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67화 (67/124)

< 구서연 씨 신곡 들어봤어요? >

“이딴. 걸. 하아! 나더러. 후! 추라고. 감독도. 제정신이. 아! 니야!”

욕을 하려고 춤을 추는 건지, 춤을 추면서 힘을 받기 위해 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는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고, 열심히 화를 내고 있었다.

어쨌든 저렇게 욕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안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디테일을 줄이자는 말도 하지 않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으니, 점차 몸에 익어가는 것 같다.

나는 춤과 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하다가, 살짝 질릴 때쯤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링은 질리지 않고 언제나 즐겁고 짜릿했기 때문이다.

쇼앤프루브는 김종수의 우승으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차트 1위와 2위엔 김별의 이름이 끼어 있었다.

1위는 김종수와 김별의 ‘Wall Flower’, 그리고 2위는 별이의 트로트, ‘그렇다고 말해요’.

다른 가수들도 앨범을 하고, 날이 갈수록 서서히 화제성이 떨어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순위는 여전했다.

음악이 좋기 때문이겠지.

‘일도 잘하는 사이’는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었다.

반짝 빛나고 그친 게 아니라, 이제 완전히 인기 예능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별이는 그동안 트로트로 얻은 인기로 별다른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광고는 많이 찍었다.

큰 것은 3개. 손익분기점을 아득히 넘는 흑자였다.

이렇듯 볼 게 많다 보니, 더욱 눈이 즐거웠다.

모니터링을 하다가 목이 아프면 고개를 들어 정아를 보고, 정아를 보다가 욕이 거칠어지면 다시 핸드폰을 보고.

두세 번을 이렇게 반복하고 있을 때, 보컬룸이 열리며 서연이가 다가왔다.

이제 컴백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사장님, 이제 보니까 제 곡이 너무 심심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 화려하게 일렉 기타 치는 모습 엄청 기대할 텐데, 어쿠스틱 곡이면 실망하지 않을까요?”

“그거 쓸데없는 부담이야. 그렇다고 아예 락으로 전향할 거야?”

“아뇨.”

그녀가 작곡한 곡은 모두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도 그녀가 가수로서 낸 곡은 여태껏 하나뿐이다.

작곡가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으니, 후속곡에 대한 부담은 크게 작용했을 터.

그게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겠지.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저 컴백 미룰 걸 그랬나 봐요. 굳이 와인드업이랑 활동 겹칠 필요는 없는데.”

서도현의 컴백은 내일인데, 티저부터 모든 연예계의 화제를 집어삼킬 듯이 기세가 대단했다.

서연이의 컴백은 사흘 뒤.

서도현과 이틀 차이가 나는데, 티저에 대한 반응만으로 비교해보자면 서도현이 확실히 위였다.

대중 팬들은 티저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팬덤은 티저에서도 화력을 집중하기 때문에 나오는 차이였다.

“도무지! 하아! 제정신들이. 아니야. 다들! 후우! 내가. 무슨. 댄스 괴물. 인 줄 아나!”

서연이의 시선이 무서운 언니를 향해 돌아갔다.

“저거 봐. 어떤 것 같아?”

“···무서운데요?”

“그래. 아주 눈에서 독기가 철철 넘치고 있지? 너도 저 모습은 본받아야 돼. 차이가 심한데도 어떻게든 유진이 레벨에 맞추려고 아주 발악을 하잖아.”

“···.”

“너도 겁부터 집어먹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봐. 사실 내가 볼 땐 이건 패자가 없는 싸움이야.”

그녀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눈동자가 기대를 품고 있다.

컴백이 다가오니 부담이 되는 거라서, 그냥 격려를 받고 싶었나 보다.

“왜 패자가 없어요?”

“어차피 너나 도현이나 둘 다 잘될 테니까. 한 쪽이 밀리더라도 무력하게 밀리지 않을 거고, 밀어내는 쪽도 쉽게 밀어내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둘 다 승자인 거지. 지금 차트 봐. 네가 만든 트로트가 2위고, 쇼앤프루브 곡이 1위지?”

“네.”

“그럼 네가 진 거야? 트로트가 그냥 밀렸다고 생각해? 아니야. 둘 다 엄청 잘된 거지.”

“오호!”

그저 작게라도 격려를 받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걸 얻게 된 것처럼, 그녀의 표정이 확연하게 밝아졌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능력도 좋고 안목도 좋은데 아티스트 케어도 끝내주는 사람.

“이해했지? 이길 생각하지 말고, 너 하던 대로 하면 돼. 그쪽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난 언젠가 와인드업에게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이 얘기를 꺼내게 된 계기와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네!”

서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1위를 하고 서도현을 꺾으면 그보다 좋은 건 없다.

다만, 2위를 해도 나쁠 건 없다는 거다.

이제 막 두 번째 곡을 내는 신인이 오랜 기간 동안 탄탄하게 경력을 쌓은 서도현이랑 맞붙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거거든.

이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승리한 것과 진배없는 구조였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겨버린 셈이지.

***

‘김석희의 아메리카노’.

3일 뒤에 방송이 되는데 서연이의 음원 발매일도 그 날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 스케줄로 이 프로그램을 잡았다.

전략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김석희와 구서연이 같이 출연하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일도 잘하는 밴드’의 연장선처럼 보일 테니까.

평소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거라는 말이다.

리허설이 끝난 뒤의 대기실.

스탭이 가져다준 도시락을 본 서연이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징어볶음! 맛있겠다!”

서연이가 도시락을 허겁지겁 뜯으려는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김석희가 도시락을 손에 들고 내게 물었다.

“저도 같이 먹어도 될까요?”

“예, 그럼요. 들어오세요.”

아까 인사를 나눴기에 서연이는 그에게 시선만 한 번 주고는 젓가락을 뜯었다.

“잘 먹겠습니다.”

김석희는 즐거운 얼굴로 식사를 시작하는 서연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나를 바라봤다.

“얘 지금 몇 분 뒤면 서도현 씨 앨범 나오는 거 알고 있어요? 서연아, 넌 신경도 안 쓰여?”

“에이. 신경을 왜 써요? 전 제가 할 거에만 집중하면 되죠. 그리고 밀린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럼 저보다 더 잘되는 거지, 제가 잘 안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와. 너 많이 성숙한 애였구나? 왜 몰랐지?”

김석희는 감탄하는데, 내 입에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말했던 걸, 마치 자기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말하고 있어서.

“그래도 잘된다는 건 확신하고 있네?”

“네. 사장님이 이거 잘될 것 같다고 했거든요.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어요.”

그 말엔 조금 어폐가 있다.

지금까지 낸 곡이 모두 다 잘됐기 때문이다.

김석희도 이를 아는 듯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같이 프로그램을 하더니, 많이 친해졌다는 게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우리가 오징어 볶음을 먹는 동안 6시가 지났다.

이미 서도현의 앨범이 공개됐을 터.

그런데 우리는 누구도 음악을 틀거나 뮤비를 틀지 않았다.

오징어 볶음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난 반쯤 오징어 볶음 위에 밥을 올리고 슥슥 비빈 다음에 퍼먹었다.

서연이는 날 흘끔 보더니, 나처럼 오징어 볶음 위에 밥을 올리고 비볐다.

그리고 한 입 먹더니, “으음!”하며 탄성을 냈다.

내 방법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오징어 볶음이 맛있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오징어 볶음 먹으니까 라떼 먹고 싶지 않아요?”

“알았어. 밥 먹고 사올게.”

“같이 가요. 소화도 시킬 겸 바람도 쐴 겸. 선배님도 같이 갈래요?”

김석희는 날 바라보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열었다.

“그래, 가자.”

우리는 도시락을 정리한 뒤, 대기실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우린 서도현의 음악을 듣지 않았다.

라떼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

.

.

우리는 라떼를 먹다가 심심할 때쯤이 되어서야 서도현의 뮤비를 틀었다.

김석희와 나, 구서연이 같이 대기실에서 나란히 앉아 뮤비를 감상했다.

“음악 잘 뽑혔다. 청량해.”

김석희의 말에 내가 대꾸했다.

“뮤비에 돈도 엄청 퍼부은 것 같네요.”

구서연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제 음악보다 좋은 것 같아요?”

“아니.”

“우리 음악이 더 좋아.”

우리는 동시에 답했다.

서연이 앞이라서 이렇게 말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장르의 차이가 있다지만 그렇다고 어떤 곡이 더 좋고 나쁜지를 비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서도현의 음악도 좋았다.

스타일리시하기도 하고, 본인의 장점인 음색도 잘 살렸지.

하지만 서연이의 곡이 더 좋았다.

장르가 달라도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래서 조금 안도가 되는 와중에도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벌써 댓글이 눈앞에 선해서.

-장르가 다른데 뭔 개소리ㅋㅋㅋㅋ 대중성만 생각하고 만든 어쿠스틱 곡이랑 퀄리티랑 완성도 높은 곡이랑 같냐?

-엥? 난 와인드업 팬 아닌데, 서도현 곡이 훨씬 좋은데?

-난 개인적으로 구서연 곡 너무 아쉽다ㅠㅠㅠ 어쿠스틱이 웬 말이야. 자꾸 기타 잘한다고 하니까 너무 기타 신경 쓴 거 아냐? 그렇다고 기타 테크닉이 들어간 것 같지도 않고. 애매하네.

-구서연 기타 과대평가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 정도 테크닉은 음대 입시 준비하는 애들이면 다 칠 수 있어요ㅋㅋㅋ

댓글 보지 말란다고 안 볼 애도 아니니까, 당분간 붙어 다니면서 신경 좀 써줘야겠다.

***

김종수와 김별의 노래, ‘Wall Flower’와 김별의 트로트, ‘그렇다고 말해요’를 모두 제치고 차트에서 1등을 차지한 서도현.

언제나 그렇듯 컴백 직전과 직후에 가장 바빴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그는 구서연의 곡이 나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예능 촬영 중이라서 발매와 동시에 음악을 들을 순 없었지만.

쉬는 시간, 그는 바로 핸드폰을 찾아서 이어폰을 꽂았다.

발매된 지 세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구서연의 곡은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좋겠지?’

도현은 구서연의 곡, ‘우리’를 틀며 앨범 리뷰의 댓글을 살펴봤다.

전주부터 리듬을 타게 만드는 경쾌한 음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형은 불패네.’

WE엔터에서 낸 곡들 중 안 좋은 게 없다.

김별, 구서연과 김유민의 시너지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아티스트들이 천재인 걸 수도 있지.

아무튼 중요한 건 너무 좋다는 것.

이렇듯 귀는 즐거운데, 눈은 썩을 것 같았다.

앨범 리뷰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댓글들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곡도 그렇고, 음원 사이트의 앨범 리뷰 댓글이 깨끗한 게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도현의 눈엔 여기 있는 댓글 작성자들이 어떤 이들인지 감이 왔다.

‘내 팬들이네.’

도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런 더러운 경쟁은 원하지 않는다.

위협적인 경쟁자의 루머를 퍼뜨리고 악플을 남기며 끌어내리는 걸 평소에도 싫어하긴 했으나, 이번엔 더욱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와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도현은 알고 있었다.

도현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집중하며, 눈으로는 가사를 익혔다.

.

.

.

녹화가 끝난 뒤, 숙소로 향하는 차 안.

시간은 벌써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라이브 방송을 켰다.

쭉쭉 오르기 시작하는 시청자 수.

도현은 활동 소감과 함께 팬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20여분이 지난 뒤에 이야기의 주제를 슬슬 음악 쪽으로 바꿨다.

그리고 채팅 하나를 발견하고는 콕 집어 말했다.

“음악 추천해달라고요? 으음. 아! 여러분, 오늘 나온 노랜데 구서연 씨 신곡 들어봤어요? 엄청 좋더라고요.”

도현은 아까 익힌 노래를 불렀다.

오늘 같은 날 있지. 뭘 해도 되지 않아 짜증이 나는 날.

우리 같이 있으면 그 일을 떠들며 웃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괜히 초조한 날 있지.

우리 같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즐거워.

평소보다 한가한 날. 우린 가만히 바다를 바라봐.

“가사도 좋죠? 주위에 이런 사람 있으면 항상 잘해주세요, 여러분도.”

도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구서연 씨 신곡 들어봤어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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