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36화 (36/124)

< 나도 이제 아이돌 준비하는데? >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정아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아도 이제 공식적으로 우리 WE엔터의 아티스트가 됐다.

플라스틱 파일에 조심스럽게 넣은 계약서.

GO엔터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기획사들이 이걸 원하겠지.

계약서를 눈앞에 가져다 놓으면 눈이 벌게질 거다.

이 계약서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거 하나만으로 우리 회사의 가치가 몇 단계는 훌쩍 뛰었을 터.

혹여나 계약서의 모서리라도 닳을까 싶어, 가방에 넣을 때도 살포시 넣었다.

“이 차는 대체 언제 바꿀 거야? 이제 돈 잘 벌잖아. 손익분기점 넘지 않았어?”

차를 타며 투덜거리는 유정아.

그녀의 말에 타격이 들어오기는커녕, 콧노래만 흘러나왔다.

이제 바꿀 거기도 한데, 가방에 들어 있는 따끈따끈한 계약서가 모든 타격을 완벽하게 방어해주고 있어서.

사실 차가 좀 낡기는 했지.

정아가 타기엔 안 어울린다.

“조금만 기다려. 곧 바꿀 거야. 사무실도 제대로 차리고, 직원도 뽑고, 연습실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알아봐야지.

별이 데뷔 때부터 따지면 손익분기점을 넘긴 했다.

그래도 새로 마련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서연이의 데뷔도 준비해야 했고.

그런데, 이제 걱정할 게 없게 됐다.

가방에 유정아의 계약서가 있거든.

천군만마가 내 곁에 있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랴.

이제 다 바꿀 것이다.

‘사무실이랑 연습실은 월세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제대로 사옥을 차릴 정도로 성공하면 그만이다.

“사람은 제대로 뽑아. 이상한 사람들 뽑지 말고.”

“그건 걱정 마. 내가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이 있잖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알지.

이유진, 김별, 구서연, 그리고 유정아까지.

모난 곳 하나 없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유정아에 대한 의견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다른 것보다 직원을 뽑는 게 가장 급했다.

슬슬 우리끼리 벅차기 시작해서.

매니저 역할은 나 혼자 거의 다 하고 있거든.

유진이가 댄스를 봐주느라 너무 바쁜 탓이다.

로드를 하는 것보단 이게 회사의 이익에 더 효율적이라서 그렇게 했는데.

앞으로 정아 댄스까지 봐줘야 하니, 매니저들을 뽑는 게 급선무였다.

“사람 보는 눈?”

“그래. 너도 포함이야.”

난 뒤에 앉은 그녀를 룸 미러로 바라봤다.

내 말에 살짝 미간을 좁힐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는다.

그녀의 복장에 다시 눈이 갔다.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눈이 간다.

어디서나 화려한 패션을 고수하는 그녀.

지금은 밋밋한 연습복을 입고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갈 때부터 만반의 준비가 끝나 있었는데.

정말 많이 기대하고 있나 보다.

계약서를 쓰기도 전부터 연습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다니.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하게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연습실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저번에 추어탕을 들고 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 그녀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땐 연습실이 구리다고 뭐라고 하더니.

지금은 그냥 연습할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한가 보다.

그녀를 보며 옅게 웃고 있을 때.

이미 안에 있던 유진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니, 선배한테 들었죠? 오늘부터 댄스는 제가 봐드릴 거예요. 매니저도 새로 뽑는다고 하니까 앞으로 많이 봐드릴 수 있어요.”

매니저를 새로 뽑는다고 해서 그녀가 매니저를 그만두는 건 아니다.

앞으로 융통성 있게 비중을 조절해야지. 물론 월급도.

“그래. 잘 가르쳐줘.”

정아는 애써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설레하는 게 훤히 보였다.

난 소리 없이 웃음을 흘렸다. 애도 아니고 참.

“난 이제 가볼게.”

마음 같아서는 정아가 연습하는 걸 쭉 지켜보고 싶었는데.

할 일이 태산이다.

이제 조금 뒤면 별이 스케줄도 가야 했고, 서연이가 만든 곡에 작사를 맡겨야 한다.

직원도 구하고 차도 새로 뽑아야 한다.

사무실과 연습실도 짬짬이 봐야지.

“바쁘고 좋네.”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서연이도 데뷔가 임박했고, 정아도 들어왔으니, 이제 이 성장폭은 더 커지겠지.

집으로 돌아와, 스케줄 가기 전까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때.

딩동! 벨소리가 들렸다.

별이가 왔나?

내가 데리러 간다고 했는데.

문을 열어주니, 밝게 미소 짓고 있는 서연이가 보였다.

표정이 정말 너무 행복해 보인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계속 화제가 되고 있는 게 기뻐서일까?

아니면 어제의 버스킹으로 무대 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했기 때문일까.

그녀의 주변으로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내뿜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덕에 내 입꼬리도 슬금슬금 올라가려고 한다.

“보컬 룸에 연습하러 왔어요. 들어가도 돼요?”

아무래도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줘야겠다.

이제 곧 연습실을 바꾸긴 할 텐데, 그 전까진 내가 집에 없더라도 언제든지 마음껏 들어와서 연습할 수 있게.

“들어와.”

“네!”

***

“그래서 이제 뭐부터 해야 돼?”

유정아는 유진에게 물었다.

댄스를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근질거려서 참지를 못하겠다.

그동안 이걸 대체 어떻게 참았지? 힘이 펄펄 끓는다.

누가 들으면 엄청 잘 추는 줄 알겠다며 비아냥거릴지 몰라도, 지금 기분으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과정일지라도 얼마든지 깨부수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의욕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유진의 눈이 약간 커졌다.

“일단 언니 실력부터 볼까요?”

“노래도?”

“아뇨. 댄스만요. 선배가 노래는 알아서 봐주고 연습시킬 거라고 했거든요. 저보고 댄스만 보래요.”

하긴, 노래로는 이미 많은 호평을 받았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할 줄 아는 안무 있어요?”

“많아. 보이그룹? 걸그룹? 말만 해.”

그동안의 연습 성과를 보여줄 차례다.

유튜브와 음방을 보며 얼마나 연습했던가.

유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무거나요. 언니 자신 있는 걸로.”

“그래.”

컴퓨터로 음악을 찾았다. 처음부터 너무 욕심이 과한 것보다는 그래도 조금 쉬운 게 낫겠지.

레모네이드의 후속곡, ‘Specially’.

플레이했다가 바로 일시정지를 해놓고, 연습실 중앙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그래도 연습생이었다고 여기까지의 과정은 물 흐르듯 퍽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제 댄스도 잘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틀까요?”

유진이 눈매로 짙은 호선을 그리며 물었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음악이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댄스를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굳이 댄스를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른다면 대중들한테 전혀 거부감 없이 어필할 수 있을 거란 것을.

그것도 좋겠지.

그런데,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건 이런 거였다.

이 해방감, 이 황홀함, 이 전율.

댄스, 노래, 그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노력해서 결국 보여주리라. 무대로 증명하리라.

헤이러들은 뭘 해도 헤이러들일 테니, 그들은 그대로 떠들도록 놔두고.

자신은 응원해주는 이들과 함께 자신의 길을, 그동안 꿈꿔왔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리라.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졌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도 조금 시큰거린다.

드디어, 드디어 아이돌을 향한 길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토록 원하던 길에 드디어 첫 발을 내디뎠다.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과, 제대로 이곳에서 연습하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제야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짧은 음악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어땠어? 다른 것도 더 보여줄까?”

이젠 무슨 혹평이든 감당해낼 자신이 있었다.

이 바닥에선 초보인 입장이니 부족한 게 당연하다.

예전에 배웠다지만 그때도 댄스에는 영 자신이 없었어서.

“···아뇨. 괜찮을 것 같아요.”

당당한 목소리로 물으니, 시원찮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겠다.

허나, 좋게 본 게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

그래, 어떻게 사람이 다 잘할 수 있겠어.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유정아는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원, 투. 아뇨, 언니. 여기선 무릎을 탁 펴주는 반동을 살려서 골반부터 허리까지 쭉 세우는 거예요.”

“이렇게?”

“아뇨. 잘 봐요.”

“어.”

정아는 그리 잘하진 못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따라했다.

탑스타로서의 자존심과 고집은 여기에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잘하기 위해선 그러한 자세가 필요했다.

“언니, 체력이 좀 좋아진 것 같은데요? 예전 기억으론 별로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유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몇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는 강행군의 수업.

유정아가 숨을 헐떡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나름 잘 따라가고 있어서 그랬다.

정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연습 많이 했거든. 아직 더 할 수 있어.”

유진은 다시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수업 전에도, 그리고 수업 중간에도 몇 번이나 그러더니.

“···안 지쳐요?”

정아는 대답하는 대신, 그렇게 묻는 유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왜요?”

물통이 있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입을 슥, 닦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너 매니저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어?”

“···!”

유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정곡이었나 보다.

어쩐지 몇 번이고 빤히 바라보는 게 이상했다.

정아는 그런 유진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몇 번 보지 않아 신기해하는 사람도 아닐 테니, 남은 건 높은 가능성으로 하나.

자신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이리라.

“잠깐 쉴까?”

“···네.”

많이 당황한 듯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는 유진에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눈치를 봐? 다른 거 하고 싶은 게 잘못이야?”

“···그건 아니죠.”

“그럼 뭐가 문제야? 하고 싶은 게 뭔데?”

입만 뻥긋거리며 머뭇거리는 유진.

고민이 깊어지는지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나이가 있어서.”

유정아의 입장에선 코웃음이 나오는 핑계였다.

“나이? 나도 이제 아이돌 준비하는데? 피아니스트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닐 테고.”

“언니랑 제 입장은 다르잖아요. 이미 스타시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쌓아놓은 인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테고, 이 인기를 버릴 생각도 전혀 없었으니까.

정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덧붙였다.

“뭔지는 몰라도, 이쪽 바닥에 대한 거면 유민 오빠한테 물어보든가. 오빠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건 알아둬. 네가 진지하게 말해도, 오빠는 엉뚱한 거 내밀지도 몰라.”

“···?”

의문 어린 시선에,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오빠가 가끔 생뚱맞은 면도 있잖아. 그런데, 그게 생뚱맞은 게 아니라 남들이 못 보는 걸 보는 거더라. 생각보다 훨씬 더 보는 눈이 날카로운 사람이야.”

“그건 알죠···.”

“그럼 한 번 오빠 믿고 손 내밀어 봐. 끙끙 앓아봤자 너만 손해니까. 안 물어봐서 후회하는 일은 있어도, 물어봐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알지? 그 사람 눈 밖에 나간 사람한텐 한없이 사나워도, 품 안에 들어온 사람한텐 둥글둥글하고 푹신푹신한 거. 아마 이 바닥 일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할걸?”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애꿎은 바닥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정아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네. 결정은 네 몫이야. 생각 잘 정리하고 내일 보자.”

“아, 제가 집까지-“

“됐어. 택시 타고 갈게.”

유정아는 유유히 연습실을 빠져나갔고.

혼자 남겨진 유진은 닫힌 문을 가만히 서서 바라봤다.

***

VBC의 요리 예능, <재료만 골라줘>의 강정구PD.

본방을 30분 앞두고 나서야 겨우 테이프를 제출할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은 거의 해탈한 듯 보였다.

“하아. 그래, 이게 맞겠지. 맞을 거야.”

편집 과정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고 순항하는 프로그램의 편집 방향을 바꾸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면 더 좋은 장면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원래대로 도전 없이 가는 게 맞는 것인가.

그렇다면 좋은 장면이란 무엇인가.

아주 고민이 끝도 없이 뻗어나갔고, 내린 결론은 결국 이거였다.

“왜 그렇게 먹어가지고.”

‘꿀노잼’이라 했던 출연자의 말이 이번 회차의 핵심 포인트가 될 줄은 몰랐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른 맛이 느껴질 테니 채널을 돌릴 수도 있고, 아니면 고민의 결론대로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프로그램은 이렇게 불투명해졌지만.

어찌됐건, 하나만은 확실했다.

“먹방 스타 탄생이네.”

어떤 기사가 올라올지, 그 타이틀이 예상이 됐다.

‘먹방의 떠오르는 샛별, 김별.’ 같은 말장난이나 하겠지.

아무튼 먹방으로 보자면 때깔은 기깔나게 뽑혔으니.

식품 CF는 따놓은 당상일 거다.

< 나도 이제 아이돌 준비하는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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