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판기 성능 확실하네 >
GO엔터의 녹음실.
서도현이 해외 투어를 다니고 있는 가운데, 와인드업의 메인 보컬인 장영기도 솔로 앨범 출격을 위해 준비에 나섰다.
오늘 녹음할 곡은 미니앨범의 타이틀 곡.
“여러모로 난이도가 높네. 쉽지 않은데?”
비하인드 영상을 위해 이 순간에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장영기는 가사지를 보며 노래를 연습했다.
“For we are glorious! 아, 너무 높다. For we are glorious!”
어렵다는 말 치고 매끄럽게 올라가는 고음.
무반주에 마이크 없이 부르고 있음에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실력이었는데.
장영기는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미간을 모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A&R팀 김선영 팀장은 혀를 내둘렀다.
만족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은 카메라 앞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로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고 있으면서도 영 불만스러운 것이다.
‘이번엔 꼭 이겨야 돼.’
GO엔터 최고의 카드, 와인드업이 WE엔터에 연일 밀리고 있었다.
앨범 판매량과 굿즈, 관객 동원력, 해외 인기 등은 비록 압도적 우위에 있으나, GO엔터 역시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했다.
대중들이나 팬들이나 회사나 아티스트나, 차트의 순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니까.
최근의 서도현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이겼나 했는데, 국내와 일본 양쪽에서 구서연이 서도현을 꺾어버렸다.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오면 다른 것들은 다 따라오기 마련.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미지를 만들고 무게감을 만들어준다.
해외 활동에 있어서도 국내에서 얼마나 잘나가는지가 중요하다.
WE엔터가 그러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밀릴지언정, 그들은 차트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며 이미지와 무게감을 동시에 갖게 됐다. 심지어 경쟁 가수가 와인드업이었음에도.
김별과 구서연은 와인드업을 꺾으며 비로소 모두가 인정할 만한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번엔 안 될 거야.’
김별이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예전에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뮤비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번에도 활동 시기가 겹칠 터.
아니, 그들은 김송송송이든, 김별이든, 구서연이든, 피처링, 컨텐츠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으니 ‘또 겹친다’는 표현도 맞지 않았다.
언제나 차트 상위권에 그들의 이름이 못박혀 있으니.
김선영 팀장은 장영기를 믿음직스럽게 바라봤다.
그의 연습을 듣고 있자니 귀가 황홀할 지경.
심지어 이번엔 철저히 대중들의 입맛에 맞추기도 했다.
김선영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녀의 눈앞에 김유민의 찡그린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설령 직접 보진 못할지라도,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엄청 재밌겠네.'
***
“이번에도 겹치네. 얘네 노린 거 아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겹칠 수가 있는지.
난 내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며 밥을 먹는 별이를 바라봤다.
집에서 훔쳐온 듯 한가득 들고 온 불고기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제 완전 전쟁이야.”
양쪽의 티저와 트레일러가 터지며 비로소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탄탄한 대중 팬덤을 쌓은 별이, 그리고 원래 화력이 미친 와인드업.
그중에서도 메인 보컬인 장영기다.
“얘네 팬들도 아주 칼을 갈았어. 이번에도 우리한테 지면 안 된다고 아주 난리야.”
“그래요?”
남 말하는 것처럼 심드렁한 목소리다.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별이는 이토록 태연했다.
“밥 더 줄까?”
“제가 풀게요.”
비어진 공기밥이 다시 가득 채워졌다.
사실 나도 별이처럼 별로 걱정이 없었다.
티저와 트레일러가 공개된 지금도 이 마음엔 변함이 없었다.
‘걱정할 걸 걱정해야지.’
저쪽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평화로웠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천하태평하게 식탁을 차려놓고 밥을 먹는 느낌이다.
물론 별이의 팬들은 치열했다. 장영기의 팬들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열성 팬들이 생긴 덕이지.
하지만 이기고 싶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기면 좋고, 아님 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제대로 걷기만 해도 팬들을 만족시켜줄 자신이 있었다.
새로운 팬들도 많이 유입되겠지.
밥과 불고기, 김치를 숟가락에 높이 올려 입에 가뿐히 넣는 별이에게 말했다.
“별아, 이번에 콘서트 해보자.”
“···!”
그녀의 눈동자에 비로소 흥미가 돌았다.
그녀 역시 나와 같았다.
와인드업과의 경쟁보다는 이렇게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 관심이 있는 거지.
“이젠 콘서트 할 때도 됐어. 원래도 콘서트 열어도 될 정도로 팬들은 많았는데, 곡이 별로 없었잖아. 그런데 이젠 곡도 많아졌으니까 바로 해도 돼.”
그녀는 입안에 내용물을 가득 넣은 채로 눈매를 부드럽게 휘었다.
우리집이 별이 덕분에 화사해졌다.
저 미소를 보니까 문득 떠오른다.
GO엔터를 나올 때도, 그녀가 카페에 들어서며 저리 화사한 미소를 지었었지.
용케도 짧은 시간 동안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됐다.
앞으로는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
와인드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욕심은 그리 많지 않으나, 더욱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은 차고 넘쳤다.
레모네이드를 거쳐온 것처럼,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목 위에 와인드업이 있을 뿐이다.
“콘서트 빨리 하고 싶어요. 저 거기선 김송송송 노래도 다 해도 되는 거죠?”
“당연히 해야지. 팬들이 엄청 좋아해 주시는데.”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는지, 침묵하던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엄청 재밌겠다.”
***
방송국 VBC 인근의 한식당.
저녁 시간을 맞이해 자리가 꽉 찼는데, 이중엔 VBC의 동기 PD 삼인방 또한 있었다.
드라마, ‘어쩌다 입시학원’의 신준혁 피디, 음악방송의 정요석 피디, 그리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김별의 먹는 모습 위주로 편집하여 꿀노잼 먹방을 만들어냈던 ‘재료만 골라줘’의 강정구 피디.
이들은 오랜만에 모여 수다를 떨었는데.
모두의 공통점 중에 김별이 있었다.
내내 싱글벙글 웃고 있던 강정구 피디가 말했다.
“김사장님이 사람이 됐어. 진국이셔, 아주. 그분이 괜히 성공하는 게 아니라니까?”
이번 정규앨범 컴백에 앞서, 다시 '재료만 골라줘'를 찾았기 때문이다.
강정구 피디는 말을 이었다.
“김별 앞에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겠어. 거기서 우리 프로그램을 딱! 골라준 거 아냐. 역시 도움을 베풀면 이렇게 돌아온다니까? 착하게 살아야 돼.”
“야. 도와준 걸로 치면 여기서 내가 제일이지. 김별 막 데뷔했을 때, 이놈 드라마에 OST로 꽂아준 게 누구냐. 나잖아! 음방 피디는 괜히 하는 게 아니야. 이 안목이 특별해야 돼. 김별 아무도 모를 때, 내가 인기 드라마에 팍 꽂아준 거라고. 그 OST로 팬들 엄청 유입됐고. 어떻게 보면 WE엔터가 이렇게 잘나가는 게 다 내 덕이라니까?”
정요석이 허세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호탕하게 웃자, 신준혁 피디가 조소를 지었다.
“김별은 누가 봐도 잘해, 이 자식아. 안목은 개뿔이.”
여기 모인 삼인방이 모두 김별의 팬이었다.
음방 피디인 정요석을 제외하고는 OST든 출연이든,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그냥 김별의 노래가 이들에게도 몹시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근데 이번 컴백은 좀 힘들 것 같긴 해.”
신준혁의 말에 둘 모두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이유는 어제 컴백한 와인드업의 메인 보컬, 장영기 때문이었다.
“기세가 아주 대단하던데?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진짜 말 그대로 가요계를 휩쓸고 있더라고. 엔터 애들이 아주 죽을 상을 쑤고 돌아다니더라.”
“이번엔··· 힘들긴 하겠지. 장영기 뮤비 봤는데 끝내주긴 하더라. 몇 번 WE엔터한테 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와인드업은 와인드업이야. 그 자리에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아주 칼을 갈았어.”
정요석과 강정구의 말이었다.
다들 김별을 응원하고 있었기에 쩝,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정요석이 헛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WE엔터도 많이 해먹었잖아. 김별, 구서연, 김송송송으로 계속 곡 내면서 차트도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고. 엔터 애들이 앓는 소리 엄청 해. WE엔터랑 GO엔터가 지들끼리 가요계 다 해 처먹는다고.”
“하하. 그렇긴 하지. 이게 다 내 덕분이잖아. 내가 ‘어쩌다 입시학원’에 OST로 대박 터뜨려가지고.”
“···! 너 꿀노잼 먹방이라는 말 몰라? OST는 OST고, 난 다시 우리한테 도움받은 거 갚으려고 왔잖아. 김사장님도 내가 엄청 도움됐다고 느껴서 그러는 거라니까?”
“하! 참나, 이 굼벵이 같은 자식들이 누구 앞에서 주름을 잡아. 아무도 모르는 신인 때 내가 음방피디로서 이 안목으로다가 그냥 따악! 알아봐서 팍팍 밀어준 거 아니냐고.”
다시 자기가 더 잘했다며 침을 튀기면서 경쟁하고 있을 때였다.
시계는 어느새 6시를 가리켰고.
그들은 떠들다 말고 테이블 위로 머리를 모았다.
세 개의 머리 아래에는 핸드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빨리 틀어봐.”
“틀고 있잖아.”
“와! 썸네일 미쳤네. 근데 실물이 더 낫다.”
어제는 장영기의 미니앨범이, 그리고 오늘은 김별의 정규앨범이 발매됐다.
천상계의 전쟁으로 방송국 안팎이 시끄러웠기에, 방송국 피디라는 이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더블 타이틀 곡.
그들은 가장 상단에 올라온 뮤비, ‘Bad’를 틀었다.
그리고.
“와···. 내가 믿음이 부족했네.”
음방 피디 정요석의 말에, 강정구와 신준혁이 차례대로 대꾸했다.
“장영기? 대단하지. GO엔터도 칼 갈았지. 근데 여기는, 어후···. 아예 폭탄을 터뜨려버리네.”
“요석아, 나 음방 가도 되지? 김별 무대 시간 좀 알려주라.”
“어? 나도! 나도 갈래. 언제냐?”
정요석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꺼져, 나만 볼 거야.”
***
김별의 정규앨범이 발매됐다.
그 말인즉슨, A&R팀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는 뜻이다.
A&R팀은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곧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이유진의 데뷔. 이 또한 거대한 작업이다.
중요성을 따졌을 때, 결코 김별의 첫 번째 정규앨범에 밀리지 않는다.
외부의 사람들이 볼 땐, 고작 신인가수 한 명의 데뷔곡이 명성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슈퍼스타의 첫 앨범 만하겠냐며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으나.
이유진을 아는 내부의 사람들에게 있어선, 이게 더 커다란 일이라고 생각될 여지가 충분했다.
WE엔터의 A&R팀을 이끌고 있는 정세현.
그는 팀원들과 함께 연습실 옆에 있는 작업실로 들어왔다.
새로 꾸민 작업실을 제대로 쓸 사람은 구서연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뿌듯했다.
“여기만은 진짜 대형 기획사 안 부럽다.”
“에이, 팀장님. 여기뿐만이게요? 우리도 이 정도면 거의 대형 기획사 아닙니까?”
팀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정세현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아티스트들만큼은 대형 기획사도 한 수 접어줘야지.”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제 여기에 유진 씨까지···! 크으! 그동안에도 열심히 했는데, 이번 작업이 제일 긴장되는 것 같아요.”
팀원들과 함께 대기하길 얼마.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빙그레 미소를 띤 구서연.
A&R팀에게 있어 그녀는 그 누구도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서연 씨!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인사와 함께 짧은 담소를 나눈 뒤.
정세현은 서연에게 물었다.
“서연 씨, 멜로디를 만드셨다고···.”
함께 이유진의 데뷔곡 컨셉과 곡의 대략적인 방향을 회의했었는데, 그게 아직 하나로 결정이 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유진의 데뷔는 매우 중요했기에, 신중함과 부담감이 더욱 컸으니까.
오래 전부터 고민해 왔거늘, 쉽게 결론이 나올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구서연으로부터 소식이 들렸다.
아직 컨셉조차 명확하게 구축이 되지 않은 데뷔곡의 멜로디를 만들었노라고.
이곳에 모여 그녀를 기다린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이를 말한 이가 다름아닌 구서연이기 때문에, 이들은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A&R팀에게 있어 구서연은 불패의 음악 신이었으며, 누르면 나오는 명곡 자판기였으니까.
서연은 모두의 눈길을 한 번씩 마주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를 본 세현의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조건반사일까?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는 희열로 치환됐다.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뼈대뿐이라서요. 바로 써먹긴 힘들 것 같고, 컨셉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만들어봤어요.”
겸손이었다. 말은 이러한데, 목소리와 표정에서는 자신감이 요동을 치고 있었으니.
정세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바로 들어봐도 될까요?”
설명은 필요 없으니, 빨리 들어나 보자.
팀원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준비는 빨리 이뤄졌다.
녹음실의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서연이 만든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클라비넷!”
스티비 원더가 유행시킨 전자 피아노의 한 종류.
재즈, 힙합, 소울, 락, 펑크 등에 사용되는 악긴데, 또랑또랑하며 선명한 소리를 낸다.
요즘 국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악기라서 그런지, 귀에 더욱 또렷하게 박혔다.
모두의 귀에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꽂히고.
정세현은 헛웃음과 함께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자판기 성능 확실하네.”
세현의 눈빛이 흐릿하게 풀어졌다.
곡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라서 아직 만들어야 할 부분이 산더미였지만.
그의 눈앞엔 이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는 이유진의 모습이 한 폭의 명화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 자판기 성능 확실하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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