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한다, 잘해 >
별이, 서연이, 정아, 유진이, 각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연습실의 불이 꺼져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들 연습에 게을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아는 심지어 영화의 주연 배우라서 시간이 많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꼭 개봉에 맞춰 데뷔하겠다는 일념으로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습실에 들렀다가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독기 가득한 눈빛에 눈을 절로 깔게 될 정도였다.
유진이 또한 연습실에 많이 드나들었는데.
연기 연습하랴, 촬영하랴,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영화에 필요한 안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랬다.
이젠 얘는 내가 ‘안무 잘 만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여도, 스스로 기준을 높게 세워서 고개를 젓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얼마나 더 발전하려고 이러는 건지.
보컬 룸 사용의 지분은 서연이와 별이가 가장 많았다.
서연이는 이제 뮤비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었으니, 활동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고.
별이는 정규 앨범에 실을 곡이 다 구하고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래도 두 곡은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
나 또한 사무실과 연습실을 왔다갔다 하며 그녀의 노래를 봐줬는데.
내가 하는 거라곤, 보컬을 감상하다가 ‘괜찮아요?’하는 물음에, ‘어, 너무 좋아.’라고 대답하는 것뿐이었다.
애들이 이제 수준이 너무 높아지다 보니, 내가 딱히 터치할 곳도 없다.
뿌듯하고 기쁘긴 한데 조금 서운한 느낌?
아이가 크면 딱 이런 기분일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별이의 보컬을 기분 좋게 듣고 있었는데.
보컬룸의 문이 열리며 정실장님이 얼굴을 비췄다.
“정실장님? 무슨 일 있어요?”
그는 별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쇼앤프루브 피처링 제안 왔습니다.”
누구의 곡인지, 그리고 제안이 누구에게 왔는지 말하진 않았으나, 뻔했다.
김종수의 곡, 그리고 별이에게 피처링 제안을 했겠지.
난 별이의 덤덤한 눈빛을 마주하다가 정실장님께 물었다.
“곡은요?”
“보냈습니다. 여기.”
그가 태블릿을 내밀었고, 우리는 바로 보컬룸의 스피커에 연결해서 들어봤다.
비트가 들리고, 김종수의 랩이 들리고, 이어서 훅 부분에 가이드가 흘러나왔다.
별이의 표정을 보려고 시선을 돌렸는데, 별이는 아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얘도 내 표정을 살펴보려는 거겠지.
내가 피식 웃자, 별이도 미소를 지었다.
곡 때문에 웃은 건 아니었다.
그냥 얘랑 있다 보니 웃음이 나온 거지.
난 음악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별아, 넌 어때? 마음에 들어?”
“전 잘 모르겠어요. 오빠는요?”
난 쩝,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난 거절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곡은 괜찮은데 네 보컬이랑은 잘 안 맞는 느낌이야.”
“네. 저도 끌리진 않았어요.”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실장님에게 말했다.
“에둘러 거절해주세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아예 피처링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별이랑 아주 적절한 매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라는 거죠?”
“예.”
다음에 좋은 기회가 오면 모를까, 일단 이 곡은 아니었다.
김종수에게는 잘 맞을지 몰라도, 별이의 보컬을 살릴 만한 곡은 아니었거든.
고개를 끄덕인 정실장님은 보컬 룸을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1시간 남았어요. 업로드.”
“네, 알고 있습니다.”
난 씨익, 미소 지었다.
뮤비까지 총 3회로 구성된 시리즈, ‘트로트 가수 김송송송’.
그 중에 1회.
사전에 아무 예고도 없이 업로드되기까지, 약 한 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
***
래퍼이자 ‘쇼앤프루브’의 심사위원, 그리고 김종수의 프로듀서가 된 벅스의 작업실.
고비 한 번 없이 음원 미션까지 올라온 김종수와 벅스는 작가에게 전해들은 소식에 탄식을 흘렸다.
벅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별 씨랑 곡이 좀 안 맞긴 하지···. 종수야, 미안하다. 나도 그건 알고는 있었는데, 그래도 너한테 맞추는 게 우선이라서.”
김종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아쉽긴 하나, 벅스가 이런 곡을 만든 의도 역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김종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억누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번 미션 통과해서 준결승 때 같이 하면 되죠.”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다.
그러려면 이번 미션을 꼭 통과해야겠지.
김종수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며 물었다.
“그럼 이 곡의 보컬은 누구로 할까요?”
“솔직히 너 이번에 탈락할 것 같지 않거든? 외부에서 피처링을 쓰는 건 좋은데 매번 그러면 간지가 안 난단 말이야. 피처링은 준결승이나 결승으로 아껴두고, 음을 좀 낮춰서 내가 부르거나 너 혼자서 다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둘이 그렇게 회의를 하고 작가에게 전달하까지 한 시간.
그리고 그때 마침, 김종수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어?”
“왜?”
동그랗게 커진 눈, 애매하게 움찔거리는 입꼬리.
김종수는 벅스에게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형, 혹시 컴퓨터 잠깐 써도 돼요?”
“어, 그래. 써.”
김종수는 득달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 유튜브를 틀었다.
김별을 검색하니, 새로 뜬 영상의 썸네일을 볼 수 있었다.
옛날 트로트 가수가 입을 법한 반짝거리는 푸른색 자켓을 입은 채.
작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입에 막 넣으려고 하는 모습.
그 귀엽고도 예쁜 썸네일에 김종수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벅스는 그런 그를 보며 실소를 지었다.
“뭐야. 급한 일인 줄 알았더니, 김별 씨 영상 떴다고 이러는 거야? 하하! 너도 어지간하다, 진짜. 너 방금 까였어.”
“곡이랑 안 어울리는데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됐어요. 김별 씨랑 엄청 잘 어울리는 곡으로 해야 좋지, 아니면 의미 없잖아요. 아무튼 이제 말 시키지 마세요. 이거 틀 테니까.”
“와···. 리스펙한다, 진짜.”
그렇게 말하면서 벅스는 은근슬쩍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13분 길이의 영상. 김종수는 바로 영상을 틀었다.
-철원읍 노래대회에서 우승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네? 어디요? 우승이요?
-철원읍이요. 노래대회에서 우승하셨잖아요.
-아···.
-그··· 너무 기뻐요.
당황하는 김별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김종수는 이 프로그램에서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대소를 터뜨렸다.
벅스는 그렇게까지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진 않았으나, 그 또한 소리 내어 웃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이름은 김송송송.
처음엔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하던 그녀가 점차 적응해가며 뻔뻔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직 영상 초반이었지만 김종수는 이 영상을 최소한 10번은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혼자 봤더라면 ‘5초 전’을 이미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눌렀겠지만, 옆에 있는 벅스 또한 재밌게 보는 것 같아서 근질거리는 손을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이렇게 찐팬이 되는 거지.’
종수는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분식집 먹방에 이어, 피디가 안내하는 ‘작곡가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김별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자막엔 ‘사장댁’이라고 뜨며 큭큭, 웃고 있는 김유민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집 안엔 작곡가가 근엄하게 무게를 잡고 있었다.
-자네가 바로 그 철원의 인재 김송송송송 양인가.
-김송송송이요.
-그래, 송송송이.
-서연아, 너 너무 심취했어.
-넌 누구냐!
-···너 컨셉은 제대로 이해했니?
-무엄하다!
사장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에서 뚝 끊긴 1회.
김종수와 벅스는 한껏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순식간에 분노가 들끓었다.
“와! 여기서 끊는다고!?”
“진짜 악마다. 피디가 악마야. 우리 프로그램보다 더 해!”
피디가 악마이긴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분노하게 되는 거지.
벅스는 헛웃음을 내뱉으면서도 눈빛을 빛냈다.
“내가 꼭 김별 씨랑 잘 맞는 곡 만들어온다. 무조건. 기대해도 좋아.”
“네, 형. 믿을게요.”
김종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대답했다.
댓글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ㅋㅋㅋㅋㅋ구서연 씬스틸러ㅋㅋㅋㅋ
-구서연 컨셉 이해 못해서 사장 등판했잖아ㅋㅋ 서연아 그거 아니래!
-철원 소녀 김송송송ㅋㅋㅋ 매력 미쳤다ㅋㅋ
-2편 내놔라ㅠㅠㅠ 김송송송 데뷔하자!!!
-김.송.송.송.절.대.데.뷔.해.
조회수와 댓글 수, 좋아요 수가 실시간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 뜨거운 반응에, 김종수는 함박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형, 저도 꼭 탈락 가능성 1%도 안 만들고 무조건 통과할게요.”
“그래. 너도 약속했다?”
“네.”
여러 가지 의미로 의지와 열정이 불타오르는 둘이었다.
“형, 바로 녹음하죠.”
“어? 벌써?”
“네, 그래야 형이 새로운 곡 만들죠.”
벅스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서연이의 후속곡, ‘우리’의 뮤비 촬영지는 파주였다.
야외 세트장이라서 우리는 새벽 6시부터 이곳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했다.
“사장님! 오! 저 기대 이상인 것 같아요! 사실 걱정 많이 했거든요.”
서연이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고, 팔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뒷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신나게 말을 이었다.
“에드 시런의 ‘Photograph’ 같은 곡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감독님이 우리 친근한 컨셉으로 한다고 했잖아요. 혹시 진짜 에드 시런처럼 엄청 평범하게 꾸미면 어떡하지? 막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진짜 꾸민 듯 안 꾸민 듯. 사장님, 저 진짜 마음에 들어요. 그쵸? 이쁘죠?”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 얼굴에 활짝 만개한 미소는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봐도 기뻐할 만했다.
빨간 체크 무늬 남방에 청바지, 그리고 흰 티라는 조합이긴 하지만, 하나하나의 디자인이 평범하지가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목걸이랑 귀걸이랑 반지도 이쁘네. 그리고 헤어도 이쁘고.”
“그쵸그쵸! 진짜 이쁘다. 쌤들이 진짜 엄청난 실력자들인가 봐요.”
헤헤, 웃음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티 없이 순수한 소녀 같아서 절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뮤비 촬영이 있는 특별한 날이니 모처럼 칭찬도 듬뿍 해주기로 했다.
그녀의 기분이 더 좋으면 결과물도 더 잘 나올 테니.
난 그렇게 판단을 마치고, 그녀가 가장 좋아할 만한 말이 뭘 지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이런 스타일이 이렇게까지 어울리진 않았을 거야. 그냥 네가 귀엽고 예뻐서 이런 스타일이 훨씬 잘 사는 거지.”
“···헐!”
그녀는 눈매를 반달처럼 휘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효과가 너무 좋다.
그녀의 기분이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 칭찬 더 해주면 안 돼요? 웬일이지? 사장님 혹시 뭐 좋은 일 생겼어요? 복권 당첨됐다거나.”
“사실을 말한 거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음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제가 귀엽고 예쁘다? 음. 진짜 사장님은 너무 정확하고 예리한 사람이에요. 전 그래서 사장님이 좋아요.”
스탭들의 시선이 점점 모아졌다.
오늘의 주인공이 그녀이기도 하지만, 촬영장에 비타민을 뿌리듯이 상큼발랄한 모습이 주변을 밝혀주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새삼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애가 콩트만 하면 그렇게 되니···.’
‘트로트 가수 김송송송’의 1회는 무서운 기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단 하루만에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에 올랐다.
별이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지만, 그 못지않게 서연이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이러니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으면 콩트를 안 시킬 수도 없게 됐는데, 또 출연시키자니 컨셉 이해도가 아주 엉망진창이라서 살짝 걱정도 된다.
다음 기회가 또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옆에서 좀 잡아주면 괜찮겠지.
“서연 씨, 스탠바이할게요!”
“네에!”
서연이는 우렁차게 대답하고선 나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사장님! 저 갔다 올게요! 잘 보고 있으세요!”
후다닥- 달려가는 서연이.
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뛰지 마! 넘어져!”
“안 넘어져요!”
얘는 어째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걱정이 된다.
딱, 물가에 애를 내놓은 듯한 심정.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꺄악!”
“어어! 어떡해!”
“서연 씨! 괜찮아요?”
자기 발에 걸려 철푸덕, 넘어진 서연이가 어색하고 기계적인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얼굴은 이미 터질 듯이 빨개진 상태였다.
저러니 내가 걱정을 안 해?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는 서연이에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차줬다.
“쯧쯧. 잘한다, 잘해.”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잘한다, 잘해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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