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64화 (64/124)

< 멋진 목표 >

뮤직 비디오 촬영 중, 세트를 바꾸는 시간.

와인드업의 리드 보컬, 서도현은 바로 대기실에 들어가는 대신, 한 켠에 서서 세트가 철거되고 설치되고 있는 스튜디오를 찬찬히 둘러봤다.

스튜디오는 약간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조명을 빼고는 천장과 벽면이 어둡기도 하고, 방음 때문인지 소리가 울리기는커녕 쓸쓸하게 먹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많은데 입을 여는 사람이 적고, 물건 옮기는 소리만이 귀를 파고든다.

더구나 이 넓고 높으며, 사람도 많은 스튜디오에서 깨끗하게 관리하고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은 오로지 세트 위.

그래서 저 세트 위는 인기와 손가락질과 비난과 사랑 속에서 외로움과 우울함, 쓸쓸함을 받고 있는 외톨이 같기도 했다.

부족한 것 없는 환경 속, 서도현은 세트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번 앨범도 잘될 수 있을까?’

솔로 싱글 앨범. 물론 잘되긴 할 것이다.

든든한 팬덤이 있으며, 능력 있는 프로듀서와 스탭들이 있고, 자신 역시 재능을 바탕으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과연 지금 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물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대중들의 마음은 예측하기 힘들었기에.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기대 이하의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겠지?’

언제나 똑같다. 답은 정해져 있다. 고민도 필요 없다.

그래서 잡념이 더 많아지나 보다.

꿈이 이뤄졌는데 어째서 이런 공허한 마음이 들까, 생각해보니.

문득 너무 최선을 다해서 달려오기만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꿈을 위해, 꿈 위에 서서 열심히 달려온 게 후회할 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 좀 남는다.

열심히 달려오면서도 주변을 둘러봤더라면,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이렇게 모든 것을 가진 환경을 만끽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고 있지 않았을까?

“대기실 안 들어가고 왜 그러고 서 있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어우! 깜짝이야.”

“권이사님, 오셨어요?”

권본부장은 쫓겨난 최이사의 자리를 차지해 권이사가 되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희망 도현이. 이번에 긴장 좀 해야겠더라. 어제 구서연도 뮤비 촬영했대. 컴백 겹칠지도 몰라. 신인이라고 무시하는 거 아니지? 방심하면 안 돼.”

서도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무시할 리가 없죠.”

“저번에 우리 정규앨범도 김별이 부른 OST에 밀렸잖아. 이번에도 거기에 밀리면 안 돼.”

‘거기’라 함은 WE엔터를 말하는 것일 터.

서도현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이번엔 안 져요, 절대.”

그가 대기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권이사도 나란히 걸었다.

“너 그거 봤어? ‘트로트 가수 김송송송’인가 하는 그거.”

“2회까지 올라왔죠? 다 봤어요. 거기 유민이 형도 나오던데요? 회사 생활 엄청 재밌게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하!”

2회까지 올라와, 이제 3회인 뮤비만을 남겨놓은 ‘트로트 가수 김송송송’.

이 시리즈는 대중들의 흥미와 관심을 휘어잡았다.

이미 김별이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반응이 무척 뜨거웠다.

“우리가 팬덤 화력은 훨씬 세도 대중성은 좀 밀릴 수도 있어.”

“대중성 무서운 거 저도 알죠. 절대 방심 안 하고 열심히 할게요.”

이번에도 밀릴 순 없었다.

체면이 있지.

도현은 큭큭, 웃음을 흘렸다.

사실 자신도 무엇을 신경 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이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형한테 밀리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형 아래에 먼저 있었던 사람으로서 후배에게 밀리고 싶지 않은 건지.

아무튼 서도현은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승부욕을 똑똑히 인지할 수 있었다.

***

‘쇼앤프루브’에서 다시 피처링 제안이 왔다. 이번엔 준결승 곡이었다.

한 번 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연속으로 제안하는 모습이 참 끈질기다 싶다가도, 우리 별이에겐 응당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마침 별이를 회사로 부른 참이라 잘됐다. 같이 들으면 되겠지.

그녀를 부른 이유는 다름아닌, 너무 커진 김송송송의 인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이걸로 활동하진 않을 생각이었지만 인기가 예상보다 너무 많아져서 어떻게 할지 회의해봐야 했다.

게다가, 그녀를 부른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저번에 정규 앨범의 곡 2개가 완성돼서 들려줬었는데, 이번에 또 추가로 2개의 곡이 더 완성되었다.

정규앨범에 9개 정도의 곡을 넣을 예정이었으니, 거의 절반이 완성된 셈.

이번 것도 들려주고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잠시 후.

별이는 회사에 도착해서 나는 그녀를 데리고 보컬룸으로 들어갔다.

김송송송에 관련한 회의는 좀 이따 하기로 하고, 일단 들려줄 곡이 세 개나 돼서.

“회의 때문에 온 거 아니에요?”

왜 보컬룸으로 들어왔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나는 컴퓨터 앞에 그녀와 옆으로 나란히 앉은 채 말했다.

“쇼앤프루브에서 또 피처링 제안 왔어.”

“김종수 씨요?”

“응.”

“어때요? 들어보셨어요?”

“아니, 방금 와서 안 들어봤어. 너랑 같이 들으려고 했지.”

그녀의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그럼 같이 들어요.”

컴퓨터에서 메일을 열고 음악을 다운받았다.

음악을 틀자 스피커에선 이전의 곡과 다른 분위기의 곡이 흘러나왔다.

저번 곡은 딱딱하고 묵직한 비트 위에서, 김종수가 비트에 어울리는 묵직하고도 리드미컬한 랩을 뱉었는데.

지금은 비슷하게 무거운 비트 위에 부드러운 현악기들이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김종수의 랩 스타일이 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묵직하고 리드미컬했다.

허나, 현악기와 전자 피아노로 인해 전체적인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그의 첫 번째 벌스가 끝나고 가이드로 녹음된 훅이 나왔다.

이 부분이 피처링 파트.

가느다랗고 위태로워 보이는 목소리로 고통 속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프로듀서가 신경을 많이 썼음이 눈에 선히 보인다.

이건 별이가 하지 않았던 스타일이긴 하나, 별이의 목소리에 무척 잘 어울릴 곡이기도 하거든.

‘벅스가 괜히 벅스가 아니지.’

엔딩까지 총 세 번 반복되는 훅.

우리는 노래가 끝나고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맑고 또렷하게 빛나는 눈빛.

“오빤 어떻게 들으셨어요?”

“넌 어떻게 들었어?”

“오빠 먼저 말하면 말할게요.”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 첫 번째 피처링으로 엄청 괜찮네.”

별이의 첫 번째 피처링으로 손색이 없다.

랩도 비트도 훅도 가사도 전부.

내가 대답했으니 너도 의견을 말해보라며 쳐다보자,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너무 좋아요.”

곡이 너무 좋으니 따로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이대로 확정.

나는 이제 정규 앨범의 곡을 들려주기 위해 다시 마우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정규앨범에서 두 개가 더 완성됐어. 이것도 한 번 들어봐.”

“진짜요?”

난 클라우드에서 음악을 다운받고, 두 곡을 연달아 틀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니, 이번엔 내 의견부터 묻지 않고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다 너무 좋아요.”

“다 좋다고 하면 어떡해.”

“진짜 다 좋은데 어떡해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하긴 다 좋은 곡들이긴 하지.

좋은 곡이 아니었다면, A&R팀이 내게 가져다주지도 않았을 거고, 나 또한 별이에게 들려주지도 않고 내 손에서 커트했을 테니까.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눈매를 휘었다.

그 와중에 문이 열리며 정실장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회의 준비됐습니다, 사장님!”

좀 더 이따 오지, 하여간.

나는 작게 혀를 차며 일어났다.

***

결국 우리는 예정대로 김송송송으로서 활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반응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건 컨텐츠로서의 인기일 뿐.

제대로 활동을 한다고 하면 물론 컨텐츠로 인해 화제가 됐으니 한 철 인기는 좋겠지.

그러나 당초의 생각처럼 그녀의 커리어가 지저분해질 수도 있었다.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가, 앞으로 더 많은 길이 남았으니 우리에겐 이 기회가 그리 아쉽지 않았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보여주는 거라면 얼마든지 활용할 생각이긴 해도, 정말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건 좀 아니지.

그리고 쇼앤프루브에서는 우리가 피처링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촬영 협조를 요청했다.

그것도 아주 간곡하게.

그들이 이렇게 간곡하게 요청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별이가 갖고 있던 인지도와 인기, 그리고 김송송송으로서 한껏 올라온 주목도와 화제성.

또한 강력한 우승후보인 김종수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김별의 팬임을 자처해 이를 모르는 시청자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이렇게 두 번이나 피처링을 제안했기도 했고, 이번엔 별이를 완전히 염두에 두고 쓴 곡이기도 해서.

우리 또한 가벼운 답례로 촬영에 협조하기로 했다.

샵에 들르고 온 별이와 나는 벅스의 작업실 앞에 도착해, 대화를 나눴다.

“별아, 안에 들어가자마자 카메라 있을 거야. 너무 당황하지 마.”

“네, 걱정 마세요.”

고개를 끄덕인 내가 차의 문을 열려고 할 때, 별이가 대뜸 물었다.

“그런데 저 오늘 얼굴 좀 별로인 것 같지 않아요? 살이 쪘나?”

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세상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네 얼굴이 어떤지. 열에 다섯은 얼굴 빨개져서 제대로 쳐다도 못 볼 거고, 나머지 다섯은 소리만 지르다가 대답도 못할 거야. 너 지금 엄청 예뻐. 원래도 엄청 이쁘고 오늘도 예뻐.”

“그래요?”

그녀는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내릴까요?”

“그래. 가자.”

차에서 우리가 내리자 바로 스탭들이 따라붙었다.

카메라는 아니고, 작가들이었다.

이쁘다, 고맙다, 잘 나올 거다, 등의 말을 들으며 올라간 우리는 마침내 작업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스탭들과 카메라, 그리고 김종수와 벅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저거 봐라.

벅스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별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고, 김종수는 지금까지 지켜왔던 무게감에 맞지 않게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별이는 그들을 향해 씨익,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나는 스탭들 사이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매의 눈으로 지켜봤다.

혹여나 별이한테 작업을 거는 기미가 보이면, 턱주가리에 확 날아차기를 먹여버릴 생각이었다.

피디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시 뭐 불편하신 데 있으세요?”

“예? 아니요. 없습니다.”

“아··· 하하. 네.”

문득 주변을 보니, 작가들이 경직된 얼굴로 내 눈치를 흘끗흘끗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벅스랑 김종수도 이쪽을 몇 번 봤었다.

내 얼굴이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걸 깜빡했다.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닌데.

별이는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지 않은가.

“크흠.”

그래도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니, 난 작게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풀었다.

그들은 촬영 때문인지 녹음 전에도 잡다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김송송송 정말 잘 보고 있어요. 음악 어떻게 나올지 너무 기대돼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 프로그램 잘 보고 있어요.”

분량이 그래도 어느 정도 뽑혔다고 생각했는지, 비로소 별이가 부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헤드셋을 쓴 채 마이크 앞에 선 별이.

벅스가 물었다.

“가이드 한 번 들어보고 하실래요?”

“일단 먼저 불러볼게요. 연습을 좀 해와서요.”

“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곡을 처음부터 틀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김종수의 벌스 중간 부분부터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랩이 끝나고 훅이 시작될 때.

가볍게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고 있던 별이의 입이 열렸고.

부스 밖에 있던 우리의 입 또한 스르르 벌어졌다.

벅스, 피디, 작가 할 것 없이.

그들은 홀린 듯 넋이 나간 눈으로 부스 안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별이를 바라봤다.

별이가 노래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들은 내가 듣기에도 새로웠으니, 말해 뭐 할까.

“하아···.”

그런데 그중에서 김종수의 반응은 더 했다.

뜨거운 숨을 뱉어내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고, 눈엔 조금씩 습기가 차올랐다.

현악기 위에 올라간 여리고 위태로운 별이의 보컬.

그녀의 목소리는 바이올린의 떨림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심금을 울렸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

김종수의 가슴에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나 보다.

그는 고개를 푹 떨구며, 소리 없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벅스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한심하게 쳐다보지는 않았다.

김종수가 우는 이유는 비단 그녀의 노래가 감동적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

지금 그의 가슴 속에는 온갖 긍정적이고 뜨거운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벅스 또한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김종수를 공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 참여한 누군가에겐 단순히 우승이 목표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그 외의 다른 것이 진지한 목표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벅스는 김종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가 2차 예선 때 처음 입에 담았던 목표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이에게 인정을 받는 것.

힙합 씬에서도 그렇지만 이는 장르와 분야를 떠나, 수많은 사람들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 대상은 스승이 될 수도 있고, 라이벌이 될 수도 있고, 이미 세상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된 옛사람일 수도 있으며, 김종수가 김별에게 그러한 것처럼 팬으로서 동경하는 스타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인정을 받고 그 증거를 남긴다는 것은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또한 두말할 것 없이 멋진 목표임에 틀림없었다.

벅스는 아무 말도 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스 안을 바라봤다.

음악이 멈추지 않아, 3개의 훅을 연달아 부르게 된 김별.

그녀는 음악이 끝나자 헤드셋을 벗으며 부스 바깥을 둘러봤다.

“···.”

모두 자신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어서.

그녀 또한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 멋진 목표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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