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거 연기 아닌데 >
김별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순간.
‘쇼앤프루브’의 정영준 피디는 김별을 바라보는 대신,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관객들. 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라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하거나, 입을 틀어막으며 제자리에서 뛰거나, 주먹을 꽉 쥐며 힘껏 함성을 내지르고 있다.
“흐흐흐.”
김종수가 2차 예선 때부터 김별의 피처링을 외치기도 했고, 김별이 바로 어제 트로트 퀸으로 등극되어서 더욱 반응이 뜨거운 것일 거다.
심사위원들이나 경쟁자들의 표정도 장관이었다.
김별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도 모르게 꽁꽁 감춰두었던 비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놀라는 반응도 생동감이 넘쳤다.
정영준 피디의 머릿속에, 방송에 써야 할 컷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귓가엔 김별의 목소리가 꽂히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정영준은 저절로 옮겨가는 시선을 애써 거부하지 않고 김별을 바라봤다.
“진짜 말도 안 되긴 하네···.”
비주얼과 노래 실력, 스타성 무엇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
활동한 기간을 따지자면 분명 신인급이건만, 무대 위에 있는 김별은 관객들을 휘어잡는 것에 매우 익숙한 슈퍼스타 같았다. 무대 장악력과 존재감이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정영준 피디의 입에서 문득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GO엔터 미친놈들.’
옹이 눈깔도 그런 옹이 눈깔이 없다.
물론, 그때는 김별이 이런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를 순순히 놔주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의 시선은 무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유민에게로 옮겨졌다.
분명 저 사람의 눈에는 김별이 슈퍼스타가 될 가능성이 뚜렷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나오면서까지 김별을 붙잡고 회사를 만들었겠지.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야.’
안목에 대한 확신, 과감한 추진력과 용기로 결국 이렇게 성과를 만들어냈지 않은가.
정영준 피디는 웃음을 터뜨리며 무대 위를 바라봤다.
어느덧 무대는 끝을 향했고.
비트가 꺼지며 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하하하!”
“푸하하하!”
관객들이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심사위원들과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로 배를 잡으며 웃는다.
그들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무대 위, 김종수의 얼굴이었다.
김종수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순수한 소년처럼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하!”
하여간 음원도 음원이지만, 방송 또한 기깔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대가 너무 좋았다.
***
오후 8시. 연습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퇴근하는 중이었지만 난 바로 연습실로 걸음을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진이가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날 발견하고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선배, 퇴근 안 했어요?”
“이제 막 하려고 했지. 근데 여기서 뭐 해?”
“연습하죠.”
“···누워 있는 것도 연습이야?”
난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우리는 고개만 돌려 서로를 바라봤는데, 그녀의 얼굴에 피로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연기도 쉽지 않지?”
“그러게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네요.”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려운 것도 맞고, 힘들기도 할 거다.
하지만 이게 안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할 것도 없다.
다만, 조만간 촬영장에 한 번 가야겠다.
그동안 바빠서 그녀가 촬영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선배, 어제 방송 봤어요. 반응 엄청 뜨겁던데요?”
어제 방송된 ‘쇼앤프루브’의 준결승 무대.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뜨거웠다.
별이의 트로트 순위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할 만큼.
덕분에 ‘그렇다고 말해요’는 2위로 밀려나게 됐는데, 그게 아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예상을 훨씬 웃돈 성적을 받기도 했고, 발매한지 며칠이 지나기도 했으며, 쇼앤프루브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아쉬워할 게 아니라 기뻐해야지.
이 와중에도 트로트가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한 거고.
난 유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피로감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녀와 함께 일했을 때 안 피곤했던 적이 없었다.
지금의 얼굴은 그때와도 다르고, 안무를 만드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와도 달랐다.
그땐 피곤이 묻어 있어도 얼굴이 어둡지는 않았으니까.
난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초조해?”
“···!”
내 예상이 맞나 보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초조할 수도 있지. 다른 애들은 날아다니고 있는데 너는 아직 대중들 앞에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혼자만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어.”
떨리는 눈으로 아랫입술을 핥던 그녀가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도 찍고 있고, 데뷔도 준비 중이라서, 당장 드러나지 않아도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긴 해요. 그런데 당장 나오는 게 없어서 그런지 좀 초조한 느낌이긴 해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애들이 저렇게 잘나가니까.”
요새 서연이와 별이의 기세가 아주 무섭다.
가면 갈수록 그녀들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전력투구를 하는 중이어도 박탈감이 들 수밖에.
유진이는 괜찮다는 듯 애써 밝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무튼 저도 알아요. 머리로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도 촬영 끝나고 이렇게 안무 만들러 왔고.”
이 경우엔, 초조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알아서 사라질 문제다.
왜냐, 이미 잘하고 있거든. 다만 준비 기간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유진이의 마음을 안정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촬영장에 한 번이라도 더 가주고, 이렇게 얘기라도 하고, 안무라도 봐주는 거겠지.
난 그녀도 이미 알고 있는 걸 말하는 대신,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주기로 했다.
“안무는 완성됐어?”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거의요. 보여드릴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번 조작하더니 음악이 바로 흘러나왔다.
‘시원시원하네.’
몸은 풀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건 댄스 괴물한테 실례되는 의문인가?
아무튼 그녀는 내 정면에 서서 여유롭게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더니, 바로 안무를 시작했다.
심성균 감독이 원했던 건 서연이의 데뷔곡, ‘Escape’ 같은 느낌의 안무.
유진이가 그 안무를 만들기 위해서 시안을 10개를 준비했었던 것처럼, 내가 이 음악에 맞춰서 봤던 안무 역시 벌써 10개에 가까웠다.
그 10개에 가까운 안무가 모두 다 좋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모두 유진이가 만족스러워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데 난 지금 그녀가 ‘거의’ 완성됐다고 말하는 안무를 보며, 새삼 충격을 받았다.
저 댄스광이 열중한 얼굴로 춤을 추고 있다. 당연히 실력은 굉장하지.
그런데 안무를 보고 있자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
‘정아가 보면 기절하겠네.’
안무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심성균 감독님의 요구에 맞게, 높은 수준을 요하는 안무는 없었다.
하지만.
‘디테일이 뭐 이렇게 많아.’
사실 디테일이 많다는 건 어렵다는 뜻과 크게 다름이 없다고 볼 수도 있는데.
높은 레벨의 댄서만이 제대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안무는 들어 있지 않았다.
정아도 한 동작씩만 따라하면 바로 따라할 수 있을 만큼.
그저 연습이 무지하게 필요한 안무일 뿐이다.
근데 사실 어떻게 보면 어려운 게 맞긴 하지.
다만, 심성균 감독님이 원하던 느낌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마치, 반박귀진의 경지? 멀리서 보면 무난하고 평범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완성도는 끝내주네.’
아마 심성균 감독님이 이 안무를 보면 눈이 돌아가며 물개박수를 칠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느낌을 만족시키되, 그 안에서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으니.
음악이 끝나자,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날 바라봤다.
이걸 보여주고선 무슨 답을 주길 바라는 건지, 그녀는 이 안무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내뱉어보라는 듯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거의’ 완성된 거야? 이게?”
“조금 디테일을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서 더 넣으면 정아 죽어. 아니, 네가 정아한테 죽어.”
“···.”
“이걸로 하자. 이미 최고야. 그리고 더 넣으면 과할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가? 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밝은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로 할게요. 선배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또 안 따를 수가 없지.”
난 오늘 두 명을 살렸다. 정아도 살리고, 정아한테 죽을 뻔하던 유진이도 살리고.
뜻깊은 날이다.
***
연습실 세트장. 오늘은 유진이와 정아가 함께 씬을 찍는다.
촬영장에 찾아온 건 이번이 두 번째.
스탭들이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은 와중에, 정아는 거울 앞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내게 말했다.
“오늘 중요한 씬이야. 이제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때가 왔어.”
그동안 댄스 가수 데뷔를 준비하며 열심히 연습해온 덕분인지,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뒤를 힐끔 보니, 유진이가 난감한 얼굴로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얘도 양심이 남아 있었다.
난 정아에게 물었다.
“안무 본 적 없다고 했지?”
“응. 얘가 만든 안무 보고 내가 놀라는 씬이거든. 그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으신가 봐. 어차피 안무 배우는 씬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카메라 돌아갈 때 처음 보고 배우는 게 더 낫다는 거야. 그래서 감독님이 애드립도 마음껏 넣으라고 했어.”
“···.”
정아는 코웃음을 치며 심감독님이 있는 쪽을 흘겨봤다.
“감독님은 내가 진짜 놀라고 어려워하길 바라나 본데. 하! 그때 내 댄스 봤으면서 대체 내 수준을 어떻게 보는 거야? 서연이 안무 같은 느낌이라면서? 내가 그 정도에 어려워할 줄 아나?”
“···.”
“오빠도 봤지? 안무 괜···. 뭐야. 잠깐.”
말이 멈춤과 동시에 스트레칭도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가 유진이를 봤다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유진이를 가리키며, 의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내게 물었다.
“혹시 얘가 미친 난이도로 만든 거 아니야?”
“아니, 서연이 안무랑 느낌이 비슷해.”
멀리서 보면.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바른대로 말해.”
“···열심히 해.”
감독님이 리얼리티를 원하는데, 내가 망칠 수는 없지.
대충 대답을 뭉개며 시선을 돌렸는데, 마침 촬영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래서 난 유유히 걸음을 옮겨, 스탭들 사이로 걸어갔다.
“어디 가? 어디 가! 거기 안 서?”
유정아는 씩씩거리다가 유진이를 째려봤다.
“너! 똑바로 만들었지?”
“···난이도는 어렵지 않아요, 언니.”
“···.”
정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때, 심성균 감독이 촬영을 서둘렀다.
이대로 가다간 리얼함을 못 살리고 다 들통날 수 있겠다고 여긴 모양이다.
지극히 옳은 판단. 거장이 될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직감이었다.
“스탠바이-“
디렉팅이고 뭐고 없었다.
애드립을 널널하게 줬다고 했으니, 마음대로 해보라는 거다.
유정아의 실력을 믿는 거겠지. 아니면··· 정아의 성질머리를 믿는 것일 수도 있고.
“액션!”
촬영이 시작되고 그녀들은 대사를 주고받았다.
애드립을 널널하게 준 건, 안무를 보여준 뒤부터.
그런데 둘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느낌이 묘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제자와 스승이라서 그런가?
내가 키운 베테랑과 내가 키우는 중인 무명 배우가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난 둘이 연기하는 모습을 묘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심감독님을 쳐다봤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하이라이트를 기대하고 있다.
픽, 웃음이 나왔다.
감독님이 처음 유진이의 안무를 봤을 때,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크게 흥분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뽑혔으니 뜻밖에 선물을 받은 기분일 테지.
이윽고,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댄스광, 댄스 괴물, 댄스 외계인, 댄스 머신, 댄싱퀸, 댄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 이유진이 아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안무가 펼쳐졌다.
처음엔 자신 있는 얼굴로 바라보던 정아의 표정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났다가, 이내 눈썹이 팔八 자로 휘어졌다.
유진이는 댄스를 펼치고 있는데, 정아는 표정으로 안무를 펼치고 있었다.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과정들이 생생하고도 뚜렷하게 보인다.
과연 연기 괴물.
정아는 몸의 색까지 연기할 수 있게 됐는지, 목덜미와 귀가 빨개지더니 얼굴 전체가 빨개졌다.
눈빛이 살벌하게 바뀌고, 씩씩대며 얼굴이 구겨졌을 때는 이미 안무가 다 끝난 다음이었다.
그녀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너 미쳤어? 너 잘 춘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이걸 나더러 추라고!? 세상에서 너 혼자 출 수 있는 걸 나더러 추라고?”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이게 하나씩 뜯어보면 고난이도는 아니거든. 디테일만 조금 많을-”
“야! 그게 어려운 거야! 그게!”
정아의 열연에 감동받았는지, 감독님의 얼굴에 환희의 꽃이 만개했다.
정말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지.
성질머리 더러운 탑스타, ‘류지혜’ 역할에 우리 정아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그런데 사실 이 열연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저거 연기 아닌데.’
난 주위를 빙 둘러봤다.
어쩌면, 이 비밀은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일 수도 있겠다.
‘···관객들만 모르면 됐지.’
아니, 어쩌면 관객들도 눈치 챌 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어쨌든 장면 하나는 끝내주게 잘 뽑히고 있었다.
아주 아주, 매우 매우 힘들겠지만, 정아가 저걸 완벽하게 소화한다면 그 장면 역시 역대급으로 잘 뽑히게 될 거고.
아무튼 정아의 기분 빼고는 모든 게 다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저거 연기 아닌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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