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서연의 버스킹 >
사람들이 끓어 넘친다.
중학교 축제에서 공연했을 때보다는 많지 않지만, 지금 느껴지는 중압감은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후우-“
마이크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왼쪽에서부터 오른쪽까지 천천히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기타의 넥을 쥔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여서 나고 있는 소음이 귀에 유난히 크게 꽂히는 느낌.
눈동자가 흔들리고, 머리가 새하얘지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을 둘러보던 시선이 한 사람에게 멈췄다.
‘사장님.’
눈이 마주치고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준 사람.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고 있는 사람.
흔들리던 눈은 그에게로 똑바로 고정이 됐고.
넥을 쥐고 있는 손에서도 서서히 힘이 풀렸다.
‘할 수 있어.’
여기서 더 머뭇거리면 사장님의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다.
생각은 찰나였고, 실행은 빨랐다.
“안녕하세요. 구서연이라고 합니다.”
서연은 인사하자마자 곧바로 기타를 튕겼다.
원래 하려고 했던 곡은 많았다.
버스킹 시간이 1시간일 줄 알았으니까 여러 가지 준비했지.
하지만, 한 곡만을 할 수 있다면 바로 이거다.
아버지의 노래, ‘그대에게’.
다른 이유는 없다.
이걸 제일 잘할 수 있으니까.
이 무대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봤고, 이 음악을 귀에 딱지가 앉을 듯이 들었으니까.
눈은 주변을 향하지 않았다.
사장님의 눈만을 바라봤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다른 곳은 흐릿해져서 보이지도 않았다.
전주를 튕기던 손이 부드럽게,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연습실에서 문워크를 추며 불렀을 때가 추억처럼 떠올라서.
사장님의 얼굴에도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주가 끝나고 들어가는 도입부.
입이 열리고, 배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많이 들은 덕일까,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실리고, 손끝으로 연주하는 기타에 맞춰 리듬감을 살렸다.
역시 기타만 치는 것보다는, 노래랑 같이 하는 게 제일 재밌다.
‘너 노래 한 번 불러볼래?’
‘네? 왜, 왜요?’
‘그냥. 노래 잘하는 것 같아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
그땐 놓쳤지만, 지금은 잘해내고 있다.
내 손과 목에서 나오는 소리, 그리고 사장님의 얼굴에 피어난 커다란 미소.
‘천재다, 넌.’
‘기타가 미쳤어.’
‘아니, 진짜 실력이 미쳤다고. 이렇게까지 잘 칠 줄은 몰랐는데. 아! 이거 네가 직접 녹음한 거 맞지? 선생님한테 부탁한 게 아니고.’
집에서 하던 것처럼, 녹음할 때 했던 것처럼.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정해진 대로 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느낌을 살려서 조금 기교도 부렸다.
넥을 구부리기도 하고, 한 손가락 끝으로 두 현을 위아래로 끌어당기기도 했다.
음은 요동쳤고,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손이 멎었다.
‘어?’
아, 끝났구나.
정신없이 부르고 치다 보니, 끝난 걸 의식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와아아아!”
“우와! 너무 좋아요!”
“대박! 이름이 뭐라 그랬지?”
“와··· 미쳤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멍했던 정신을 깨웠다.
좁아졌던 시야가 한순간에 넓어지고, 비로소 그제서야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웃는 얼굴로 박수 치며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렸다.
다들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얼떨떨함도 잠시, 고개를 내려 기타를 쳤던 두 손을 바라봤다.
‘···해냈어.’
해냈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문득 시야가 뿌얘졌다.
서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김유민에게 달려갔고, 그의 품에 폭 안겼다.
“하!”
“와···.”
코웃음을 치는 유정아.
김유민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진.
“···왜 그런 눈으로 봐? 난 분명 여기에 가만히 있었어. 너네도 봤잖아!”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둘의 표정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
서연이가 마무리 멘트도 안 하고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상황이 붕 떠버렸다.
관객들은 이게 끝인지 아닌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난 유정아에게 눈빛으로 호소했다.
어떻게든 마무리 좀 해달라고.
그녀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기에, 내 뜻이 잘 전달된 듯했다.
내 눈빛을 받은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뚜벅뚜벅, 마이크 앞에 섰다.
“여러분, 공연은 끝났습니다. 이름은 구서연이에요. 그럼 모두 안녕히 가세요. 저희도 이제 집에 갈··· 어? 뭐야, 이거.”
말하다 말고, 위로 고개를 올리는 유정아.
관객들도 그녀를 따라 하늘을 바라봤다.
어두운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 있다.
설마 비가 오나?
“비 오나?”
“어? 나 지금 한 방울 맞았어!”
“비 오네.”
뚝뚝,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띄엄띄엄 내리고 있기는 한데, 이 굵기로 보아 한번에 쏴아아- 쏟아질 것 같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흩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밴드가 장비를 챙기는 걸 거들었다.
우리를 위해 빌려줬는데 손 놓고 떠날 수는 없잖아.
정리가 끝나니, 서둘러 장비를 챙기며 떠나는 밴드.
이마 위로 손을 올리며 얼굴에 떨어지는 비를 막고 있던 정아는 그제서야 말을 꺼냈다.
“택시 타고 차까지 가자.”
미간이 좁혀져 있다. 비를 맞는 게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
그래도 밴드가 장비를 다 챙길 때까진 묵묵히 참고 기다렸네.
그때, 유진이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편의점도 바로 앞이니까 제가 그냥 우산 사올게요.”
“그냥 택시 타고 가. 뭘 또 우산까지 쓰고 가.”
어느덧 눈물이 멎은 서연도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끼어들었다.
“별로 오지도 않는데 그냥 맞으면서 가면 안 돼요? 차까지 그리 멀지도 않잖아요.”
“구질구질하게 그게 뭐야! 나 유정아야. 그냥 택시 타고 가자니까?”
“언니, 그냥 제가 우산 사올게요. 이 시간이면 벌써 사왔을 것 같은데···.”
“이 시간이면 걸어갔어도 반은 갔겠어요.”
“그냥 택시 타자니까!”
가만히 이렇게 서 있는 것보다는, 셋 중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
역시나.
이렇게 시간을 끈 게 문제가 되었다.
쏴아아-!
시원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우리는 헐레벌떡 건물 밑으로 달려갔다.
“에이 씨! 이것 봐! 비 엄청 오잖아! 택시 타고 갔으면 됐을 거 아냐!”
근데 비도 오는데 택시가 잘 잡힐까? 목적지도 가까운데?
난 아니라고 본다. 다름아닌 주말 저녁의 홍대이기도 하고.
우리는 결국 투명한 비닐 우산을 쓰고 가야만 했다.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택시를 타는 것도 이미 늦어버렸거든.
“서연아, 너 우산 똑바로 써. 다 맞잖아.”
“기타 젖으면 안 돼요.”
기타에 우산 씌우고 자신은 비를 거의 다 맞고 있다.
그 꼴을 본 유정아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기타를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비 맞고 가자는 말은 왜 한 거야?”
“아깐 별로 안 왔잖아요. 그 정도는 케이스로 다 커버 돼요.”
난 한숨을 내쉬며 기타를 뺏어 들었다.
결국 나만 홀딱 젖기 시작했다.
셋이서 입씨름할 때 진작 끼어들걸.
누굴 탓하랴.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몸을 적시는 빗줄기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내 앞쪽과 왼쪽, 그리고 오른쪽을 애들이 둘러싸고 있는 덕분이다.
우산을 내 쪽으로 살짝 기울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차로 향하는 우리의 이동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서로의 우산이 자꾸 부딪히는 바람에.
***
모두를 집으로 데려다준 뒤.
나도 집에 들어와, 씻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몸은 조금 무거운데, 그렇다고 바로 뻗을 수는 없었다.
오늘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인터넷을 살펴보지 않으면 매니저 실격이지.
차 안에서 운전하며 그녀들이 말하는 얘기들을 귀로 듣긴 했으나.
그래도 자세히 내 눈으로 살펴봐야 했다.
커뮤니티, SNS, 유튜브, 그리고 기사들.
하나씩 뒤져보는데,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유정아가 저기 왜 있어???
-유정아 곱창 진짜 맛있게 먹더라ㅋㅋㅋㅋ 가까이서 보니까 엄청 인간적이었음. 아! 비주얼 빼고. 분위기랑 비주얼은 ㄹㅇ 사람 아니더라.
유정아에 대한 얘기가 제일 많았다.
[GO엔터에와 재계약하지 않은 유정아, 김별과 한솥밥 먹나?]
[홍대에 출현한 유정아. 난리난 홍대 현장.]
[오늘 하루 SNS와 커뮤니티에 도배된 유정아. 슈퍼스타의 위엄!]
[홍대에 나타난 유정아, 그 이유는? 신인 가수 홍보?]
기사들도 유정아에 포커싱이 맞춰져 있었다.
당연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정안데, 당연히 이래야지.
근데.
“···계약을 안 했네?”
그녀가 우리 회사로 올 거라는 게 확실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깜빡 잊어버렸다.
비도 오고 그래서 정신이 없기도 했고.
내일 바로 해야지.
인터넷엔 유정아에 이어, 구서연에 대한 반응도 많았다.
유정아 덕분에 어그로가 잔뜩 끌렸으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노래 잘하는데? 음색도 엄청 맑고 좋네. 귀엽고 이쁘기도 하고. 쟤 데뷔하면 진짜 인기 많겠다.
-아니 잠깐···. 기타 이게 말이 되나? ㅁㅊ개잘치는데??????
-헐! 이 구서연이 그 구서연이라고?
└? 누군데.
└(링크)김석희의 아메리카노에서 김별이 언급했었음. 음방 1위 했을 때도. 그리고 김별 곡 다 작곡한 애잖아.
-구태성 딸이래ㅋㅋㅋㅋ 근데 얘가 이렇게 귀엽게 생겼었네?ㅋㅋㅋㅋ
-데뷔 빨리 안 시키냐?
유정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연이에 대한 댓글들도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다.
무대 공포증을 깨끗이 지우는 데에도 성공했을뿐더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으니.
그런데.
대체 이런 반응은 왜 있는 거야?
-어? 저 사람 김별 매니저 아님? 옆에 까만 옷 입고 계신 예쁘신 분.
-돌판에서 유명한 사람임. GO엔터였는데 WE엔터로 갔나 보네.
-아니 매니저까지 저렇게 이뻐버린다고? 세 명 나란히 찍힌 사진 비주얼 미쳐버렸네···. WE엔터 취업하려면 어케 해야 됨?ㅋ
“하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유진과 유정아, 구서연이 나란히 찍힌 사진들.
사진을 좀 찍는 사람인 듯, 구도도 좋고 화질도 좋았다.
“예쁘긴 하네.”
사진을 유심히 쳐다봤다.
정말 저 세 명이 서 있는 그림이 예쁘긴 했다.
마치 걸그룹처럼.
***
몇 시간 뒤, 구서연의 방.
불을 꺼 어두운 방 안에, 핸드폰에서 나오는 빛이 서연의 얼굴을 비췄다.
옆으로 누운 채, 동글동글한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이건만.
정신은 또렷했다.
인터넷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이때 이런 반응이었었구나.’
노래를 부를 땐, 정신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집중해서 좋게 듣고 있었나 보다.
관객들의 표정과 환호성 하나하나.
그리고 댓글 하나하나.
서연은 그 모든 것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가고, 너무 기분이 좋아 도통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불렀는지, 내가 기타를 어떻게 쳤는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자신이 하고도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그때.
똑똑, 문을 약하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아, 자니?”
서연은 이불을 걷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눈물을 흘린 듯 아버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져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서연은 멋쩍게 시선을 돌리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자. 왜?”
아버지는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말을 고르고 있는 듯, 잠시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먹먹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잘했어. 정말 잘하더라.”
“···알았어. 고마워, 아빠.”
“그래. 잘 자.”
“어, 아빠도.”
문을 닫으니,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렸다.
울컥, 감정이 올라왔으나, 입술을 꽉 깨물며 참았다.
‘앞으로 사장님한테 진짜 진짜 잘해야지.’
다시 침대에 누운 서연은 인터넷 반응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눈을 감았다.
내일도 연습하러 가야 했다.
이제 데뷔가 얼마 안 남았을 테니까.
< 구서연의 버스킹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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