데, 이런 말 좀 할 수 있지.
눈치 볼 필요 없다.
“그래. 좋은 아이디어네. 그런데 아마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거야. 고개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을게.”
“하!”
“큭큭. 어우! 오글거려.”
“하하하!”
“이야. 사장이랑 아티스트가 이렇게 사이 좋은 엔터는 처음 보네. 이 바닥 다 뒤져봐도 없을 거야. 역시 우리 사장님! 역시 우리 별이!”
주변의 반응이 어떻든, 그녀는 그저 빙그레 미소를 띠웠다.
“네, 알겠어요. 계속 봐주세요. 자리 비우시면 안 돼요.”
“알겠어.”
GO엔터에서 날 믿고 함께 나온 것,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해준 것을 포함해 그녀에게 고마운 게 산더미 같이 많았다.
다만 여기서 그것까지 말하는 건 좀 오바인 것 같아서.
난 그냥 눈으로 말을 대신했다.
언젠간 또 말할 기회가 오겠지.
지금은 이대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별이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계속 있을 거기도 하니까.
나도 별이를 계속 지켜볼 거고.
< 이건 진짜 혁명이에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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