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잘하냐고 >
직원을 구하는 것도, 사무실과 연습실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매니지먼트팀도 필요하고, 홍보팀, 그리고 A&R팀 등 필요한 팀이 많다.
법무팀···까지는 아직 무리고, 다른 오퍼레이션 직무는 필수겠지.
일단 공고는 올려두었다.
사무실과 연습실은 아무래도 집 주변에서 구하는 건 무리일 듯했다.
그동안은 사무실을 우리 집으로 하고, 연습실도 집에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을 거리였는데.
이젠 우리도 규모를 넓혀야 한다.
집 주변에서는 무리라는 것.
월세로 아주 좋은 곳을 구할 생각이다.
회사의 성장성이 훤히 보이기에, 적당히 옮겼다가 나중에 또 옮기는 것보단 처음부터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맞겠지.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그건 우리 WE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이 될 것이다.
“그래도 차 문제는 빨리 처리했네.”
하나를 추가로 장만해버렸다.
기존에 있던 것 하나, 번쩍번쩍 빛나는 고급 중고차 하나.
이제 우리도 차가 두 개다.
이건 쉬웠으니 순식간에 처리해버렸다.
나는 신품 같은 중고차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더니, 익숙한 신발 두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재잘거리는 목소리.
별이랑 서연이다.
“사장님 오셨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정겹게 간질인다.
연습하러 왔다가 놀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마냥 놀고 있는 거거나.
새로 이사를 가게 되면 이제 이런 일이 없겠지?
다시 집이 휑해질 것이다.
그녀들이 현관 앞으로 마중 나왔다.
재밌게 놀고 있었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차는 바꾸셨어요?”
“이제 우리 차 두 개야.”
“오오!”
서연이가 좋아하며 박수를 친다.
나는 피식 웃으며 옆에 있는 별이에게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그냥···.”
내 눈을 마주하던 시선이 살짝 밖으로 벗어났다가 되돌아왔다.
“연습하다가 있었어요.”
입꼬리가 길게 끌어올려졌다.
그냥 사무실 바꾸는 걸 좀 미룰까?
급할 건 없는데.
아니, 아니지. 그럼 새로 뽑은 직원들이 일할 데가 없겠구나.
“방송 기다리고 있었지? 이제 곧 방송이잖아.”
요리 예능, <재료만 골라줘>의 방송 시간까지 20분 정도가 남았다.
내 말에 그녀들의 고개가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우리는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노트북을 TV앞 테이블에 올려두고, 바닥에 앉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고.
별이와 서연이는 소파에 앉았다. 내 왼쪽 뒤에는 별이, 오른쪽 뒤에는 서연이.
인터넷을 켜 유튜브에 들어갔고, 내 얼굴 양옆으로 그녀들의 고개가 쑥 내밀어졌다.
유튜브에 선공개된 영상의 반응은 화끈했다.
별이만 찍는 카메라의 테잎만 써서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1분의 영상.
메뉴는 아구찜과 볶음밥이다.
별이가 첫 입을 먹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1분 내내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먹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참 신기하지.
제작진이 이번 회차의 편집 방향을 확실하게 정한 건지.
아니면 본방에 쓰긴 좀 그렇고, 그렇다고 자르기에는 아까워서 유튜브에만 올린 건지.
우리는 팬들의 주접 댓글을 확인하며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다가, TV에 나오는 본방송을 시청했다.
***
어제와 마찬가지로 후끈한 연습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유정아는 바닥에 누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어제 내가 잔소리한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렇게 빡세게 한 거지?”
힘 빠진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 유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에요. 언니 덕분에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돼서요. 그래서 그런지 몸이 더 가벼워지는 거 있죠.”
“···그래? 잘됐네. 근데··· 그럼 앞으로도 수업은 이렇게-”
“열심히 해야죠.”
“그렇···지. 맞지. 열심히 해야지···.”
유정아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앞으로 밥 많이 먹어야겠네. 지금도 배고파 죽겠어. 근데 너무 힘들어서 이상하게 먹고 싶지가 않아.”
“그럴 때 있죠. 근데 먹을 게 눈앞에 있으면 또 잘 들어가더라고요.”
이유진은 땀을 잔뜩 흘리고 숨도 거칠어지긴 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활력이 솟는 느낌이었다.
생각을 정리한 덕분일 거다.
물론 생각을 결정했다는 게, 진로를 완전히 결정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은 이제 자신의 몫이 아니다.
‘선배한테 판단해달라고 해야지.’
유진은 바닥에 누운 유정아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죠?”
“···어, 그게 좋겠어.”
샤워실도 안 붙어 있는 연습실.
유진은 정아를 데려다준 뒤, 집에 들러 깔끔하게 몸을 씻었다.
또 춤을 추긴 할 거지만 그래도.
유진은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희소식을 전했다.
-유진아! 별이 라면 광고 들어왔어.
“미팅이죠? 픽스는 아니고.”
-그렇지. 근데 별 일 없으면 픽스될 거야.
“잘됐네요! 예능 반응이 좋은가 봐요?”
-지금 난리야. 잘하면 순위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목소리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옆에 애들도 같이 있는 모양인지, 희미하게 그녀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마찬가지로 기분이 업된 목소리였다.
“선배.”
-어.
“저 잠깐 볼 수 있어요?”
-지금? 왜?
이 말을 꺼내면 그에겐 ‘뜬금없이’, 혹은 ‘갑자기’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자신에겐 그렇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그래서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거였다.
유진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시원하게 말을 내뱉었다.
“저도 가능성 있는지 봐주세요. 아이돌로 데뷔하면 어떨지.”
-···.
김별과 구서연의 목소리만 작게 들릴 뿐, 그의 입에서는 침묵만이 흘렀고.
유진은 후련한 듯 얼굴에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고민의 주체는 그에게로 넘어갔다.
***
방송에 대한 반응이 팍! 터지고 있고 광고 미팅까지 들어왔는데.
내 머릿속은 이유진에 대한 것으로 꽉 차버렸다.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웠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안무가를 꿈꿨다고 하지 않았나.
현직자라면 아이돌과 안무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예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댄스를 좋아하다 보면 이 둘 사이에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안무가가 아닌 아이돌을 선택한 건 의외였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연습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빨리 얘기를 나누고 싶다.
머리로 온갖 생각이 엉키고 풀어지길 반복하길 얼마.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 저 왔어요.”
내 머리는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으면서, 자기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 표정에 헛웃음이 나왔는데, 어쩐지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
갑자기 왜 아이돌이 하고 싶어졌는지도 나중에 듣자.
그보다 그녀가 부탁한 대로, 가능성을 봐주자.
난 한결 편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진아, 사실 댄스는 이미 합격점이야. 그건 더 볼 것도 없어.”
당연한 소리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나는 말을 더 이었다.
“비주얼도···.”
“이만하면 괜찮죠?”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네. 이건 잘난 척도 아니다.
미녀라는 수식어가 당연하다는 듯 따라붙는 연예인 옆에 붙어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미모는 조금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최대치까지는 한참 더 남았다는 듯,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예뻐지고 있다.
하긴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나이는요?”
“나이?”
“네, 아이돌 하기엔 좀 늦은 것 같기도 해서요.”
난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나이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별이랑 서연이보다는 언니이기도 하고, 요즘 데뷔하는 아이돌의 평균 연령이 워낙 낮아야지.
근데 그건 ‘평균’ 연령일 뿐이다.
난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다.
그녀의 댄스 실력이라면 연습 기간을 거칠 필요가 전혀 없다.
이대로 그냥 곡을 받고 데뷔해도 된다.
생각해보니 문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이거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될 것이다.
“노래는 잘해?”
데뷔하면 가능성이 있는지, 가능성이 있어도 연습 기간을 얼마나 거쳐야 할지.
예상되는 연습 기간에 따라 성공 가능성 또한 달라지겠지.
내 물음에 그녀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조금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하위권 연습생들보다는 괜찮을 것 같은데.”
대중들은 연습생이라면 일반인들보다 잘할 거라고, 그래도 뭔가 다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완벽한 착각이다. 노래는 잘하는 사람이 잘하고, 못하는 사람이 못한다.
그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옛날 가수들이나 락커들처럼, 정말 말 그대로 목에서 피가 나오는 연습으로 완전히 개조하지 않는 이상은.
근데 그건 많이 위험하지. 무식한 방법이다.
잘못될 경우, 완전히 목이 생명을 다해버린다.
아무튼 말로 할 필요는 없다.
봐달라고 했으니, 봐주면 그만.
“한 번 불러봐.”
“어떤 걸로 부를까요?”
연습생 생활을 했던 사람 같으면 자신 있는 걸로 부르라 하겠지만, 그녀는 연습생 생활을 한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뛰어든 로드 매니저 일도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특색 없는 가수 노래 하나랑 노래방 애창곡 하나.”
“아.”
특색 없는 가수의 노래를 불러야 진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특색이 뚜렷한 가수의 노래를 부르면, 저도 모르게 따라하려고 하니까.
노래방 애창곡은 그녀가 편하게 부를 수 있고, 자신 있는 노래일 터.
이건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노래일 거다.
“목 푸는 건 옆에서 많이 봤지?”
“네.”
목을 풀기 시작하는 그녀.
흘끗흘끗 내 눈치를 보긴 하는데, 위축되거나 긴장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싱긋 미소 지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선배, 머리 아프죠?”
“아까는 머리 아팠지. 근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노래를 들은 뒤엔 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그런데 한 번 그녀를 아이돌로 어쩔지 시각을 바꿔서 보기 시작하니,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느낌이다.
후배 매니저가 아닌 아이돌로서의 이유진.
매력적이긴 하네. 제발 잘 불렀으면 좋겠다.
일단 목을 푸는 걸 들어보면 느낌이 좋긴 한데, 여기에 워낙 많이 속아봤어야지.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그럼 할게요?”
“그래.”
지금까지 그녀와 꽤 붙어 있었지만 노래를 들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주가 없이 조용한 연습실.
그녀는 핸드폰으로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목소리 톤에 맞게 무거운 보컬.
그러나.
‘왜··· 잘하지?’
듣기에 좋았다.
노래가 노래인지라 기교는 없었으나,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잘 보이는 보컬의 색깔.
그녀의 목소리는 무겁지만 깨끗했다.
차분하며, 심지어 단단하기까지 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노래방 애창곡까지 들으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왜 잘하냐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안목이 있음을 자부해왔지만, 오늘부로 그 자부심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다니.
아니, 근데 노래를 들어봤어야 이걸 알든 말든 하지. 이건 그냥 등잔 밑이 어두웠을 뿐이다.
머릿속 한 켠에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변명하듯 생각을 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내 표정을 살피듯 뚫어져라 응시한다.
난 왠지 허탈하고 어이없는 속내를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개를 젓는 걸 본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으나, 생각하고 있는 그 뜻이 아니다.
난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너 왜 노래 잘하는 거 숨겼어.”
“네? 저 잘해요?”
어두워졌던 얼굴이 환해지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서연이처럼 음색이 꾀꼬리 같지는 않다. 별이처럼 파워풀한 만능 보컬도 아니고, 정아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안정적인 육각형의 보컬도 아니다. 옥타브가 그리 높지도 않고.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노래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노래는 결국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야구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한다’고.
“너 노래 잘해.”
난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성장 포텐이 많이 엿보인다.
단단한 목소리를 조금 더 튼튼하게, 힘도 길러 음도 높이고, 기교까지 조금 추가되면···.
내 귀에 문득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떠한 음율이 떠오른다.
세계적인 명곡, ‘What’s up?’을 부른 ‘포 넌 블론즈’의 보컬, ‘린다 페리’.
“풉.”
“왜··· 웃어요? 노래 잘한다면서 웃는 건 좀 이상한데? 왜요? 왜 웃는 거예요?”
웃음이 나왔다.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로 묻는 유진.
굳이 표현하자면 부드럽고 무거운 모래 같은 느낌이다.
린다 페리랑은 느낌이 좀 다르긴 하지. 그래도 비슷한 맥락이다.
굳이 고음 파트가 아니더라도 린다 페리의 보컬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유진 역시 그러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듣기에 너무 좋았어. 조금만 트레이닝하면 금방 늘겠다.”
“정말요? 진짜죠? 저 가능성 있는 거 맞아요? 우리 친하다고 장난하거나 그러면 안 돼요.”
기대 어린 얼굴로 묻는 그녀.
커다래진 눈이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이제 매니저 때려치고 연습에만 집중해. 데뷔하자.”
만약 그녀의 노래를 진작 들었었더라면, GO엔터에서 데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레모네이드로 데뷔했으려나?
이제야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직원 좀 빨리 뽑아야지.
나 혼자는 말이 안 되잖아.
“선배, 그럼 저 이제부터 바로 연습생 되는 거예요?”
양심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이제’ 때려치라는 게 ‘바로’ 때려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인수인계는 해야지.”
그녀는 주위를 빙-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할 게 뭐가 있다고.”
정정해야겠다.
인수인계가 아니라 바톤 터치로.
< 왜 잘하냐고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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