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61화 (61/124)

< 철원의 인재 김송송송송 양인가 >

“사장님, 오셨습니까.”

유형중 감독님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줬다.

뮤비 제작사, ‘플라워 프로덕션’.

듣기론 이제 유감독님의 입지가 이곳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는데, 어떻게 된 건지 차림새는 처음에 봤을 때랑 비슷하다.

돈 좀 벌었으면 좋은 걸로 사 입지.

피디도 그렇고, 영화감독이나 뮤비감독 할 것 없이, 감독이라는 사람들은 죄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래도 얼굴은 폈네.

난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서연이 곡은 들으셨어요?”

“예. 콘티도 바로 짰습니다.”

어련할까.

그는 스케치한 것을 내게 내밀며 설명했다.

“곡 내용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말하는데,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있으면 즐거움과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과 분노는 줄어든다고 말하잖아요. 장르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어쿠스틱이고, 가사도 친근하니까 뮤비도 대중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배경이나 스타일링도 수수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정장을 입거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좋은 집, 좋은 차 옆에 있는 건 곡에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난 간간이 고개만 끄덕이는데, 그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목소리와 눈빛에 열정이 드글드글한 게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 말고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일이 지치고 지겨울 만도 한데 말이다.

난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유형중 감독이라면 그것 또한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린 서연이의 뮤비 얘기를 한참 동안 하다가, 뮤비 얘기가 끝났을 때 말을 꺼냈다.

“감독님. 감독님이 맡아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

워낙 바쁜 사람일 테니, 그를 자극하기 위해선 서연이와 별이의 얘기를 모두 꺼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 뮤비에 열정적인 사람을 컨텐츠나 찍자고 데려오기엔 쉽지 않을 테니까.

“서연이가 이 곡을 만들기 전에 새로 하나 만든 곡이 있습니다. 편견 없이 들으면 혁신적인 곡인데, 그걸 별이가 하게 됐어요.”

“···!”

“그리고 이 곡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매할 생각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약을 팔았고, 그도 거의 넘어왔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아쉬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뒤에 일정이 꽉 차서요. 아쉽지만 금방 들어가야 하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일정이 문제였다. 하긴, 바쁜 사람인데 서연이 뮤비를 찍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그렇다고 서연이의 뮤비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쩔 수 없다. 다른 외주 팀을 구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감독님이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아! 사장님, 어쨌든 3편에 뮤비도 찍는다고 하셨죠?”

“예. 말씀드렸듯이 거창한 느낌이 아니라, 저예산으로요.”

평소에 찍던 뮤비에 비해서는 초초저예산이 맞겠지만 아무튼.

“저희 회사에 유튜브 컨텐츠 하다가 뮤비 찍겠다고 넘어온 친구가 있습니다. 아직은 조연출이지만 능력은 당연히 출중하고요. 컨텐츠까지 겸하는 거니, 오히려 저보다 더 나을 겁니다.”

귀가 솔깃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초저예산이라지만 어쨌든 뮤비 아닙니까. 그것도 서연 씨 작곡에 별 씨 노래요. 그 친구 한 번 만나보시고 얘기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만나보는 건 손해 없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데려오겠습니다.”

빨라서 좋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아주 잠시 기다리니, 문이 열렸다.

1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WE엔터의 김유민입니다.

“···!”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누군지도 말을 안 해줬나 보다.

이 정도면 그냥 지나가던 사람 목덜미 잡고 던져 놓은 수준이나 다름없다.

“이, 이진국입니다.”

그의 이런 리액션이 재밌어, 나도 한 번 대뜸 그에게 기획서를 내밀어봤다.

“작곡가는 구서연이고, 가수는 김별입니다. 감독님, 한 번 봐주시겠어요?”

“허억!”

더욱더 커다래진 눈이 뒤따라 들어온 유형중 감독을 향했다.

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진국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기획서를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동자가 글자를 읽으며 좌우를 오갈수록, 그의 자세와 표정이 변했다.

햇병아리에서 숙련자로, 숙련자에서 프로로, 프로에서 베테랑으로.

우리가 직원들끼리 회의해서 작성한 기획서를 다 읽은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 김별 씨한테 어디까지 설명했습니까? 이 기획서, 보여주셨습니까?”

이제 내가 얼떨떨했다.

“아뇨. 처음에 이걸 하기로 한 게 별이랑 얘기하다가 나온 거라서, 별이도 대충 알고 있긴 한데, 기획서를 보여주진 않았습니다.”

“얘기는 어디까지 된 겁니까?”

“···트로트 가수 지망생인 교포, 그리고 이름이 제니퍼라는 것까지만 얘기했습니다. 콩트도 할 거라고 말했고요.”

그의 입가에 씩, 미소가 번졌다.

전문 분야이기 때문인지,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묵직해졌다.

그는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앞으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마세요. 김별 씨는 연기도 안 해봤고 콩트에도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기획을 다 알려주면 거기에 끌려다닐 수가 있어요. 김별 씨 같은 경우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적절할 때 이끄는 건 제가 할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중요한 건 컨셉, 딱 컨셉만 제대로 주지시키면 될 겁니다. 그리고 일단 교포 컨셉은 버립시다. 제대로 소화할 수 없을 거예요. 대신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소녀로 하죠. 이름은 김송송송.”

당당한 태도다. 통성명과 기획서만 보여줬을 뿐인데, 자기가 맡는 게 확정됐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믿음직스럽다. 근거 있는 자신감 같아서 좋아.

그런데···.

“김송송송이요···? 이름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것 같은데요?”

“바로 그게 포인트입니다. 기본적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야 해요. 이름이 시작점입니다. 이름부터 어이가 없어야 김별 씨나 시청자 분들도 더 쉽게 컨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전체적인 컨셉은 다큐멘터리입니다. 김송송송은 읍내 오디션에서 우승해서 저희가 인터뷰도 하고 작곡가도 구해주고 뮤비까지 찍어주는 걸로.”

“읍내··· 오디션?”

그는 기획을 보자마자 단번에 모든 것을 파악하고 즉석에서 발전시키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리고 구서연 씨도 출연할 수 있습니까? 작곡가 역할을 서연 씨가 맡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실제 이 곡을 쓴 작곡가이기도 하고요.”

“네, 되긴 합니다.”

“네, 그럼 작곡가로 출연시키시고 녹음실에서 김송송송과 처음 만날 겁니다. 곡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고 디렉팅도 할 거고요.”

“하하. 그런데 감독님, 이미 녹음이 끝난 상태라서요.”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김별 씨한테는 그 어떤 것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 확신에 찬 눈빛에, 난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형중 감독의 소개로 만난 이진국 감독님은 이름 그대로 정말 진국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뮤비가 뭐라고.

어쩌면 정아 같은 케이스일지도 모르겠다.

연기를 잘하는데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속으로 납득하고 있는데, 앞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크흠. 그런데··· 뮤비는··· 예산을 조금만 더··· 높이면 안 될까요? 컨셉은 살리되 세트도 좀 짓고··· 스타일링도 좀 다양하게 바꾸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띄엄띄엄 말하는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베테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앞엔 애송이 감독이 자리하고 있었다.

감독이란 사람들은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예. 그러시죠.”

내 짤막한 대답에 그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피어났다.

***

“별 씨, 뻔뻔한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실수를 해도 뻔뻔하게. 애드리브가 생각이 안 나도 최대한 뻔뻔하게. 안 웃겨도 그냥 뻔뻔하게 밀어붙이시면 돼요. 돌발 상황이 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경직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컨셉에 잡아먹히셔야 해요. 지금부터 김별 씨는 김송송송 씨입니다. 아시겠죠?”

“···네.”

이진국 감독과 대화를 마친 별이는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물었다.

“사장님, 근데 오늘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예요?”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려주지 말래. 넌 그냥 컨셉만 지켜. 김송송송.”

“송송송···.”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리는 잠시 나란히 서서 현장을 둘러봤다.

뮤비는 내일 찍기로 했지만 콩트는 오늘 한꺼번에 다 찍기로 해서인지, 이진국 감독의 입은 쉴 틈이 없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미지수이지만 일단 오늘은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 그 자체였다.

“별 씨, 별 씨도 이리로 오세요.”

“네!”

스탭의 부름에 차 안으로 달려가는 별이.

잠시 후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흰색 티셔츠와 부츠컷 연청바지, 그리고 번쩍번쩍 빛을 요란하게 반사하는 파란색 자켓을 걸치고.

질끈 묶은 머리엔, 마찬가지로 번쩍번쩍 빛을 반사하는 새파란 왕리본이 달려 있었다.

“풉.”

“···.”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파란색 반짝이 옷이랑 대비되니까 더 웃기네.

시골에서 올라온 순박한 소녀, 컨셉이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난데없이 감독님의 목소리가 퍼지더니, 곧바로 켜진 카메라.

별이는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시작된 촬영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우리가 있는 곳은 우리가 회사를 옮기기 전의 그 원룸촌의 골목.

이진국 감독은 어버버하고 있는 별이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철원읍 노래대회에서 우승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네? 어디요? 우승이요?”

“철원읍이요. 노래대회에서 우승하셨잖아요.”

“아···.”

나를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내는 그녀의 눈이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로 보며 큭큭, 웃었다.

“그··· 너무 기뻐요.”

“우승 상품으로 데뷔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녀는 여전히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네. 너무 기쁩니다.”

“이제 작곡가에게 갈 겁니다. 가시죠.”

“···네. 그런데 어디로···.”

“이쪽이잖아요.”

“그렇죠. 맞다.”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인터뷰는 계속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촬영이 시작되는 바람에 당황했을 터.

하지만 몇 번 더 질답이 이어지니, 그녀도 빠른 속도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김송송송 씨에게 트로트란?”

그녀는 덤덤하게, 그리고 감독이 말했던 대로 아주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가 엄청 매력적이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좋은 장르잖아요? 저한테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트로트로 우뚝 서고 싶어요.”

“아! 마침 저기 분식집이 있네요. 트로트 가수 지망생 김송송송 씨에게 분식이란?”

“트로트처럼 구수하고 맛있다. 제 입맛에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먹고 싶어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분식집으로 이동했다.

분명 방금 전에는 작곡가한테 간다고 했었는데.

이름을 왜 김송송송으로 했는지 알겠다.

이름부터 어처구니가 없어야 별이나 시청자나 받아들이기 쉬울 거라는 말이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팬들이 사랑하는 별이의 먹방이 이번엔 분식집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안에서 분식을 야무지게 먹고 나온 별이, 아니 김송송송 씨의 입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별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녀의 눈이 자꾸 흘끗흘끗 내게로 향했다.

그리고 아파트에 들어와서야, 그녀도 목적지가 어딘지 확실하게 알았나 보다.

목적지는 우리집이었다.

이미 안에는 카메라가 잔뜩 설치된 상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우리집 안으로 들어간 별이를 맞이한 것은 다름아닌 서연이였다.

“자네가 바로 그 철원의 인재 김송송송송 양인가.”

“김송송송이요.”

“그래, 송송송이.”

목소리를 잔뜩 깔고 엄한 얼굴로 말하는 서연이.

분명히 컨셉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천재 작곡가였던 것 같은데, 웬 훈장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서연아, 너 너무 심취했어.”

미간을 찌푸린 서연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호통쳤다.

“넌 누구냐!”

“···너 컨셉은 제대로 이해했니?”

“무엄하다!”

아, 훈장님이 아니라 왕이었구나.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나를 찍고 있었고, 이진국 감독님의 얼굴엔 함박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철원의 인재 김송송송송 양인가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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