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31화 (31/124)

< 사장님 작곡하셨었댔죠? >

음방은 아직 출연하지도 않았건만, 스케줄이 쏟아지고 있다.

인터뷰와 화보 촬영은 물론, 유명 유튜브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들어왔고, 행사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요리 예능.

그것도 공중파다.

비록 제대로 된 먹방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리 예능이다.

요리 예능이면 먹는 장면은 필수.

난 그걸 노렸다.

원래 이 프로그램에 먹는 비중은 많이 없는데, 짧게만 나와도 성공이다.

분량이 늘어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렇게 스케줄을 한아름 가득 안은 채, 우리는 컴백 음방에 출연하기 위해 공개홀로 향했다.

오늘은 사전 녹화가 있었다. 감개무량하다.

데뷔곡 땐 겨우겨우 음방에 들어가, 사녹도 못했었는데.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스탭들이 아직까지는 팔팔할 때였다.

아직 출연 가수들 중 대부분의 팀이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었고.

그런데, 하필 그 대부분의 팀들 중 레모네이드는 끼어 있지 않았다.

대기실에 떡하니 적혀 있는 ‘김별’과 ‘레모네이드’의 이름.

문 너머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린다.

레모네이드가 우리보다 한 타임 앞서 사전 녹화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별아.”

복도는 휑했다. 간간이 한두 명씩 지나가는 정도.

맞은편의 공개홀 아래는 세트를 갈아치우느라 바쁘겠지만, 그 사람들이 이쪽 복도를 통해 이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거다.

아무리 별이가 강제 인성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내 부름에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들어가요.”

오늘 누가 와 있을까? 이팀장이 또 왔을 리는 없다.

이수진이 인성 논란이 되지 않았더라면, 한껏 의기양양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겠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이수진이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거기에 SNS를 통한 반성문도 덤.

네티즌들은 그럼에도 욕을 퍼붓고 있었고, 나도 거기에 한 팔 거들기도 했다.

그러니 아마 오늘은 로드 매니저만 왔겠지.

“···!”

“···!”

우리가 올 줄 알았을 텐데도, 막상 얼굴을 비추니 얼굴이 굳는다.

대기실 안을 음소거라도 한 듯하다.

우리의 발자국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지. 이팀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안에 있는 건, 내 손으로 뽑았던 멤버들 5명과 로드 매니저, 그리고 스탭들 뿐.

난 전에 했던 것처럼, 그들을 흘끗 보곤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별이는 그러지 않았다.

“안녕.”

내 고개가 홱, 돌아갔다.

별이는 태연한 얼굴로 태연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함께 연습했던, 그리고 함께 데뷔조에 들었던 레모네이드 멤버 다섯 명에게.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고,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했다.

별이의 시선은 바로 나에게로 향했다.

왜 그러고 서 있냐는 듯, 전혀 미동 없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자리로 와서, 바스락거리며 짐을 정리했다.

우리 쪽에선 짐을 정리하는 소리가 나고 있는데, 여전히 저쪽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나 보지.

별이의 얼굴을 흘끗 살펴봤다.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다.

파티션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쟤네들을 신경 써서 일부러 표정을 관리하는 건 아닐 텐데.

난 갑자기 인사한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해져서 아주 아주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내 물음에,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젠 인사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이미지를 챙기겠다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입이 스르르 벌어졌다.

밉지 않은 여우 같은 모습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이젠 그녀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다.

팬들의 댓글을 꼼꼼하게 살피게 하길 잘했지.

난 그녀의 미소에,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했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쟤네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처음엔 당황했을지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빡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설마 이것까지 노린 건가?

***

언젠가 김유민이 팥죽을 사 들고 왔던 유정아의 집.

널찍한 거실, TV 앞에 서 있는 유정아는 목을 빙글 돌리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복장은 운동복. 바닥엔 언제 산 지 모를 매트가 깔려 있었다.

광고만 내내 나오던 TV는 까맣게 물들었고.

이내, 가요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후우!”

짧게 숨을 뱉었다.

첫 번째 무대는 김별과 레모네이드가 아닌 남자 아이돌 팀이었다.

그리고 그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유정아는 TV옆에 둔 삼각대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녹화를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

유정아는 음악 소리에 맞춰, 그리고 TV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에 맞춰 댄스를 시작했다.

아이돌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유정아는 유튜브를 보면서 댄스에 매진했다.

그래도 예전에 배운 가닥이 있기에, 단순히 안무를 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대는 하나둘, 이어지고.

녹화한 영상도 따라서 하나둘씩 메모리에 쌓여갔다.

음방이 끝나고 전부 다 확인할 예정.

한 명이 부족한 레모네이드의 무대도 따라 췄다.

좀 더 동작에 힘이 들어갔을 뿐, 유정아에게는 차별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김별의 ‘Hang Out’.

김별의 무대가 시작됐다.

그제야 비로소 유정아는 쉴 수 있었다.

이건 안무 영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으니까.

오늘 방송이 끝나고 직캠 영상이 뜨면 그걸 보고 딸 생각이었다.

“후우! 힘들어. 후우!”

잘 추든 못 추든, 일단 최선을 다해서 몇 개의 곡을 연달아서 소화했으니 힘들 만도 했다.

유정아의 온몸은 벌써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무대를 보는 유정아의 눈빛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이제 저 무대에 내가 선다!’

TV 속에서 무대를 펼치고 있는 김별의 얼굴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물론, 천재 배우의 입장에서 볼 땐 표정 연기가 이보다 더 어설플 수 없었지만.

즐기고 있다는 감정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얘 뭐야.”

유정아의 눈썹이 조금씩, 조금씩 찌푸려졌다.

“왜··· 춤도 잘 춰?”

솔직히 노래를 잘하고 비주얼도 그 정도면 춤은 못 춰야 하는 거 아닌가.

데뷔곡도 안무가 없었고, OST도 발라드로 불렀으면, 안무가 있는 곡은 좀 어설퍼야 할 거 아닌가.

그래야 정상이지 않나.

비록 다른 그룹의 메인 댄서 정도만큼은 아니었으나.

저 정도는 양심이 없는 수준이었다.

유정아의 얼굴은 이내 심술궂게 변했다.

“이 씨! 이게 말이 돼!?”

행복하게 미소 짓는 김별.

유정아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김별을 노려보았다.

애초에 적당히 할 생각도 없긴 했는데, 왠지 김별 때문에 저런 게 당연한 기준이 될 것 같았다.

예능에서 이미 댄스를 보여줬던 걸 보지 못했던 유정아로서는,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착하게 봤는데···!”

씩씩거리고 투덜거리는 입은 김별의 무대가 모두 끝날 때까지 쉬지를 않았다.

그리고, 몸 역시도 짧은 휴식을 때려치고, 김별을 실시간으로 따라하기 시작했다.

안무를 잘 몰라서 따라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더 힘들었다.

***

유진이와 계속 로테이션을 돌리고 있는데도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문득 밖을 보면 깜깜했다가, 또 문득 밖을 보면 해가 쨍쨍했다.

사실 스케줄을 그렇게 빡빡하게 잡은 건 아니었다만, 아무래도 음방 때문에 하루에 한두 개만 껴도 빡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케이블 음방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다가 별이가 쓰러질지도 모르니.

냠냠, 젤리를 먹는 별이의 얼굴엔 전혀 피로감이 보이지 않긴 했는데.

겉으로 볼 때 멀쩡하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되더라고.

“별 씨, 준비 끝났습니다.”

별이는 막 입에 넣으려던 젤리를 다시 봉지에 넣어두고, 물을 마셨다.

우리가 지금 나와 있는 곳은 유튜브 채널의 스튜디오였다.

근데 유튜브라고 해서 무시할 게 아니다.

구독자가 무려 360만이 넘거든.

오늘 우리가 녹화할 것은 ‘세로 라이브’.

이 채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킬링 보이스’라고 해서, 가수의 곡을 하이라이트 부분만 20여분 정도 부르는 거였는데.

우리는 아직 곡이 세 개밖에 없어서 무리였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출연할 수 있겠지?

아니, 그때쯤 되면 저쪽에서 사정사정하며 제발 출연해달라고 매달릴 수도 있다.

세 곡 만에 이 정도 위치까지 올라왔는데, 앞으로 더 많은 곡을 낼 때쯤 되면 인기가 천장을 뚫지 않겠는가.

내가 꼭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깔끔하게 꾸며진 스튜디오.

별이는 터벅터벅 걸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말만 하라는 듯, 스탭들을 쳐다봤다.

“···? 지금··· 준비 다 되신 건가요?”

스탭의 질문에 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네.”

“···네. 그럼 바로 시작해주세요.”

처음엔 스탭들도 긴가민가한 얼굴로 쳐다봤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모습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 때문에.

그런데, 반주가 흐르고 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들의 표정은 싹 변했다.

이럴 때 진짜 뿌듯하다.

이젠 저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난다 긴다 하는 보컬들의 명단에 별이의 이름도 적혔으리라.

이 스케줄은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노래 한 번만 부르면 끝이었기에.

그래서 우리는 연습실에 도착해, 다음 스케줄을 행하기로 했다.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로 그, 댄스 연습 영상.

방금 전에 찍었던 ‘세로 라이브’ 영상이 올라오는 날에 이것도 같이 올려야겠다.

한꺼번에 보면 팬들 기분 끝내주겠지?

사실 팬들 입장에선 ‘그딴 계산 필요 없으니까 빨리 내놔!’라고 할지 몰라도, 막상 같은 날에 올라오면 좋아한다.

‘···아닌가?’

팬들이 들으면 돌을 던질 것만 같은 서늘한 느낌이 뒷목을 스쳤는데, 그냥 계획해둔 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내가 사장인데 뭐.

“별아, 시작할게? 이제 이거 끝나고 밥 먹자.”

이미 늦은 시각.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이다.

물론 내일 스케줄도 많다. 인터뷰 세 개와 화보 촬영까지.

그런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바쁘면 좋은 거지.

케이블 음방을 빼길 잘했다.

***

연습실에도 나가지 않고 방에 틀어 박혀서 내내 일렉 기타만 잡고 있는 구서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선명해졌다가, 흐릿해졌다가, 복잡해졌다가, 엉망진창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손은 쉬질 않았다.

기타를 친 게 몇 년인데, 피크를 쥐고 있는 손가락에 몇 번이나 쥐가 날 정도였다.

‘조금만 더 하면 나올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하면서 보이지 않는다.

형체도, 크기도 알 수 없지만 무언가가 자꾸 간질거리고 있다.

서연이 기타를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런 서연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버지 구태성이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서연아, 좀 쉬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아니 아빠, 나 조급해서 이러는 거 아냐. 진짜 뭔가 올 것 같단 말이야.”

“뮤지션들 그러다가 1년 버리고 2년 버리고 하는 거야. 영감이란 건 쉴 때 나오기도 해. 휴식도 엄청 중요한 거라고.”

“···알았어.”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문을 닫았고.

서연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피크를 손에서 놓았다.

아버지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별의 곡은 순식간에 만들기도 했는데, 이건 영 지지부진하다.

어쩌면 환기가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언이 필요하거나.

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작곡가로서 데뷔하게 해주고, 성공을 맛보게 해주고,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공포증을 고쳐준 사람.

서연에게 사장님은 뭐든지 해결해주는 도라에몽과도 같았다.

-여보세요?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들렸다. 많이 바쁘신가 보다.

역시 곡을 잘 만든 덕이지. 누가 만들었는데.

“사장님, 도움이 필요해요.”

-뭔 도움?

“저 곡이 잘 안 만들어져요. 제 곡 만들려고 했는데.”

-어? 어떤 거? 뭐가 문젠데?

곡 얘기를 꺼내니, 피곤에 찌들어 있던 사장님의 목소리가 생기를 되찾았다.

이걸 서운하게 생각해야 하나, 기쁘게 생각해야 하나.

서연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지지부진한 과정에 대해서 모두 설명했다.

일렉 기타를 메인으로 댄스곡을 만들고 싶은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김별의 곡은 삘 받아서 후딱 만들었는데 자신의 곡은 삘이 빡 꽂히지 않는다.

이를 들은 김유민은 고민하는 듯 짧게 침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이럴 땐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역시 휴식이 답인가.

아버지와 같은 소리였다.

서연은 한숨을 푹 내쉬다가, 문득 한 가지가 머리를 스쳤다.

“아! 사장님, 작곡하셨었댔죠?”

-어, 그렇지.

“사장님 만든 곡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셨어요?”

-···왜?

경계하듯 날카로워진 눈매가 보이는 듯했다.

보나마나 미간은 찌푸려져 있겠지.

서연은 그 얼굴을 그려보며 웃음 짓다가 답했다.

“사장님이랑 저랑 음악적으로 좀 잘 맞는 편이잖아요. 사장님이 만드신 음악 들으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나 음악 잘 못한다니까? 난 너 같은 천재랑 비교가 안 되는 사람이야. 그냥 범재라고.

“너무 안 만들어져서 그래요. 환기도 시킬 겸, 궁금하기도 하고요. 네? 사장니이임!”

들려주기 싫어하니, 왠지 더 듣고 싶어졌다.

사장님이 만든 곡들은 어떨까?

-하아. 꼭··· 들어야겠어? 진짜 못 만들었는데.

“한 번만요. 네?”

-한 번은 무슨. 계정 알면 몇 번이고 들을 수 있는 건데. 아무튼··· 알았어.

서연은 짧은 어퍼컷을 허공에 날리며 소리없이 쾌재를 불렀다.

통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울했었는데, 지금은 환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전화가 끊기고, 계정이 적힌 톡이 왔다.

서연은 곧바로 들어갔고, 거기엔 30곡이나 올라와 있었다.

적다면 적은 거고, 많다면 많은 건데,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다.

이게 한 곡마다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건지, 아니면 대충대충 되는 대로 올린 건지.

서연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입술을 핥으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처음 올린 곡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

처참했다.

역시 사장님이 괜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러면 캐물어봤던 게 너무 미안해지는데.

“···아니야. 처음 올린 곡이라 그런 걸 수도 있어.”

두 개, 세 개, 네 개··· 그리고 열 개.

하나씩 들어볼수록 서연의 얼굴은 미안함으로 일그러졌다.

가면 갈수록 퀄리티가 나아지긴 했으나, 좋다고 말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어서.

“아냐. 하나쯤은 좋은 게 있겠지.”

서연은 이제 칭찬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곡을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기껏 사운드 클라우드를 말해줬는데, 이에 대해 아무런 감상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좋은 거 하나만 나와라. 제발.’

어느새, 사운드 클라우드를 듣는 목적이 바뀌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남은 곡이라고는 달랑 하나.

서연의 눈동자는 지진이 난 듯 떨렸고,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제발 좋아라, 제발 좋아라.

클릭을 하기가 왜 이렇게 두려운지.

서연은 누르지 않고 버티는 손가락에 꾸욱, 힘을 주며 클릭했다.

“···.”

이어폰으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마저도 곡의 퀄리티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를 듣는 서연의 눈빛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머리는 팽팽, 돌아가며 과열됐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서연은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며, 손을 움찔움찔 떨었다.

피크를 쥐고 기타를 쳤던 손이었다.

입도 뻐끔뻐끔 열리고, 발도 앞꿈치가 들렸다 내려졌다 제멋대로 움직였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노래를 듣기 전과는 다른 느낌의 목넘김이었다.

서연은 달뜬 숨을 내뱉으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거 봐. 내가 도움 안 된다고 했지?

“사장님.”

서연은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혹시 사장님 곡 편곡해도 돼요?”

< 사장님 작곡하셨었댔죠?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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