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65화 (65/124)

< 트로트 신흥강자의 힙합 데뷔 >

구서연의 뮤직 비디오를 편집하던 유형중은 문득 배고픔을 느끼고 손을 멈췄다.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는 기지개를 쭉 켠 뒤에 편집실을 나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다 밥을 먹으러 갔거나, 시켜 먹었거나, 아니면 퇴근했겠지.

형중은 혼자 밥을 먹고 마저 편집할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휴게실에 감독들 여러 명이 모여 배를 움켜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형중을 발견한 감독들이 손짓했다.

“어, 형중아. 편집은?”

“밥 먹고 마저 하려고요. 그런데 다들 식사 안 하십니까?”

김감독은 웃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저놈이랑 같이 밖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계속 안 나오네. 하하.”

다른 선배들이 낄낄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다들 처음엔 그렇죠. 선배는 안 그랬어요?”

“나도 그랬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잠도 안 오더라.”

“쟤는 더 그럴 거예요. 사람들도 많이 볼 테니까. 저는 데뷔작 조회수가 더럽게 안 나와서 볼 반응도 없었어요. 가수가 무명이었어서.”

시선이 갑자기 유형중에게로 모였다.

그는 선배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이진국 감독 데뷔가 오늘이었네요. 정신이 없어서.”

“얘도 복 받았지. 첫 작품부터 김별 데뷔작 찍더니, 이제 구서연이랑 김별은 다 쟤한테 찍잖아. 형중아, 이번 것도 원래 너한테 맡기려고 했었지?”

“네. 그렇긴 한데, 전 이진국 감독처럼은 못했을 거예요.”

형중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다가, 이진국이 있는 사무실 쪽을 흘끔 바라봤다.

이쪽에선 사무실 안이 보이지 않는다.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이러다가 다들 굶어 쓰러지겠어요.”

“그래, 한 번 가봐.”

형중은 휴게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식사 시간, 혹은 퇴근 시간이라서 그런지, 복도는 조용했으며 사무실 안 또한 조용했다.

적막 속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형중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진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눈이 벌게진 채로 댓글을 살펴보고 있다.

컨텐츠 1회와 2회는 아무리 좋은 반응이 나와도 감흥 없어 하더니, 뮤비는 느껴지는 바가 다른 모양이다.

웃음이 나왔다.

김별의 뮤비가 나왔을 때, 자신 또한 저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선배들처럼 덤덤해지기엔 아직 경력이 부족한 모양.

그는 자신이 가까이에 온 줄도 모르고 있는 이진국에게 인기척을 내며 물었다.

“뮤비 한 번 봐도 돼?”

그는 빨개진 눈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인지, 슬쩍 얼굴을 가리며 답했다.

“···아, 네.”

그는 바로 제 손으로 만든 뮤비를 틀었다.

뒤에 짙은 파란색의 벨벳 커튼이 처져 있는 목재 무대.

그 위에 입꼬리가 찢어질 듯 환하게 웃고 있는 김별이 까만 지팡이를 손에 든 채로 등장했고.

쇼를 시작하는 사회자, 마술사, 코미디언, 혹은 배우처럼.

김별은 다리 한 쪽을 뒤로 빼며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숙이며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뒤에 있는 벨벳 커튼과 자켓이 잘 어울린다.

번쩍번쩍한 푸른색 자켓을 입고 있는 건 김송송송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둔 것일 터.

배경과 스타일링 모두, 레트로 컨셉을 세련되게 살렸다.

유형중은 작게 감탄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와. 잘 만들었다. 저예산인데 엄청 잘 뽑혔네. 팬들 좋아 죽겠다.”

이진국이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 뒤로 뮤비가 끝날 때까지 말없이 화면을 보던 둘.

뮤비가 끝나자, 이진국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배 덕분이에요.”

또렷한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진심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유형중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감독님들이 너 기다리느라 배고파 죽으려고 한다.”

“···네.”

***

김별의 집.

거실에선 한 곡의 음악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던 김별은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이거 이제 끄면 안 돼? 벌써 몇 번째 듣는 거야.”

“왜. 노래 너무 좋은데.”

엄마의 말에 아빠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우리 딸 노래라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좋아서 그래.”

김별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고맙긴 한데, 밥 먹을 때까지도 이러니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자리를 견디지 못한 김별은 빨리 밥을 해치우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그녀는 핸드폰으로 음악의 반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팬 카페와 커뮤니티, 모두 반응이 좋다.

김별은 실실 미소를 지으며 유튜브를 켰다.

“···?”

눈을 비비고 핸드폰을 눈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아직 공개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00만 조회수가 넘었다.

“···.”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영상에 달린 댓글을 확인해봤다.

외국어가 너무 많아서 한글로 작성된 댓글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김송송송은 대체 못하는 게 뭘까?

-힐링된다···. 보다가 잇몸 말라서 추잡하게 웃게 되네요ㅋㅋㅋㅋ

-아니ㅠㅠㅠ 진짜 이쁘고 귀여운 거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했자나 왜 말을 안 들어ㅋㅋㅋ

-김송송소ㅅ오ㅗㅇ소옷옷오송 자꾸 외치게 되는 그 이름. 저예산 뮤비로 전설을 쓰는 철원읍의 인재! 데뷔 축하합니다.

부모님이 좋다고 할 때는 부끄러워서 한숨이 쉬어졌는데.

팬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몇 분 뒤, 발매한 지 딱 한 시간이 지난 시각.

거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별아! 나와봐!”

“별아!”

부모님의 다급한 부름에 문을 열어보니, 두 분 모두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이거 봐.”

엄마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음원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이를 본 김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 1. 그렇다고 말해요 – 김별 ]

김별의 이름으로 낸 김송송송의 곡.

그 옆에는 ‘NEW’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진입 1위 맞지!?”

“하하! 딸! 1등 축하해!”

김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반응이 좋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아니, 반응이 좋을 줄 알았던 것도 컨텐츠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예상한 것일 뿐, 컨텐츠를 시작하기 전까진 이 정도를 기대하진 않았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김별에게 엄마가 물었다.

“이 정도면 트로트 퀸이라고 불러도 되는 거 맞지?”

“아니야.”

“맞구만 뭘. 1위로 진입하는 게 엄청 어렵다면서.”

그건 맞긴 하다.

그런데 트로트 퀸이라니.

차트를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고.

김별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눈을 깜박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그때, 아빠가 물었다.

“별아, 내일 공연 있다고 했지? 이 노래 부르는 거야?”

“아니. 장르가 달라.”

“원래 네 곡?”

“힙합.”

“···.”

“···.”

김별의 부모님은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가, 다시 차트가 떠 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허허.”

아빠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엄마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하셨다.

“우리 딸이 욕심이 엄청 많네. 열심히 해.”

“응.”

***

주위를 둘러보니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가 보였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트로트 퀸이 보였다.

“별아.”

“네.”

아직 리허설을 하기도 전이라 메이크업도 안 한 상태.

그럼에도 미모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지만, 눈빛과 표정에는 이상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덤덤해 보이기도 하는데, 넋이 살짝 나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나 또한 그녀와 비슷하다는 것.

잠에서 막 깬 듯 얼떨떨한 느낌이 어제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제 트로트로 데뷔했는데, 오늘은 힙합이네.”

“···그러게요.”

가볍게 만든 컨텐츠의 뮤비 조회수는 하루가 지난 지금 무려 500만을 돌파한 상태였고.

차트 순위 역시 진입부터 지금까지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철원의 천재 소녀 김송송송. 트로트 퀸의 탄생.

그런 그녀가 트로트 무대를 제대로 서보기도 전에 힙합 무대에 서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그녀와 가만히 시선을 마주치며 서로 눈만 깜박이고 있을 때, 옆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벅스와 김종수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웃기면 그냥 시원하게 웃어도 되는데.

“축하드립니다. 정말 곡 잘 듣고 있어요. 컨텐츠도 잘 봤고요.”

벅스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 곡도 이 기세 그대로 이어받아서 잘됐으면 좋겠네요.”

“잘될 겁니다.”

벅스의 확신 어린 어조에 살짝 눈이 커졌다.

프로듀서로서의 자신감일까, 아니면 별이의 인기가 절정을 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자신감일까.

아무튼 잘될 거라는 예상은 나 또한 같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무대 위를 쳐다보다가, 조연출의 말에 리허설을 시작했다.

.

.

.

리허설이 끝난 뒤로는 대기의 연속이었다.

다른 팀의 리허설을 기다리고, 밥을 먹고, 눈을 붙였다가,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관객들이 입장하고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우리가 올라갈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그 동안 별이의 광고 관련 전화를 3통이나 받아야 했다.

자잘한 것들을 제외한 굵직굵직한 것들로만.

“이제 진짜로 대세가 됐네.”

“저요?”

“응. 너.”

그녀의 눈매가 짙게 휘어졌다.

대기실에서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도 내가 힘이 펄펄 나고 있는 것처럼, 그녀 또한 지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반응을 보며 피식피식 웃기도 했고, 중간중간에 내가 광고에 대한 얘기도 전해줘서 그런가 보다.

우리는 피디의 안내에 따라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며 태연하게 스탭들의 표정을 구경했다.

리허설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별이만 보면 좋아 죽으려 하고 있었다.

별이가 안 그래도 우량주였는데, 지금 이 순간 트로트로 차트 1위를 달리고 있어, 커다란 화제성까지 겹쳐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긴장이 안 되네.’

힙합 무대는 처음인데, 조금도 긴장이 되지 않는다.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던 벅스처럼 곡이 좋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별이의 실력에 대한 자신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트로트로 화끈한 예방 주사를 맞아서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건 우리만의 입장일 터.

어제 트로트로 데뷔했다가 난데없이 이곳에 별이가 등장한 걸 본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아마 뒤집어지게 놀랄 만한 일일 수도 있다.

별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을까.

그녀는 문득 풉, 웃더니 입을 열었다.

“오빠, 저 장르가 너무 껑충껑충 뛰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그치? 뭔가 너무 자연스러워. 이러다가 헤비 메탈도 하겠어.”

“하하.”

“하하하하.”

사실 트로트는 컨텐츠와 ‘부캐’라는 장치를 이용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는데.

힙합은 그녀가 여기에 피처링을 한다고 해서, 정말 힙합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지금까지 수많은 보컬들이 힙합에 피처링을 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껑충껑충 뛴 것 같은 느낌은 버리기 힘들었다.

텀이 너무 짧기도 하고, 반응이 너무 크게 터졌기 때문일 터.

그런데도 걱정이 안 되는 건 별이가 가진 재능과 실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쌓아온 인기 덕분이겠지.

어느새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김종수의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별이와 나는 무대 뒤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별아, 만약에 이 곡이 1위 하면 어떨 것 같아?”

“좋죠.”

“트로트 밀려나도?”

“그래도 좋을 것 같아요. 트로트도 사랑해주시고 제가 참여한 힙합도 사랑해주시는 거니까···. 틀렸어요? 안 좋은 거예요?”

난 픽, 웃으며 말했다.

“뭐가 위로 올라가든 1, 2위에 네 이름이 연달아 박혀 있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지.”

“아, 그렇긴 하겠네요.”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무튼 뭐가 됐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지.”

우리가 떠드는 사이, 김종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잡담을 멈추고 집중해야 할 때.

그리고 잡담을 할 수도 없었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와 음악 소리가 너무 크고, 김종수의 발성이 너무 좋아서.

난 별이와 눈빛을 교환하며 뒤로 물러났고.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들어갈 타이밍을 재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미 관객들의 호응은 최상.

김종수의 인기가 정말 대단한 모양이다.

‘그럴 만하지.’

이렇게 잘하는데.

그렇게 첫 번째 벌스가 막 끝이 났을 때.

마이크를 입 앞에 가져다 댄 별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 입꼬리는 악동처럼 휘어졌다.

과연 별이를 반기는 관객들의 함성은 김종수에게 보내는 함성보다 클까, 작을까.

나 혼자 내기를 해봤다.

‘별이가 더 커야지.’

여리고 위태위태하지만, 계속 듣고 싶을 만큼 뛰어나고도 매력적인 보컬.

지금껏 별이가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던 타입의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장내에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에 감탄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가 조명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목청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그 함성 한 방에 귀가 먹먹해졌다.

“하하하!”

나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기는 내가 이겼다. 별이의 압승!

내기에서 이긴 보상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방방 뛰며 열광하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 그리고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카타르시스가 시원하게 터졌으면 됐지.

분명히 우리는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꽤 덤덤한 상태였는데.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별이도 그렇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나도 그렇고.

우리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별이가 차분한 성향이라서 그런가?

오늘은 내가 그녀를 좀 닮게 되었던 것 같기도 했다.

< 트로트 신흥강자의 힙합 데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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