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소리 끝내주네 >
“삼촌!”
사색이 된 얼굴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이수진.
동공이 쉴 새 없이 떨리는 걸로 보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고 있긴 한 모양이다.
최이사는 그런 이수진을 바라보며 분노가 들끓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마련한 기회인데, 감히 시건방을 떨어서 모든 걸 망치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이 때에.
“삼촌···. 호, 혹시 방법 없을까요? 더 큰 걸로 덮으면 될 것 같은데. 유정아 있잖아요. 유정아 인성 나쁘다고 소문도 자자하던데, 그거 밝히면 되는 거 아니에요? 재계약도 잘 안 되고 있다면서요! 이제 우리 회사도 아니잖아요! 유정아 인성 문제만 터지면 제 문제는 그냥 묻힐 정도로 타오르지 않을까요?”
와중에 해결책까지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방법이 틀려먹었다.
얘는 아무것도 모른다.
최이사는 터져 나올 것 같은 고함을 꾹 억누르며 말했다.
“너랑 상황이 달라. 유정아는 이렇다 할 기폭제가 없어. 까칠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확 터뜨릴 만한 게 없다는 거야. 그리고 유정아는 해결하는 것도 쉬워.”
“그걸 어떻게 해결해요! 유정아에 비하면 훨씬 인지도 없는 저도 이런데!”
“유정아는 계약이 끝나가잖아. 김유민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저쪽에서 회사 옮긴다고 기사만 뿌려도 네티즌들이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야.”
유정아 재계약 실패에 초점이 맞춰져, GO엔터가 개수작부리고 있다고 추리할 거다.
이젠 네티즌들에게 이 정도 추리쯤은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라이트 팬들의 눈에도 선히 보일 정도.
정말로 이수진처럼 이렇다할 기폭제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GO엔터 이미지만 더 나빠질 뿐이다.
조작? 할 수 있긴 하다.
최이사 역시 김유민과 그의 아티스트들을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고.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수진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 이수진이 김별 자리에 대체됐다는 걸 저쪽이 밝히기라도 하면, 대중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어이가 없다 못해 웃길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는지 대중들의 이목이 집중될지도 모른다.
그럼 인성 논란으로 넘어가지 않고, 완전히 이미지가 끝장 나는 셈.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자리마저도 위태롭게 된다.
그야말로 족쇄이자, 목줄이었다.
너무 짜증이 나서, 고작 한다는 게 구서연을 데려온다는 거였는데.
그것마저도 메일이 읽씹을 당해버렸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어···.’
그런데 이수진은 이것조차도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그래도 유정아 논란만 터뜨리기만 하면, 해명된다고 해도 제 건 그대로 묻히지 않을까요?“
“···유정아 건드리면 넌 완전히 끝이야.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김유민··· 그놈 절대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야.”
최이사의 머릿속, 김유민의 이미지는 이러했다.
건드리면 물어버리는 미친 개.
절대 가만히 당하고 있을 놈이 아니다.
“그,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멍청하게 못 알아듣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수진.
한창 신경이 곤두서 있던 최이사의 눈에 그 모습이 크게 들어왔고.
자신을 업어 키우며 고생만 했던 누나를 생각해, 화를 꾹꾹 눌러 담았던 최이사도 마침내 폭발해버렸다.
“너 때문에 나까지 곤란해졌어!”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커다란 호통.
이수진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삼촌의 모습이었다.
“···죄송해요.”
“그냥 지금은··· 그 사람한테 사과하고 자중해야 돼.”
“그럼 이번 활동은 어떻게···.”
반성하는 모습도 없고, 끝까지 자기 걱정만 하고 있다.
최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만 자숙하면 돼. 다른 멤버들은 그대로 활동하게 될 거야.”
“···!”
당분간 논란은 더 따를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게 그나마 가장 나은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막 호응을 얻고 있는 활동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
“와. 완전 난리 났네.”
GO엔터테인먼트의 재무팀 신입, 이성원.
아티스트들과는 별 관련이 없는 오퍼레이션 직무이기도 하고, 이제 막 1년을 꽉 채우고 있는 새파란 신입이라서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알아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겠지만.
그런데, 대회의실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사내에 이에 관해 모르는 이가 없게 됐다.
‘저는 이수진이 아니라 김별을 넣는 게 맞다고 봅니다.’
김유민이 벌떡 일어나며 위풍당당하게 했다던 말.
연예계가 다 그렇겠지만, 이게 아직까지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소문으로나마 앞뒤 사정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말이다.
“언젠간 밝혀지겠지?”
아무튼 그때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김별이 너무 잘해서 그런 건지.
김별이 데뷔했을 때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가, 이제는 팬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같은 회사라지만 레모네이드에게는 마음이 가질 않았다.
[댄스 지 혼자 틀리는 이수진]
[춤선 지 혼자 튀는 이수진. 멤버들과 비교]
[1위 앵콜 때 입도 뻥끗 안 하는 이수진ㅋㅋ]
[인성 보이는 움짤ㅋㅋ 여태 어떻게 숨겼냐]
[인기 많은 연예인과 그렇지 않은 연예인 대하는 ‘그분’의 태도 비교]
[MR제거 부문 대상. 역대급 라이브 천재 이수진!]
이러한 영상들이 올라와도 아무런 감흥도 없을 정도.
그저, ‘그렇구나’하는 심드렁한 생각만 들 뿐이었다.
-저 스탭이 이상할 거라곤 다들 생각 안 하나요? 잘 활동하고 있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냐;; 다들 제대로 사실 관계 밝혀지기 전까진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님. 악플로 대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더 일어나야 정신 차리는 거야.
└이거 실드라고 보면 되죠?ㅋㅋㅋㅋ 와 이것까지 실드 치는 사람이 있네.
-난 이제 안 되겠다. 탈덕한다. 수고해라.
-저도 팬인데 이것까지 실드 치면 대가리 깨진 거죠···. 인성 논란에 이어서 실력 논란. 사실 전부터 레모네이드에서 이수진은 별로 안 어울린다고 느꼈음.
이쪽은 이렇게 불타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이수진의 인성을 폭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SNS 덕분이었다.
대체로 김별의 팬들은 괜히 어그로가 끌릴까 봐 자중하는 분위기였으나.
그래도 들뜬 분위기를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티저와 트레일러 등의 댓글에서도 기대감이 더 높아진 게 보였고, 움짤들을 더욱더 활발히 올리고 있었다.
팬부심이 거의 폭발 직전이라고나 할까?
이는 GO엔터 재무팀 신입 이성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참 더디게도 흘러가는 시간을 힐끔힐끔 보며 다리를 떨었다.
이제 김별의 뮤비와 음원이 공개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3분.
커뮤니티와 팬카페, 그리고 유튜브를 바쁘게도 오가던 그는, 마침내 시간이 되자 새로고침을 무한히 반복했다.
그리고.
“떴다.”
번개와 같은 속도로 뮤비를 틀고, 최고 화질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어폰은 필수.
눈 깜빡이는 것도 조심하며, 부동자세로 감상하려고 마음을 먹길 10초.
그의 눈은 어느 순간에 동그랗게 커졌다.
“헐!”
엔도르핀이 솟구쳤다.
방방 뛰려 하는 몸을 필사적으로 자제하며, 10초 뒤로 돌아갔다.
웬만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으려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게 만들었다.
“댄스별을 어떻게 참냐고.”
댄스별이다, 댄스별.
예능에서 잠깐 나온 영상을 지금껏 셀 수 없이 돌려본 팬들은 지금쯤 자신처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미쳤다, 이건···.”
4분여의 뮤비를 20분에 걸쳐 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분이라니.
이건 오직 찐팬들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원은 뮤비에 댓글을 달기 전, 다시 뒤로 돌아가서 채널에 다른 영상이 올라와 있는지 살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이성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완전한 정색.
“퍼포먼스 영상이 없는 게 말이 되냐?”
댄스 연습 영상, 혹은 퍼포먼스 영상이 없다.
댄스별인데 퍼포먼스 영상이 없다니, 이건 뮤비를 더 보라는 협박과 다름없었다.
올려봤자 며칠 뒤에나 올리겠지.
뮤비 조회수를 더 높이려는 생각도 이해가 가긴 한다만.
“이건 좀 아니지!”
팬질을 하다 보니 마음이 두 개로 쪼개졌나 보다.
회사의 판단에 뿔이 잔뜩 난 한 쪽 마음과는 별개로.
다른 한 쪽은 기쁨과 행복으로 펄펄 끓어 넘치고 있었다.
***
저쪽이 활활 불타오르든 말든.
우리는 저쪽에 신경을 아예 꺼버리기로 했다.
아니, 이제 우리가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지.
게다가, 우리 귀여운 팬분들 반응만 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거든.
드르륵- 드르륵
마우스를 놓지 못하고 휠을 돌리는 별이.
뮤직 비디오를 세 번이나 돌려보고는, 댓글을 천천히 읽어내리고 있었다.
모니터로 빨려 들어갈 듯한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마르질 않는다.
OST를 포함해 벌써 세 번째 곡이거늘, 댓글을 하나하나 곱씹듯이 보며 두근두근 설레하고 있었다.
“사장님, 팬분들이 저 댄스 넣었다고 엄청 좋아해주고 계세요.”
“보컬이랑 곡 칭찬도 많아. 비주얼이랑 뮤비 칭찬도 많고.”
그냥 모든 걸 다 좋아해주고 있었다.
역시 돈을 쓴 보람이 있다.
이 맛에 키우는 거지.
우리는 팬 카페, 그리고 커뮤니티와 SNS, 유튜브 모든 곳을 한참동안 둘러보며 팬들의 반응을 즐겼다.
이거,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큰일이네.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별이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별 말을 안 하고 있지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시다.
내일 음방에서 팬들 만날 생각에 기대가 될 거고, 지금 보이는 팬들 반응에 너무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때였다.
꼬르륵-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일단 내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
화들짝 놀란 얼굴의 별이.
나도 마침 슬슬 배가 고프던 차였다.
“밥이나 먹을까?”
“···네. 붓는 거 말고요.”
내가 놀랄 정도로 먹어도 안 붓던데.
그래도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은가 보다.
잘 붓는 연예인들은 중요한 스케줄이 있는 전날에 샐러드를 먹거나 과일 하나를 먹곤 하는데, 사실 얘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설령 치킨, 피자, 짬뽕을 먹더라도 상관없겠지.
정말 축복받은 체질이다.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고 하니, 우리는 그냥 배달을 시키지 않고 집에 있는 반찬을 꺼내 먹기로 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먹방을 시작했다.
깨작깨작 먹는 것도 아니고 야무지게도 먹는다.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오물오물 씹고 있다.
복스럽게도 먹네.
방금 먹을 거 걱정하던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먹는 예능 꼭 출연시킨다.’
반드시.
그런데 어쩜 타이밍도 좋지.
지이잉- 지이잉-
내 핸드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
한편 그 시각, 구서연의 집.
서연은 곡에 대한 반응을 보다가 근질근질 뜨거운 것이 끓어올라 인터넷을 꺼버렸다.
인터넷 반응을 더 보고 싶긴 한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기타···!”
서연은 곧장 방안에 놓여 있던 기타들 중 하나를 잡아챘다.
그리고 기타줄을 손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튕기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기타.
서연이 가장 자신 있는 악기였다.
포크송 가수인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런데.
기타 소리가 귀에 들리는데도 불구하고, 가슴 속을 간질거리는 느낌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서연은 그제야 자신의 속에서 들끓는 마음의 정체를 눈치 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뮤지션의 열정이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열정.
기타를 튕길수록 한도 끝도 없이 커져만 가는데.
그 느낌이 황홀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내 곡은 일렉 기타 메인으로 만들어볼까?”
자신이 활동할 데뷔곡.
혹시 모를 상황에, 댄스 역시 포기할 수가 없었지만.
댄스곡이라 해도 일렉을 메인으로 못 쓰는 건 아니었다.
통기타를 신나게 튕기는 소리를 문 밖에서 듣고 있던 구태성.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기타 소리 끝내주네.”
요즘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웃음만이 가득한 딸.
태성은 이게 누구 덕분인지 모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인연이 깊어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김유민 사장.
모두 그의 덕분이었다.
“뭐 해줄 만한 거 없으려나···?”
과연 승승장구하는 그에게 자신이 힘을 보탤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나도 이제 힘 빠진 옛날 가수니까.’
하지만.
언젠가 도와줄 구석이 보이기만 한다면.
두 팔을 걷어부치고 있는 힘껏 도우리라.
태성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딸이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기타 소리를 감상했다.
< 기타 소리 끝내주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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