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74화 (74/124)

< 락 페스티벌의 대왕땜빵 >

팔짱을 낀 채, 턱을 빳빳이 들며 나를 내려다본다.

한껏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이 얄밉게 보이지 않았다.

“다 만들었다고? 벌써?”

“거의 다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하루 만에?”

그 일이 있었던 게 어제였는데, 바로 다음날인 오늘 그녀는 곡을 들고 왔다.

‘거의’ 다 만들었다고 말한 게 완성 직전을 말하는 건 줄은 몰랐지.

저 표정을 보니 대충 만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조건반사였다. 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내게로 향하면, 내 가슴은 스멀스멀 기대감을 피워올렸다.

“장르는 뭐야?”

일본 노래를 많이 들었으니 일본의 현재 트렌드를 반영했을까?

“그냥 펑크 느낌 나는 팝으로 했어요. 그게 호시노 씨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일본 트렌드는 반영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어련히 잘 만들었겠지.

“별이 ‘Hang Out’ 같은 노래야?”

“그것도 펑크 팝이긴 한데, 이건 그거랑은 좀 달라요.”

“음.”

백문이 불여일견.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는 특히나 더 했다.

이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 그냥 들어보는 게 낫지.

난 그녀가 건네주는 이어폰을 바로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녹음 파일의 음질이 좋지 않다.

녹음실에서 녹음한 게 아니라,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 부르는 소리를 핸드폰으로 녹음했기 때문이다.

귀에는 기타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 그리고 목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천재한테는 이런 환경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나 보다.

유진이가 무반주 몸풀기로 촬영장을 침묵시킨 것처럼, 서연이 또한 어디서든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난 음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을 떠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신감 넘치던 눈빛은 사라지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내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이거 우리가 해도 되지 않나?’

호시노에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서연이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순순히 넘겨주기에는 좀 아까운 퀄리티다.

하지만 서연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걸 만들었을 지 생각해보면.

얘는 자기가 하기보단 호시노가 하는 걸 더 좋아하겠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주는 게 내 역할일 것이다.

노래가 다 끝났을 때에는 생각이 모두 정리된 뒤였다.

허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기 위해 물었다.

“서연아, 이 곡은 네가 하고 호시노한테는 다른 곡을 주는 건 어떨 것 같아?”

“노래 좋나 봐요?”

조마조마했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내가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자, 그녀는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전 이거 주고 싶어요.”

그렇겠지. 가수 겸 작곡가가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현실적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그냥 자신이 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가 하는 게 맞겠다는 느낌만으로 곡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듣기엔, 작곡가가 직접 녹음한 가이드 버전을 더 좋게 들었다 하더라도.

난 굳이 서연이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가 언제나 내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주듯, 나 또한 서연이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지.

“이대로 한 번 보내볼게. 이거 좋다고 하면 그쪽 작업실도 빌려서 녹음부터 다시 하자.”

“네!”

서연이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호시노가 소속 가수로 있는 ‘GO1’의 사무실.

회의실도 없는 이 좁은 사무실에서, 나와 서연이는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옛날 생각 나네요.’

‘그러게.’

호시노는 우리 맞은편에 앉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고, 기무라는 손수 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 앞에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은 뒤에야, 자신과 호시노의 앞에도 차를 내려놓았다.

기무라 역시 눈시울이 빨간 상태였다.

그는 차를 입에도 대지 않고선 입을 열었다.

“정말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이렇게 좋은 곡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녹음도 제대로 안 됐어요.”

“아닙니다. 그럼에도 좋은 곡이란 건 명백해요.”

그건 그렇지. 나도 그냥 겸손을 떤 거였다.

우리는 계약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녹음실은 저쪽에서 구하겠다고 하고, 곡비도 우리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맞췄으며, 디렉팅도 우리가 하되 우리 스케줄에 모든 걸 맞추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호시노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묵묵히 이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녀를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진 실력도 좋긴 한데, 비주얼 또한 그 못지않게 뛰어났다.

이대로 망하게 두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

서연이의 언급이 있고 나서, 일본의 네티즌들이 다시 그녀를 주목하는 이유 중엔 이 비주얼도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만큼 도움을 받아놓고 염치가 없지만, 혹시 곡이 완성되면 컨셉에 대해서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요?”

기무라 사장이 물었다.

사실 나도 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 고민했는데, 다행히 가려운 데를 저쪽에서 먼저 긁어주었다.

호시노가 실패한 원인은 곡도 곡인데 난해한 컨셉도 한 몫 단단히 했으니까.

난 가수가 누구든, 서연이가 만들어낸 곡을 망치게 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설령 그 대상이 레모네이드라 하더라도, 나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레모네이드한테 곡을 줄 리는 없지만.

“예, 그럼요. 곡이 완성되면 다시 말씀 나누시죠.”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평범하게 진행시키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도 잘 뽑혔겠다, 컨셉도 내가 조언을 하기로 했고, 호시노도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데다가 비주얼 또한 좋았으니.

이것도 사업가로서의 영감이라면 영감이려나?

축적된 경험에서 비롯된 간단한 응용이었다.

난 머릿속에서 뚜렷하게 구체화된 그림을 말로써 풀어냈다.

“저 그런데···.”

“예.”

“이걸 SNS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건 어떨까요?”

기무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연한 소리를 심상치 않게 하고 있으니,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난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홍보하자고요. 우리의 제작과정을 전부 다요.”

“···?”

“여건들이 다 좋게 마련됐으니까 아마 대중들의 기대를 높여도 실망은 없을 겁니다. 지금 이 첫 미팅도 사진으로 찍고, 곡의 뼈대가 완성됐다는 것도 설명하는 거죠. 이 어쿠스틱 버전도 몇 초로 잘라서 티저로 풀고, 녹음실에서 곡을 완성하는 모습도 올리고, 호시노 씨가 연습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찍고···.”

내 설명이 이어질수록 서연이, 호시노, 기무라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체계화된 국내 시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창의성이 좀 더 발휘되는 느낌이었다.

왠지 일본에선 이런 홍보도 잘 먹힐 것 같단 말이지?

“···좋은데요? 사장님, 전 이거 동의요.”

“저도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하죠.”

서연이와 기무라가 말했다.

이건 아마 Win-Win이 될 것이다.

우린 일본 가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며 일본 대중들의 호감도를 높이고 실력까지 어필할 수 있다.

그리고 호시노는 우리의 명성에 숟가락을 얹으며 화제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우리는 입을 내내 다물고 있던 호시노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녀는 서연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술을 모았다.

그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 좋아요.”

울먹거리는 목소리.

결국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시일이 조금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이 홍보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나날이 높아지는 화제성에 비례하여 스케줄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건 시작이겠지.

“호시노 씨와의 작업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글쎄요. 아마 오늘 안에 곡은 다 완성될 것 같아요. 이 스케줄 끝나면 바로 작업실 갈 생각이거든요.”

“오! 역시 구서연 센세(선생님)는 뭔가 다르군요!”

“···.”

아침 방송에 짧게 나가는 인터뷰 컷.

촬영을 끝내고 작업실로 가는 길에, 서연이는 미간을 좁히며 투덜거렸다.

“센세가 뭐야 진짜!”

“하하. 왜 좋잖아. 그거 다 네가 만든 거야. 그러게 누가 컨셉을 그렇게 잡으래?”

“별이 컨텐츠랑 이거랑 이으면 안 되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데!”

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일본 네티즌들은 별이의 컨텐츠를 기반으로 하여, 서연이의 별명을 만들어냈다.

센세. 그녀의 귀여운 외모와 상반되는 느낌에서 오는 귀여움이 있긴 한데, 그녀가 불만을 가진 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녀에게 센세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방금 전에도 중년의 아저씨에게 센세라고 불렸다. 느낌이 묘하겠지.

“이미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아? 친근한 별명 하나 얻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건 좋긴 한데···. 하아. 이걸 좋아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좋아해야지, 당연히.”

단점은 그녀가 가끔 떨떠름할 때가 있다는 것뿐인데.

장점은 수도 없이 많다.

실력이 좋다는 이미지가 아예 전제로 깔리게 됐으며,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었고, 친근감과 호감도는 나날이 상승하는 추세였다.

사실 이는 호시노와 서연이의 매력 덕분이기도 했다.

비슷한 또래의 심성이 착한 미소녀들이 스승과 제자라면 보는 재미가 얼마나 크겠나.

사진만으로도 그 케미가 어필이 될 정도였으니, 곡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힐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이러다 진짜 초대박 나는 거 아냐?’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

“쓰읍. 오늘은 좀 별론데?”

“락펜데 왜 안 신나냐.”

“락페도 이제 망했네.”

락 페스티벌에 온 관객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맨날 듣던 거 또 듣고, 보던 거 또 보는데, 심지어 최상위권의 몇 밴드는 라인업에 오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신곡을 낸 밴드, 혹은 신인 밴드들의 앞선 라이브들은 모두 다 엉망진창이었다.

이러니 실망이 클 수밖에.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진성 락 팬인 최진혁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믿을 건 김별뿐인가?’

김별이 가진 곡 중에 락은 단 한 곡뿐이었다.

제목은 ‘Get It!’.

락 페스티벌에 초청받기에 그녀의 이름값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오히려 헤드 라이너로 이름을 올려도 될 지경이다.

헤드 라이너의 기준은 관객 동원력.

락 페스티벌이라고 하여 가수들이 전부 밴드만 있는 게 아니기도 하니, 그녀의 곡 중에 락은 단 한 곡일지언정 헤드 라이너로서 손색은 없었다.

하지만 락 음원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라인업이 다 정해진 마당에 헤드 라이너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지금 이렇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이미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던 밴드가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를 테면 땜빵.

신인인 김별에게는 오히려 부담을 덜게 되어 좋은 일이겠지.

최진혁은 물론이고, 다른 관객들 역시 다음 순서인 김별에게 기대감을 모았다.

어느 순간부터 냈다 하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괴물 신인이자, 현재도 차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주인공.

가수는 물론이고 작곡가와 이를 녹음한 밴드도 믿을 수 있는 이들이었으니, 기대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비록 밴드의 멤버들은 여기에 오지 않겠지만 무대는 그들이 연주한 그대로 재현되겠지.

악기들이 다시 세팅되고, 세션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이제 나오려나 보다!”

“와. 락페에서 김별을 보네. 하하. 잘하겠지?”

“김별인데 당연히 잘하지.”

락 팬들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대중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김별이라는 가수의 실력은 누가 뭐라 해도 최고였으니.

잠시 후.

최진혁을 비롯해 수많은 관객들이 전부 목놓아 소리를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

김별, 그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처음 드는 생각은 무대에 관한 기대감보다는 외모와 분위기에 대한 것.

무표정의 날카로운 외모와, 등장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가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다.

아직 함성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가운데.

이미 백 번 이상 들은 그녀의 락, ‘Get It!’의 전주가 관객들 위로 우렁차게 퍼졌다.

지금까지의 지루함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전주.

이는 필시 김별이라는 명성 높은 괴물 신인에게서 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분명 신인이건만, 무뚝뚝한 얼굴로 여유롭게 리듬을 타는 김별.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락커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고.

첫 번째 소절이 다 끝나기도 전에, 최진혁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번개가 관통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

10대 때부터 락에 심장이 뛰게 만들었던 외국의 락 슈퍼스타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데뷔를 지켜본 관객들이 이러했을까?

머리가 하얘지고, 몸은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할 수 있는 건, 저 대단한 가수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는 것뿐.

“우와아아아─!”

목이 다 쉬어도 괜찮다. 성대가 상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김별의 헤비 메탈은 관객들에게 청춘을 되돌려줬다.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게, 마치 청소년기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락 페스티벌의 대왕땜빵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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