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 만들면 될 거 아니에요 >
서연이의 라디오 스케줄.
역시나, 대본에는 일본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 아티스트가 있냐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것처럼 일본에서도 ‘두유노’는 빠질 수 없지.
난 부스 바깥에 선 채, 부스 안에 있는 서연이를 바라봤다.
통역사와 함께 하는 라디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할 지 모르나, 일본에서는 생소하지 않았다.
“여러분, 오늘은 매우 매우 특별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분은 한국에서 올해 데뷔한 신인 가수인데요. 낸 곡은 단 두 개인데, 벌써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어요. 기타도 엄청나게 잘 치고, 노래랑 댄스도 잘하고, 작곡도 잘하는데, 비주얼은 무지하게 귀엽네요. 바로··· 구서연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구서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서연이와 진행자는 인사를 하며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했으나, 그건 어쩔 수 없지.
차근차근 일본어를 공부할 수밖에.
초반엔 당연히 서연이의 소개로 시작됐는데, 이룬 것들이 신인답지 않게 엄청난 데다가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어서 말할 게 많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질문이 나왔다.
“서연 씨는 일본에서 관심 있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서연이는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엑스 재팬과 히게 단디즘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아티스트들이 튀어나왔다.
호시노 하즈키 또한 빠지지 않았고.
“···! 대단해! 잠깐만! 잠깐! 잠깐! 와! 저도 잘 모르는 분들도 있는데요!? 역시 천재 작곡가는 다르네요. 일본 음악에 관심이 많으세요?”
불과 얼마 전에 콩트를 하고 와서 그런지.
그녀의 입에서는 거짓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예!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가수인데요. 엑스 재팬을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서-“
사실 난 처음 그녀에게 일본 연예계에 관해서 유명한 것들만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녀는 아예 가요계를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이 되었다.
다른 걸 모르면 어때, 깊게 알면 더 좋지.
그녀의 대답에 내가 있는 부스 바깥까지 술렁거렸다.
다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서연이의 대답이 매우 흡족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 네티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이 끝난 다음 날.
토크쇼의 대기실에서, 우리는 서연이의 대답이 일본에서 가볍게 화제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서도 그렇지만, 피디가 찾아와서 이런 제안까지 했거든.
“이따가 기타 연주할 때, 혹시 일본 노래도 하나 추가로 연주해줄 수 있을까요?”
서연이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노래를 따라부르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일본어가 잘 안 돼서 가사도 숙지가 안 돼서요.”
“그건 괜찮습니다. 연주만 해주셔도 충분해요.”
피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대기실에서 나가자, 나는 서연이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 연주할 거야? 악보는 숙지됐어?”
서연이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좋아하는 음악 연주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쨌든 연주하려면 악보를 숙지해야 할 거 아냐.”
“몇 번 들었죠.”
“···.”
아, 몇 번 들으면 숙지가 되는구나.
이렇게 갑자기 연주를 요청해도 바로 툭 튀어나올 만큼.
“연습은?”
“어쩔 수 없죠. 어차피 그렇게 어려운 건 안 칠 거라서요.”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잘하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서연인데.
이건 연기에서의 정아와 같고, 댄스에서의 유진이와 같으며, 노래에서의 별이와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작곡과 기타 연주에서는 서연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이 프로그램 조금 빡세네요?”
“응. 아주 뽕을 뽑으려고 작정을 했어. 그래도 우리한텐 좋아. 어필하기에 딱 좋잖아.”
“음. 우리 녹화 끝나면 뭐 먹을까요?”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튀었지만, 이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물음일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요구한 게 많지만 그걸 다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거지.
조금 힘들긴 할 지언정 서연이에게 있어 곤란한 요구는 아니었다.
녹화는 곧 시작됐고, 서연이와 진행자는 간단하게 소개 인사를 나눈 뒤 바로 댄스 무대부터 시작했다.
데뷔곡, ‘Escape’.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100% 라이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프로그램 역시 그랬다.
보컬이 깨끗하게 지워진 반주.
그녀는 춤을 추면서 순수 생라이브를 해야만 했는데.
“깔끔하네, 아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굴욕이 전혀 없는 무대. 서연이는 100% 라이브라는 것에 긴장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연습하던 그대로 무대를 선보였다.
“오오! 실력이 엄청나네요!”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는 진행자와, 고개를 주억거리는 스탭들.
허나 어필은 이게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지.
그녀는 연이어 다른 무대를 보였다.
이번엔 어쿠스틱 곡이자, 서연이의 두 번째 싱글, ‘우리’.
“오오오! 엄청납니다! 이런 분위기의 노래도 매우 훌륭하네요!”
반응이 격렬해진 진행자와, 부드러운 미소로 감탄을 표하는 스탭들.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통기타 대신 일렉 기타를 들었다.
새하얀 바디의 잘 빠진 기타. ‘AMAM’에서 들었던 기타와 같은 기타였다.
서연은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무대를 본 모두를 놀라게 했던 도입부 기타 솔로 파트.
한창 주목을 받고 있던 서연이를 한 단계 더 높은 급으로 이끌었던 현장의 분위기가 이곳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편하게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가히 경악스러운 연주.
스탭들의 입은 떡 벌어져, 팔뚝을 쓸었고.
진행자는 이렇게 수준 높은 연주를 기대하진 않았었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침을 꼴깍 삼켰다.
“···허.”
흡사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서연이를 쳐다본다.
제작진들 중 일부는 서연이를 조사하느라 이런 실력을 가졌음을 잘 알았지만, 진행자는 그저 ‘기타를 잘 친다’는 정도만 숙지하고 있었을 테니.
진행자는 요동치는 눈동자로 서연이에게 물었다.
“일본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많으시다고···.”
“예.”
라디오에서 말했던 것과 똑같이, 서연이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 아티스트의 이름을 쭉 나열했다.
“혹시 한 곡만 간단하게 쳐줄 수 있을까요?”
진행자의 태도가 갑자기 공손해져서 웃음이 나왔다.
아마 시청자들도 여기서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 진행자처럼 정신이 없는 상태이거나.
“연습해본 적은 없지만 한 번 해볼게요. 엑스 재팬의 곡이에요.”
이번에도 완벽히 연주했으나, 방금 전의 그 연주에는 미치지 못했다.
곡의 난이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일 터.
하지만 방금 전에 신들린 듯한 연주를 봤었기 때문인지, 그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곡을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격이 높은 예술을 감상하는 듯한 태도로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그냥 엑스 재팬의 곡 자체가 좋아서 추억과 감상에 잠겨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한바탕 몰아치듯이 여러 무대들이 끝나고.
그들은 그제서야 다시 차분히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작곡한 곡들이 한국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히트했다는데··· 사실이겠네요. 솔직히 작곡한 곡들을 다 들어보진 못했지만 안 좋은 게 없을 것 같아요. 처음에 보여준 그 두 곡도 모두 직접 만드신 거죠? 혼자서요?”
“데뷔곡은 저기 계신 우리 사장님이 예전에 만들었던 곡을 제가 재편곡한 거예요. 그 외 나머지는 저 혼자 만들었고요.”
서연이의 손가락을 따라, 카메라가 나를 향했다.
난 이미 일본에서 방송으로 이런 식으로 얼굴이 나온 게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일본 데뷔는 아니었다.
‘컴백이지.’
녹화는 길게 이어졌다.
새로운 질문들도 하고, 대본에 적혀 있던 질문들 중 일부를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인데.
내가 보기엔 순전히 MC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질문을 파고든 것 같았다.
서연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팬미팅에서의 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이런 반응이 나오려나?
모두가 다 팬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서연이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팬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력자라는 건 인정할 수 있게.
“서연 씨, 일본의 아티스트들을 많이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대본에는 없던 질문.
서연이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그녀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난 찰나간 고민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님 말고.
서연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MC에게 말했다.
“호시노 하즈키 씨요. 꼭 한 번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사장님도 허락하셨고요.”
“···어?”
내가?
***
김별의 헤비 메탈 컨텐츠가 드디어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건 1회.
아직 음악은 나오지 않았는데도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어제 방송된 ‘일도 잘하는 밴드’에서 우리가 어떻게 헤비 메탈을 하게 된 건지, 그 경위가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최근에 냈던 김송송송의 트로트가 대성공을 거둔 덕분이기도 했다.
난 인터넷의 반응을 살피며 피식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즉흥연주가 있던 2편이 공개가 되면 어떤 반응일까?
그리고 3편인 뮤비까지 공개되면 어떤 반응일까?
팬들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하하하! 진짜 재밌다. 사장님, 편집 대박이에요. 반응도 엄청 좋은데요?”
영상을 본 서연이가 말했다.
방금 전까지 난 웃고 있었는데 서연이를 보니까 다시 한숨이 나왔다.
“너 왜 그렇게 말했어. 꼭 하고 싶다고, 내가 허락했다고 말하면 어떡해.”
“···그냥 정말 말 그대로 꼭 하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순수하게.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능력 어필 제대로 한 다음에 꼭 작업하고 싶다고 말해버리면 사람들이 기대를 할까, 안 할까.”
그녀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알았다니까요. 몇 번을 말하는 거예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구태성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나날이 깊어져만 간다.
얼마나 고되셨을까···.
아직 토크쇼가 방송이 되진 않았으나,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자, 그녀는 씩씩거리며 외쳤다.
“노래 만들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럼 됐죠?”
“야. 그게 말이 쉽지. 좋은 음악이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게···. 음···.”
그녀는 두고 보라는 티를 팍팍 내며 내 방을 나섰다.
좋은 음악이 그리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밖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 느낌은 뭐지?’
그녀라면 왠지 뚝딱 만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거는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명곡을 뚝딱뚝딱 만들어왔으니까.
“···.”
난 그녀가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노래 만들면 될 거 아니에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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