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40화 (40/124)

< 저 회사엔 괴물들만 있나 보네 >

유정아와 이유진, 김별, 구서연, 그리고 황실장님과 정실장님, 박실장님까지.

우리 회사의 모든 인원이 다 같이 인테리어가 끝난 사무실을 둘러봤다.

비록 사옥은 아니지만, 커다란 빌딩의 두 층이 통째로 우리 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도 없이 그냥 통째로!

그녀들이 만든 거나 다름없는 사무실이었다.

“우와! 짱이다! 되게 이쁘네?”

“와아!”

“오! 선배 출세했네요, 진짜.”

“뭐··· 아직 구리긴 한데, 썩 나쁘진 않네.”

꿀처럼 부드러운 그녀들의 탄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유정아처럼 초를 치는 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다.

“야아. 멋지네요.”

정실장님은 껄껄 웃었고, 황실장님은 싱긋 미소 지으며 사무실을 찬찬히 둘러봤다.

박실장님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도 어디 하자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화장실도 진짜 좋아! 별아! 여기 와봐!”

“어디?”

다들 구경하느라 바쁜데,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선 채 사무실을 빙- 둘러보았다.

천장에 에어컨이 몇 개나 달려 있었고, 회의실도 두 개나 있었다.

탕비실도 있고,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으며, 파티션으로 정갈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아직 채울 게 훨씬 더 많긴 하나, 이게 내가 세운 WE엔터의 사무실이다.

정말 감격스럽네.

“사장님, 탕비실이랑 화장실은 다 확인했었고, 지금도 변동 사항은 없습니다. 나머지도 잘 설치됐네요. 하자는 없습니다.”

사장실도 없고, 대회의실도 없다.

그러나 내 눈에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잘 보였다.

그래, 지금은 이 정도면 정말 대만족이다.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연습실로 가보죠.”

사무실 바로 밑에 있는 층.

보컬룸, 연습실, 샤워실, A&R팀 사무실까지 있는 곳이었다.

연습실의 에어컨도 엄청 크고, 공기 청정기도 있으며, 환풍도 잘 되고, 심지어 지하도 아니다.

디자인도 깔끔하면서 모던하다.

세련됐네. 트렌디하고 엘레강스해.

‘나 출세했다, 진짜.’

심지어 이건 별이의 활동만으로 바뀐 변화다.

우리에겐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카드는 더 많지.

이유진, 구서연, 그리고 유정아까지.

그녀들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뱃심이 두둑해진다.

이 모든 걸 다 살핀 유진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선배, 이래도 되는 거 맞아요? 이제 다른 직원들도 구해야 한다면서요.”

그녀의 눈매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긴 걱정이 될 법도 했다.

그런데, 아주아주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월세니까 괜찮아.”

월세, 그리고 경기도 고양시의 외곽 중 외곽.

주변이 휑했다.

그래도 일산서구 탄현에 있는 SBC와 JC이앤엠 스튜디오, 그리고 일산동구 MBS와 가까우니 나름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파주에도 촬영지가 많기도 하고, 유명한 영화 촬영 스튜디오도 이쪽에 있다.

이 정도면 크게 나쁜 조건은 아니지.

‘···샵은 강남에서 다니고, 음방 공개홀에서도 멀어졌지만···.’

그건 우리가 좀 더 고생하면 되는 부분이고.

“와! 정아 언니! 보컬룸 와봐요! 언니 빨리요! 대박이에요!”

“크흠. 어때? 거긴 좀 쓸 만해?”

그래도 저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엔 꼭 서울에 으리으리한 사옥을 세워야지.

***

돈을 왕창 썼으면 또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

나와 별이는 CF 촬영 스튜디오에 나와 있었다.

은은하게, 하지만 온갖 곳에서 화제가 되었던 먹방으로 얻은 소중한 라면 CF.

라면 CF는 보통 그 시기에 가장 핫한 인물을 모델로 섭외하는 전통이 있다.

지금은 그게 바로 우리 별이겠지.

오늘 별이의 착장과 스타일링에는 화려함 따위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감독이 뭘 좀 아는 모양이다.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버렸네.

이것까지 잘 어울릴 줄이야. 별이는 도대체.

“사장님, 양갈래는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양쪽으로 늘어진 머리 끝을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삐죽 내민 입술로, 나만 들리도록 작게 말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아니, 근데 안 귀여웠던 적이 언제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1초도 없었을 수도?

“별아, 익숙하지 않은 거랑 이상한 건 엄연히 다른 거야.”

“···안 이상하다고요? 이게요?”

당연한 말을.

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별, 댄스별, 먹방계의 샛별에 이어, 이번엔 양갈별? 아니 이건 느낌이 좀 이상하네.

양갈래별은 식상한 느낌이고. 갈래별은 자칫 가래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 제외.

그런데 뭐가 됐든 상관없겠지. 귀여우면 그만이니까.

곧이어 촬영이 시작됐고.

별이는 흰 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채, 라면을 후루룩- 후루룩- 빨아들이듯 흡입했다.

곳곳에서 소리 없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맛있게 먹는다기보단 그냥 먹는 모습이 이쁘다.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촬영은 뒷전이고 그냥 식사 중인 것처럼 보였다.

“커엇! 아주 좋았어요! 한 번 더 먹을게요. 이번엔 숟가락에 국물 담고 그 위에 면 올려서 같이 먹을게요.”

‘컷’ 소리에 몸을 움찔 떠는 별이.

역시 그냥 맛있게 먹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별이도 만족하고, 감독님도 만족하면 그걸로 됐지.

팔짱 끼고 보고 있던 광고주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아마 이 CF를 보는 사람들도 만족할 거다.

‘이거 이러다 식품 CF 쓸어담는 거 아냐?’

난 씨익 웃으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그리 가망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

넓고 쾌적해서 전에 비할 바가 아닌 우리의 새로운 연습실.

이곳에 나와 정실장님, 그리고 서연이와 유진이가 함께 있었다.

기타가 끝내주는 그녀의 데뷔곡, ‘Escape’로 활동할 준비가 다 끝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준비가 다 끝났다고 판단되면 바로 본 녹음 들어가고 뮤비 준비해야지.

연습복을 갖춰 입은 서연이.

우리와 카메라를 마주보며 섰다.

머리가 많이 길어서 이제 중단발이 되었다.

카메라에 참 예쁘게도 나오네.

“사장님, 지금 해요?”

“준비 끝났어? 목이랑 몸은 다 푼 거 맞지?”

“네네, 다 풀었어요. 이제 긴장만 풀면 돼요.”

“···.”

“농담이에요. 저 이제 긴장 안 해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긴장은 무대 공포증이랑은 다른 종류의 긴장일 터.

별이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긴장하곤 하니까 뭐.

나는 서연이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며 말했다.

“편하게 해. 노래에서 실수하면 아직 가사가 안 익은 거라고 보면 되고, 댄스에서 실수하면 그건 선생 잘못이라고 하면 되니까.”

“네? 그게 왜 제 탓이에요?”

“그럼 서연이 탓이야?”

“···.”

유진이 입을 벌렸다가 급히 다물었다.

그리고 흘끗 서연이를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제 잘못 맞죠.”

기계적으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경련하고 있었다.

이를 본 정실장님이 호탕하게 웃었고, 서연이도 웃음을 흘렸다.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이젠 편하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난 서연이를 쳐다봤고, 그녀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실장님이 작게 반주를 틀었다.

이제 귀에 완전히 익어버린 반주.

이에 맞춰 서연이가 댄스와 노래를 같이 시작했다.

별이의 안무보다 더 호흡 조절이 어려울 거다.

그런데 이 노래는 섬세한 호흡 조절이 크게 필요 없는 곡이라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유진이가 가진 것만큼은 아니지만 서연이의 댄스 재능을 어필하기에도 좋을 테니.

무엇보다 곡이 너무 댄스랑 잘 맞았다.

나와 정실장님, 그리고 유진이는 서연이가 열심히 펼치는 무대를 조용히 지켜봤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잘 모르겠다. 내 눈은 서연이에게만 향하고 있어서.

일단 내 입꼬리와 눈매는 진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걸로 성공 못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음색을 억지로 만든 게 아닌 만큼, 섬세한 호흡 조절이 없어도 그녀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맑고 깨끗하며 부드러운 하이톤의 목소리.

댄스의 디테일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보컬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일렉 기타 메인이라 그런가.

브리티쉬 락을 하는 것처럼 크게 힘을 주거나 빼지 않고서도 안정적으로 들렸다.

드럼이 이끄는 박자에 맞춰, 내 발이 연습실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유진이와 정실장님도 같았다. 우리 셋은 그녀의 무대를 감상하는 관객이 되었다.

그녀가 만든 이 미친 음악이, 그리고 이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그녀가 만들어낸 광경이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미소 짓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중독성이 너무 강하다.

아마 덕후들을 갈퀴로 끌어 모으겠지.

거기다 뮤비에서 기타를 라이브로 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준 다음, 예능이나 유튜브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기타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이건 뭐, 락 덕후들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치트키나 다름없지.

음악성을 좋아하는 대중들에게도 무지하게 어필이 될 테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 떨리네.

더 볼 것도 없다.

“녹음 들어가자!”

“예이!”

열심히 준비한 만큼 흠잡을 데가 없었다.

김별에 이어, 가요계에 또 한 명의 특급 신인이 등장할 차례.

우리는 곧바로 내일 녹음 스케줄을 잡았다.

***

별이가 데뷔곡과 후속곡을 녹음했었던 레코딩 스튜디오.

서연이도 여기에 오는 게 이번이 세 번째인데, 직접 보컬을 녹음하는 건 처음이다.

“여기서 녹음하게 될 줄이야. 사실 속으로 엄청 부러워했었거든요.”

깊숙하게 묻어두었던 얘기를 생글생글 웃으며 꺼낸다.

이제는 과거일 뿐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니 이런 말을 꺼내도 아무렇지 않은 거겠지.

“이젠 너도 가수야.”

“알죠. 가수···.”

이미 웃음이 만개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행복한 감정이 넘실댔다.

이건 아무래도 바이러스인 모양.

그녀를 보는 나도 같이 행복해진다.

녹음은 뭐 이보다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별이처럼 보컬로 찍어누르듯 압도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서연이 역시 재능이 넘쳤으니까.

우리는 녹음을 마치고, 바로 뮤비 제작사, ‘플라워 프로덕션’으로 향했다.

정확한 날짜는 어제서야 말했으나, 그 전에 이미 얘기를 해뒀거든.

언제쯤 녹음할 거라는 것을.

유형중 감독님은 녹음할 가수가 별이가 아니라는 말에, 목소리에서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지만.

가이드했던 음악을 듣고나선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하긴, 그 음악을 듣고 누가 안 반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음악에 정답은 없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음악을 만들긴 힘들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만족할 만한 곡을 우리는 ‘명곡’이라고 부른다.

이것 또한 그렇다.

***

“저 회사엔 괴물들만 있나 보네.”

헛웃음이 터지다 못해 큭큭, 웃음이 나온다.

“이 기타를 직접 녹음했다고?”

몇 번이나 들어봐도 어이가 없다.

공동작곡으로 김유민 사장의 이름이 있었지만, 이런 실력을 가진 건 구서연일 터.

이미 구서연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너무 익숙했다.

왜 아닐까. 직접 뮤비를 찍은 김별의 곡들을 혼자 다 작곡한 사람인데.

뮤비 촬영장에서도 이미 만나기도 했었다.

‘외모 보고 진짜 놀랐었는데.’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너무 상큼하고 귀여웠다.

사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눈에 다크 서클이 가득하고, 퇴폐미 섞인 히스테릭한 사람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런 곡들을 혼자 만들 정도면 응당 그런 전형적인 천재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었으니.

‘직접 봤었는데도 상상이 잘 안 되네.’

외모와 보컬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외모로 이런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뮤비 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가.

유형중은 음악을 틀고 눈을 감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봤다.

기타를 치는 씬에서의 스타일링과 세트는 거칠고 자유로운 이미지가 풍기도록.

노래를 부르는 씬에서는 산뜻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제대로 어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댄스 씬에서는 동화적인 분위기로 상큼하고 귀엽게.

조금씩 이미지가 잡히기 시작하며 입꼬리가 올라가고 입이 살며시 벌어졌다.

하지만 이 또한 확정된 게 아니다.

머릿속의 풍경은 수시로 바뀌고 있었으니까.

폐공장을 갔다가, 도심으로 갔다가, 뒷골목으로 갔다가, 초원으로 가기도 했다.

‘이래서 천재랑 작업하는 게 즐겁다니까.’

다만, 확실한 건.

어디를 데려다 놔도, 어떤 스타일로 꾸며도.

다 잘 어울릴 거라는 것이었다.

음악에, 그리고 그녀라는 캐릭터에 이미 다양한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었으니.

“이제 슬슬 올 시간이 됐는데.”

그녀의 아이디어는 또 어떨지 듣고 싶었다.

아이디어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내는 의견에 대한 호불호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 더 그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뮤비를 만들 수 있을 테니.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 같이 느리게 흘렀고.

마침내, 그들이 도착했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구서연과 김유민.

유형중 감독의 눈이 반짝였고, 입꼬리는 시원스럽게 말려 올라갔다.

이제 김유민이 산타클로스 같이 보였다.

올 때마다 이런 풍성한 선물을 가지고 오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유감독의 시선은 김유민에 옆에 바짝 붙은 구서연에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전에 뵀었는데 저 기억 나세요?”

전에도 들었던, 밝은 하이톤의 목소리.

노래를 들었더니 이제 이 목소리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기억납니다. 이제 가수로 뵙게 됐네요.”

싱글벙글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그녀.

뮤비 감독으로서, 유형중의 예술혼이 활활 불타올랐다.

김별의 곡들에 이어.

이번에도 자신의 커리어 최상위의 역작이 만들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저 회사엔 괴물들만 있나 보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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