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는 다시 무대로(유료 시작) >
누군가에겐 하루 아침에 뜬 반짝 스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터질 게 터졌다는 듯 담담하고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이었다.
구서연의 화제가 그러했다.
“우와! 미쳤다! 피디님! 미쳤어요!”
“우리··· 완전 저점 매수했구나···?”
“대박이에요!”
<일도 잘하는 밴드>의 작가들이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인터넷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섭외가 초대박이 났으니까.
프로그램은 아직 녹화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대박이 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들은 당연하게도 구서연을 섭외하기 전, 그녀에 대해 조사해봤었다.
그리고 구서연의 행보에 대해 처음부터 최근까지 샅샅이 되짚어보았다.
조사할 게 별로 없었기에, 이 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는데.
하나 같이 평범한 게 없었다.
김별의 곡을 혼자 작곡했고, 유명했던 홍대 버스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이도 김별과 동갑으로 아주 어리며, 구태성의 딸이기도 했다.
김별이 첫 라이브 방송에서 스포했던 대상.
그리고 뮤직 비디오보다 비하인드로 먼저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가수.
하지만 대중들의 대부분은 그녀에 대해 잘 몰랐다.
사실 이 바닥에 관심을 갖고 깊게 들여다보지 않은 이상,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게 헛된 게 아니었다는 듯.
그녀의 이름은 단 하루만에 인터넷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정말 완전히.
“하하하! 내가 말했지!? 구서연 된다고!”
“···참나.”
메인 피디 황종윤이 로또를 맞은 것처럼 두 팔 벌려 대소를 터뜨리자, 작가들이 실소를 내뱉었다.
김석희의 안목과 추천이 없었다면 조사해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팀에 대박이 난 건 맞긴 해서 작가들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구서연도 구서연인데, 그 이종락마저 섭외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메인 작가 김연희는 황종윤 피디의 웃음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귀를 닫는 대신 인터넷을 보는 눈을 활짝 열었다.
기사와 커뮤니티, SNS에서 폭포처럼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구서연의 버스킹 영상과 뮤비, 비하인드,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의 무대 영상까지.
몇 개 되지 않는 구서연 관련 영상들의 조회수가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와!!!!! 나 락 성애잔데 왜 얘를 이제 알았지? 존 메이어 보는 줄???
└ㅋㅋㅋ그건 너무 갔고ㅋㅋ 암튼 기타 개잘치는 건 맞음. ㅅㅂ저 나이에 저런 테크닉이 말이 되냐? 역시 재능은 핏줄이다. 저건 DNA야.
-ㅋㅋㅋㅋ어떡하냐 나 농담 안 하고 찐으로 가슴 웅장해졌다. 저런 귀염둥이가 저렇게 친다고? 이게 바로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 아니냐?
-누···눈나···!
-난 기타는 잘 모르겠고 음방 직캠이 미쳤네 ㄹㅇ···. 댄스 귀염뽀짝임ㅋㅋㅋ
-나도 기타는 잘 모르겠음;; 근데 음방 무대는 최고ㅋㅋㅋㅋ 너무 기타만 갖고 그러지 마라 이 곡도 댄스곡인데.
└어허! 댄스곡이라니! 저건 누가 뭐라 해도 헤비메탈이다.
김연희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의자를 빙글 돌렸다.
아직까지도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메인 피디에게 말했다.
“피디님,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물도 넘칠 정도로 들어왔으니까 이제 움직여야죠.”
물만 들어왔을까, 엔진까지도 최신형 모델이다.
그러니, 이젠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
제작진은 곧바로 회의에 돌입했다.
출연진만 확정됐을 뿐, 아직 녹화에 들어가기엔 많은 절차가 남아 있었으니까.
***
전율이 올라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그 와중에도 눈은 여전히 모니터에서 조금도 떼어지지 않았다.
깜빡이기도 조심스럽다. 깜빡였다가 꿈에서 깨어나면 어떡해.
“하하.”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믿기지 않아서 그런지, 입에서 시원한 웃음이 나오지를 않는다.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하는 서연이.
그녀의 눈은 나와 달리 담담했고, 입꼬리도 일 자로 다물려져 있었다.
깜뻑거리는 눈꺼풀.
흔들림없는 눈동자.
그녀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여졌다.
“개꿀잼 몰카예요?”
“현실이야.”
“···.”
그녀의 고개가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에 보이는 건 음원 차트.
[1. Escape – 구서연]
서연이의 데뷔곡이 1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데뷔곡으로 1위라니.
“말도 안 돼···.”
서연이가 낮게 중얼거렸다.
진짜 안 믿기네. 성공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은 이 바닥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벼락스타도 한 해에 꼭 한 명씩은 있지.
그런데, 그게 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실력과 재능, 그리고 결과물에 자신은 있었지만 이토록 번개가 꽈앙! 내리칠 줄은 정말 몰랐지.
마른 하늘의 날벼락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 그 이상의 성과. 청신호가 제대로 떠버렸다.
‘타이밍도 좋지.’
어쩌면 <일도 잘하는 밴드>의 기사가 이 성공에 화룡점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키보드 김석희, 베이스 김성혁이야 이런 프로에 자주 등장하니 그렇다 쳐도.
이종락은 다르니까.
거기다 지금 이때 가장 핫한 스타인 별이까지 껴있으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엔 최고의 요건이 갖춰진 셈 아닌가.
그 기사를 본 뒤에야 구서연이 누군지 찾아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모든 게 맞아떨어져서 최고의 시너지가 나오게 된 것.
우연은 아니었다. 실력이 있으니 이렇게 된 거지.
꿀꺽-
그녀의 목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이제야 실감이 좀 나는 모양이다.
꼬르륵-
아니 그냥 배고픈 모양이다.
“밥 먹을까?”
“잘 안 넘어갈 것 같은데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제육 볶음 두 개를 배달 주문했다.
그릇은 밥 한 톨 남겨지지 않고 싹싹 비워졌다.
***
가요계는 서연이의 화제로 뜨겁게 달라올라 있었지만.
연예계 내에서도,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곳이 있었다.
바로 영화판.
아마 이 바닥 사람들은 구서연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어도,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영화판에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시기에 다른 데 관심을 기울이기가 힘들지.
“쯧. 마음에 안 들어.”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피며 혀를 차는 유정아.
조수석에 앉은 나는 고개만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탑스타의 아우라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메이크업부터 헤어, 그리고 드레스와 악세서리까지 완전히 풀 오브 풀세팅을 했거든.
그녀의 외모 위에 그런 스타일링까지 받쳐주고 있으니,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올해 상 탈 거 없어서 그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해태영화상’.
작년,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렇기에 올해, 여우주연상의 시상자가 되었다.
작년 수상자가 상을 시상하는 건 이 영화제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으니.
“그게 불만이겠어? 찍은 게 없는데 당연한 거지.”
“근데 왜 그래?”
“쯧.”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오만상을 찌푸리며 혀만 찼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는 그녀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감히 추측을 하기 힘들었다.
예상되는 게 한둘이어야지. 후보가 너무 광범위했다.
‘그나저나···.’
어쩌면 오늘 마주칠 수도 있겠다.
최이사, 혹은 박수한 대표를.
그녀와 다르게, 난 꽤 기대가 되었다.
우리를 마주치면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빨리 들어가 있어. 다른 데 가지 말고 입구에 딱 서있어야 돼.”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가. 다 기다리고 있잖아.”
어느새 도착한 시상식장.
창밖으로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고, 구름떼처럼 모여 있는 기자들과 팬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문이 열리길 목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별처럼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동자들.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여기에 누가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진하게 썬팅된 창문을 열심히도 쳐다본다.
실루엣이라도 눈에 담으려는 노력이었다.
“문 열게.”
“알았어.”
문이 열리자마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플래시와 환호.
그녀는 그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레드카펫을 거닐었다.
아주 여유롭고 태평한 걸음걸이로.
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았다.
저렇게 작고 여린 몸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실장님, 저희도 빨리 갈까요? 입구에 안 서 있으면 엄청 혼날 것 같아서요. 하하.”
“네, 사장님.”
***
“후우! 후우!”
거칠게 심호흡하는 심성균 감독. 어찌나 숨을 크게 내쉬는지 앙상한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벌써 여기서 몇 분이나 서 있었는데, 거세게 뛰는 심장은 도통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입술은 하도 물어뜯어서 너덜너덜해진 느낌이고, 등에 땀이 얼마나 났는지 셔츠가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줄곧 대기실의 문을 향해 있었다.
그곳은 말만 대기실이었다.
감독들의 발이 꼭 한 번씩은 거쳐갔으니까.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손에 시나리오가 들려 있었다는 것.
그중에는 엄청난 위상의 거장도 있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성공을 거둔 다크호스 같은 감독들도 있었다.
자신처럼 우연히 껴서 온 감독은 한 명도 없었다.
설령 왔다고 해도 배짱 좋게 유정아에게 시나리오를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
이 때문이었다.
심성균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내 걸··· 거들떠보기나 할까?’
저런 거장들도 이렇게 직접 찾아올 정도의 배우가 자신의 첫 상업영화를?
아무리 상상하려고 애써봐도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안 될 거다. 절대 안 되겠지.
‘그래도···.’
사실 시나리오를 주는 것뿐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는 고작 전단지를 주듯 시나리오를 건네려는 게 아니었다.
‘이건 무조건 유정아가 해야 돼.’
절실해서.
그녀가 이 역할을 꼭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서 어려운 거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서.
토할 것 같은 초조함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지금 가야 돼. 아니면 늦어!’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었을까.
소매를 들어 얼굴에 흥건한 땀을 닦은 그는 큰 숨을 내뱉으며 무거운 발을 떼었다.
똑똑- 소리만으로 소심함이 느껴지는 노크.
문이 열리고 김유민 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에 그녀가 보였다.
유정아.
“저, 저··· 호, 혹시, 잠깐 괜찮을지···.”
심성균 감독은 시나리오를 가슴께로 들어올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벌벌 떨리는 손.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김유민 사장은 온화하게 미소 지으며 반겨주었다.
“아, 감독님이세요?”
“네, 네. 심성균이라고 합니다. 그··· 유정아 배우님 팬입니다.”
그의 시선이 시나리오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 스타는 다시 무대로 >
표지에 적힌 가제였다.
< 스타는 다시 무대로(유료 시작)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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