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어탕 빌런의 습격 >
데뷔곡, ‘Search Me’를 통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던 레모네이드.
GO엔터는 그녀들의 후속 활동을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신인일수록, 그리고 서서히 팬덤이 크기를 키워가는 중일수록, 이렇게 쉴 틈 없이 밀어붙이는 편이 인기를 쌓기에 더 유리했으니까.
“와. 미쳤다. 진짜.”
로드 매니저, 진영수는 혀를 내두르며 세트장을 둘러봤다.
‘돈을 처발랐네, 처발랐어.’
이번 후속곡, ‘Specially’ 역시, 데뷔곡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프로듀서, 최고의 작곡가들, 최고의 안무가 등 모든 게 다 최고 수준으로 이뤄졌다.
뮤직 비디오도 다를 게 없었다.
세트장은 보기만 해도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누가 보면 슈퍼스타인 줄 알겠네.’
와인드업처럼 차트를 폭격하는 그룹이라면 모를까.
빈집을 노려 간신히 음방 1위를 했던 주제에 과한 투자다.
물론, 이렇게 투자를 아낌없이 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회의에서는 해외 팬을 공략하기 위해 어쩌구저쩌구 했던 것 같은데, 그건 명목상의 이유일 뿐.
모든 건 대표의 오른팔 격이자, 회사의 창립멤버, 최이사의 조카인 이수진 때문이겠지.
‘다 최고면 뭐 해. 정작 그걸 소화하는 그룹이 최고가 아닌데.’
다른 게 다 대단한들 무슨 소용이랴.
모래성 위에 금가루를 뿌리는 격이다.
GO엔터 내에서도 핫이슈였던 김별을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왔다.
저예산으로 촬영된 뮤직 비디오, 완전 쌩신인 작곡가, 안무 없음.
그러나 그녀 자체로 빛이 났다.
굳이 금가루를 뿌리지 않아도, 모두가 그녀가 가진 매력과 가치를 쉽게 알아봤다.
‘내 팔자야···.’
레모네이드를 맡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에 그쪽 라인 탈걸.
후회가 밀려왔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진영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커다란 세트장 구석에 설치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멤버들.
그런데 분위기가 어째 이상했다.
찬물이 뿌려진 듯 싸늘한 공기.
어찌된 일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신입이에요? 메이크업을 뭐 이따위로 해요.”
성격 더럽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지는 않는지,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이수진.
천막 밖에 있었다면 듣지 못했을 목소리였다.
거울로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이수진.
미간에 주름이 지어져 있고, 불만이 그득한 눈빛이다.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근데 이렇게 하기로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네? 신입이에요? 실력이 이런데 뭘 정해진 대로 해요. 하아. 변명만 할 줄 알지.”
“···.”
샵에서 출장 온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 들려 있는 아이섀도우 브러쉬.
붓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진영수는 눈만 돌려 주위를 돌려봤다.
실장 아티스트가 없다.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
“사과도 안 하는 거 봐.”
“죄송합니다.”
“메이크업 다시 해주세요. 다른 분이 해주실 수 있어요? 아, 그리고 그쪽은 담요나 좀 가져다주세요.”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말없이 이수진에게 붙었다.
그리고 이수진에게 한소리 들었던 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한 켠에 놓여 있던 담요를 집어 들고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데.
담요를 받아든 이수진은 이를 홱! 집어던지며 말했다.
“이거 말고요.”
“···.”
“···.”
뮤직 비디오 세트장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약자이자 뒤탈 걱정 없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행하는 갑질.
이를 지켜보던 로드 매니저, 진영수는 골머리가 지끈지끈 당겨왔다.
역시, 줄을 잘못 서도 단단히 잘못 섰다.
***
둘만 있는 연습실.
구서연은 소파에 앉아 있는 김유민의 눈을 응시했다.
“준비됐어?”
김유민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된다는 듯이 가볍게.
“네!”
자신 있게 대답하니, 그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해봐.”
이제 떨리지 않는다.
댄스 없이 노래만 하기로 했는데도.
‘할 수 있어.’
땀도 나지 않고, 목이 조이지도 않으며, 어깨가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식은땀도 나지 않고, 시선도 방황하지 않고, 얼굴도 경직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의 앞에선 이제 마음껏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반주도 없이 부르는 노래.
발을 구르며 리듬을 타고, 바로 입을 열어 소리를 냈다.
“Isn’t she lovely.”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
대중들에게 매우 매우 익숙한 노래지만, 제대로 부르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음악.
막상 원곡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음도 너무 높고, 느낌을 살리기엔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파워풀하고 높게, 리듬감 있고, 소울 있게 부르면서도.
듣는 사람에겐 말랑말랑 설레면서 편하게 들리도록 불러야 한다.
다행이라면 노래를 부르는 구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
음색빨로 밀어붙여도 들을 만은 하겠지만.
그런 건, 그가 원하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아니다.
보다 더 완벽하게.
보다 더 듣기 좋게.
이젠 목표가 바뀌었다.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지 말자.
잘 부르자.
가수가 되는 게 목표인 만큼, 이제는 그저 부를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잘 불러야만 했다.
“That’s so very lovely made from love.”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노래가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어느새 마지막.
노래가 끝나는 부분까지 왔다.
성취감과 희열이 차오른다.
서연은 빙그레 웃으며, 스티비 원더의 엔딩 애드립 부분을 장난스럽게 살렸다.
“예이!”
그의 입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짧지만 완곡을 했다.
댄스도 없이.
그것도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그러나 곡이 곡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와 있으며 편해진 덕분일까.
서연은 감정이 복받치기보단 기쁘고 신나는 마음이 앞섰다.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하자, 그는 고개를 과장스레 저으며 박수를 쳤다.
“브라바!”
“브라바는 또 뭐예요. 이럴 땐 브라보라고 하는 거예요.”
“네가 모르는 거겠지. 브라보는 남자한테 하는 거고, 브라바는 여자한테 하는 거야.”
“···복잡하게도 사시네요. 아는 거 많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서연이 김유민에게 툴툴거리고, 김유민은 서연을 놀리면서도.
둘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잘했어. 이대로만 가자. 그런데 아직 끝난 거 아닌 거 알지? 이제부터 시작이야. 막 한 발자국 내디딘 거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돼.”
“알았어요. 그냥 칭찬만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축하를 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잠시.
서연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편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기꺼워서.
오늘은 목이 쉬어도 상관없었다.
목이 터질 때까지 불러야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몇 곡이나 불렀을까.
처음엔 소파에 앉아서 보던 그는, 신발을 벗고 옆으로 누워 손으로 머리를 괴었고.
그마저도 불편했는지, 아예 팔걸이에 머리를 눕혔다.
그리고 이젠.
“아예 자버리시네?”
서연은 가까이에 가서 그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그리고 웅크려 앉으며 정면으로 얼굴을 바라봤다.
참 잘도 잔다.
시선은 문득 대충 벗어놓은 신발로 향했다.
서연은 손을 뻗어, 신발을 똑바로 정리해줬다.
‘깨면 목 마르시려나.’
물도 떠놨다.
전체적으로 스윽, 훑어본 서연은 뿌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앞으로 돈 많이 벌게 해드릴게요.”
불을 끄고 조용히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아빠한테 자랑하듯 말했다.
“아빠! 나 성공했어! 사장님 앞에서 노래 몇 곡이나 불렀어! 엄청 멀쩡하게! 춤도 없이!”
신나고 흥분한 딸을 바라보는 구태성의 입꼬리가 귀 밑까지 찢어졌다.
“잘했어. 사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브라바라고 하셨어. 브라보는 남자한테 쓰는 말이잖아. 난 여자니까 브라바지.”
입을 열었다 닫는 구태성.
대충 말을 넘기며 물었다.
“···아무튼 어떤 거 불렀어?”
“어! 처음엔 ‘Isn’t she lovely’ 불렀다가, 그 다음엔 ‘Superstition’도 불렀고-“
재잘재잘 흥분한 목소리로 자랑하기 바쁜 서연.
그녀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원없이 자랑을 풀어놓은 서연은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장님의 말마따나, 아직 완전히 고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부르는 곡이 아닌, 자신이 부를 자신의 노래.
“어떻게 만들까?”
행복한 고민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부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곧이어.
그녀의 방은 마스터 키보드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
규칙적이지만 발전이 보이는 하루하루.
평화롭고 순조롭다.
오전엔 별이가 집에 와서 노래를 연습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엔 연습실에 와서 안무 연습을 한다.
목소리가 충분히 들릴 수 있게 작게 틀어진 음악.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맞춰지는 안무.
서연과 유진, 별이는 셋이 한 몸이라도 되는 것처럼, 딱딱 동작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되겠네.’
노래는 이미 완벽했고.
안무가가 보내준 시안대로 동선도 수정했다.
그런데 애초에 어려운 퍼포먼스가 아니라서 그런지, 크게 수정할 것도 없더라.
댄서들과 함께 동선을 맞춰보는 것도 하루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제 녹음도 하고, 뮤비도 넣어야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착착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야]
유정아였다.
또 추어탕 먹으러 가자고 할까 봐, 나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지금 한가롭게 추어탕이나 먹으러 갈 때가 아니었으니.
[연습실이야. 바빠.]
[보나마나 또 행복하게 놀고 있겠지. 언제까지 있을 거야.]
[쭉]
답장은 없었다.
이제 포기하는 게 빠르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포기한 게 아니었더라고.
톡을 주고받고 나서 한 시간쯤 뒤.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우리 모두의 시선은 그쪽을 향해 돌아갔고.
거기엔 연습실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복장은 화려했고, 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아닌 그녀라서 찬란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 백화점 진열대에 걸려 있는 것처럼 새하얀 자태를 뽐내는 명품 백, 머릿결을 자랑하듯 찰랑이는 긴 생머리, 새빨간 입술과 새하얀 얼굴.
“···?”
“···?”
여전히 음악이 작게 흐르고 있는 가운데.
별이와 구서연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봤고.
“헐.”
이유진은 단박에 그녀를 알아봤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저걸 어떻게 못 알아봐.
난 100m 밖은 물론, 실루엣만 봐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는 명품 백 말고도 다른 게 하나 더 들려 있었으니.
바로 묵직한 비닐봉투였다.
뭐가 들어 있는지 보이지 않거늘, 왠지 저 안에 있는 게 뭔지 보이는 듯했다.
투시 능력이라도 생겼나?
어쩐지 냄새도 맡아지고 맛도 느껴지는 것 같다.
반대로 그녀의 눈엔 사람을 보는 능력이 사라졌나 보다.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쥐꼬리만큼도 신경 쓰지 않으며, 연습실만을 유심히 둘러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살짝 아래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연습실이 좀 구리네?”
“말이 좀 심하네.”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런 소리라니.
근데 여기 주소는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유진이가 말해줬나?
별이와 서연은 그제서야 기함하며 입을 떡 벌렸다.
선글라스를 좀 내린 덕에 알아챌 수 있었나 보다.
“허얼! 대박!”
“유, 유정아 서, 선배님···!?”
정아는 입을 떡 벌린 그녀들을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안녕? 너희 추어탕 좋아하니?”
< 추어탕 빌런의 습격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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