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52화 (52/124)

< 저 분은 누구십니까? >

이른 아침의 종편 HTBC 로비.

<일도 잘하는 밴드>의 메인 피디, 황종윤은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쫙 편 채 넓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흐흐.’

황종윤 피디는 어제 집에서 천국을 봤다.

아니, 천국에서도 이 정도의 쾌감은 맛보지 못할 거다.

거긴 성과급과 연봉 협상, 승진, 명예, 커리어, 권력이라는 달콤한 맛이 없을 테니까.

“흐흐흐흐.”

ARMnet에서 방송된 시상식, ‘AMAM’.

집에서 얼마나 재밌게 봤는지, 아마 팬들도 이렇게까지 열광적으로 보진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월드컵을 볼 때보다 더 흥분하고 몰입해서 봤으니 말해 뭐 할까.

‘무관의 제왕 구서연?’

황피디의 입가에 부처 못지않은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상식을 화끈하게 찢어놓은 구서연을 수식하는 말이었다.

무관의 제왕 구서연.

기사는 물론, 커뮤니티와 SNS, 유튜브에서도 어찌나 화제였는지.

[구서연 특별무대 가수들 반응 모음], [무관의 제왕 직캠 ㅎㄷㄷ(지림 주의)], [구서연 AMAM 라이브 해외반응] 등등.

이쯤 돼서 ‘자볼까?’하면 어김없이 뜨는 새로운 영상들.

사람들이 새벽에도 참 부지런하게도 일했다.

이 때문에 황종윤 피디는 인터넷 반응을 보느라 밤을 꼴딱 새버렸지만.

피곤하기는커녕 힘이 펄펄 나는 느낌이었다.

‘미쳤지 진짜.’

-Wtf?????

-OH MY GOD!!

충격을 받고 경악하는 해외반응은 언제 봐도 즐거웠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아군이라면 더더욱.

구서연뿐만이 아니다.

‘김별은 또 어떻고?’

-김별 무대 보느라 턱 빠진 거 아직도 안 끼워짐;;;

-쟨 진짜 재능이다ㅋㅋㅋㅋ 나 거실에 이거 틀어놨는데 김별 노래 듣자마자 밥 먹던 아버지 숟가락 놓으심ㅋㅋ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언니. 개귀여워··· 개귀여워··· 개귀여워··· 너무 잘해··· 너무 예뻐··· 너무 사랑스러워··· 언니 혼자 다 가지려는 거야? 그럼 더 가져! 다 가져!

김별이 노래를 끝내주게 잘한다는 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새삼 감탄했을지언정 예상 외의 충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수상소감에서 보여준 모습은 얘기가 좀 달랐다.

-ㅋㅋㅋㅋㅋㅋ오빠 울어요? 울지 마세욬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개예쁜데 말투는 또 왤케 귀엽냐ㅋㅋㅋ

-내가 사장이었어도 진짜 키울 맛 나겠다.

-어떻게 우는 것도 저렇게 귀엽냐? 웃느라 잇몸 다 말라붙었네.

이것만 해도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지경인데, 화제가 된 건 또 있었다.

구서연과 김별, 그리고 기타 등등의 합동 무대.

구서연, 김별과 한 배를 탄 몸이기에 당연히 그녀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긴 했으나.

그런 입장을 싹 빼고 정말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려고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완전 발라버렸지.’

그냥 바르기만 한 것도 아니다.

-눈빛 새침하넼ㅋㅋㅋㅋ 귀여워~

-무대 올라가기 전에 뭔 일 있었음?ㅋㅋㅋㅋ 심통 난 고양이랑 강아지 같네.

-진짜 몸이 부서지도록 추는 건 다들 같은 것 같은데 왜 쟤네 둘만 보이냐?

└???? 예? 무대에 구서연이랑 김별밖에 없는데 저 둘만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아ㅋ 맞네ㅋ

댄스 가수로서도 어필을 제대로 했던 무대.

기존까지는 김별이 노래를 잘하는 이미지, 구서연이 기타를 잘 치는 이미지만 부각되었었다면.

이번 시상식으로 인해, 그녀들이 ‘잘하는 건 무시무시하게 잘하고, 다른 것도 다 잘한다’라는 게 제대로 알려졌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다 화제가 됐는데, 둘이 서로 동갑내기 친구다.

같은 회사인 데다가, 한 명은 다른 한 명의 데뷔곡과 후속곡을 써주기도 했다.

친구 그 이상. 대중들은 그녀들을 거의 같은 그룹의 멤버, 혹은 깐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둘을 모두 섭외한 황종윤 피디의 입장에서는, 호재 중에서도 최상의 호재!

기분은 하늘을 뚫었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

밉살스럽던 동기가 황피디의 눈에 들어왔다.

“어? 최피디!”

장거리 연애 중인 애인을 아주 오랜만에 보듯,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황피디.

‘이게 행복이지, 이게 행복이야. 하하하!’

최피디의 얼굴은 와락 일그러졌다.

***

SJ스튜디오의 임형진 대표와 심성균 감독.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임형진 대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가 너무 일찍 왔죠? 조금만 이따 갈까요? 너무 일찍 와도 좀 그러니까요.”

“···네. 그렇죠. 너무 일찍 왔네요.”

“···.”

“···.”

궁색한 변명이었다.

물론 일찍 온 것도 일찍 온 거지만, 그들이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다.

차 안이 덥지도 않은데 심성균 감독은 벌써부터 얼굴에 땀이 흥건하게 나고 있었고.

입 안이 말라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지 오래였다.

구두 안에 감춰진 발가락도 꼼지락꼼지락 가만두지 못한다.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황급히 손을 내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후우.”

그들의 눈은 같은 곳을 바라봤다.

눈앞의 빌딩에 WE엔터가 자리한 사무실.

‘저 안에···.’

저 안에 유정아가 있다.

자신이 찍을 첫 상업영화의 주연 캐스팅 미팅을 하기 위해서 그녀가 와 있다.

시나리오를 건넸을 때 기대가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되길 기대하는 게 더 확률이 높다고 생각될 정도의 희박한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거짓말 같이 연락이 왔다.

그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말 유정아의 캐스팅 건 때문에.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음에도 긴장감에 살이 떨릴 지경이다.

“···감독님.”

적막 속에서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 오늘 제대로 어필 못하면··· 정말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습니다.”

“···예.”

심성균이라고 다를까.

무려 자신의 첫 상업영화다.

잘만 하면, 첫 번째 상업영화에 거장들이 줄을 서며 탐내는 주연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

미팅까지 왔는데, 만약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아찔하다.

잠깐 상상만 해봤는데 몸서리가 처졌다.

심감독은 말라서 갈라지는 입술을 침으로 적시며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목숨을 걸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다. 앞으로 평생 다신 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오늘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터.

오늘은 결전의 날이다.

임대표와 심감독은 살 떨리는 긴장감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이제···.”

“···좀만 더 있다가 가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 그게 좋을 것 같네요.”

만에 하나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르고, 예측하지 못할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도로가 막힐지도 모르기에 한참이나 일찍이 출발했던 그들.

무려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한 그들이 차에서 내린 건.

약속 시간이 되기까지 20여분이 남은 시각이었다.

***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대표님. 저희가 갔어야 했는데.”

“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여기로 꼭 오고 싶었습니다.”

“마, 맞습니다! 저희가 꼭 오고 싶었습니다.”

이미 서로 인사를 마친 뒤.

툭 덧붙인 말에 화들짝, 커다란 반응이 되돌아왔다.

정말 어지간히도 긴장했나 보네.

그들의 시선은 내 옆으로 찰나간 이동했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정아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

그들이 그녀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가 이 모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대로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입만 뻥끗대고 눈만 굴리다가 말라 죽을 것 같다.

“시나리오는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준비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

어차피 의미도 없다.

정아의 캐스팅이 확정되면 판이 완전히 뒤집히게 될 테니.

“캐릭터도 정말 좋더라고요. 정아랑 너무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내 말에 입꼬리가 풀어지는 임대표님.

그러나 심감독님의 눈매에서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열어 강하게 설득하듯 말했다.

“걱정하시는 게 어떤 부분인지 알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엔 댄스가 필요한 씬들이 몇몇 나와 있지만, 만약 유정아 배우님이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아주신다면, 충분히 수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걱정 안 했는데?

난 정아를 흘끗 쳐다봤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입꼬리만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

“노래에 대해선 말씀 안 하시네요?”

“예, SNS에서 김별 가수의 노래를 커버한 걸 이미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노래에 있어선 저희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겠더라고요.”

“그 말씀은··· 댄스는 걱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뜻이죠?”

“···!”

아차, 싶은 듯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가는 얼굴. 사색이 됐다.

하지만 정아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제 댄스는 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마, 맞습니다! 춤을 엄청 잘 추실 것 같아요! 정말로요!”

“···제가 노래랑 댄스에는 자신이 좀 있어요. 그저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정말 아이돌처럼요.”

“그럼요! 저희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표님?”

“그, 그렇습니다! 저희도 유정아 배우님이-“

그들이 말을 이을수록 유정아의 표정이 조금씩 떨떠름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그들은 진땀을 빼며, 그녀가 얼마나 댄스를 잘 출 것 같은지를 더 장황하게 묘사하며 설명했고.

유정아의 입에서는 마침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

“···!”

실시간으로 휙휙 바뀌는 표정.

그들의 눈동자는 절망으로 물들고,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죽어갔다.

정아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요. 저 정말 댄스도 잘한다니까요.”

“저, 저희도 그렇게 생각-“

“하아.”

누가 봐도 믿는 사람들 같지가 않다.

정아는 이를 꽉 깨물다가, 눈을 부라리며 나를 째려봤다.

“오빠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여기 구경하러 왔어?”

순간, 심감독이 눈빛을 빛냈다.

그래,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시나리오 속 ‘류지혜’와 찰떡이지.

스타병으로 인성논란이 생겨서 폭삭 망해버리는 탑스타.

감독으로서 눈빛을 빛낼 만하다.

“크흠!”

난 웃음이 터지려는 걸, 헛기침으로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그럼 직접 한 번 보시겠습니까?”

“네?”

“예···?”

“···오. 그래, 그게 좋겠어.”

유정아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보여드릴게요. 어차피 한 번쯤 보여드려야 제대로 진행이 되든 말든 할 테니까.”

그들은 마치 악마의 미소를 보았다는 듯,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머릿속으론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진심으로 보일지 치열한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퍽 기대가 됐다.

이러다가 혼절하는 거 아닐까 몰라?

***

우리는 나란히 아랫층에 있는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다.

쿵쿵, 문 너머로 진동이 느껴진다.

문을 여니, 역시나 유진이가 부지런히 땀방울을 흘리며 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댄스 괴물 아니랄까 봐, 연습 장면을 잠깐 보는 건데도 눈이 호강한다.

가끔 보면 정말 사람이 맞나 싶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지?

“···아.”

유진이는 거울에 비친 우리를 발견하고 몸을 빙글 돌렸다.

음악을 끄고는, 의아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선배, 저 나갈까요?”

정아의 댄스를 보여줘야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려던 찰나.

“···저 분은 누구십니까?”

떨리는 목소리.

용암처럼 들끓는 눈동자.

심성균 감독의 눈이 이유진에게 꽂혔다.

< 저 분은 누구십니까?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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