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유정아 효과인가? >
집 앞 길목에 나와 있는 구서연.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버스킹을 하기로 한 날.
버스킹이라는 낭만적인 단어에 긴장이 되기는 했다.
허나, 공포로 인한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인한 긴장이었다.
버스킹을 하자는 말을 들은 뒤, 자신의 모습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자신의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
어쩌면 여기서 자신의 첫 번째 팬이 생겨날 수도 있다.
“히히.”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관객의 얼굴을 꼭 기억해야겠다.
나중에 팬사인회 같은 데에서 말하면 알아볼 수 있게.
약속 시간은 두 시간이 당겨졌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시간이 남으면 구경도 좀 하자고 하길래 알겠다고 답했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날이 아닌가.
그냥 돌아오면 아쉬울 것 같긴 했다.
“왔다.”
익숙한 승합차가 보인다.
자신의 앞에서 멈춰 선 차.
서연은 조수석의 문을 열었는데.
“서연아.”
“어! 언니도 오셨어요?”
이유진이 어색한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유진의 입꼬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연은 바로 문을 닫고 뒷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안녕?”
“···어?”
한껏 뒤로 젖혀진 시트.
나른한 목소리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선배님이··· 왜···.”
“나도 가기로 했어. 너 버스킹하는 거 구경하러.”
“···!”
서연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
홍대, 버스킹 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주차장.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막 풀었을 때.
조수석에 앉은 유진이 입을 열었다.
“선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눈과 목소리로 호소하듯이 말을 잇는다.
“아니, 정아 언니 데리고 버스킹하는 건 그렇다 치자고요! 한 곡 하고 바로 빠지면 되니까.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몰겠다니요!”
대답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뒤에 앉은 유정아,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스킹 하러 나온 김에 나들이 좀 하자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야? 그리고 어차피 데뷔하려고 이러는 건데 미리 화제 땡기면 좋은 거 아냐?”
맞는 말이었다.
정아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구서연을 바라봤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서연.
원래는 마포구청에 버스킹 존 예약을 해놨다.
넉넉하게 한 시간만 하고 나오기 위해서.
그런데 유정아가 간다는 말을 듣고는 계획을 바꿨다.
유정아를 데리고 한 시간 동안 버스킹?
정아가 노래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녀는 구경만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면 사람들의 끓어올랐던 관심이 식기에 모자람이 없을 터.
그럼 이도 저도 되지 않겠지.
그러니 화제를 위해서라면, 잔뜩 어그로를 끈 다음에 반짝 치고 빠지는 게 최선이다.
서연의 멘탈을 지키기에도 그렇다.
공연할수록 식어버리는 관객들을 보고 있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
만약 정아가 없었다면 공연할수록 사람들이 불어나고 흥이 날 수도 있겠지만.
이따 모일 사람들은 정아 때문에 모인 거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우린 예약을 취소해버리고, 우리가 취소한 자리에 예약을 건 팀에 연락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곡만 하기로 말을 맞췄다.
“서연아, 유진아. 둘 다 들어봐.”
난 뒤로 몸을 돌리며 설명했다.
화제도 화제지만, 버스킹의 본 목적은 서연이가 무대 공포증을 얼마나 극복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
서연이에게 있어, 데뷔를 위한 최종 관문이었다.
한 시간 동안 혼자 공연하는 것보다 잔뜩 모인 관객들의 시선을 받는 게, 이를 확인하기에 더 좋은 방법이었고.
데뷔했을 때에도 이 화제가 도움이 될 테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유정아가 우리 회사에 왔다는 걸 알리는 건 덤이었고.
허나, 어그로만 끌고 바로 공연하라고 하면 덜컥 겁을 집어먹을 수 있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자는 것.
만약 여기서 서연이 당장은 공연을 못 할 것 같다고 하면, 다음에 혼자 하면 되는 거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바로 하면 되는 거다.
“무리는 안 해도 돼. 이 방법이 더 좋아서 이렇게 할 뿐이지, 급할 건 없으니까.”
“···네, 알겠어요.”
서연은 내 설명이 납득이 됐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유진이 또한 침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으음···. 선배니까 믿는 거예요. 그런데요, 선배.”
“응?”
“정아 언니는 혹시 위험하지 않겠죠?”
정아를 바라보며 묻는 유진.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나 또한 안전과 위험에 대해선 이미 지겹도록 체득한 것들이 있었다.
아주 특수한 경우였지만 글로벌 슈퍼스타 와인드업을 동남아에서 혼자 데리고 나가 돌아다녀본 적도 있고.
“괜찮아. 정아는 내가 지켜. 너도 버스킹 하기 전까진 정아 신경 쓰고, 공연할 땐 서연이 떨리지 않게 격려나 해줘.”
유정아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왜?”
“아니야.”
어깨를 으쓱이는 그녀.
난 이어서 서연이와 유진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내리자.”
***
“어!?”
“유정아다!”
“진짜 유정아야?”
“와 씨! 개이뻐!”
차에서 내리자마자 꽂히는 시선들.
심지어 저 멀리 있는 사람들도 유정아를 알아보고 있었다.
서연은 옆에 있는 그녀를 흘끗 바라봤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형형색색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이러니 사람들이 못 알아볼 리가.
찰칵! 찰칵!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건지 핸드폰의 렌즈들이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 있나? 여기서 뭐 한대?”
“팬이에요!”
“언니 너무 이뻐요!”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시선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는다.
턱을 살짝 들고, 꼿꼿한 자세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은 ‘다른 사람도 아닌 유정아니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한편으론, ‘어떻게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연은 눈을 굴려 주위를 쉴 새 없이 훑어봤다.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죄다! 전부! 이쪽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이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끝도 없이 더 많아져만 갔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걷고만 있기에 이런 시선들에 겁이 나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혔다.
“서연아.”
“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김유민은 주위를 경계하는지, 힘이 들어간 눈으로 주위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널 찍는 게 아니야. 정아를 찍는 거지.”
“그, 그렇죠? 알아요.”
말이 더 이어질 줄 알았는데, 거기서 그쳤다.
서연의 시선은 다시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저기 들어가자. 곱창집이야.”
유정아는 손가락으로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고, 다 같이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혹시 불편할까 싶어 안쪽으로 안내하려 했는데, 일행은 굳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은 아직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개 곱창 먹방.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유정아는 달랐다.
“소주 정도는 먹어도 되잖아.”
“안 돼.”
“왜! 곱창에 소주가 없는 게 말이 돼? 그건 곱창에 대한 모욕이야!”
“그래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에이! 치사해서 안 먹어!”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시선과 카메라에 너무 무덤덤한 유정아.
여유롭고 익숙해 보이는 그녀를 계속 보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자신 역시 유정아와 이렇게 밥을 먹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대체 언제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그녀와 함께 있는 걸 신기하게 여기지 않게 됐을까.
왜 주변에 더 신경 쓰고 있었지?
아빠가 왕년에 스타였어서?
아니다. 처음 볼 때는 분명 엄청 떨리고 긴장하지 않았는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신은 유정아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보는 거였는데.
‘사장님이랑 유진 언니랑 친해서 그런가?’
어쩌면 버스킹으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서연은 그게 퍽 신기하면서도 이상했다.
‘사실 무대도 별거 아닌 거 아냐···?’
서연은 쌈을 입에 넣으며, 창밖을 빤히 바라봤다.
사람들과 카메라.
자신에겐 친근하게 느껴지는 유정아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저 사람들처럼.
무대 역시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입에서 맛이 느껴진다.
“맛있다.”
***
곱창도 먹고 카페도 갔다.
그리고 가게를 구경하며 모자도 사고 머리핀도 사고 양말도 샀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개개인은 바뀌었을 지언정, 규모는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있었다.
난 곁눈질로 서연의 얼굴을 살폈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에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개의치 않는다. 그것도 너무 개의치 않는다.
이게 유정아 효과인가?
그저 경이로웠다.
‘일시적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쁜 소식은 아니지.’
지금은 유정아의 곁에 있다 보니, 잠시 무뎌진 것일 거다.
공연할 때도 이런 감각이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
그녀의 경우, 공포증이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니.
마찬가지로, 이번 한 번의 공연으로 깨끗하게 사라질 수도 있겠지.
우리는 군중을 이끌고 버스킹 존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약속했던 시간에 딱 맞춘 덕인지, 나와 연락했던 밴드가 마침 곡의 마지막 부분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서서 그들을 구경했고.
공연이 다 끝난 뒤에야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공연은 다 끝나신 건가요?”
“그럼요! 근데··· 혹시 사진 한 번 찍어도 괜찮을까요?”
내 옆에 선 유정아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보컬.
유정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밴드 멤버들이 모두 반색하며 유정아와 사진 촬영을 했다.
내친 김인지, 기타리스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매직을 건네며 추가로 부탁했다.
“정말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정말 출연하신 작품들 다 봤거든요.”
“네, 괜찮아요.”
정아가 매직을 건네받자, 환하게 밝아지는 기타리스트의 얼굴.
그는 사인지를 찾기 위함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여기다 해드릴게요.”
유정아는 대뜸 그의 몸을 돌리며 티셔츠 어깨 부위에 사인했다.
순식간이었다.
허나, 그는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기뻐하며 희희낙락했다.
“···저래도 돼요? 허락도 안 받았는데? 소중한 티셔츠일지도 모르잖아요.”
서연이 물었다.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연아, 넌 저렇게까진 되지 말아줘. 적당히 중간만 가. 부탁할게.”
이제 밴드가 뒤로 물러나고, 서연이가 나설 차례가 됐다.
우리의 주위로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
곡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이미 공연을 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서연이가 나선다고 해도 실망하진 않을 거다.
서연이의 등 뒤에 기타가 떡하니 메어져 있기도 하고, 정아는 한 걸음 떨어져 팔짱을 끼고 있었으니까.
다들 정아가 노래한다고는 기대조차 안 하고 있겠지.
“서연아, 할 수 있겠어?”
내 물음에, 다시 한번 천천히 주위를 훑는 서연이.
그녀의 얼굴은 살짝 굳어져 있었다.
막상 공연할 때가 다가오니, 정아 덕분에 마취되었던 감각이 조금은 깨어났을 수도 있다.
비장한 건지 긴장한 건지 잘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겠지.
그녀는 메고 있던 기타를 내리며 말했다.
“해볼게요.”
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앞으로 메는 서연.
“와아아!”
“와아.”
힘이 들어가지 않은 환호성.
그래도 재밌는 구경이라는 듯,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노래가 별로라면 이런 반응마저도 쏙 들어갈 것이다.
바로 시들시들해지고, 지루해하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겠지.
여기선 관객들의 표정이 아주 잘 보여서 그 반응이 더욱 잘 와닿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잘하기만 하면, 폭발적이겠지.’
밴드가 쓰던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선 서연.
크흠,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다.
“···.”
몇 번 심호흡을 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관객들을 천천히 훑는 눈.
그 시선이 내게로 향한 순간.
신호라도 받은 듯,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구서연이라고 합니다.”
< 이게 유정아 효과인가?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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