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73화 (73/124)

< 말하려는데 사장님이 자꾸 막았잖아요! >

스케줄을 갈 때에는 작게 흥얼거리며 핸드폰으로 뭘 계속 적더니.

스케줄이 끝나고 쉴 때면 서연이의 손에는 언제나 기타가 들려 있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

기타를 치며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듣기 좋게 귀에 스며들고 있다.

잘 풀리고 있는 건지 아닌지, 그녀는 가끔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눈동자에 이채를 띠기도 하며, 간간이 미소를 짓기도 했다.

마치 자신에 관하여 바깥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터럭만큼도 관심 없다는 듯이.

“서연아. 지금 인터넷이 네 얘기로 난린데 뭐라고 하는지는 안 궁금해?”

“방해하지 마요. 작곡 중이잖아요. 제 말에 책임을 지라면서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한다. 자신이 삐졌다는 걸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난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책임지라고는 안 했거든?”

그제야 기타 소리가 멈춘다.

“그게 그거죠! 제가 죽을 죄를 지었으니까 제가 해결하는 거잖아요!”

“아니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어.”

“됐거든요?”

잠시 침묵한 뒤, 그녀는 눈으로는 날 노려보면서도 툭 튀어나온 입으로 슬그머니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는데요?”

바로 어제, 서연이가 출연한 토크쇼가 방송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이 제대로 터졌다.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라 할 수 있겠지.

화제가 안 됐으면 진짜 억울할 뻔했다.

“네 덕분에 호시노 하즈키에 대한 반응도 많아. 듣고 보니 곡에 실력이 가려진 것 같다, 보석 같은 가수를 찾아줘서 고맙다고도 하고-”

그녀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발굴한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

“네 실력이 믿기지 않는대. 겉모습은 엄청 귀여운데 반전 매력이라고 되게 좋아하고. 음색도 너무 예쁘다고도 하고.”

“그리고요?”

“무대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대. 방송 보고 깜짝 놀라서 찾아봤는데 이 가수를 이제라도 알게 돼서 너무 다행이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난 그 표정을 똑바로 눈에 담아내다가 덧붙였다.

“너랑 호시노 하즈키가 같이 작업한 곡 빨리 봤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엄청 많고.”

“···.”

날 노려보는 눈빛이 뜨거웠다.

그녀는 다시 표정을 굳히고는 기타를 성질 부리듯이 튕겼다.

여기에 엉망진창의 멜로디와 가사까지 붙였다.

“내~ 말에~ 책임을 진다고~ 그렇게~ 그렇게 말했는데~ 작곡하는 중에도~ 굳이 굳이 방해를 해서는~ 아주 그냥~”

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웃음보가 터지면 뭘 웃냐며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아서.

***

“정말 엄청나다니까! 다른 K팝을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국에서 끝내주는 메탈이 나왔어! 너 메탈 엄청 좋아하잖아.”

영국 북런던의 평범한 펍.

제임스는 열변을 토하는 올리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올리버, 알았어. 이따 들어본다고 했잖아. 이따 들어본다는데 왜 자꾸 말하는 거야?”

“네가 안 들어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멍청아. 그리고 토트넘 수비수 바꿔야 한다는 얘기만 내가 몇천 번을 들었는지 알아?”

“그건 사실이니까.”

“아니? 그냥 토트넘이 구릴 뿐이지.”

“뭐, 이자식아?”

“이것도 사실이야.”

“이 개자식이!”

둘은 또 한참을 축구 얘기로 떠들었다.

서로 응원하는 구단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에는 더욱 열기가 넘쳤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 보니 이야기가 거칠어졌고, 이대로 가면 정말 주먹다짐을 할 것 같아 임시 휴전을 하기로 했다.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휴전의 판단도 빨랐다.

“···.”

“···.”

그런데 축구 얘기를 빼니 또 할 얘기가 없다.

그래서 제임스는 올리버에게 말했다.

“할 것도 없는데 그거나 들어보자.”

“···! 그래, 너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한국의 락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난 한국 무시한 적 없거든? 네 멋대로 인종차별자로 만들지 마.”

“누가 인종차별이랬냐? 영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크게 성공한 밴드가 없으니까 그거에 대해 말한 거지!”

“알았으니까, 곡이나 들려줘 봐.”

올리버가 김별의 팬이 된 계기는 구서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올리버는 우연히 커뮤니티에서 구서연의 ‘AMAM’ 무대를 보게 됐는데.

이 무대를 시작으로 구서연이 만든 다른 곡들을 들어보다가 자연스럽게 김별의 팬이 된 거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녀의 헤비 메탈 컨텐츠의 3회가 올라오며 음원과 뮤비가 동시에 풀렸다.

올리버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찾고, 이어폰을 꽂으며 빠르게 말했다.

“사실 얘 다른 곡들도 들어봐야 하고, 즉흥연주도 봐야 하거든? 미쳤다고. 내가 요즘 제일 푹 빠진 가수야. 아마 너도 좋아할 거야. 이건 메탈을 좋아하면 안 좋아할 수가 없는 음악이거든.”

“네가 푹 빠진 건 더 말 안 해도 알아. 그러니까 닥치고 음악이나 틀어.”

“알았어.”

올리버가 이어폰을 건넸고, 제임스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진 핸드폰에 뮤직 비디오가 틀어졌다.

제임스가 눈을 휘둥그레 뜬 것은 음악이 시작된 그 즉시였다.

도입부부터 귀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소리가 쏟아진다.

자극이 되는 건 귀뿐만이 아니었다.

“···!”

다른 K팝과는 달리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은 뮤직 비디오.

장르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시작 부분이라서 그런 걸까?

뮤비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썰렁하거나 허전해 보이지 않는다.

뮤비의 주인공 때문에. 그녀는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질 만한 비주얼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마침내 보컬이 흘러나왔을 때.

제임스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뮤비가 틀어진 핸드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온몸을 찌르르 울리는 전율을 몇 번이나 느낀 뒤에야 뮤비가 끝났고.

제임스는 경악이 가득 담긴 시선을 그대로 올려, 올리버를 쳐다봤다.

올리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어때.”

“···한 번 더 보자.”

“안 돼. 다른 거 먼저 봐.”

뭐라 말하려던 제임스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았으니까.

올리버는 그 뒤로도 짤막한 설명을 덧붙이며 여러 가지를 틀어줬고.

제임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영상을 시청했다.

“다 좋긴 한데, 역시 난 헤비 메탈이 제일 좋았어.”

“그럴 것 같더라. 그 다음은?”

“’그렇다고 말해요’.”

올리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트로트 곡, ‘그렇다고 말해요’.

제임스와 올리버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김별의 곡이었다.

***

늦은 밤. 스케줄을 끝내고 호텔에 돌아와 별이의 모니터링을 막 시작하려 할 때.

별이에게서 톡이 왔다.

[사장님 혹시 주무세요?]

난 답장을 하는 대신 바로 통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이 채 울리기도 전에 바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주무세요?

집에 있는지 조곤조곤 속닥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응. 스케줄 끝내고 와서 이제 모니터링 좀 하려고.”

-무슨 모니터링이요?

“뭐겠어. 당연히 네 음악이지.”

2회의 즉흥연주부터 대중들의 관심이 들불처럼 크게 번졌다.

즉흥연주를 음원으로 내지 않았기 때문인지, 음악을 몇 번이고 들으러 온 사람들 덕에 영상의 조회수는 더욱더 높아졌다.

이렇듯, 3회가 나오기 전에도 화제는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난 일단 눈에 들어온 것부터 말했다.

“···1위했네? 그것도 공개하자마자 진입 1위.”

-네.

목소리에서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부여잡고 있을 별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그려졌다.

난 피식 웃으며 모니터링을 계속 이어갔다.

“해외에서도 인기 엄청 많고···.”

-네. 감사하게도요.

“와! 뮤비 조회수가 왜 이래!”

-왜요?

다 알면서 왜냐고 물어본다.

이전에도 그녀가 내게 뻔뻔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콩트를 하더니 그 실력이 더 늘었다. 꼭 내가 웃을 걸 알고 있으면서 저렇게 왜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뮤비 조회수가 너무 충격적이라서.

“600만? 이게···.”

-그래요?

자랑하고 싶어서 얼마나 혼났을까.

그제야 내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2회의 즉흥연주가 도화선이 되어 빵 터진 모양새.

이 어마어마한 조회수는 국내팬들만으로는 불가능한 숫자다.

이는 세계에 퍼진 별이의 팬들과 락 팬들 덕분일 터. 얼마 길지도 않는 기간 동안 해외 팬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었다.

“어이가 없네. 이렇게까지 잘나갈 줄이야.”

문득 회의감이 든다.

“우리 정규 앨범 왜 준비하고 있지?”

-하하.

“스케일이 너무 커졌어. 원래 가볍게 준비한 거였는데.”

-싫어요?

“싫기는. 너무 좋지.”

좋아 죽을 것 같다.

팬들이 좋아 죽으려 하는 반응을 보며 내 입꼬리도 한계를 모르고 귀 밑까지 찢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스케일이 너무 커졌다.

정규 앨범에 대한 부담감 또한 한층 더 커진 가운데, 다음 컨텐츠에 대한 부담은 더욱더 커졌다.

“이거 완전 국민 컨텐츠 되겠네. 우리 다음은 어떡하지?”

-다음도 있어요?

정규 앨범을 애타게 기다리는 팬들에게 팬 서비스하는 차원에서 트로트를 낸 거였고.

김성혁이 헤비 메탈을 가져와서, 마침 우리가 갖고 있던 부캐를 이용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컨텐츠를 위해 우리가 직접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녀야 할 판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몰랐지.

“원래 다음은 없었는데, 이제 다음이 생겼어. 이 컨텐츠 이걸 마지막으로 접으면, 나 세계에 퍼진 600만 명한테 죽을지도 몰라.”

그녀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정대로 이번 곡으로도 활동은 안 하는 거죠?

“계획은 언제나 바뀌는 거야. 이 정도면··· 해야지. 이건 무조건 해야 돼.”

-아, 그래요?

“응. 괜찮지?”

-네, 전 좋아요.

이미 1회와 2회를 공개하며 광고가 쌓였는데, 내일이면 이보다 배는 더 몰려올 게 뻔했다.

-그런데 무슨 활동하면 좋을까요? 음방에도 나가요?

“아니, 음방은 안 나가고, 예능이나 공연 위주로 하자. 자세한 건, 내일 회의해보고 결정해야지.”

-입국하는 거예요?

별이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커졌다.

“아니, 이 정도는 화상회의로 해도 돼. 여기서 서연이 반응도 터지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거든.”

-아···. 알겠어요.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게요.

난 별이와 한 시간여를 더 통화했다.

모니터링을 하면 할수록 흥분이 가시질 않아서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

필요할 때마다 회의를 거치긴 하나, 별이에 대한 건 국내에 있는 직원들에게 대부분을 맡기고.

난 거의 서연이에게만 집중을 쏟았다.

토크쇼에서 터진 화제를 이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조금도 없는 상황이다.

오늘도 방송국에 와서 녹화를 끝내고 나가려는데.

일면식도 없는 아저씨가 우리 앞을 막아서더니, 내게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무라 아키라입니다.”

그의 옆에 있던 이는 통역사인 듯 한국어로 우리에게 통역해주었다.

이 정도는 굳이 통역이 없어도 괜찮긴 했지만.

그가 두 손으로 건넨 명함에 적힌 회사의 이름을 보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난 살짝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호시노 하즈키를 키우고 있습니다.”

입은 애써 웃고 있는데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그가 여기에서 날 만난 건 우연일까? 절대 그렇지 않을 거다.

날 찾아온 이유 역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예, 반갑습니다. WE엔터의 김유민입니다."

서연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염치는 없지만 결례가 안 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먼저, 호시노는 제가 사장님을 만나러 온 줄 모른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여나 불쾌하다면 자기만 미워하라는 뜻이다.

극도의 저자세. 문화적인 차이일 수도 있으나, 난 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별이가 뜨지 못했더라면 나도 저랬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해한다고 하여 우리가 희생까지 하며 도울 필요는 없다.

이렇게 방송에서 언급하여 화제의 일부를 얻은 것만으로도 도움은 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간은 내어드릴 수 있지만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사장님-"

난 서연이가 부르는 것도 무시하며 덧붙였다.

"저희도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요. 나중에 좋은 기회에 다시 뵙게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연이가 곡을 만들고 있긴 한데, 이걸 밝히면 우리의 입장만 곤란해진다.

만약 곡을 만들지 못하면? 설령 만들었다 해도, 나중에 우리가 더욱 바빠져서 시간을 내기가 아까워진다면? 일본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와서야 완성했다면?

애초에 약속은 하지도 않을 테지만, 구태여 말을 꺼낼 필요 또한 없지.

난 서연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장님!"

"가만히 있어."

서연이가 날 노려보았지만 난 외려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꾸짖었다.

내가 악역을 해야지, 딱하다고 다 들어주다간 한도 끝도 없다.

기무라는 터덜터덜, 느릿느릿 떠나갔다.

심지어 저 모습조차 필요에 의한 연기일 수도 있다.

서연이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다.

서연이는 내가 엄한 표정을 지었는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다투면 좋지 않다.

일단 그녀를 차로 데려가서 일장연설을 해줘야-

"저 곡 거의 다 썼다고요!"

"뭐...?"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거의 다 썼다면 얘기가 또 다르긴 했다.

"진짜? 그걸 왜 이제 말해?"

"말하려는데 사장님이 자꾸 막았잖아요!"

"...."

그건 그렇지.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통역사가 우릴 바라보며 기무라의 귀에 대고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홱! 몸을 돌린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미관상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 말하려는데 사장님이 자꾸 막았잖아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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