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할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네? >
“내 곡을 편곡한다고?”
장난이라기엔 너무 진지했다.
그래서 일단 마음대로 해보라는 답을 주기는 했는데.
“내 곡을 왜?”
객관적으로, 내 곡은 어딜 봐도 별로였다.
그런데 굳이 허락을 해준 이유는 딱 하나였다.
‘천재니까.’
구서연은 나와 같은 범재가 아닌, 진짜 천재였다.
요즘 시장에 곡 전체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작곡가는 결코 흔치 않았다.
그것도 프로의 세계에서 아주 잘 먹힐 정도의 퀄리티로.
그러니 기대가 안 될 수가 있나.
그녀와 같은 천재가 과연 내 곡에서 뭘 본 걸까?
내 곡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 될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그럼 나도 작곡가로 데뷔하게 되는 건가?”
이제 와서 꿈 타령할 생각은 없었다.
난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과거의 꿈에 대한 미련이 없었으니까.
‘지금 내 꿈은 우리 회사가 성공하는 거지.’
다만, 그렇다고 해도 과거에 품었던 꿈이 이뤄진다는 게 기분이 안 좋을 수는 없었다.
미련이 없다고 하여 기분이 안 좋을 리가 있겠는가.
“좋은 곡으로 바꿔줬으면 좋겠네.”
평소에도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곡을 들었지만.
이번엔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좀 더 마음이 기울지도 모르니까.
만약 정말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곡이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애매한 곡이 만들어진다면.
난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쳐내야 했다.
그게 지금의 내 역할에 맞는 결정일 테니까.
그렇게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한 나는 다시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별이의 ‘세로 라이브’가 올라오는 날이었다.
그러니, 댄스 연습 영상도 올려야지.
딸칵.
난 업로드되기 시작한 영상을 보며 씩, 미소 지었다.
음방 직캠 영상으로,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됐겠지만.
‘이건 못 참겠지.’
동그랗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춤추는 별이.
이 썸네일을 보고 어떤 팬이 참을 수 있으랴.
***
대학생 홍상진은 원래 레모네이드 팬이었다.
그러나 이수진의 인성 논란이 터진 후, 레모네이드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대놓고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녀가 앵콜 라이브에서 입도 뻥끗 안 하는 걸 보고 팬들도 눈살을 찌푸렸고.
댄스 역시 별로라는 것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수진이 아닌 다른 멤버들이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수진보다야 잘하긴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김별에 비해서는 보컬이 많이 모자랐으니까.
비주얼도 그렇고.
그런데, 이렇게 가뜩이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김별이 이수진과 완전히 대비되는 인성을 가졌다는 게 우연찮게 밝혀졌다.
그러니, 팬이 안 되고 배길 수 있겠는가.
김별의 후속곡, .
이 음방 무대를 처음 보게 된 순간.
이젠 마음 놓고 김별이 본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 팬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보컬이랑 비주얼이 저렇게 엄청난데, 심지어 춤도 저렇게나 잘 추다니!
덕분에 홍상진은 무척이나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음방 무대 교차 편집 영상, 뮤비, 각종 직캠 영상들을 보며 즐겨야 했고.
뒤늦게 팬카페를 가입한 뒤, 부랴부랴 김별에 대한 것들을 처음부터 쭈욱 파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또 구서연이네. 이 사람은 누구야?”
김별의 데뷔곡과 후속곡의 유일한 작곡가, 구서연.
홍상진은 팬카페에 물어보기로 했다.
-구서연이 누구예요? 진짜 고마우신 분이네요. 우리 별이한테 이렇게 좋은 곡을 계속 주시고.
답댓글은 금방 달렸다.
-구서연 몰라요? 가수 구태성님의 따님 되는 분이라고 별이가 말했어요. 동갑이래요ㅋㅋㅋ 친구 된 듯. 영상 링크 남기고 갑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보니 첫 데뷔 무대라고 한다.
이걸 이제서야 보고 있다니. 역시 아직 멀었다.
“그 구태성 딸이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정보 하나를 머릿속에 저장해뒀다.
문득 시간을 보니, 이제 ‘세로 라이브’가 올라올 때가 거의 임박했다.
그리고 잠시 뒤.
상진은 미소 띤 얼굴로 영상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 라이브 진짜 잘한다. 귀 녹을 것 같네.”
모든 면에서 모난 데 없이, 굉장히 뛰어난 가수를 팬질할 때가 이런 기분이구나.
세상 사람들한테 다 자랑하고 싶다.
왜 이제서야 팬이 됐을까?
그렇게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행복한 덕질을 하던 와중이었다.
띠링! 유튜브 알람이 떴다.
“어···? 미친!”
연습실 안무 영상이 예고 없이 떴다.
상진은 곧장 채널로 들어갔고, 거기엔 미친 썸네일의 영상이 최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카메라를 보며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김별.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두껍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잡고 있었다.
“···!”
왜 빨리 안 올리냐고 사장을 욕했었는데.
왠지 그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아니다. 그래도 빨리 안 올린 건 진짜 괘씸하지.”
그래도 영상이 올라왔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연습실이 좀 구린 것 같긴 한데, 신생 기획사라서 어쩔 수 없을 터.
상진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다.
아직 김별에 대해 공부할 게 더 남아 있긴 했는데.
“반복재생은 못 참지.”
대학생 홍상진.
산더미처럼 쌓인 학과 과제는 뒷전이었다.
***
촬영장으로 향하는 길.
조수석에 앉은 별이는 배에 손을 올리며 힘없는 목소리를 냈다.
“사장님, 저 너무 배고파요.”
오늘은 드디어 요리 예능에 출연하는 날.
녹화 때 많이 먹기 위해서 한 끼 굶고 왔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안 굶어도 잘만 먹을 것 같은데.
“그럼 뭐라도 먹어. 간식 같은 거라든지.”
“···그래도 되겠죠? 간식 정도면.”
“그럼.”
그녀는 가방에서 바로 초콜릿과 젤리를 꺼내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먹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럴 거면 왜 굶은 거야?
비닐에 싸인 작은 초콜릿을 세 개쯤 먹었을 때.
그녀의 얼굴에 비로소 활기가 돌았다.
그래, 먹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예능 촬영인데, 힘이 있어야지.
“사장님도 하나 드릴까요?”
물음과 동시에 입 앞에 작은 초콜릿이 내밀어졌고.
난 이를 얌전히 받아먹었다. 맛있네.
초콜릿을 먹어서 그런지 나도 활기가 도는 것 같다.
후속곡이 너무 잘되고 있어서 이미 기분이 좋은 상태이기도 했다.
‘적수가 없어.’
차트에 그녀와 겨룰 만한 적수가 없었다.
와인드업의 앨범이 아직도 차트 전반에 포진해 있지만, 이젠 줄세우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라이벌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레모네이드는 논란으로 부진하고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빈집이라고 봐도 되지. 운이 좋았다.
덕분에 별이의 후속곡, ‘Hang Out’은 차트에서 순항하고 있었다.
음방은 진작에 1위를 했고, 차트에서도 벌써 4위를 하고 있거든.
비록 차트 올라가는 속도가 OST 때보단 느렸지만, 그건 당연하지.
그런데 차트 1위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녹화가 잘만 뽑히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 헛된 기대는 아닐 것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이라서 대중들에게 어필하기에도 좋을 테니까.
“사장님, 이 방송 팬미팅 다음에 방송돼요?”
“아니. 팬미팅 직전에 방송될 거야.”
얼마 뒤면 팬미팅이다.
미니 팬미팅도 아니고, 제대로 된 첫 번째 팬미팅.
우리와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스케줄이다.
아직은 준비 과정에 있기에, 팬미팅에서 뭘 할지 여러 가지 짜보긴 했다.
아이디어도 꽤 많다.
그런데,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기본 정도만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무대를 보여주는 건 당연하고, Q&A와 사인회 정도만.
나중이라면 몰라도 첫 번째 팬미팅이기에, 소통에 비중을 두는 게 나을 것이다.
정말 엄청나게 잘 준비하지 않는 이상, 팬들도 그 편을 더 좋아할 거고.
내 대답을 들은 별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옆에 난 창문으로 시선을 두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추 짐작이 됐다.
팬미팅 하기 전에 차트 1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거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축제의 분위기에서 더 즐겁게 팬미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
조용히 시간이 흘렀고.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그리고.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출연진들과 스탭들이 증명해줬다.
“별 씨, 맛있어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별이.
대답을 하기 위해서 씹는 속도를 빠르게 높이더니, 꿀꺽 삼키며 말했다.
“네, 너무 맛있어요.”
출연진들과 스탭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다른 출연진이 이에 탄성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야···. 요리는 무진장 못하시더니, 먹는 건 제대로 하시네. 별 씨, 별 씨는 다른 거 안 하셔도 되니까 맛있게 드시기만 하세요. 그거면 돼요.”
“그러게. 먹는 양도 장난 아니야. 대체 언제 저렇게 드신 거야?”
“진짜 이쁘게 먹는다. 팍팍 먹는데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 먹지? 거참 신기하네. 이게 그거지? 꿀노잼인지 뭔지 하는 거.”
“노잼인데 이상하게 꿀잼이다, 뭐 그런 뜻 맞죠? 그거면 딱 들어맞겠는데.”
“어어. 그 뜻 맞아. 저거 봐. 완전 꿀노잼이잖아.”
먹는 게 메인이 되는 프로그램이 아닌데, 모든 포커스가 별이에게 쏠리고 있다.
작가와 피디도 이를 말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좋은 흐름이네.
“큭큭. 김별 씨 때문에 우리 방송 최초로 먹는 분량이 더 많을 수도 있겠는데?”
출연진이 시킨 대로 맛있게 음식을 먹던 별이는 그 말에 놀란 듯했다.
토끼눈이 되어,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아, 눈치 볼 필요 없어요. 맛있게 먹어요. 그게 도와주는 거예요.”
“하하! 오늘 녹화 희한하게 돌아가는데? 이래도 돼?”
“김별 씨, 진지하게 먹방 한 번 해봐요. 잘될 것 같은데.”
“이 사람아! 이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한테 먹방을 하라니.”
출연진들이 그저 넋 놓고 구경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포커싱이 별이에게 맞춰졌을 뿐.
‘이 방송으론 얼마나 화제가 될까?’
잘하면 CF까지 노려볼 수도 있겠네.
***
손에 든 피크로 시원스럽게 기타줄을 긁는 구서연.
그녀의 손은 거침이 없었고, 눈동자는 또렷하게 빛났다.
편곡이 처음은 아니다. 작곡 연습을 하며 편곡을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그런데, 이런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형태가 또렷하게 보이고, 손아귀에 이미 들어온 듯 촉감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작곡이 아닌 편곡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서연이 치고 있는 기타 루프는 원곡과 완전히 다른 감성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갖고 있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편곡이 아닌, 완전한 재창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서연이 봤을 때, 이건 편곡의 영역이긴 했다.
아니면 공동 작곡이거나.
분명 처음 치는 기타 루프이거늘.
서연은 수백, 수천 번을 치기라도 한 것처럼 매우 익숙한 손길로 줄을 튕겼다.
그리고 드디어.
“됐다!”
환희가 온몸에 격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이걸 한가롭게 즐기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은 영감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지만, 이게 또 언제 빠져나갈지 몰라서.
손에서 기타를 놓은 서연은 헐레벌떡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타를 녹음했으니, 나머지 작업을 서둘러야지.
사장님한테 들려줄 생각에, 벌써부터 서연의 얼굴에 생글생글한 미소가 피어났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 사장님도 이걸 들으면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할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네?”
사장님이 자신을 작곡가로 데뷔시켜줬는데.
이젠 자신이 사장님을 데뷔시켜주게 생겼다.
“나 같은 천재도 옆에 있고. 진짜 사장님 인복 하나는 알아줘야 된다니까?”
방긋 웃는 서연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김별의 곡을 책임져준 작곡가, 구서연.
가수로서의 무대가 그녀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 역할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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