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76화 (76/124)

< 진수성찬 >

우리의 승전보는 이미 실시간으로 전해진 상태.

금의환향이었다.

허나 우린 회포를 풀고 축하를 하는 대신, 또 다른 승리를 위해 유진이의 데뷔 프로젝트 착수에 들어갔다.

연이은 성공 덕분일까.

직원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다들 입에 침을 튀기며 의견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회의는 자연히 길어졌고, 쉬는 시간에 나는 정실장님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래봤자 문만 열면 있는 사무실이었지만, 회의실 안의 열기가 너무 후끈해서 마치 야외로 나온 듯한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정실장님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이미 영화 들어가기 전부터 유진이 데뷔가 확정돼서 다들 말할 게 많은가 보네요. 하하.”

“정실장님도 많이 생각해두신 것 같은데요?”

“다들 그렇겠지만 저희가 입사한 뒤에 처음으로 내놓는 가수잖습니까. 성공해야죠.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다음 기회요?”

“네. 정아는 이미 대스타니까 가수로 데뷔한다고 해도 우리가 새로 내놓는 느낌은 아니죠. 그건 절대 실패할 수가 없는 거고, 유진이는 다르죠. 어떻게 보면 경쟁이기도 해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대부분의 직원들이 우리처럼 회의실에서 나와 있다.

그들도 각자의 팀끼리 뭉쳐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회의에 전부 몰두한 모습이었다.

난 그들을 찬찬히 훑다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 황실장님과 박실장님을 바라봤다.

황실장님은 열기가 식지 않은 눈으로 정실장님의 말에 덧붙였다.

“직원들 모두 유진이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누가 먼저 성공시킬지가 문제죠. 우리한텐 시간이 얼마 없어요.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는 게 모두의 목표일 겁니다.”

이제 보니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들이 꽤나 묘했다.

황실장님과 정실장님, 그리고 박실장님까지.

난 시야를 더 넓혔다. 흘끗거리는 직원들의 눈빛 또한 이들과 비슷했다.

경쟁심, 호승심, 투쟁심.

이들은 영화와의 경쟁을 입에 담았으나, 그들의 뜨거운 목소리와 시선은 내게로 향하고 있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착각일 수도 있으나, 이들은 나와 경쟁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말없이 미소만 짓고 있자, 황실장님이 말을 이었다.

“저희도 저희 손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습니다.”

꽤나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지금까지도 다 우리 직원들 덕분에 순항하고 있는 건데요?”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들의 마음이 기껍게 다가왔다.

직원들은 모두 영화와 관련된 건 온전한 나 하나의 몫이고, 데뷔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라 여기고 있었다.

사실 우린 모두 한 팀인 데다가, 유진이의 데뷔 준비엔 나도 함께 하고 있으니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를 마음으로 이해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승부라고 따진다면, 나도 내 패배에 베팅할 것이다.

이건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

내 확신의 근거는 단순했다.

A&R팀과 서연이가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으며, 혹시 몰라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곡을 공모하기로 했다.

그러니 곡에 대한 걱정은 없다.

다른 작곡가들에게만 구한다면 만족스러울 만한 곡을 구할 수 있을지 쉽게 점칠 수는 없지만, 서연이는 다르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이다.

댄스 괴물, 댄스의 신, 댄스 외계인, 댄스 머신, 24시간 댄스만 추는 사람, 댄스 황제, 댄스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심지어 보컬과 비주얼까지 받쳐준다.

이건 개봉 전에 성공하든 개봉 후에 성공하든, 사실 우리 모두의 승리고, 유진이의 승리다.

직원들이 이렇게 열기를 띄울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겠지.

실패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유진이를 보다 더 높은 곳에 올려놓기 위한 발판을 뽀득뽀득 닦고 있었다.

***

“역시 쫑파티엔 삼겹살이 국룰이지.”

어느새 질렸다가도 다음날이 되면 거짓말처럼 그리워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한동안 일본에 있어서 그런지, 지금은 이 냄새가 미치도록 반가웠다.

시끌벅적한 가게 안.

여기에 있는 모두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공헌한 주역이지만.

그 주역 중에서도 핵심 인물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앉았다.

나와 정아, 유진이, 심성균 감독과 임형진 대표, 그리고 각 팀의 헤드 감독님들이 이곳에 있다.

“모두 잔 채워주세요! 감독님 말씀 있겠습니다!”

건배사다. 지겹게 들었으나, 우리 곁을 맴도는 삼겹살의 냄새처럼 가끔은 지겹지 않다.

난 정아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유진이의 잔에도 술을 따라줬다. 내 잔엔 유진이가 따라줬다.

우린 모두 잔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감독을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보다 앙상한 볼이 더 움푹 패여서인지, 미소도 더욱 깊어진 듯했다.

“여러분, 그간 이 초보 감독을 따라와 주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애써주신 것만큼 보답하겠습니다. 이렇게 진수성찬이 차려졌는데 제대로 못 뽑으면 접시에 코 박고 죽어야죠. 하하! 정말 영혼을 갈아서 만들어보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스타는 다시 무대로’를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난 시원하게 원샷을 하고는 유진이를 바라봤다.

이제 막 한잔이 들어갔거늘, 그녀의 얼굴은 벌써부터 헤벌쭉하게 풀려 있었다.

가수로서의 데뷔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영화 촬영까지 무사히 끝난 덕분일 터.

자연재해가 아니고서야, 그녀의 앞에 깔린 레드 카펫을 더럽힐 수 없었다.

“사장님, 한잔 드리겠습니다.”

심성균 감독이었다. 건배사와 함께 입에 술을 털어넣자마자 두 손으로 병을 기울였다.

“예.”

술이 잔을 채우자, 나도 병을 들어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사장님, 사장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난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그렇게까지예요. 사장님 덕분에 제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으니 목숨을 구해준 거나 다름없죠.”

새로운 인생이라.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라고 볼 여지가 있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건배하기 전에 했던 말은 그의 진심인 듯하다.

진수성찬이 차려졌다고 했지? 제대로 못 뽑으면 접시에 코 박고 죽어야 한다고 했고.

“그게 왜 오빠 덕분이에요?”

정아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끼어들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아의 말이 맞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것도 맞고, 응당 감독이라면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맞긴 한데.

진수성찬을 차린 건 내가 아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함께 차린 거지.

그중에서도 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현장을 이끈 감독의 몫과 영화의 환경을 모두 바꿔준 정아의 몫이 가장 컸다.

모두의 시선이 정아에게로 쏠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저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오빠 덕분이라도, 이 영화를 이끈 건 감독님이에요. 저요, 유진이가 만든 안무 익히느라 고생 많이 했거든요. 감독님이 자신감 갖고 만드셔야 돼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잘 안 뽑히면 망신인 거 알죠?”

테이블에 앉은 모두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감독에게 부담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퍼부어주고 있었다.

정아는 날 바라보며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앞길은 전부 오빠 몫이야.”

단단한 눈빛이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가요계로의 데뷔를 말하는 것이다.

유진이와 달리 정아의 데뷔 시기는 확정이 되진 않았다.

최적의 타이밍은 영화의 개봉과 겹치는 시기일 터이나, 그녀의 실력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본 다음에 데뷔 시기를 가늠하기로 했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이 더 흐르고.

난 정아에게 슬쩍 턱짓했다.

내가 먼저 밖으로 나오자, 정아가 따라 나왔다.

“왜?”

“데뷔하자고.”

“···?”

그녀에게 이 시나리오를 줬던 날 밤.

그녀는 나와 통화하며 말했었다.

“그거 개봉할 때에 맞춰서 데뷔하는 걸 목표로 잡아보자.”

-···확답은 안 하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건 나도 잘 알지. 그래도 실력이 얼마나 올라오느냐에 따라 좀 더 늦어질 수도 있어.”

-두고 봐. 개봉하기 전에 어떻게든 그 입에서 데뷔하자는 말 나오게 해줄 테니까.

난 큭큭, 웃으며 말했다.

“개봉하기 전에 데뷔하자는 말 나오게 한다며.”

“뭐야? 최근에 연습한 거 본 적도 없으면서.”

“최근은 아니더라도 그건 봤잖아. 유진이가 만든 안무 완벽하게 소화한 거. 노래는 이미 합격점을 넘었었는데, 댄스도 그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으면 충분해.”

“하! 그럼 이미 일본 가기 전에 결정했었다는 거야? 그걸 이제서야 말하는 거고?”

“네가 알아서 열심히 할 건 알았는데, 그래도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다는 건 너도 알잖아. 배우로서는 네가 베테랑이라도 가수로선 아니기도 하고.”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고, 볼에 홍조가 피었다.

술 때문에 빨개졌는지, 흥분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오빠가 그렇게 판단했으면 결과에 책임도 져야 하는 거 알지? 나 성공 못하면 진짜 개망신이야. 오빠도, 나도.”

“이미 진수성찬 차려져 있어서 실패할 자신이 없네. 그래도 GO엔터 놈들 비웃는 꼴 보기 싫으니까 영혼까지 갈아볼게. 네가 가수로 데뷔하는 건 나한테도 특별한 일이거든.”

정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치듯이 본 옆얼굴엔 입이 찢어질 듯 커다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회사에 작업실을 마련해 뒀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발매할 음원을 녹음할 정도의 여건은 되지 않아, 이곳은 그리 활용을 잘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이 얼마던가.

우린 작업실을 뜯어고쳤으며, 장비를 구입, 대여하며 웬만한 녹음 스튜디오 부럽지 않은 환경을 조성했다.

나는 장비를 점검하고 녹음을 준비하는 서연이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A&R팀의 전원이 자리하여 속닥속닥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9개의 곡이 모두 뽑힌 별이의 정규 앨범.

곡을 모으는 건 A&R팀이 응당 해야 할 본연의 업무이긴 하나, 이토록 좋은 곡들로 마련한 것은 오롯이 그들의 공이었다.

난 가사를 숙지하며 입술을 오물대고 있는 별이도 쳐다봤다.

정식으로 활동한 곡은 ‘So Happy’와 ‘Hang Out’뿐.

그 사이에, OST인 ‘나를 바라봐줘요’가 있었지만 ‘Hang Out’ 이후론 상당히 오랜만에 컴백이다.

그런데 트로트 ‘그렇다고 말해요’, 힙합 ‘Wall Flower’, 헤비 메탈 ‘Get It!’까지.

우리는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다.

활동은 최소화했으나, 피처링과 부캐라는 특성상 활동량 대비 효율은 무지막지했다.

덕분에 가뜩이나 많았던 팬들이 비약적으로 늘었으며, 김별이라는 이름이 차트에서 쉬는 기간이 잠시도 없었다.

이미 대중들의 스타로 단단히 자리매김한 별이.

원래 이 정규앨범으로 방점을 찍으려 했는데, 앨범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목표가 이뤄졌다.

그래서 이 앨범은 스타로서 내는 앨범이다. 목표나 다른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접어든 만큼, 그녀는 더욱 높고 두터운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다.

자타공인 슈퍼스타로서, 이제 대중들이 그녀에게 거는 기대치가 달라졌으니까.

“자! 준비 완료!”

서연이가 의자를 빙글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나와 별이를 바라봤다.

일본 활동을 끝내고 국내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서연이는 유진이의 데뷔곡을 만들기 위해 A&R팀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일은 잠시 접어두고, 그녀가 이 작업실의 헤드 프로듀서를 맡기로 했다.

별이의 정규 앨범을 여기까지 만드는 데에 서연이가 공헌한 바는 없으나, 녹음할 때의 메가폰은 그녀가 잡는 게 가장 믿음직스럽거든.

“구센세, 오늘 잘 부탁해요.”

“야!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별이의 입매가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사지를 손에 쥔 채 부스 안으로 들어가 헤드셋을 썼다.

스타로서 내는 별이의 첫 번째 정규앨범.

다음 단계로 접어든 우리가 이번 앨범을 통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자타공인 슈퍼스타로서, 우리에게 거는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앞엔 여러 갈래로 뻗은 길이 나타날 것이다.

국내 시장이 대로(大路) 같이 안전하고 잘 닦인 채 나타날 수도 있고, 곳곳에 지뢰와 가시넝쿨이 교묘하게 숨겨진 채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해외로 향하는 광활한 활주로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

당장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진수성찬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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