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 >
왕, 아니 훈장님, 아니 서연이는 목소리를 최대한 굵고 낮게 내려고 노력하며 근엄하게 물었다.
“과인이 만든 곡을 한 번 들어보겠느냐.”
“예, 작곡가님.”
대답하는 별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뻔뻔하게 해야 하는데, 제멋대로 몰입한 서연이 때문에 웃음을 참기가 힘든 모양이다.
내가 임시로나마 보컬 연습실로 꾸몄던 방.
서연이와 별이가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가운데, 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건 별이의 목소리로 녹음한 곡이었다.
“선생님, 제 목소리랑 참 비슷한 것 같아요.”
“가이드 보컬을 좋은 놈으로 구했다.”
“···.”
심지어 모니터엔 시퀀서 프로그램도 아니고, 그냥 완성된 음원을 그대로 튼 오디오 플레이어 화면이 떠 있었다.
뻔뻔하기 짝이 없지. 어쩌면 콩트에 굉장한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 김송송송. 한 번 불러보아라.”
자꾸 무게를 잡길래, 난 보다 못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서연아, 너 그 컨셉 아니라고.”
“무엄하다 하지 않았느냐!”
벼락 같은 호통이 터져 나왔다.
네 맘대로 해라, 그래.
그래도 디렉팅을 하는 장면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서연이는 어쩔 수 없이 시퀀서 프로그램을 틀었다.
물론 제대로 녹음을 하진 않기로 했다.
녹음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서, 별이가 헤드셋을 끼면 우리에게 음악 소리는 안 들리니까.
3편에 뮤직 비디오가 있기도 하니, 노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별이, 아니 김송송송은 간단하게 목을 풀고는 마이크 앞에 서서 헤드셋을 썼다.
“준비됐습니다, 선생님.”
“김송송송, 우선 부르기 전에 유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겠어. 우선 감정이 살아있어야 돼. 이 곡을 만든 작곡가로서 나는 감정이 죽은 가수에겐 녹음을 용납 못 한다. 알겠지, 김송송송?”
“예.”
“아니, 김송송송 넌 모른다. 감정은 흉내내는 게 아니라 살아있어야 한다네.”
“예, 선생님.”
“아니, 김송송송 넌 모른다. 일단 헤드셋 빼보도-“
난 문득 입이 근질거려서 그녀의 말을 뚝 자르고 다시 한번 껴들어봤다.
“서연-“
“네 이노오오옴!”
내 말도 뚝 잘렸다. 반응 속도도 빠르지.
고개를 홱 돌린 그녀가 진노한 얼굴로 날 쏘아본다.
원래 이렇게 거친 아이가 아닌데··· 얘는 다음부터 콩트 시키지 말아야 하나 싶다.
재능이 있긴 한데 너무 위험해 보여.
아무튼 나와 스탭들은 녹음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들이 헛소리를 내뱉는 걸 한참이나 가만히 들어야 했다.
그리고 오래 기다린 끝에, 드디어 녹음이 시작되려 했다.
“어디 한 번 쭈욱 불러보아라.”
“예, 선생님. 아, 근데 선생님 존함이···.”
“구서연이다.”
“···평범하시네요.”
“특별하지.”
아무래도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
이진국 감독은 뮤비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사실 요즘 제작되는 뮤비 예산에 비하면, 예산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뮤비보다 훨씬 좋은 기회임을 모르지 않았다.
구서연과 김별의 이름값 때문에.
그녀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불패일 터. 무조건 흥할 것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천재들이었으니, 조회수가 엄청나게 뽑히겠지.
‘1, 2편이 재미가 없으면 뮤비 조회수도 별로 안 나오겠지만···.’
이진국 감독은 콩트 영상이 잘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갖고 있는 인기도 인기인데, 어제의 그 촬영은 설령 발로 찍고 발로 편집해도 재밌을 만한 재료들이었으니까.
그러니 조회수와 반응에 대해선 걱정이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3편의 뮤비는 약간 사정이 다르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자신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아무리 저예산이라지만 누가 찍느냐에 따라 뮤비의 퀄리티는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질 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줄 구석은 차고 넘쳤다.
이진국 감독은 뮤비 스튜디오로 출발하기 전.
집에서 다시 한번 그녀의 노래를 들어봤다.
제목은 ‘그렇다고 말해요’.
숨겨진 의미가 깊지도 않고, 대놓고 신나는 노래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에 집중한 그의 입꼬리는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김별과 구서연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트로트 장르, 장난스러운 콩트, 그리고 제목과 가사까지.
일견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곡가가 구서연이다.
그리고 가수가 김별이다.
‘구서연 씨가 후속곡으로 하려고 만든 곡이라고 했지?’
다른 누구도 아닌, 작곡한 노래를 모두 히트시킨 구서연이 자기 후속곡으로 쓰려고 진지하게 만든 곡.
이 곡을 듣고 있자니, 그녀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곡을 만들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았다.
‘진짜 천재 같아.’
김별은 트로트라고 해서 간드러지게 부르거나 과하게 오바해서 음을 꺾지도 않았다.
댄스곡에 트로트를 가미했다는 구서연의 의도에 맞게.
트로트와 댄스곡의 경계선에 걸친 듯, 생각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트로트처럼 듣고 싶으면 트로트로 들리며, 댄스곡으로 듣고 싶으면 댄스곡으로 들린다.
이진국 감독의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게 재능이겠지.”
둘 다 천재였다. 그러니 이렇게 신인 때부터 스타덤에 오르며 대중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 거겠지.
이 기회를 자신이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운으로 그치면 안 되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또한 그녀들과 마찬가지이리라.
각자의 역할에 맞게,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예산이 적어 콩트의 연장선으로 보려면 그렇게 보이고.
여느 일류의 뮤비처럼 보려면 그렇게 보이게끔.
기회랍시고 과하게 힘이 들어가고 무리했다간 1, 2편을 본 사람들의 몰입을 깨뜨리기 십상.
그러니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이미 사전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촬영과 편집뿐.
스피커로 흘러나오던 곡이 끝나자, 이진국 감독은 숨을 길게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스튜디오로 출발할 시간.
집을 나서는 이진국의 입술엔 반듯한 미소가 지어졌고, 눈동자엔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 차올랐다.
***
일본 도쿄의 어느 한 가정집.
서연의 빅팬이 된 후지하라 사토시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일본 내에서 구서연의 인기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일도 잘하는 밴드’의 시골 편을 보고 팬이 됐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아 병원 편을 보고 팬이 됐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AMAM’에서 무관의 제왕이 된 그 역사적인 무대를 보고 팬이 됐다.
“그거 완전 미쳤었지···.”
그 영상은 벌써 몇 번을 봤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귀로만 들은 건 그보다 훨씬 더 된다.
영상 반복을 켜둔 채로, 길을 걸어갈 때나, 잘 때도 들었으니까.
그리고 최근에 ‘일도 잘하는 밴드’ 말고도 새로이 그녀에게 화제가 된 게 있었다.
사토시는 커뮤니티에 또 올라온 합성 사진을 보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MLB의 투수, 킴브렐을 흉내낸 시구.
이 시구는 많은 합성 사진을 낳았고, 이 때문에 그녀를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일본 내 MLB 팬들 중, K-POP이나 한국 연예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즐겁게 뒤지던 사토시는 문득 시선을 끄는 글을 발견하고는 바로 들어가봤다.
[미국 인기 스트리머 방송 중 구서연 리액션www]
안 들어가볼 수가 없는 제목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더 넓게 퍼지고,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영상의 길이는 꽤 길었지만 사토시는 영상 길이 따윈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현재 킴브렐이 소속된 LA다저스의 팬으로 유명하다는 스트리머.
영상 도네이션으로 서연의 시구 장면이 나왔고, 스트리머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게 뭐야! 이 친구 제구도 완벽한데? 야구 선수야?”
가볍게 던진 농담.
그런데 잠시 후, 다른 영상 도네이션이 나왔다.
그것도 ‘AMAM’에서 구서연이 기타 솔로를 연주했던 그 전설의 장면이.
이를 보는 스트리머의 미간은 단번에 좁혀졌고, 입은 서서히 벌어졌다.
채팅창 역시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온갖 반응이 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그는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이게 뭐야!? 잠깐만! 잠깐만!”
그리고 그는 원래 하려던 걸 때려치고, 구서연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영상이 길어진 거였지만, 사토시는 웃음꽃이 핀 얼굴로 빠짐없이 다 시청했다.
미국에서도 서연의 매력이 통하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문득 걱정스러운 마음이 덜컥 들었다.
“설마 미국에 먼저 가는 건 아니겠지?”
자칫 잘못하면 일본보다 미국에 먼저 진출할 것 같아,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기 더 많아지기 전에 일본에서 팬미팅이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
크랭크인.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촬영이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나도 촬영장에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은 유진이의 촬영은 없고 정아의 촬영만 있는 날.
분장팀의 손길을 받은 그녀와 나는 의자에 앉아 세트장을 둘러봤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의 내부로 꾸민 세트장은 이 바닥에서 흔히 하는 말로 ‘싼마이’ 느낌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싼티가 나지 않고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
“역시 돈이 좋아? 세트장 크고 좋은 거 봐. GO엔터 느낌도 살짝 나네.”
“···.”
굳이 우리 WE엔터에 대해서 물어보진 않았다.
대답이 어떨지는 뻔하거든.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픽, 헛웃음을 흘렸다.
“표정이 왜 그래? WE엔터라 안 하고 GO엔터라고 해서 심술 났어? 그러지 마. 오빠도 엄청 잘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있잖아. 사무실이 좀 구리면 어때.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아도 돼.”
위로일까 아니면 돌려서 놀리는 걸까.
눈을 마주보고 있는데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말을 돌리려는 와중에 그녀의 눈이 내 뒤쪽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음. 이름이 뭐랬죠?”
“박상혁입니다!”
“네, 잘 부탁해요.”
씩씩하게 인사하는 배우에게 심드렁한 어조로 대충 대꾸하는 정아.
난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말만 친절하면 뭐 해. 말투가 이런데. 좀 무던하게 말하면 어디가 덧나? 이 시나리오 보면서 느끼는 거 없어?”
“느끼는 거 있지. 선만 안 넘으면 이 정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거. 그리고 얼굴에 가면 쓰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나아. 이 바닥에선 이게 순수한 거라고. 내가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인사를 하며 돌아다니는 배우 쪽으로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저거 봐. 웃고 있잖아. 저 표정이 모욕감 느끼는 표정 같아? 열정 넘치고 좋은 눈빛이네. 음. 리딩 때 보니까 연기도 잘하더만. 이번 영화로 얼굴 좀 알리겠어. 그럼 내 덕도 좀 있으니까 나한테 오히려 감사해할 거야. 난 가면 안 쓰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촬영에 집중하고, 쟤도 스트레스 안 받으면서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이렇게 같이 성공하면 서로한테 얼마나 좋아. 안 그래?”
“···.”
겉으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사실 소름이 돋았다.
언뜻 맞는 말 같기도 해서.
좀 까칠해도 나한테 관심 없는 상사가 제일 좋은 상사였지.
이팀장처럼 마음에 칼을 품은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웃는 얼굴로 돌려 까거나, 뒷담화를 하는 건 꽤 스트레스가 됐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좋네. 좋아.”
“알아, 나도.”
세트장의 분주함이 점점 잦아들고, 드디어 대망의 첫 씬이 시작되려 했다.
정아는 소품으로 놓인 의자에서 일어나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말투가 나빠도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잖아. 곁에 있어주는 사람도 있고. 나는 그거면 됐어. 더 욕심 안 내. 평소에도 가면 쓰면서 연기하고 싶지 않아.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이미 대중들도 어느 정도 알기도 하고.”
“···.”
“그럼 나 연기하고 올게.”
“그래, 잘하고 와.”
“당연하지.”
현장은 금세 고요해졌고, 임형진 대표는 눈빛을 빛내며 심성균 감독을 쳐다봤다.
곧이어 세트장에 심감독님의 호쾌한 사인이 터졌다.
“스탠바이! 액션!”
컴백을 준비 중인 ‘류지혜’.
첫 촬영 씬은 그 류지혜가 소속사 직원들을 갈구는 장면이었다.
슈퍼스타라는 것과 싸가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소속사에도 그녀의 편이 없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또각또각, 걷는 소리만으로도 냉기가 풀풀 풍기며 화가 잔뜩 났다는 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저 모습을 보며, 정아의 모습과 흡사한 면이 있다며 웃음이 나왔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
그녀는 아마 나를 두고 말한 것일 터.
정아는 주변의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하며, 사람들의 호흡과 시선, 집중력까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제 맘대로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첫 씬부터 재능으로 찍어 누르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작은 몸으로부터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재능.
소름이 돋아서인지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새삼스레 경악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잘한다, 우리 정아.’
<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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