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그런데 솔직히 제 앨범이 더 좋죠? >
김별의 네임드 팬 중 하나.
웹소설 작가 김정민은 김별의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임전 태세로 마음의 검을 세웠다.
이미 티저가 나오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 신경전이 오간 탓이다.
그리고 앨범이 나오자마자, 김정민은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기꺼이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
“···.”
와인드업의 팬인 그의 여동생과 김정민은 거실 소파에 앉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 또한 전장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
남매는 서로 쉴 새 없이 두드리며 가끔 칼날 같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돌연 김정민의 입에서 쾌재가 터졌다.
“하하! 1위! 역시 대중픽은 못 이긴다니까?”
“···!”
여동생의 눈빛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방금 전까지 장영기의 곡이 1위, 김별의 곡이 2위였는데, 시간이 바뀌며 순위가 바뀌어버린 탓.
“어, 오픈빨이야. 그리고 대중픽은 개뿔! 네 하는 꼬라지를 보고 말해. 김별은 팬덤 없냐? 영기 오빠는 대중팬 없어? 하여간 말끝마다 대중픽, 대중픽, 붙이는 애들 치고 제대로 된 놈 없거든?”
“오빠한테 말하는 싸가지가··· 아니다. 풉. 열폭이구나?”
김정민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도발의 효과는 굉장했다!
여동생은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해외에선 상대도 안 되는 게!”
“···.”
그녀의 말이 맞았다. 국내에선 엎치락뒤치락이지만 해외에서의 인기는 김별이 아직 많이 모자랐다.
경력이 얼마 안 됐기도 하고, 아직 해외활동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둘은 다시 입을 다물며 핸드폰을 거칠게 두드렸다.
인터넷은 이곳보다 더했다.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을 정도.
김별의 이번 앨범은 다양한 장르를 과감히 시도했던 김송송송과 달리, 케이팝의 범주 안에 있었다.
‘Hang Out’ 때처럼 안무도 넣은 앨범.
다만 김정민이 봤을 때, 다른 케이팝들과는 완성도가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가수도 그렇지만 타이틀 곡이건 뮤비건 수록곡이건, 모두 역대급이었다.
그에게 있어 이 앨범은 이미 하나의 마스터 피스, 희대의 명반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뮤비를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
그녀는 케이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다시 한번 과감하게 변신했다.
타이틀 곡의 제목은 ‘Bad’.
‘나쁜 여자 김별이라니···.’
컨셉부터가 지독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이걸 어떻게 안 사랑하냐고.’
국내 음원차트 1위.
이제 그녀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와인드업과 같은 급에 올라선 상태였다.
체급 자체가 올라간 것.
‘이제 해외만 터지면 참 좋을 텐데.’
그때였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하나가 그의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김별 반응 미쳤는데?]
“···!”
손가락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게시글을 쭉쭉 훑던 그는 첨부된 영상들을 차례로 틀었다.
첫 번째는 영국 스트리머의 방송 영상.
“케이팝은 내 취향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 취향은 존중해. 그런데 내 취향도 있잖아. 맞지? 그런 나한테는 지금 차트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관심도 없는 케이팝이 스포티파이 차트에 너무 자주 올라오거든.”
이게 불과 일주일 전에 나온 발언이라 했고, 영상은 다음 편집점으로 넘어갔다.
하루 뒤, 그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케이팝이 내 취향이 아닌 건 확실해. 그런데··· 이 한국 가수는 미쳤어. 김별이라고 있거든? 아, 잠깐만. 오! 채팅이 왜 이래? 이 가수의 실력을 논한다고? 너 얘 음악 들어본 적 없지? 멍청아, 이것부터 봐. 그녀는 진짜야!“
그가 방송에서 튼 영상.
김송송송의 헤비 메탈 곡, ‘Get It!’이었다.
“저 기타도 봐! 완전히 미쳤잖아! 저 기타리스트가 누군지 알아? 얘도 가수야.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곡을 실패한 적 없던 천재 작곡가고.”
다음 편집점으로 넘어갔다.
날짜는 바로 오늘.
오늘 방송된 장면이었다.
“김별 오늘 앨범 나온 거 들은 사람? 이건 혁명이야. 나··· 케이팝 좋아하게 됐어. 정확히 말하면 김별이지만.”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게시글에 첨부된 다른 영상들 또한 이와 비슷했다.
게시글엔 설명이 덧붙여졌다.
김송송송의 헤비 메탈, ‘Get It!’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쳤는데.
한국을 제외하면,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이 큰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김별에 대해서는 K팝 팬들만이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그리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이 나라는 락의 종주국.
김별의 메탈은 빠른 속도로 대중들 사이로 스며들었고, 이내 김별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서서히 그 크기를 부풀렸다.
각자 김별을 좋아하게 된 날짜는 달랐기 때문인지 조용히, 소리 없이 팬덤이 커졌고.
김별의 앨범이 발매된 오늘.
각기 다른 시간에 김별의 팬이 되었던 그들은, 이때만큼은 같은 시간에 한 음악에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김별을 몰랐던 사람들마저 김별의 이름을 알게 될 만큼 뜨겁게.
김정민은 소파의 반대쪽 끝에 앉아 있는 동생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거 봤네.’
김정민의 얼굴에 또 다시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다.
***
[ 3. Bad – Kim Byeol ]
영국의 스트리밍 차트.
난데없이 대박이 터졌다.
“음. 별아···. 우리 영국 진출해야겠는데?”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이제 막 첫 음방 무대에 서기 위해 공개홀로 온 참인데, 이역만리에서 커다란 호재가 터져버렸다.
물론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어찌어찌 납득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얼떨떨한 심정은 가시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공개홀에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대기실에 짐을 풀고, 다른 대기실에 인사를 돌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내 입에서는 간간이 너털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떨떨함과는 별개로,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국내는 우리를 모두 담아내기엔 너무 좁은 게 맞지.
암, 이제 서연이에 이어서 별이도 해외로 나갈 때가 됐다.
“오빠.”
별이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지그시 올려다봤다.
장영기의 대기실 앞.
이제 이곳에 들어가야 했다.
현재 우리의 국내 차트 순위는 2위.
장영기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어서 현재 순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1위일 때 마주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약간의 아쉬움이 들긴 했다.
“들어가자.”
“저··· 어떻게 해요?”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장영기와 GO엔터 사람들 앞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일 터.
사실 애매하긴 했다.
장영기는 아무리 우리와 경쟁한다지만 딱히 적대할 이유가 없긴 한데.
GO엔터는 우리와 안 좋게 엮였으니까.
“우리 ‘AMAM’ 때 얘네랑 마주쳤었잖아. 레모네이드랑은 몇 번이나 더 마주쳤었고. 그때처럼만 하면 돼. 선배는 선배로.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레모네이드 때처럼. 그렇다고 너무 필요 이상으로 날 세우진 말고. 좋은 말 안 나오면 그냥 무시해버려.”
답이 됐는지 그녀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똑똑, 문을 두드렸고.
문이 곧장 열리며, 로드 매니저로 보이는 이의 얼굴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
깜짝 놀란 표정.
그의 눈이 나와 김별을 번갈아서 오갔다.
“들어가도 되죠?”
“아···.”
그는 대답없이 몸을 비켜섰다.
그러자 다른 이들의 얼굴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릴 때까지만 해도 들렸던 소음이 사라진다.
대기실 안에 있던 이들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그리고 전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를 반기는 듯, 입꼬리가 올라가는 장영기.
예의범절을 몰라서 왕팀장이라는 별명이 더욱 어울리는 이팀장.
대번에 표정을 굳히는 박실장까지. 이놈은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존재감도 없었으면서 이팀장과 죽이 맞아 내 뒷담화를 수시로 하고 다녔었다.
여기서 우리를 반기는 이는 오로지 미소를 짓고 있는 장영기뿐이었다.
“형!”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우리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별 씨도 안녕하세요.”
“네. 선배님,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그는 형식적으로 별이에게 인사를 건네고선 다시 내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별이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제 앨범 들어봤어요?”
“들었지. 좋더라. 노래도 여전히 잘하고.”
저번에 서도현도 물어보더니 얘도 같은 걸 물어본다.
“여전히요? 형이 보기에도 전에 비해 실력이 안 늘어난 것 같죠? 라이브로 부르기에는 좀 버겁게 들렸나? 소화하기가 좀 어렵긴 하더라고요.”
여전히 좋다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건 내 탓이 크다.
그에게 끝없는 향상심을 심어주고, 일 중독으로 만들어버린 게 바로 나니까.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전히 너무 잘 부른다고. 긍정적인 뜻이야.”
“아, 긍정적인 뜻이었구나! 다행이다. 형이 보기엔 그래도 조금은 는 것 같아요?”
“어,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얼핏 분위기가 좋아 보였는데, 나와 장영기를 제외하면 우리가 들어왔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다들 여전히 굳어 있는 상태.
이쯤이면 시비가 들어와도 벌서 들어왔을 이팀장이나 박실장도 가만히 입을 다물며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난 그들이 왜 이렇게 말을 못하는 건지 쉽게 예상이 갔다.
우리를 깔 게 없거든. 그냥 찍, 소리도 못하는 거지.
저들도 까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겠지만 깔 게 없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것이다.
"형. 밥은 먹었어요?"
"먹었지."
"아. 그럼 과자라도 가져가실래요? 이따 드세요."
그가 내 손에 과자를 쥐여줬다.
콘칩. 얘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이제 슬슬 몸을 돌려 대기실을 나가려 할 때.
장영기가 대뜸 김별에게 시선을 던지더니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김별 씨도 같이 드세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뭐라고 떠들든 우린 서로 좋은 경쟁해요."
"...네, 선배님."
그는 다시 나를 보며 입술을 열었다.
"형. 그런데 솔직히 제 앨범이 더 좋죠? 노래도 제가 좀 더 잘 부르고."
"...!"
"하하. 농담이에요. 서로 열심히 해요. 라이벌 같아서 재밌어요, 요즘. 우리 회사 사람들 다 형네 회사 엄청 신경 쓰거든요. 방금 전까지도 형이랑 김별 씨 얘기하고 있었어요. 전 욕은 안 했지만 그래도 신경 쓰고 있는 건 마찬가지고."
별이의 표정이 확 굳었다.
난 방긋 웃고 있는 장영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서로 열심히 하자. 그런데 우리 별이 앨범이 훨씬 더 좋아. 노래도 훨씬 더 잘하고. 이건 농담 아니야. 진심이지."
“하하.”
우리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 우리의 대기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쟤가 가끔 말은 저렇게 해도 음험한 구석은 없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는 말이야. 그냥 머리가 좀 청순하고 뭐든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러거든. 딱히 나쁘게 안 받아들여도 돼."
"많이 친하셨나 봐요. 네, 알겠어요. 무슨 뜻인지."
그녀의 입술에 매끈한 미소가 맺혔는데.
어쩐지 눈빛만큼은 날이 바짝 벼려져 있는 듯 날카로운 기세를 풍겼다.
아무래도 제대로 자극이 된 듯했다.
< 형 그런데 솔직히 제 앨범이 더 좋죠?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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