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29화 (29/124)

< 든든하다 이수진 >

“우와아아!”

“와! 진짜 제대로네. 선배, 이게 대체 얼마예요?”

“···.”

스튜디오를 둘러보는 서연이와 유진이, 그리고 별이.

그녀들의 반응에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법인 계좌에 적힌 숫자가 썩둑! 뭉텅이로 썰려나갔으나, 그래도 이게 다 투자다, 투자.

별이가 잘나가고 있다는 포장도 되고, 외국인들한테 어필하기에도 좋겠지.

그런데 사실 나도 눈이 돌아갈 것 같다.

어떻게 꾸며질 지 미리 알기는 했는데, 실제로 완성된 걸 눈으로 보니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

이게 우리 별이 후속곡 세트라는 거지?

“크흠. 잘 부탁드립니다.”

유형중 감독은 나보다 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난 돈을 쓴 거고, 이 사람은 이걸 다 준비했으니.

애들의 격한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심지어 세트가 이게 끝이 아니다.

당연히 더 있지. 세트도 소품도 소도구도 아직 한아름 남아 있었다. 물론, CG도 잔뜩 넣을 거고.

별이는 마치 배스킨 라빈스에 간 어린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구경하기 바빴다.

착장도 무려 4개!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을 스타일링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김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세트 구경도 잠시, 별이는 스탭들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다녔다.

대부분 데뷔곡 뮤비 촬영 때 본 분들이었으나, 새로운 얼굴들도 많다.

그런데 예전에 봤거나 새로운 분들이거나 상관없이, 다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예의 바른 별이의 인사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얼굴.

누가 보면 팬클럽인 줄 알겠다. 아, 물론 거기 회장은 나다. 이건 양보 못 하지.

우린 대망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순서에 들어갔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동안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그냥 가만히 뒤에 앉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내가 할 게 딱히 뭐가 있겠는가.

핸드폰을 켜고 이 바닥에 뭐가 일어나고 있나 확인하는 일밖에 더 있을까.

직업병이긴 한데, 흥미로운 일도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재미 있는 소식보다는 재수 없는 소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에휴···.’

레모네이드의 컴백 소식.

GO엔터 홍보팀을 갈아 넣었나 보다.

컴백 기사로 포털 사이트 연예란을 도배를 해놨네, 아주.

리얼리티까지 찍는다고 한다. 성공하는 아이돌만 한다는 그 리얼리티!

각종 티저와 트레일러 공개 일정도 나오고 있다.

꼴도 보기 싫지만 더 찾아봤다.

이토록 하는 게 많아서 그런지, 컴백 날짜는 한참 뒤다.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게 겹칠 수도 있겠네.

길어야 2주 차이?

내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엿 같은 소식들 중 그나마 좋은 소식이다.

기대가 됐다. 아주 빅 엿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평화롭고 조용한 이곳에 별안간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머! 죄, 죄송합니다!”

메이크업을 하던 아티스트가 별이에게 사과를 하며 허리를 꾸벅 숙인다.

무슨 일이지? 난 깜짝 놀라, 헐레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그런데 별이도 나 못지않게 당황한 표정이다.

별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

그냥 언제나처럼 예쁘기만 할 뿐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너무 예뻐서 사과한 건 아닐 테고.

우리가 의아하게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바라보자,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제가··· 그··· 컬러를 착각해서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전부 다요?”

별이의 물음에 그녀가 격렬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이섀도우만요.”

“···아. 네, 괜찮아요. 그리고··· 그렇게 사과하실 필요 없는데···.”

별이는 눈을 굴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 젤리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

얼떨떨한 얼굴이 되어 별이를 바라보는 그녀.

별이는 어색하게 미소 짓고는 다시 젤리 두 개를 더 꺼내왔다.

“세 개요.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젤리 세 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른 스탭들이 모두 빵!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다들 웃고 있는 가운데, 젤리를 받은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눈시울이 붉다. 고작 젤리 3개에 눈물이 고이다니.

같은 샵에서 나온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뭐랬어. 그만두지 말라니까. 다 그런 건 아니야.”

“···네.”

저 짧은 대화를 듣고, 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대충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어디 가서 진상 연예인한테 고생 좀 했나 보네.

그러다가 우리 착한 별이를 보고선 감동을 먹었나 보다.

이 작은 해프닝 뒤로, 스탭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장인이 작품을 빚듯이, 아주 밀착해서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마이클 잭슨의 스탭들이 이러했을까?

아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그 덕분인지.

모든 준비를 끝낸 별이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매력이 터지고 있었다.

“···야, 김별. 너 짜증나.”

“왜.”

“너무 이쁘잖아!”

서연의 말에, 별이의 눈썹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스탭들도 만족하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훈훈하네.

그런데, 스탭들의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촬영에 임하는 스탭들도 이에 전혀 꿀리지 않았거든.

시종일관 후끈후끈한 촬영 현장.

착장 4개를 바꾸는 동안에도, 세트를 바꾸는 동안에도.

이 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다.

“돈 쓴 보람이 있네. 이게 옳은 투자지.”

이 바닥에선 그 어느 순간에도 대박을 100% 장담할 수는 없다.

허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러한 현장에서 나온 작품들은 결코 퀄리티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우리 뮤비도 때깔이 끝내주게 나오겠지. 이건 100% 장담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모이세요!”

이내 오랜 촬영이 끝나고.

스탭들의 사진 요청이 별이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단체샷, 개인샷 등등 수십 번이나 사진을 찍은 별이.

그녀는 또한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스탭들과도 사진을 잔뜩 찍어야 했다.

찰칵! 찰칵!

스탭들의 얼굴에 지어진 함박웃음.

자랑스러움과 성취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는 게, 사진 너머로도 훤히 보일 정도였다.

나는 두 손을 입에 모으며 크게 소리쳤다.

“SNS에 맘껏 사진 올리셔도 됩니다! 홍보 부탁드려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꼭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고.

이런 건 맘껏 올려도 되는데.

***

레모네이드의 화려한 컴백.

뮤비는 공개하자마자 조회수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었고, 국내 팬들이나 해외 팬들의 반응 역시 제대로 터지고 있었다.

데뷔곡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반응!

곡이 너무 좋은 덕분에 입소문도 빠르게 퍼지고 있었고, 이에 비례해 차트의 순위도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레모네이드의 멤버들은 모두 달아올랐다.

더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리얼리티의 첫방송도 오늘. 그리고 컴백 무대 역시 오늘이었다.

일부러 이렇게 타이밍을 잡았다.

대기실이 와글와글 시끌벅적하다.

멤버들의 텐션이 한껏 올라와 있는 덕분.

그 까칠한 이수진마저 입꼬리가 내려갈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로드 매니저 진영수가 핸드폰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헐! 이거 뭐야.”

“왜요?”

이수진이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득달같이 물었다.

혹시나 순위가 크게 점프를 했나 싶어서.

“윤수현 인성 논란 터졌어···.”

인기 많은 개그맨의 인성 논란.

이수진은 자신과 별로 상관이 없는 문제라서 금세 심드렁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살펴봤다. 흥미로운 주제인 건 맞으니까.

인터넷을 슥슥, 대충대충 살피던 이수진은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완전히 묻히겠네. 근데 걔도 이렇게 터뜨리면 안 되나? 싸가지없는 것도 맞고.”

동고동락을 하다 보니, 멤버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최진솔은 이수진의 옆에 딱 붙으며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뒷받침해줄 자료들이 필요하잖아. 절묘한 움짤이나 짜깁기할 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걘 그게 없을걸?”

“걔 음방에서 싸가지없는 거 같이 봤잖아요. 잘 찾아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윤수현 선배님은 활동을 오래 하셔서 논란 뒷받침하는 자료가 좀 많던데? 근데 걔는 활동을 많이 안 했잖아. 그걸론 증거가 부족하겠지.”

“하아. 짜증나.”

다른 멤버들 또한 같이 김별을 욕하며 어울렸다.

누구도 ‘걔’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걔’가 누굴 지칭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활동 좀 하다 보면 한방에 훅 갈 날이 있을 거야.”

“지금은 그냥 즐기라고 냅둬요. 어차피 오래 안 갈걸요?”

“이번에 우리랑 활동 겹치면 진짜 재밌겠다. 하하! 우리보다 한참 밑일걸?”

“맞아. 저번엔 드라마 빨이었는데, 이제 싱글로 컴백하면 거품 걷혀질 거야.”

이미 그녀들에게 김별은 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얘기를 하던 그녀들은 방송 시간이 가까워지며 다시 메이크업을 손봤다.

이미 사전녹화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찾아와준 팬들 앞에서 짧게나마 무대를 해야 했고, 1위 후보 때도 위에 올라가야 했으니까.

그런데.

“아 진짜! 오빠! 매니저 오빠!”

“어? 왜?”

“이분 좀 안 오면 안 돼요? 아니면 사람 좀 바꿔주든가! 왜 난 맨날 이분이 하는 거예요!”

맨날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오늘 다시 이렇게 됐을 뿐.

그러나 매니저 진영수는 이를 꼬집기보단, 그냥 조용히 다른 멤버를 봐주고 있던 선생님과 바꿔주기로 했다.

“선생님.”

“···네.”

뮤비 촬영 때에 이어, 이수진에게 또 면전에서 굴욕을 당한 그녀.

바지를 꽉 쥐고 있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수진은 그 모습에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네가? 경멸에 찬 표정이 그녀를 향했다.

막 한 소리를 거하게 퍼부으려 입을 벌리려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이 음방의 메인 피디였다.

이수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을 바꿨다.

순진무구한 미소를 띤 표정.

두 손은 공손하게 앞에 모아졌고, 입매는 상냥한 미소를 그렸다.

높은 사람에게는 깍듯하고 싹싹한 모습을 보이는 이수진.

그녀를 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눈이 위험하게 희번득거렸다.

***

컴백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제 정말 코앞으로 다가온 것.

티저와 트레일러도 다 냈고, 팬들의 기대감은 더 없을 정도로 크기를 부풀리고 있었다.

티저와 트레일러에 댄스를 넣지는 않았으니, 아마 정체가 드러나면 팬들의 반응은 더욱 폭발적일 거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발생해버렸다.

“반응이 이렇게 좋다니.”

레모네이드의 후속곡, ‘Specially’.

곡 자체가 너무 중독성이 강했고, 회사의 전폭적인 푸시 아래, 예능 이곳저곳에 밥 먹듯 출연해서 이 중독성을 어필했다.

덕분에, 대중들도 이 곡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다 했지.

역시 대형 기획사 아니랄까 봐, 회사는 실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연이가 만들어준 곡도 자신 있고, 가뜩이나 잘하던 별이의 더욱 성장한 보컬도 자신 있으며, 이유진이 만든 안무 역시도 너무 좋았다.

예능에서 잠깐 췄던 댄스가 아직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면, 이번 활동으로 팬덤을 더욱 확장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그뿐이랴? 이번엔 뮤비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유형중 감독님이 아주 신이 나서 찍기도 했지.

그러니 내 머릿속에선 도저히 레모네이드에게 지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다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그리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도 사실.

어쩌면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잘해야 돼.’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전략적으로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야 한다.

그리고 이건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 역할을 넘치도록 다하며 활약했으니, 나도 보여줘야지.

그렇게 제대로 각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에 잠겨 있기를 1분.

핸드폰이 내 집중을 깨버렸다.

이유진으로부터 도착한 톡.

[선배! 미쳤다! 기사 보세요!]

“기사?”

뭔데 그러지?

난 허겁지겁 포털 연예 기사란을 찾아봤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메인에는 이미 같은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거든.

[이수진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멸감 느꼈다. 너무 하고 싶었던 직업이 이리도 끔찍할 줄이야.”]

[레모네이드 이수진 인성 논란. SNS서, 폭로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별에겐 찬사를! “착해도 이렇게 착할 수가 없다.”]

[신입답지 않은 최악의 인성에 레모네이드 비상. ‘Specially’ 후속곡 활동 어떻게 되나.]

[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 SNS서 김별과 찍은 사진엔 찐행복 표정과 칭찬글. 네티즌, “역시 별이는 믿었다!”]

“하하!”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활약할 걸 이렇게 뺏어버린다고?”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걸린다.

좀 더 살펴보니, 우리 팬들은 이미 별뽕을 한가득 맞고 있었으며, 대중들에겐 호감의 이미지가 잡히고 있었다.

누구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그림이 만들어진 덕분.

저 강한 중독성을 완벽하게 꺾어버리기 위해 전략을 짜던 게 무색해져버렸다.

이렇게 알아서 무너져주며, 강력하게 서포트까지 해주다니.

“든든하다, 이수진.”

우리 컴백한다고 이렇게 선물을 주네.

네가 나보다 낫다.

< 든든하다 이수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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