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야 >
김별이 대기실에서 나간 뒤.
장영기의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의 입이 뒤늦게야 뚫렸다.
“저 건방진 새끼는 끝까지 인사도 안 하네.”
“저거 한철이에요. 1년도 못 가서 망할걸요? 다 유튜브빨이잖아요.”
이팀장과 박실장은 열정적으로 험담을 쏟아냈다.
장영기는 이들의 작태를 비웃으며 말했다.
“왔을 때 얘기하시지 그러셨어요.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시더니.”
“못 한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안 한 거야! 걔가 인사도 안 하는데 내가 먼저 말 걸 순 없잖아!”
항변하는 이팀장의 얼굴은 빨갛게 달구어져 있었다.
정곡이 찔린 탓이다.
장영기는 이에 대꾸도 하지 않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너무 추해서 말할 가치가 없었으니까.
“김별도 포장이 너무 잘된 거야. 우리한텐 입도 뻥긋 안 하더라. 하여간 지 사장 닮아서 싸가지가 없어서-“
“실력도 과대포장이에요. 노래만 하면 그래도 열심히는 한다고 조금은 인정해줄 수도 있는데, 안무는 대체 왜 하는 거예요?”
분이 풀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본인의 추함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둘을 더 열심히 씹어댔고.
장영기는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그들의 쓸데없는 소리를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김별의 사전 녹화가 시작될 시간.
장영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 사녹 좀 보고 올게요.”
“···김별 사녹? 거길 왜?”
“과대포장인지 아닌지 직접 무대 보고 확인해 보려고요. 부담되시면 같이 안 가도 돼요. 저 혼자 보고 올게요.”
“···아니야. 부담은 무슨. 네가 간다는데 우리도 같이 가야지.”
‘AMAM’에서 그녀의 무대를 봤었으니, 핑계에 불과했지만.
이팀장은 똥을 씹은 듯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는 장영기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장영기는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저기에 가서도 방금 전처럼 입을 놀릴 수 있을까?
‘못 하겠지.’
김유민이 GO엔터에 있었을 때부터 그들이 열등감을 느꼈다는 걸 뻔히 아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나가고 있으니.
아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유민이 입 한 번 뻥긋하면 받아칠 수 있는 말이 없을 테니까.
자신만 못나질 게 뻔하지.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공개홀로 들어가자, 무대 아래에 있던 김유민과 무대 위에 막 올라선 김별의 시선이 모였다.
커다래진 두 쌍의 눈.
장영기는 매끈한 미소를 지으며 둘의 시선을 받아냈다.
“형, 저 구경해도 되죠? 라이벌 컴백 무대 한 번 직관하고 싶어서요.”
김유민의 눈이 장영기의 뒤쪽을 훑었다.
역시 이팀장과 박실장은 눈에 힘만 가득 줄 뿐,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있었다.
“그래, 봐.”
“네!”
장영기가 여기에 있든 없든, 피디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무대를 진행시켰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김별의 무대에 모두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장영기는 그 무대를 보며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대기실에서 들었던 이팀장과 박실장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한철? 과대포장? 안무는 왜 넣냐고?’
자신이야말로 어이가 없어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AMAM’ 때도 그랬지만, 이건 안티마저도 팬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뛰어난 무대다.
실력 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가 스타의 아우라를 뿜어내며 무대 장악력을 뽐내고 있었다.
“와. 확실히 진짜 잘하긴 하네요. 날 선 거 봐요. 힘이 바짝 들어갔네.”
“네가 자극했잖아.”
무대를 많이 해본 입장에서, 자극이 됐다는 건 바로 알았다.
다만, 그 자극을 좋은 무대로 보여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힘이 들어갔다고 다 좋은 무대가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김별은 이를 보란 듯이 해내고 있었다.
무대에 흠잡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어지간히 눈이 높은 자신마저도 그저 감탄만 하게 될 뿐이었다.
“뭐 자극되면 좋죠. 저거 보니까 저도 더 자극되는 것 같네요. 정말로 진지하게 라이벌 느낌도 나는 것 같고.”
장영기는 입매를 끌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저도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별이는 바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국내는 여전히 장영기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고, 영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어 모으고 있었다.
직원들도 바빴다. 국내 단독 콘서트를 잡고, 해외 활동 또한 준비해야 했으니.
그리고 그 와중에.
A&R팀 정세현 팀장이 희소식을 전달했다.
“완성됐습니다.”
이유진의 데뷔곡. 아직 가사와 제목이 붙진 않았지만 음악은 다 뽑힌 것이다.
나는 곡을 듣고는 바로 유진이에게로 찾아갔다.
구태여 회사로 부를 필요가 없다. 얜 언제나 연습실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었으니.
연습실의 문을 벌컥 열고, 성큼성큼 유진이를 향해 걸어갔다.
빨리 들려주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겉으로 티가 났는지.
유진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어요?”
“유진아.”
“···.”
그녀가 내 표정을 빤히 살폈다. 그리고 눈이 서서히 커졌다.
설마, 하는 마음이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완성됐어. 네 데뷔곡.”
“진짜요? 그게··· 나왔어요? 선밴 들어봤어요? 어때요? 좋아요? 표정만 보면 좋은 것 같은데··· 빨리 들려줘요. 애태우지 말고. 진짜 좋은 거 맞죠? 아, 어떡해. 선배, 저 진짜 떨려요. 음악 좋은 거 맞죠, 진짜?”
서서히 눈동자에 흥분이 감돌더니 말이 점차 빨라졌다.
별이와 서연이의 데뷔 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진짜 좋지. 서연이가 네 생각하면서 만든 건데.”
“서연이가 만든 거면 믿을 수 있죠. 아무튼 빨리 들려줘요.”
난 그녀와 함께 작업실로 들어갔다.
이왕 들을 거 좀 더 좋은 스피커로 자세히 들려주려고.
나도 방금 전에 이어폰으로 들었었기 때문에 좋은 스피커로 듣고 싶기도 했고.
컴퓨터를 켜는 동안 그녀는 앉아 있질 못했다.
선 채로 다리를 떠는데, 얼굴 표정이 수시로 바뀌었다.
입꼬리도 들썩거리고 온몸을 가만히 두지를 못한다.
“튼다.”
“네, 빨리요.”
음악을 틀고선, 의자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음악을 들으며 유진이의 표정도 살펴봐야 했으니.
난 방금 전에 이 노래를 듣고선 유진이가 이 노래에 맞춰 댄스를 추는 장면이 떠올랐었다.
그만큼 노래가 유진이의 맞춤형이었다.
서연이는 유진이에게 댄스를 배우고, 유진이가 춤을 추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그녀가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진이를 떠올리며 노래를 들으니, 안무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끝내주는 댄스를 본 것 같은 느낌.
성공할 음악을 알아보는 내 직감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시끄럽게 외쳐대고 있었다.
이만큼 좋은 예감이 바짝 선 적이 없었는데.
음악이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다. 난 여전히 유진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녀는 딱히 커다란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허나, 그녀가 느끼고 있을 감정의 편린이 엿보이는 듯했다.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의 움직임이 커지고, 침을 꼴깍 삼키고 있다.
무엇보다, 나와 간혹 마주치는 눈동자가 격랑이 몰아치는 감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내 곡이 끝나고 적막이 내려앉았을 때.
그녀는 호흡을 거칠게 쉬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이게 네 데뷔곡이야. 이제 원하는 가수 활동 마음껏 해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입을 열면 북받쳐 오를 것 같은지, 감정을 수습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안무는 네가 만드는 게 좋겠지? 바로 가사도 의뢰할 거고, 이제 개봉까지 남은 시간이 많이 않으니까 빨리 준비해야 될 거야. 노래 연습도 많이 해. 데뷔곡이 이렇게 잘 뽑혔는데, 노래도 최대한 잘 뽑아야 나중에 후회가 없지. 댄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래도 충분히 잘하니까 실력을 끌어올린다고 생각하기보단 곡에 맞춘다는 느낌으로-“
“···선배.”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 말을 끊더니, 떨리는 입꼬리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 어떡해요? 정말 너무 좋은데. 너무··· 기분이 좋아요. 이런 느낌이었구나.”
뚝,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리고 여전히 밝게 빛나는 미소로 말을 이었다.
“안무도 잘 만들어 볼게요. 나중에 후회 없도록. 고마워요, 선배.”
“곡은 서연이가 다 만들었어. 서연이한테 고마워해.”
“서연이한테도 고맙고, 오빠한테는 다 고마워요.”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얘한테 이런 말을 이렇게 진지하게 듣는 게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진지하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은 게 처음도 아닌데, 이렇게 감격에 차올라서 말하는 걸 듣는 건 처음이거든.
“저 열심히 할게요.”
“···그래. 나도 열심히 할게.”
그녀의 성공을 의심한 적은 없으나.
서연이가 만든 곡을 듣고, 이런 유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젠 정말 실패할 자신이 없었다.
아주 조금도.
***
연습실에서 한창 안무를 짜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김별이 들어왔다.
유진은 땀에 젖은 얼굴을 닦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옆에 있는 다른 연습실을 쓰고 있던 김별은 이제 집에 가려는지 채비를 다 갖추고 있었다.
인사를 하려고 온 모양.
“별아, 이제 집에 가려고?”
“네, 가기 전에 인사하려고요. 언니는요? 안 가세요? 아침부터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난 좀 더 해야지. 스케줄도 없고. 넌 콘서트 준비는 잘 돼가?”
영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김별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추세였으나, 바로 해외에 나가지는 않았다.
단독 콘서트, 그것도 첫 콘서트의 일정이 잡혀 있기도 했고, 이는 김별 같은 스타의 입장에선 해외진출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콘서트 준비하는 건 그냥 무대 준비하는 거랑 많이 달라서 좀 헤매고 있어요. 콘서트 때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돼요.”
“하하. 나도 가수 입장에서는 안 서봐서 뭐라고 조언을 못 해주겠네.”
“괜찮아요. 많이 배우고 있어서. 언니는 안무 짜는 거 잘 되어가요?”
유진은 입매를 말아 올리면서도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떤 안무를 만들어야 할지 느낌은 확 왔어. 서연이가 너무 마음에 들게 만들었더라고. 나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근데 안무는 잘 안 나와. 항상 그래. 나름 방향은 잡혔는데, 만족스럽게 뽑는 게 너무 어려워.”
김별은 ‘어렵다’는 말에 수긍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지금까지 저랑 서연이한테도 엄청 잘 짜주셨잖아요. 이번에 영화 찍을 때도 정아 언니 안무도 많이··· 디테일하게 잘 짜셨고. 듣기로는 현장에서 프리스타일로 춘 댄스도 찍었다고 알고 있어요.”
“···프리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되긴 하더라고. 그런데 내 곡에 짜는 건 느낌이 또 다르더라. 잘 안 나와. 고민도 많아지고.”
김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키우며 입을 벌렸다.
“아! 소화할 수 있는 안무가 달라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언니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걸 실제로 다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민이 되고 있는 이유를 그녀가 정확히 짚었다.
허나, 그렇다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기엔 왠지 부끄러워서 유진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하. 이것도 경험해보면 다음에 더 잘하겠지.”
그리고 그때.
보컬 룸이 있는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이동했고, 거기엔 유정아가 눈을 부라리며 실소를 내뱉고 있었다.
“언니도 계셨어요?”
“아까 왔어. 그런데··· 너, 얘가 안무 만들고 있는 거 못 봤지?”
김별은 유진을 한 번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콘서트 준비하고 있어서요.”
정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야. 꼭 봐야겠으면 콘서트 끝나고 봐. 아니면 콘서트 잘하고도 네 자신이 싫어질지도 몰라. 내가 지금 그러거든. 사실 댄스 연습하러 왔다가 쟤 하는 거 보니까 열불이 뻗쳐서 못 하겠더라. 댄스 연습은 내일로 미뤘어.”
“아···.”
“그런데 넌 콘서트 준비만 해? 해외 스케줄은? 아직 안 잡았나 봐?”
“아뇨, 잡혔어요. 몇 개.”
“···얼마나?”
“잘 기억이 안 나요.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서.”
“···영국에서?”
“일본이랑 동남아랑 남미에서도 잡혔는데, 영국이 제일 반응 좋다고 거기 중심으로 잡는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세계투어를··· 한다는구나. 음. 벌써. 그것도 영국이 제일 반응이 좋고. 해외를 한 번도 안 나갔었는데. 좋네. 잘하는 중이네. 그래. 어. 너 잘났다, 그래. 너네 둘 다 아주 잘나셨어. 어! 열심히 해라! 잘해서 아주 대박 나! 확 빌보드까지 가버려!”
홱! 몸을 돌려 다시 보컬 룸 안으로 쏙 들어가는 유정아.
김별은 커다랗게 뜬 눈을 깜박이며 유진에게 물었다.
“언니, 제가 뭐 실수한 거 있어요?”
“아니. 저 언니는 늘 저러잖아.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 돼있어.”
유진은 꽉 닫힌 보컬 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언니는 티저만 올려도 전세계가 난리일 텐데.”
<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야 > 끝
ⓒ 쏘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