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들 편 드는 거예요? >
“그럼 저희 먼저 가볼게요.”
“형! 다음에 봐요!”
“갈게요, 형.”
“다시 한번 축하해요, 형.”
그들의 발길이 멀어졌고.
우리는 다시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뭘 두고 온 것 같지는 않다.
마땅히 있어야 할 짐들만 있는 것 같은데.
가방 안에 있나?
“뭘 두고 왔다는 거야? 챙길 게 뭐 있어?”
“생각해보니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별이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전, 시퍼렇게 벼려졌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눈빛이 형형하다.
설마 와인드업 때문인가? 걔네가 뭘 했다고?
‘아.’
어쩌면 자극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걔네가 별이랑 서연이가 인사했는데도 본 척 만 척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와인드업은 그 자체만으로 신인 가수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그룹이니 더 말해 뭐 하겠는가.
아무튼.
‘딱히 나쁠 일은 아니지.’
거창하게 라이벌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목표를 잡아두고 달리는 건 언제나 추진력을 주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다시 발길을 돌려 시상식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아직도 귓가에 방금 전의 그 호칭이 맴도는 느낌이다.
내가 오빠라는 호칭에 히죽대는 사람이 절대 아니거늘, 이상하게 다리가 가볍다.
어깨 뭉친 것도 살짝 흐물흐물 풀리는 것 같고.
“씨이!”
갑자기 그때, 서연이가 씩씩대는 소리가 들렸다.
미간이 또 잔뜩 좁혀져 있다.
얜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이래.
“이게 말이 돼요? 사장님도 그래!”
“나? 내가 뭘.”
갑자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혹시 나만 모르는 뭔가 있었나?
내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되묻자, 별이와 서연이가 걸음을 멈추고 내게로 몸을 돌렸다.
날카로운 눈빛 한 쌍, 그리고 타오르는 눈빛 한 쌍.
두 쌍의 눈이 나를 향해 ‘진짜 몰라?’라며 묻고 있다.
근데 진짜 모른다. 내가 뭘.
서연이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키워준 은혜도 까맣게 잊고 이제 와서 친한 척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사장님은 또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있고!”
목소리는 또 한껏 낮추고 있다.
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박또박 말을 덧붙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방관했잖아요. 심지어 정아 언니도 도와줬는데.”
“···.”
“아니면 저희가 모르는 게 있어요? 물밑에서 도와줬다거나, 아니면 사장···오빠한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었다던가.”
둘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아니 진지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말 그대로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는 헛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난 또 뭐 별거라고.”
“사장님!”
“오빠!”
이제 완전히 오빠로 굳혀진 모양이다.
경중을 따지자면 차라리 이게 더 큰 일인데.
난 어깨를 으쓱이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쟤넨 쟤네고 우린 우리야. 안 도와줬다고 서운해할 필요 있어? 같이 성공하면서 정이 안 붙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거랑 이건 별개의 문제지.“
유정아라는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그리고 정아의 도움을 받은 뒤에도 힘들었다면 또 모르겠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국이었으면 당연히 나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겠지.
그 경우엔, 그들이 도와주지 않았을 때 서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당시, 내 옆에는 서연이라는 천재 작곡가가 붙어 있었고, 별이라는 천재 가수도 있었다.
보기만 해도 뱃심이 두둑해지던 애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아의 도움 정도면, 아니 한 번의 방송 노출 정도면 뜨게 할 자신이 있었다.
와인드업의 도움이 절실했었다면 모를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친한 척? 할 수 있지.
비즈니스 관계라는 틀 속에서는 상당히 친한 축에 속했지만, 그렇다고 사적으로 가깝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친한 동료라도 회사에서 나오면 신경을 못 쓰거나 남이 되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렇게 마주쳤을 때 그 정도의 인사쯤은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나.
그녀들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설마··· 우리 잘 못나간다고 그 사람들 편 드는 거예요?”
눈썹을 한껏 좁힌 서연이의 물음에, 별이의 눈이 순간 커다랗게 크기를 키웠다.
“뭔 소리야! 아니야!”
내 입에 꽤 비싼 방음장치가 달린 모양이다.
왜 코앞에 있는 저 귓가에 닿지 않는 느낌이지?
번들거리는 눈빛.
별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서연아.”
“응. 당연하지.”
이젠 눈빛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모양이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란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왠지 소외된 기분이네.
그녀들의 등 뒤로 의욕이라는 감정이 넘실대는 게 보인다.
몸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깥으로 줄줄 새고 있는 모습.
난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며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아무튼 의욕이란 건 끓어오를수록 좋은 거니까.
***
관계자석에 앉아 시상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박수한 대표도 보이고, 아까는 보지 못했던 이팀장도 보인다.
그리고 가수석.
시상식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지금.
관객들의 시선은 모두 저기를 향해 쏠려 있었다.
아마 상당수는 와인드업의 팬들이겠지.
저 중에 별이와 서연이의 팬도 있겠고.
나는 올해도 빠지지 않고 찾아온 시상식을 눈에 담으며 즐겼다.
그 와중에 이수진은 복귀했네?
자숙한지 얼마나 됐다고.
“애들이 사장님 사랑이 지극하네요. 하하!”
정실장님이 짓궂은 얼굴로 말하는데, 뭔가 놀리는 것 같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자, 옆에 있던 박실장님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중요한 무대 전에 저렇게 불타오르면 좋죠. 시상식이 처음이라 떨릴 수도 있는데 쓸데없이 긴장도 안 할 거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 생활 좀 더 하다 보면 알게 되겠죠. 비즈니스 관계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정실장님이 여기에 덧붙였다.
반응도 안 해줬건만, 그럼에도 재밌는 모양이다.
“그럼 사장님은 애들이랑 비즈니스 관계예요?”
씨익 웃고 있는 얼굴이 얄밉다.
내가 사장인데 농담을 건네는 데 주저함이 없네.
‘옛날에 형님이라고 불렀을 때 쌓인 인연이 문제지.’
얄밉긴 한데 그렇다고 정말 틀에 박힌 관계처럼 딱딱하게 사장처럼 대하면 그건 그것대로 싫을 것 같긴 하다.
그나저나 애들이랑 비즈니스 관계라···.
난 멀리 앉아 있는 그녀들을 바라봤다.
여전히 눈빛을 불태우고 있다.
“···음.”
비즈니스 관계 맞지.
아무튼 계약으로 묶인 사이니까.
그런데, 꼭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언제든 그녀들과 사적으로 만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설령 좀 더 연예계 경력이 쌓여도, 비즈니스 관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날이 온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녀들과의 이 관계가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 대답을 기다리며 히쭉 웃고 있는 정실장님.
그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 난 한숨 쉬듯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하하!”
그들과 함께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시상식이 시작됐다.
***
뒤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심히 거슬린다.
목에 박힌 가시처럼 자꾸 콕콕 찔러온다.
그럴 때마다 열불이 뻗친다. 하지만 가시를 빼낼 수도 없다.
박수한 대표는 심기가 불편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은연 중에 티가 나긴 했던 모양이다.
자신과 함께 온 이팀장이나 다른 직원들 중에 입을 여는 이가 없다.
모두 입을 다물며 침묵을 지킬 뿐이다.
‘김유민···.’
야심차게 런칭한 걸그룹, 레모네이드.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다만, 성적이 좋다고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승승장구하고 있는 다른 가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것도 다른 기획사도 아니고 신생.
심지어 그 사장이 자신의 밑에 있었던 부하직원이었다.
설령 그렇게 한 사람이 생전 본 적 없는 이라도 경계심이 들고 눈에 거슬렸을 텐데.
부하직원이었으니 더더욱 심기가 불편했다.
이 회사에서 배우고 이 회사에서 실력과 경력을 쌓은 김유민.
그가 출신 회사를 물어뜯고, 발을 디딜 땅을 허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가수가 김별이다.
야심차게 런칭한 걸그룹의 멤버가 될 뻔했던 김별.
그녀가 그룹으로 데뷔하지 못했던 원인을 따지자면, 최이사와 이수진은 물론 자신에게도 있겠지만.
만약 김유민이 김별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회사 내에서 김별을 키웠더라면?
물론 레모네이드 하나 문제가 된다고 해서 거대한 성을 쌓은 GO엔터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터.
하지만 공든 탑이 작은 균열로 인해 무너지는 꼴을 너무 많이 봐왔던 그에게 있어, 담담해할 만한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와아아아!
-꺄아아아!
함성이 장내를 가득 채운다.
시상식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무대.
레모네이드의 최진솔, 하트하트큐트의 제이제이.
그리고··· 구서연과 김별의 합동 무대였다.
“···.”
“···.”
“···진솔이가 참 잘하네요.”
파트는 비슷할진대, 최진솔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왜. 왜.
‘저 친구도 김유민이 뽑았는데, 대체 왜.’
김별과 구서연만이 자석의 S극과 N극이 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양분해서 빨아들일 뿐이었다.
팬들은 무대를 하는 그녀들의 노래와 표정, 댄스, 외모 등을 비교하며 떠들어댈 터이나.
박수한 대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휘황찬란할 정도의 존재감.
‘언제 저렇게···.’
원래 저랬었나?
이를 누구도 못 보고 김유민, 저 혼자서만 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어째서 그렇게 회사에 들이받으면서까지 그녀를 챙겼는지.
남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
거대한 둘 사이에 낀 제이제이만이 간신히 일인분의 몫을 하고 있었다.
김별들의 무대를 직관하는 건, 연습생일 때를 제외하곤 이번이 처음.
구서연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박수한은 그녀들의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관객들의 환호성은 점차 크기를 키웠고.
유난히 구서연과 김별 파트에서만 압도적인 환호성이 나오고 있다.
무대를 보는 내내.
온갖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떠돌아다니다가 저들끼리 뒤엉켰다.
“으음···.”
불편한 침음이 흘렀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도, 문제를 바로잡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AMAM’의 시상식에 상은 고작 다섯 부문이다.
예전, 시상식들이 범람했을 적엔 이름을 들어봐도 이게 대체 무슨 상인지 모르겠을 상들이 즐비하게 있었건만.
지금은 깔끔하게 6개 부문으로 나뉘어졌다.
올해의 앨범, 올해의 가수, 올해의 노래, 인기상, 신인상 남자, 신인상 여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문은 오로지 딱 하나.
신인상 여자 부문.
우리로선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는 남자 신인상 부문이 지나가고 몇 개의 무대가 더 이어졌다.
아직 별이의 특별 무대도, 서연이의 특별 무대도, 그리고 와인드업의 특별무대도 하지 않은 시점.
레모네이드가 짧게 무대를 했지만 싸늘한 반응만을 얻고 내려갔다.
소수의 팬들은 일당백의 기세로 소리를 질러댔지만, 말 그대로 소수의 팬들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장내 안에 그대로 파묻혔다.
아무튼, 그녀들이 내려간 직후.
곧바로 커다란 스크린에 VCR이 재생됐다.
[여자 신인상 부문]
이 글자가 떠오르자.
방금 전의 그 적막을 확 걷어내듯, 관객들의 입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김별!”
“구서여어언!”
“김벼어어어얼!”
“하트하트-“
“레-“
여러 이름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서연이의 이름까지도 들린다.
“하하.”
후보에도 없는데, 후보에 이름을 올린 하트하트큐트와 레모네이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지르고 있는 듯하다.
‘데뷔한지 얼마나 됐다고.’
뿌듯함에 어깨가 쫙 펴진다.
후보에도 없기 때문에 서연이 만에 하나라도 서연이가 상을 타는 일은 없을 터.
그래도 이따 특별무대까지 하면 저 팬들의 아쉬움은 싸그리 사라지겠지.
그들 모두 웃는 얼굴로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스크린에 차례대로 VCR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인터뷰 장면은 따로 따지 않았지만, 그들의 활동 무대와 뮤비의 일부 장면이 비친다.
그리고 화면에 별이가 나왔을 때.
가장 큰 함성이 터졌다.
이걸 봐도 누가 상을 받게 될지는 뻔하지.
관객들도 모두 알고 있는 거다.
-신인상 여자 부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과가 뻔한데.
MC의 말에 침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주먹이 꽉 쥐어지고, 가슴은 점점 세차게 두방망이질을 한다.
다급히 별이가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니.
그녀 또한 마른 침을 삼키며 무대 위를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서연이는 가슴께로 손을 모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다.
누가 보면 얘가 후보인 줄 알겠네.
조마조마한 심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제발.’
앞으로 착하게 살 테니까 별이가 타게 해주세요!
-신인상 여자 부문입니다.
제기랄.
이미 했던 말을 또 반복하네.
애를 태우려고 아주 작정을 했는-
-김별 씨! 축하드립니다!
“우와아아아악!”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내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는데, 이 소리는 다행히도 멀리 뻗어나가지 못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
“끼오오오오오-!"
팬들도 나 못지않게 과잉 흥분 상태였거든.
< 그 사람들 편 드는 거예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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