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28화 (28/124)

< 언니는 왜 아이돌 안 했어요? >

녹음이 내일이다.

그래서 별이는 오늘 컨디션 관리를 하기 위해 쉬기로 했다.

덕분에 유진은 서연이와 함께 하루종일 댄스만 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또한, 재밌지도 않고, 개운하지도 않았다.

이렇게나 댄스를 췄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씻고 침대에 몸을 눕힌 유진.

요 며칠 동안 그녀의 머릿속엔 그때의 장면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니고 있었고.

그건 오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러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유정아의 성격과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한두 번이겠냐마는.

지금까지는 그나마 성격과 성향 차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나 댄스도 할 거야.’

‘아이돌 하고 싶다고.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자기보다 언니면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가수가 아니라 아이돌로?

이대로 배우만 해도 계속 꽃길만 걸을 수 있는데?

굳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멋있게 보였다.

하고 싶다는 이유로, 정말로 이를 실행하려는 그 모습이.

무조건 할 거라는 듯, 단단하고 확신 어린 표정과 목소리가.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난 안무가도 못했었는데···.’

언니는 배우로 큰 성공을 거두고도 만족을 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 한다.

원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유진은 말똥말똥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참 뒤에야 겨우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유진은 연습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녹음은 오후에 하기로 했지만, 오전부터는 서연이와 둘이서 연습을 하기로 해서.

너무 힘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만 하기로 했다.

유진은 버스에 앉아 찡그린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차가 너무 막힌다.

‘이러다가 늦겠네.’

유진은 서연에게 늦을 것 같다는 톡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이 돼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유진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연습실이 아니었다.

연습실과 가까이 있는 편의점의 테라스.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연습할 시간이 너무 애매해진 탓이다.

이젠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녹음실에 가기 전에 다 같이 점심도 먹기로 해서.

“언니!”

코카콜라를 마시며 손을 흔들고 있는 구서연.

안방에 있는 듯 편안해 보인다.

외모가 귀엽기에 망정이지, 외모만 아니었으면 한량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유진은 그녀에게 다가가 사과부터 건넸다.

“미안. 시위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차가 꽉 막혔어.”

“괜찮아요.”

씩 웃은 서연은 유진에게 펩시 캔을 건넸다.

받아서 만져보니 심지어 미지근했다.

“···고마워.”

탁, 캔을 따고 꿀꺽꿀꺽 목으로 넘긴 유진.

별이 광고를 줬다는 이유 때문일까,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크으!”

테이블에 캔을 내려놓는데, 서연이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고개를 갸우뚱하는 서연, 그녀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언니는 왜 아이돌 안 했어요? 캐스팅 온 적도 없어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뭔가 했더니 이 질문이다.

한때 이런 질문 엄청 많이 받았었는데.

“캐스팅 받은 적은 꽤 있지.”

“그쵸!?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난 그냥 댄스가 좋아서 춤만 추고 있었는데, 명함 받은 거 보고 학원 쌤이나 친구들이 해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엄마한테 말하니까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엄청 화들짝 놀라시면서 아이돌은 절대 하지 말래. 아주 엄포를 놓으시더라고. 그거 하려다가 인생 다 버린다고.”

“···위험하긴 하죠. 데뷔 못하면 할 것도 없고.”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심지어 댄스 학원까지 못 다니게 하려는 거야. 그래서 싹싹 빌었지. 아이돌은 쳐다도 안 볼 테니까 댄스는 계속 하게 해달라고.”

“아···.”

“그래도 아쉽진 않았어. 난 정말 아이돌에 별 생각이 없었거든. 그냥 댄스가 좋았던 거지.”

사실 댄스에 빠지게 된 계기는 아이돌의 무대였다.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의 ‘무대’.

퍼포먼스 영상들을 가리지 않고 찾아보다가 더욱 깊이 빠지게 됐고, 그러다가 춤을 시작하게 된 거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몇 번 있었어서 그런지, 가끔 아이돌 생각이 들긴 했어. 안무가를 꿈꾸던 것도 안무가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라 댄스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꿈꾸게 된 거거든.”

그런 기회가 있었던 만큼 아이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밌어 보였다. 아이돌 생활이 재밌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서는 무대가.

빛이 나는 무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퍼포먼스를 봐준다는 게 너무 짜릿할 것 같았다.

상상으로는 이미 수백 번도 더 서봤고.

“만약 엄마가 그때 반대하지 않았으면, 연습생이 돼서 아이돌을 꿈꿨을지도 모르지.”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서연.

동그란 눈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덧붙였다.

“근데 지금 이렇게 말하면 뭐 해. 어쩌면 데뷔에 매달리다가 망했을 수도 있어. 하하.”

“지금은요?”

“지금? 뭐?”

“아이돌이나 안무가 해볼 생각은 없어요?”

진지하게 묻는 건지 의아하게 쳐다봤는데, 서연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묻어 있지 않았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고 있는 거다.

“하하.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해. 이미 늦었어. 많이 쉬어서 실력도 모자라고.”

“네? 으음···.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저렇게 봐주니까 고맙네.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유진의 머릿속에 문득 유정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깨끗하게 털어냈다.

그녀와 자신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하늘과 땅 차이지.

지이잉- 지이잉- 핸드폰이 진동음을 뱉었다.

“선배다.”

유진은 통화 수신을 터치하며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이제 같이 점심을 먹고 녹음에 갈 시간이다.

매니저면 매니저로서의 일에 집중해야지.

꿈에 대한 갈증 해소는 안무 한 번 만들어본 경험으로 족했다.

더 이상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너무 허황된 욕심일 테니.

***

별이와 나, 그리고 서연이와 유진이가 다 함께 있는 녹음 스튜디오.

작곡가나 매니저로 연관되어 있기에 총출동해버렸다.

아직까진 소속 연예인이 별이뿐이기도 하고.

하도 붙어 있다 보니, 이제 이렇게 넷이 있는 게 더없이 익숙해졌다.

별이는 그래도 두 번 녹음을 해봤다고,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

그렇다고 풀어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얼굴로 가사지를 보며 뻥긋거리는 입.

손과 고개를 움직이며 리듬을 타기도 했다.

리듬감이 정말 중요한 곡이라,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헤드셋을 쓴 채 장비를 만지작거리던 엔지니어가 헤드셋을 벗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 부스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별아.”

나지막하게 부르자, 하던 걸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별이.

그녀가 주위를 빠르게 살피며 물었다.

“지금 들어가요?”

“응. 하던 대로만 해.”

이어서 서연이와 유진이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리 가수 잘하고 와! 이번에도 대박 내줘.”

“별아, 자신감 있게 불러. 잘해.”

별이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반쯤 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네. 파이팅.”

영 맥아리가 없는 파이팅이었으나, 든든한 마음은 줄어들지를 않는다.

녹음 부스로 들어간 별이.

그녀는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는데, 내 입술은 바짝바짝 말랐다.

분명히 잘하는 걸 알고, 확신이 있으며, 든든하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잘해주기를 빌게 된다.

“한 번 들어보시고 하실래요?”

“아뇨. 바로 할게요.”

엔지니어의 물음에 별이가 고개를 저었다.

가수마다, 프로듀서마다, 녹음에 임하는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누구는 아주 짧게 짧게 끊으며 녹음하기도 하고, 심지어 숨소리마저 그렇게 할 때가 있다.

또 누구는 가능하면 원 테이크에 끝내려 하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 옳고 그른 건 없다.

원 테이크로 끊는다 하여, 짧게 끊으며 녹음하는 가수보다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단지 스타일의 차이일 뿐.

그런데.

내가 봤을 때, 그런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도 지금 이 자리에선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일 것 같진 않다.

“···.”

지금 여기의 소리가 부스 안에 들릴 리가 없거늘.

우린 모두 탄성도 내지 않고 숨을 죽였다.

마치 클래식 공연에 온 것처럼, 지금 저걸 끊으면 죄책감이 크게 들 것 같은 느낌.

우리는 넋을 놓고, 부스 안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할 때부터 노래가 끝나고 헤드셋을 벗을 때까지.

“···찢었다.”

서연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설의 원 테이크 녹음이구나.

듣기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데뷔곡이랑 OST도 굉장히 짧게 끝난 편이었는데, 그래도 보완할 점이 보이곤 했다.

그래서 몇 번 더 겹쳐서 녹음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말로 ‘찢었다’는 표현이 이렇게 적합할 수가 없었다.

물론, 코러스를 쌓아야 하긴 했으나.

코러스를 제외하곤 원 테이크가 맞지.

‘거기서 더 성장해버렸어.’

가뜩이나 잘 부르는 애가 노력을 그치지 않고 경험까지 쌓으니, 성장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실제로 성장한 걸 보니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노래를 부른 별이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리고 너무 든든하고 뿌듯해서.

내 입에선 낮은 웃음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

뮤비 제작사, ‘플라워 프로덕션’.

김별의 데뷔곡, ‘So Happy’를 도맡아 찍었던 유형중 감독은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중간한 성공이라면 몰라도, 김별은 ‘So Happy’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뮤비 또한 커다란 호평을 받으며, 팬들로 하여금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게끔 만들었다.

이젠 어엿한 한 명의 뮤비 감독.

그는 이후로 또 하나의 뮤비를 맡아서 찍었고.

지금도 제안은 쏟아지고 있었다.

“음.”

그런데, 유형중 감독은 쏟아지는 제안들 중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회의 시간, 그의 의중을 어느 정도 짐작한 직원은 설득하듯 말했다.

“유감독님, 김별 씨 후속곡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계속 손 놓고 가만히 계실 거예요? 어쩌면 후속곡 만든다고 해도 다른 분한테 맡기실 수도-”

“안 됩니다!”

내내 침음으로만 대답하던 그의 입에서 드디어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란 직원은 눈을 깜빡거렸고, 유형중은 헛기침을 했다.

자기도 모르게 너무 큰 소리가 터져 나온 게 민망한 듯했다.

“저한테 맡겨야죠. 제가 찍을 겁니다.”

“···그게 하겠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거 잘 아시면서.”

“다른 데 맡기면 소식 들어오겠죠. 정석대로라면 원래 이쯤 컴백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될 겁니다. 비슷하게 데뷔한 레모네이드도 지금 컴백 임박했잖습니까.”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회의.

직원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내쉬어지고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난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유형중 감독님.”

“네.”

“WE엔터의 김유민 사장님께서-“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유형중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에 전화가 왔거나, 메일이 왔거나 둘 중 하나일 터.

그렇게 헐레벌떡 회의실을 나서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꽂혔다.

“유감독님.”

유형중은 발을 멈추고 서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했을 때,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사장님.”

김유민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사람.

“안녕하세요, 감독님.”

유형중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김별이었다.

***

우리는 유감독님과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이 사람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있을지 몰라도, 이 사람만큼 우리에게 성심성의껏 열정적으로 해주는 사람은 또 없을 것 같아서.

그게 우리가 유감독을 다시 찾아온 이유였다.

“음악 들어보셔야죠.”

우리는 바로 작품 얘기부터 들어갔다.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계약 얘기는 뒷전.

지금 맡고 있는 뮤비가 없다는 것도 알았으니, 더 잴 게 뭐가 있겠나.

음악을 들어보라는 내 말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더니,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며 종이와 펜을 세팅했다.

참 아날로그한데, 무시할 수가 없네.

“예, 준비됐습니다.”

기대감과 흥분, 비장함이 뒤섞인 얼굴로 말하는 그에게, 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헤드셋을 끼고, 눈앞에 있는 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이내, 기대감을 충족한 듯 눈동자가 일렁이더니 펜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책상에 부딪히는 펜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빠르게 채워지는 종이와 별이를 수시로 번갈아 바라본다.

나와 별이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재능이 발휘되는 순간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그렇게 음악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 그는 상기된 얼굴로 헤드셋을 벗었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도 작성한 것은 보이지도 않는지.

나를 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예산은 어떻게···.”

데뷔곡의 뮤비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별이에게도 미안했고, 사장으로서 부끄럽기도 했지.

그래서, 다음엔 GO엔터 부럽지 않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왔다.

이 순간이다. 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아낌없는 투자를 위해, 나는 예산을 아끼고 아껴왔다.

이번엔 정말 화려하게 컴백시켜야지.

뮤비도, 그리고 음방 세트도.

나중엔 차랑 연습실도 바꿀 거고, 회사도 사옥을 세우고 말 거다.

···물론 사옥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나는 씨익, 입매를 말아 올렸다.

어깨가 펴지고 턱이 살짝 들린다.

목에도 힘이 좀 들어가는 것 같고.

“이번엔 예산이 좀 됩니다. 원 없이, 별이가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고 예쁘게 나올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

엄연히 투자이긴 하다만.

플렉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 언니는 왜 아이돌 안 했어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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