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43화 (43/124)

< 요즘 눈이 침침해서 >

이종락.

국내 락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밴드, ‘77Max’의 드러머.

이종락이 속한 밴드, ‘77Max’는 현재 30대들의 청춘을 완전히 지배하고 독재했던 밴드였다.

충분히 레전드라고 칭해도 될 만했지만, 그래도 레전드 치곤 젊은 축에 속했다.

다른 레전드 밴드들의 연령대가 워낙 높아야지.

오직 ‘77Max’만이 예외적인 경우였다.

밴드에선 일반적으로 보컬의 얼굴이 가장 많이 알려진다.

그래서 노래와 보컬은 알아도 드러머의 얼굴을 많이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종락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중들이 예능인으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 예능이 아닌, 그냥 예능에만 출연해 많이 활약하기 때문에.

예능적인 능력도 좋고 인지도도 높아서, 이종락은 언제나 음악 예능 섭외 0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번번이 거절해왔을 뿐.

그 이유는 다름아닌 음악에 대한 확고한 기준과 신념 때문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버스킹 프로그램도, 거기서 보이는 무대들은 그의 성에 차지가 않았다.

아무리 레전드들을 섭외했더라도 그들끼리 잘 어우러지지 않고 있는 게 이종락의 눈에는 한눈에 보였으니까.

물론 방송인 데다가, 서로의 음악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서 싸울 수는 없었겠지만.

만약 그들이 정말 팀을 이뤘다면 대판 싸우면서 얼마 못 가서 해체했을 게 분명했다.

‘난 그렇게 못 하지.’

예능인으로서 헐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음악에 있어선 언제나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저렇게 비위를 맞추며 양보할 자신이 없다.

오디션도 마찬가지.

그의 귀에는 거의 다 엉망이었다.

기껏해야 한 프로그램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신념대로라면 나머지는 죄다 탈락을 줘야 하니, 그런 곳에 나갈 수도 없었다.

사실 이종락도 음악 예능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음악도 좋아하고 예능도 좋아하는데 당연하지.

이 때문에 섭외 0순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마음에 안 드는데 억지로 공연하기도 싫고, 실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하기에도 싫었다.

그런데.

“···.음?”

김별의 보컬을 듣고 흠뻑 빠졌었던 이종락.

구독한 ‘WE엔터’ 채널에 ‘구서연 – Escape (MV 비하인드)’라는 영상이 올라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

김별이 썸네일에 있었으니까.

“뭐···지?”

영상을 되돌려 다시 연주를 들었다.

팔에 닭살이 돋고, 찬물에 씻은 듯이 정신이 확 들었다.

이 영상을 틀며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말도 안 돼···..”

바보처럼 중얼거렸다.

영상을 되돌려 보면 볼수록 놀랍고 믿기지 않는다.

“하!”

헛웃음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곡은 분명 댄스곡이었으나, 저 기타는 보통 기타가 아니었다.

욕심이 난다.

‘나랑 잘 맞을 것 같은데.’

빌딩 만한 그릇 안에 재능과 감각이 표면까지 차올라 찰랑거린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에는 그녀의 재능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저 기타랑 합주할 수 있는 방법 없나?’

이종락은 입맛을 다셨다.

손이 근질거렸고, 발은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해외 투어 중인 와인드업.

지금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숙소에서와 마찬가지로 리더 송윤황과 막내 장영기가 같은 방을 쓰게 됐다.

“와! 미쳤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던 장영기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영기는 이어폰을 빼며, 옆 침대에 누워 있는 송윤황을 쳐다봤다.

송윤황은 ‘그러려니’하며 장영기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장영기가 저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장영기는 어떻게 해서든 송윤황에게 이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형! 이거 봐요! 진짜 대박이에요!”

“그러네. 대박이네. 나 이제 게임 좀 할게.”

“아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그래, 네 말에 동의한다고.”

장영기는 씩씩거리다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가방을 뒤적거렸다.

핸드폰에 연결한 블루투스 스피커.

송윤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끝끝내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

스피커로 들려오는 기타 소리에 송윤황의 눈이 커졌고.

그의 시선은 바로 장영기에게로 꽂혔다.

장영기는 씨익 웃고 있었다.

“죽이죠?”

“어. 무슨 노래야? 존 메이어 느낌도 살짝 나는 것 같은데?”

“하하하하!”

장영기는 시원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기타 소리만 들렸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고개를 저은 장영기가 답했다.

“유민이 형이 새로 키운 가수예요.”

“뭐? 줘봐.”

송윤황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장영기는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핸드폰엔 아주 순둥순둥한 얼굴로 기타에 흠뻑 취해 있는 소녀가 보였다.

언밸런스의 극치.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으나,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영상엔 김유민의 얼굴도 나왔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

이 표정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형, 뮤비도 볼까요? 아직 못 봤는데.”

“그래.”

궁금증이 생겨 뮤비도 보고 싶어졌다.

노래와 댄스. 모두 기타만큼의 레벨은 아니었으나, 재능이 엿보였다.

특히 노래가.

“형, 대박 나겠죠?”

영기의 물음에 윤황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확실해. 인성이나 과거 문제만 없으면.”

“에이. 유민이 형이 보통 사람이에요? 그런 거 다 깔끔하니까 키운 거겠죠.”

“···그렇겠지.”

윤황은 영기에게 핸드폰을 되돌려주며 말했다.

“우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후배들한테 밀리지 않으려면.”

그 말에 코웃음이 나왔다.

후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김유민을 떠올리며 하는 말 같아서.

“밀리진 않겠지만 열심히는 할 거예요.”

“그래, 그거면 됐어. 항상 자만하면 안 돼.”

이 또한 김유민이 습관처럼 하던 말.

영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서연이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얘는 뜨겠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원래였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서연이를 데리고 다니며 한창 바빠야 했을 텐데.

나는 서연이의 옆이 아닌, 유정아의 명품 브랜드 화보 촬영 현장에 나와 있었다.

‘역시 직원들 뽑으니까 훨씬 낫네.’

결코 쌩쌩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젠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다.

그들 덕분에 요새 시간이 좀 널널해졌으니까.

사실 지금 이 스케줄도 다른 실장님을 붙여줘도 되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정아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난 뒤, 첫 번째 공식 스케줄.

그러니 내가 직접 안 올 수가 있겠는가.

“오빠, 뭐 해?”

살가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아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은 내 눈과 내 손을 번갈아 오갔다.

내 손에 대본이 들려 있었거든.

“그냥 보는 거야.”

“약속 안 잊었지?”

“그럼, 당연하지.”

웬만하면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진 연습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었고, 기간이 길어지면 한 편 정도는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약속대로라면 지금 그 한 편을 보는 중이라고 말해도 되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계산적으로 딱딱 나누는 스타일은 아니지.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중이라고 업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할 겸, 이왕 받은 김에 괜찮은 대본인지 한 번 살펴보는 거였다.

만약 정말로 너무 너무 괜찮으면 그녀에게 추천할 마음도 있었고.

물론 괜찮은 시나리오가 두 개 정도 있긴 했다.

그녀가 배우만 하기로 했다면 바로 추천해줬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로는 추천할 수가 없었다.

“나 요새 연습 제대로 탄력 받았어.”

“안다니까. 그냥 보는 거라고.”

정아와 유진이에게 실력 있고 입 무거운 보컬 트레이너를 붙여주었다.

댄스는 여전히 유진이가 전적으로 담당하기로 했고.

이에, 연습에 제대로 탄력이 붙은 모양이다.

하긴 보컬은 이미 안정적이었고, 댄스도 서서히 실력이 오를 때가 됐지.

“끝나고 빨리 가자.”

“어딜?”

그녀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말했다.

“닭갈비 먹고 연습 가야지.”

난 작게 실소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빼놓을 수 없지.

‘근데··· 메뉴는 언제 정해졌지?’

뭐 아무렴 어때.

나도 닭갈비 좋아한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차에 타서 근처의 닭갈비 맛집으로 향하는 도중.

문득 뒤에서 서연이의 노래가 들려왔다.

룸 미러로 보니, 정아가 가로로 든 핸드폰을 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뭐 봐?”

“음방 직캠. 얘 지금 엄청 잘되고 있지?”

“어마어마하지.”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한 쪽 입술을 말아 올렸다.

“좋아. 자극되는 느낌이야. 승부욕이 올라오고 있어. 찌릿찌릿해.”

“애들한테 무슨 승부욕이야.”

피식 웃으며 말하자, 그녀의 눈이 룸 미러를 통해 내게로 향했다.

찌릿, 째려보는 눈빛이 날카로웠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하니, 그녀가 목에 핏대를 세울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도 잘 쓰면 원동력이 돼! 나쁘게 생각하면 세상에 안 나쁜 게 어딨어! 어? 안 그래?”

“···그래.”

그래, 차라리 이렇게 승부욕이라도 태워라.

땅 파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못난 사람 같잖아. 안 그래!?”

“···그러네.”

닭갈비 집을 괜히 멀리 있는 걸로 찾았다.

그냥 근처에 있는 아무데나 갈걸.

젠장.

***

5월에 열리는 ‘AMAM’ 시상식.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서연이는 아직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상을 받지는 못 하겠지만, 별이는 다르다.

아마 신인상은 확정적이지 않을까?

1년 사이에 데뷔한 가수들 중 별이 만큼 잘하고, 별이 만큼 화제되고, 별이 만큼 성과를 거둔 가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인즉슨.

대학 행사 시즌이 도래했다는 거였다.

땡길 때라 이 말이다.

우리 회사엔 섭외 요청이 쏟아졌다.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서연이도 섭외 요청이 많긴 한데, 별이에 대한 수요는 정말 폭발적이었다. 몸값이 엄청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김별 예쁘다!”

“우와아아!”

“꺄아아!”

무대에 오른 별이.

학생들이 주위로 빽빽하게 차 있었고, 그들은 별이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김별입니다. 주영대학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다.

이런 행사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데, 흡사 별이의 팬들만을 모아 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다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알고 별이도 안다.

축제의 특성상,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일 순 있어도.

그들 모두에게 이러한 반응을 얻는 게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만큼 별이가 인기가 많다는 거지.’

그만큼 잘한다는 말도 되고.

이러니, 신인상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별이 다음으로 가능성이 있는 가수가 있다면 레모네이드일 텐데, 우리 별이랑은 그 격차가 심하지.

요즘은 이수진의 논란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긴 하다만.

그렇다고 인기가 많아진 것도 아니다.

별이의 데뷔곡, ‘So Happy’.

노래가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반응은 점차 고조됐다.

난 그들을 둘러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내 시선은 금세 별이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게 떠올랐다.

행사를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관객들을 바라보는 저 표정엔 변함이 없다.

이런 호응에 무뎌지거나 당연시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감사하고 더 행복해하고 있다.

노래가 끝나니, 목이 찢어져라 소리 치는 학생들.

그들의 눈에도 이런 별이의 태도가 사랑스러웠는지, 반응이 절정에 달했다.

이거 진짜 행사 맞나?

“이번엔 ‘Hang Out’ 들려드릴게요.”

잠깐의 대화가 끝나고 바로 이어진 무대.

이미 별이의 열렬한 팬이 된 그들과, 그런 그들을 사랑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노래하는 별이.

그 따스하고 훈훈한 풍경과 함께, 노랫소리와 응원하는 소리가 좋게 어우러졌다.

그렇게 콘서트와 다름없었던 행사를 끝마치고.

우리는 차에 올라 학교를 빠져나왔다.

“너무 재밌었어요.”

여운이 가시지 않아, 달뜬 숨을 내쉬며 말했다.

눈동자엔 몽롱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행사도 이렇게 재밌는데 콘서트는 더 재밌겠죠?”

기대감 어린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크게 다를 거 없어. 별로 기대하지 마.”

“···네.”

난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방금 전에도 콘서트 한 거나 다름없었잖아.”

내 말 뜻을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별이.

난 그녀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콘서트 열면 저 사람들 그대로 올 거니까. 지금이랑 다를 거 없지.”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잘했다는 뜻이에요?”

“응. 엄청.”

“감사합니다. 다 사장님 덕분이에요.”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살살 비비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안경이었다.

“요즘 눈이 침침해서.”

물어보지도 않은 걸 말한다.

그런데 안경엔 여전히 알이 없었다.

“그래, 예쁘네.”

“감사합니다.”

< 요즘 눈이 침침해서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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