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모습을 잃지 말라는 말의 의미 >
‘헤비 메탈?’
요란한 전주에 깜짝 놀랐으나, 그래도 귀는 열려 있는 상태.
음악은 벙찐 정신을 비집고 귀에 들어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김성혁의 표정이 진지했기에, 다들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나처럼 어리둥절한 와중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도 음악마다 분위기와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같은 앨범 내에서도 다소 얌전하다고 느껴질 만한 곡들도 있고, 한 곡 내에서도 구성에 따라 일부분만 헤비 메탈의 특색을 띤 곡들도 있다.
‘···이것도 초반부만 이럴 수도 있어.’
아니었다.
끝까지 사나이의 기상을 잃지 않는 곡이었다.
“···.”
“···.”
“···.”
곡이 끝나고 다들 말이 없는 가운데, 별이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별이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를 따라 다른 사람들은 물론 카메라들 중 일부도 나를 향했다.
“오빠, 어때요?”
내가 여기서 덜컥 좋다고 말해버리면 별이의 의견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결정을 보류하기 위해 말을 고르려는데, 이런 고민이 별이의 눈에 보였는지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저는 곡은 좋은 것 같아요. 오빠는 어떻게 들었어요?”
“나도 곡 자체는 좋아.”
곡이 정말로 좋다. 그녀가 이렇게 말할 만큼, 곡만 따지자면 정말 훌륭하게 잘 뽑혔지.
단조롭지도 않고, 멜로디도 난해하긴커녕 대중적으로 자극적이었으며, 질리는 구간 없게 매력적으로 뽑힌 구성 역시 눈에 띄었다.
대중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데, 헤비 메탈이라고 해서 꽥꽥 소리만 지르는 장르는 아니다.
락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잔잔한 곡이라고 알려진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역시 후반부는 헤비 메탈로 분류된다. 꽥꽥 지르는 걸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이 노래는 후반부까지도 부드럽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은가.
이 곡 또한 반주는 누가 들어도 헤비 메탈이었으나, 보컬의 멜로디는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곡이었다.
별이에게 영감을 받고 만들었다는 게 거짓이 아니라는 거다.
김성혁은 나와 별이의 짧은 대화를 두고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곡은 좋은 것 같다’, ‘곡 자체는 좋다’라는 말이 아주 긍정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무래도 별이한텐 안 어울리겠죠?”
“아뇨. 별이를 보고 만들었다면서요. 정말 그런 것 같더라고요. 별이가 부르면 엄청 잘 어울릴 거예요.”
“그럼···.”
“그런데 별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가수가 떠올라서요. 그분한테 추천해 주시면 좋을 듯한데.”
난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별이를 바라봤다.
별이와 서연이는 내 말을 이해한 듯, 나를 따라 미소 지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별이는 목을 가다듬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김송송송입니다.”
“···!”
곡이 좋기도 하고, 별이에게 잘 어울리기도 하고.
이걸 별이가 부르는 걸 상상해보면,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트로트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 곡으로 별이가 정식으로 활동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게다가 별이가 갑자기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를 들고 오면, 락을 쉽게 보냐는 둥 평소에 락에 관심도 없던 이들도 쏟아져 나와 날 선 말을 내뱉을 것이다.
진짜 락 팬들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김송송송이다.
‘김송송송으로는 뭘 해도 부담이 없거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하긴커녕, 오히려 눈매를 휘게 만들겠지.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김송송송이라는 캐릭터는 그녀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김송송송의 등장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다.
김성혁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나와 별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새삼, 여기는 ‘일도 잘하는 밴드’다.
머릿속에 갖가지 아이디어가 샘솟아 올랐다.
‘피디님한테 말해서 컨텐츠랑 연계해볼까?’
퍽 괜찮은 아이디어 같기는 한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자면 프로그램을 잘 보고 있는 이들이 안 좋게 볼 수도 있다.
또한 스케일만 커져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하지만 여기 있는 출연자들을 우리 컨텐츠에 따로 섭외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프로그램을 잘 보고 있는 이들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겠지.
다 같이 콩트에 참여하면 재밌는 그림이 나올 거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충 결과가 나왔다.
난 이 자리에서 바로 제안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여기 있거든.
이보다 더 좋은 홍보 효과가 없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예? 문제라면···.”
“세션이요.”
난 서연이와 이종락, 김석희, 김성혁과 한 명씩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최고의 세션들이 녹음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이종락이었다.
그는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좋죠! 드러머는 접니다!”
“흐음. 그럼 천재 기타리스트가 또 나서야지. 김송송송, 자네 또 내게 신세를 지겠군.”
“하하하! 다행히 노래에 키보드가 있네요. 그럼 키보드는 저죠.”
이 곡을 작곡한 김성혁은 고개를 젖히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들이 녹음해 주시면 당연히 좋죠.”
우리는 모두 기대 어린 미소를 띠웠다.
다들 음악하는 사람답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피디의 얼굴은 우리와 상당히 대비됐다.
이걸 어떻게 이용할 구석이 없을까, 미간을 좁히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을 거다.
그의 입장에서도 이걸 한 회차로 연계하기엔 부담스러울 테니까.
‘열매는 내가 다 먹어야지.’
나는 프로그램의 인기를 고스란히 등에 업기로 했다.
***
김송송송의 다음 컨텐츠가 결정되었다.
다만 바로 촬영을 시작할 수는 없었는데, 다들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이진국 감독이 기획을 짜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뮤비를 찍어야 했으니, 이를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런데 자칫 타이밍이 안 맞으면 서연이의 출연은 이번에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난 팬미팅의 무대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에 같이 있는 서연이를 바라봤다.
‘일본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아질 줄이야.’
서연이의 일본 인기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일본 진출 또한 타이밍이 중요했으니, 우리는 국내 활동을 빨리 끝내고 일본에 진출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아마 돈을 갈퀴로 쓸어담겠지.
스케일이 커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웅장해졌다.
‘이러다가 나중에 빌보드에 오르고 그러는 거 아냐?’
행복한 상상에 웃음이 지어졌다.
서연이는 이런 내 표정을 물끄러미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저만 보면 기특해서 아주 못 견디겠고 그래요?”
한껏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대중 팬들도 서서히 많아지더니, 이제 서연이의 곡이 서도현을 제치고 1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끔 엎치락뒤치락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서연이가 1위를 차지하는 모양새.
간단히 말하면 그냥 역전을 한 거였다.
그러니 저렇게 자신감에 찰 만도 하지.
“아니면 뭐, 제가 너무 귀여워서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와요?”
“참나.”
“왜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네?”
환하게 웃으며 장난을 친다.
웬만하면 열을 받을 텐데, 이상하게도 얘가 이러니까 웃음이 나온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런 매력이 인기의 요인 중 하나겠지.
타고난 재능이었다.
“일본 사람들도 이래서 널 좋아하나 보다.”
“···장난친 건데 이렇게 진지하게?”
당황하는 그녀에게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모습 잃지 말라고. 음악 재능만큼이나 지금 그 모습도 커다란 재산이니까.”
“네, 아무튼 순수하고 귀엽고 예쁘다는 거죠? 칭찬을 되게 어렵게 하시네요.”
서연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닌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팬미팅 시작 시간이었다.
팬들은 이미 안으로 들어와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
우리는 대기실을 나와 걸음을 옮겼다.
***
평소보다 훨씬 더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첫 팬미팅이라서 그런지, 느낌이 새로웠다.
서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입을 모아 같은 대답을 하기도 하고, 각자 다른 말을 꺼내기도 했다.
팬들이 자신의 말과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하며 집중하는 것처럼, 서연 역시 그들에게 집중했다.
여기 앉아 있는 모두를 한 명 한 명 동시에 살필 수 없는 게 왜 이리 아쉬운지.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는 문제였지만, 그들을 눈에 담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인사와 대화를 나눈 뒤엔, VCR을 같이 시청했다.
VCR이라 해봤자 특별한 건 없었다.
팬들에게 전하는 영상 편지를 찍은 정도? 내용은 뻔했다.
하지만 모두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뻔한 거였다.
이걸 쓰기 위해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짜냈는지 모른다.
혹여나 진심이 다 전달이 되지 않을까 봐 서연은 말을 덧붙였다.
“저 이거 진짜로 며칠 동안 머리 싸매면서 쓴 거예요.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정말 진심이에요, 여러분.”
팬들 사이로 잔잔한 웃음이 퍼졌고, 모두가 다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VCR이 끝나고, 서연은 드디어 팬들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 있었다.
두 번째 싱글, ‘우리’.
곡은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이를 부르는 가수 또한 무대마다 생각과 감정을 바꾸는 건 자유였다.
지금 이곳에서는, 여기 있는 팬들과 자신이 모여 ‘우리’였다.
서연은 팬들을 눈에 담으며, 그들을 향한 온갖 감정들을 그대로 노래에 담아보려 했다.
가수로 데뷔한다는 꿈과, 가수로서 무대에 서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이젠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꿈이 되었다.
문득 대기실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모습을 잃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비단 성격과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 역시 포함일 것이다.
팬들을 사랑하고, 팬들에게 감사하고, 지금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마음.
즉, 소중한 걸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말하는 걸 거다.
지금으로선 서연은 이 마음가짐을 잃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우리’가 끝난 뒤엔 데뷔곡, ‘Escape’까지.
그 뒤론, Q&A도 하고 사인까지도 했다.
“···벌써 끝났네.”
얼마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차에 올라타 있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사장님이 다 안다는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 몽롱하고 황홀한 기분을 다른 가수들도 다 느낀다는 거겠지?
“사장님, 저 진짜 가수 하길 잘한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았어?”
“네. 사장님 못 만났으면 진짜··· 전 이런 느낌 평생 몰랐을 거예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다.
전엔 자신을 만난 게 사장님의 복이라며 농담을 했었는데, 그 반대다.
서연은 아직도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사장님 덕분이에요. 너무 감사합니다.”
웃음기 없이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인지, 유민은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더 고맙지.”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마워요.”
“···.”
“제가 더 고맙다니까요?”
“알았다고.”
“헐. 한 번이 끝이었어요? 이럴 땐 사장님도 계속 ‘아니! 내가 더 고마운데?’ 이렇게 말해야죠!”
방긋 웃으며 말했더니,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그의 얼굴에서도 슬며시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네가 더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아서 가만히 있던 거였는데?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와! 아니, 사실이 그렇더라도 말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감사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 마음을 잊으면 이 모습도 잃고, 소중한 게 소중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터.
사장님이든 팬들이든 자신이든 이 모습을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서연은 소중한 것들을 잃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 이 모습을 잃지 말라는 말의 의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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