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25화 (25/124)

< 이렇게 보니까 꼭 걸그룹 같기도 하고 >

딩동- 벨이 울렸다.

누군지는 뻔하다.

보컬 룸을 만든 이후, 거의 매일마다 오고 있었으니까.

문을 열어보니, 역시 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묵직한 비닐봉투가 들려 있다.

“이건 뭐야?”

“반찬이에요. 엄마가 사장님 드리라고 싸주셨어요.”

무거워 보여서 얼른 봉투를 건네받았다.

역시나 무겁다. 슬쩍 안을 보니 정말 많이도 싸주셨다.

저번에 집에 갔을 때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또 먹을 수 있게 됐네.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씀··· 아니다, 내가 전화드려야지.”

그녀는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고.

반찬을 냉장고에 이쁘게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이런 건 내가 할게.”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어차피 저도 같이 먹을 거잖아요.”

싱긋, 예쁘게 웃으며 대답하는 별이.

우리는 하루 3끼 중 아침을 제외한 2끼를 함께 먹었다.

어쩔 땐 아침까지 같이 먹기도 했고.

그렇다고 항상 우리집에서 먹는 건 아니었다.

무리해서 온종일 보컬만 연습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짬이 있는데 우리가 설마 연습도 조절 못 할까.

별이가 집에서 연습할 때 나 혼자 연습실에 가기도 하지만.

유진이가 만든 안무를 연습할 때나, 스케줄을 하러 갈 때나, 거의 온종일 붙어 있어서 대부분의 끼니를 같이 할 뿐이었다.

집에서 먹는 건 그중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 저 이제 연습하러 들어갈게요. 사장님도 들어오실래요?”

“먼저 들어가서 하고 있어. 나 어머님한테 통화 좀 드리고.”

“네. 짧게 하셔도 돼요.”

별이가 보컬 룸으로 들어가자, 바로 어머님께 통화를 드렸다.

그렇게 15분이 넘어가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유정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얘는 또 왜 전화를 했을까.

이 통화가 끝나면 바로 전화해봐야겠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톡이 왔다.

[잘생긴 오빠 추어탕 먹으러 가자. 갈아 만든 걸로. 갑자기 확 땡겨.]

얘는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난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도 답장을 보냈다.

[갑자기? 지금은 안 돼.]

그 뒤로 답장은 없었다.

어머님과 통화가 끝난 다음에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뭐야···?”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보컬 룸 안으로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날 보는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여긴 분명히 내 집인데.

어째선지 내가 그녀의 작업실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다.

***

누가 와도 구경하느라 눈이 바쁠 유정아의 집.

식탁엔 스타벅스에서 갓 사온 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유정아의 것, 이팀장의 것, 그리고 권본부장의 것까지.

쪼옥- 찔끔 마시는 유정아.

같은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빨대를 저었다.

“정아야.”

권본부장의 부름에도 빨대를 젓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요새 통 얼굴을 못 봤지? 간만에 보니까 좋다.”

불과 며칠 전에 재계약 제의를 하러 찾아왔었는데.

권본부장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유정아는 그의 말에 꼬투리를 잡으면 그가 유도한 대로 대화가 이끌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심드렁한 얼굴로 위험한 말을 꺼냈다.

“그래요? 가정도 있으신 분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남들이라면 당황할 만한 말이었으나, 권본부장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능글맞고 뻔뻔하기로는 GO엔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라서.

“난 우리가 자주 봤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쭉. 왜냐하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야.”

“와, 두 가지나 되나 봐요?”

“하나는 내가 네 팬이라는 거야. 난 언젠가 네가 이렇게 뜰 줄 알고 있었어. 워낙 비주얼도 좋고 연기도 좋잖아.”

권본부장이 유들유들한 미소를 얼굴에 띠웠고.

유정아는 커피만 쪽쪽 빨고 있는 이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은 벌써 반이나 드셨어요? 천천히 좀 드세요.”

“어? 어어. 그래.”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돈 때문이야.”

“···?”

“난 우리가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해. 우리가 성과를 얻어서 내가 아내 가방 하나 사줄 정도의 돈을 벌면, 정아 너는 신형 외제차 한 대 뽑을 만한 돈을 버는 거지. 난 그리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이 정도로도 너무 만족해.”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마시고, 쉽게 말하면 돈 벌고 싶으면 재계약하라는 말이잖아요.”

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리며, 비아냥거리듯 말을 이었다.

“내가 다른 데 가면 망하기라도 할까 봐요? 누가 보면 내 능력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GO엔터 덕분에 성공한 줄 알겠어요.”

권본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난 정말 너한테 너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 거야. 정말이야, 믿어줘.”

정아는 이런 권본부장이 넌덜머리가 났다.

재계약하자고 만난 게 뻔하다.

그래서 이번에 정말 확실하게 의사를 밝히려 했다.

그런데 대화가 자꾸 이리저리 돌아가고 있었다.

이만 결론을 좀 냈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추어탕 먹고 싶네. 미꾸라지 갈아버려서 먹으면 맛있던데.”

“추어탕 좋지. 아니, 지금이라도 먹으러 갈까? 잘하는 데 아는데.”

한숨이 나왔다.

미꾸라지라고 비꼬는 말인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유정아는 권본부장이 딱히 이팀장이나 최이사 같이 밉지는 않았다.

그러나 좋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팀장님, 팀장님은 커피만 마시러 왔어요? 아니면 운전? 왜 말씀을 안 하세요?”

타겟을 바꿨다. 저 사람이랑 말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권본부장님의 눈치를 슬쩍 본 이팀장은 헛기침을 하곤 부드럽게 말했다.

“정아야. 하하. 그··· 우리가 혹시 못해준 게 있었니?”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단번에 결론으로 가려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없-“

웃음을 참으며 ‘없죠’라고 대답하려 할 때.

권본부장이 말을 뚝 자르며 들어왔다.

“아! 그리고 저번에 노래 부른 거 되게 좋-“

“재계약 안 해요.”

그래서 유정아도 마찬가지로 말을 잘랐다.

“···정아야, 우리 좀 차분하게 얘기해보-”

“재계약 안 합니다. 그렇게 아시고 두 분 다 돌아가세요.”

이팀장의 눈이 점점 매섭게 변했다.

그리고 으르렁거리듯 들끓는 목소리로 물었다.

“김유민 때문이야? 그 새끼한테 가려고 그러는 거지?”

“···.”

“정말 이렇게 나올 거냐? 우리가 너한테 못해준 게 뭐가 있어!”

“없어요, 그런 거.”

“그런데 대체 왜 계약을 안 하는 거냐고! 김유민한테 지금 뭐가 있는데? 걔 가진 거 김별밖에 없어. 우리가 그 새끼보다 못한 게 뭐야?”

대형 기획사인 GO엔터를 버리고 굳이 김유민에게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유정아는 눈을 위로 올리며 생각했다.

‘사람처럼 대해주고, 진심으로 위해준다는 거, 친하다는 거, 의지할 수 있다는 거, 내가 원하는 걸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것 같다는 거,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음.”

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굴리다가,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이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문득 저 눈이 찌푸려지는 게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잘생겼잖아요. 두 분보다 훨씬.”

“···!”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은 납득할 수 없겠는데?”

그들이 어쨌건, 둘은 집에서 쫓겨났고.

권본부장은 차에 타며 이팀장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알죠? 제가 잘 이끌어가고 있었는데, 이팀장님이 망치신 거예요. 이건 확실하게 해두자고요.”

“···.”

이팀장의 눈썹이 한껏 찌푸려졌다.

애초에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부른 거였나 보다.

***

오전에는 우리 집에서 보컬 연습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엔, 유진이 만든 안무를 익히기 위해 별이와 함께 연습실에 왔다.

“원 투 쓰리, 포!”

안무를 알려주는 이유진의 양옆으로, 왼쪽엔 서연이가, 오른쪽엔 별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셋이 거울을 바라보며 안무를 배우고 있는 모습.

둘 모두 눈을 크게 뜨며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고 있다.

난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그녀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우리의 최종 안무는 저걸로 결정됐다.

유진이 직접 만든 10개의 시안 중, 짜깁기해서 가장 나은 걸로 뽑아내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그 짧은 시간에 시안 10개를 뽑았으니 그럴 만하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안무는 저것뿐만이 아니었다.

별이와 함께 무대에 같이 설 댄서들이 출 안무 역시 필요했으니까.

댄서의 안무는 가수인 별이의 안무와는 달라야 했고, 그건 다른 안무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미 별이의 안무가 결정되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별이의 동선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맞춰보면 되는 거고.

“서연아, 거긴 좀 더 골반을 틀어서.”

“아, 이렇게요?”

“그렇지! 잘하네!”

서연은 헤헤, 웃음을 흘렸다.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사실 서연이는 저 안무를 익힐 필요가 없긴 한데.

이왕 댄스를 배우기도 할 겸, 그냥 같이 연습하기로 했다.

댄스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가 따라오기에 그리 어려운 안무도 아니고.

‘그나저나.’

셋이서 저렇게 같은 춤을 추고 있는 걸 보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렇게 보니까 꼭 걸그룹 같기도 하고···.’

매력도 매력인데 일단 비주얼 조합이 미쳤다.

작고 여리여리하며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의 구서연.

비율도 좋은데 글래머러스하기까지 한 이유진.

표정에 따라 인상이 다양하게 바뀌는 고양이상의 얼굴에, 길쭉길쭉한 김별.

포지션도 적절하게 나뉘어진다.

별이는 메인 보컬, 유진은 메인 댄서, 서연은 리드 보컬 겸 작곡 담당.

3인조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기에, 여기서 딱 한 명만 더 있으면 밸런스도 적당하겠다.

비현실적이지만 즐거운 망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네, 이거.

“어! 언니! 별이 틀렸어요!”

“···나도 알아. 실수 한 번 한 거야.”

안무를 틀린 별이를 캐치해낸 서연이 득달같이 일러바친다.

입술을 삐죽이며 웅얼거리듯 말하는 별이.

서연은 이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서연이 틀렸을 때는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너 방금 틀렸어. 춤 그렇게 추는 거 아닌데.”

“···이러면 어떨까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춰본 거야.”

“거짓말.”

“진짜야!”

끝까지 안 틀렸다고 우기고, 별이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만약 그녀들이 걸그룹이라면, 팬들이 저런 걸 보고 ‘동갑내기 케미’라고 이름 붙이겠지?

근데 유진이가 노래는 좀 하려나?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비주얼이나 댄스는 누가 봐도 연예인인데.

아니,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하지.

한 번 망상이 시작되니 멈출 줄을 모르겠다. 아니, 멈추기가 싫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제 가상의 멤버까지 한 명 추가해, 무대에 선 모습을 상상하려던 그때.

지이잉-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며, 상상이 끊겼다.

유정아에게서 온 톡.

[추어탕 먹으러 가자고!!]

갑자기 왜 추어탕에 꽂힌 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해선 고집을 꺾지 않는 그녀에게는, 말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보다 이게 직빵이다.

찰칵! 난 저 셋이 연습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그녀에게 전송하며 덧붙였다.

[바빠. 놀아줄 시간 없어.]

답장은 금방 왔다.

[이미 행복하게 놀고 있으면서 바쁜 척은.]

반박하고 싶은데 선뜻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댄스는 유진이가 잘 알려주고 있고, 지금 난 구경하고 있는 게 전부라서.

“···.”

그래서 그냥 답장을 하지 않기로 했다.

< 이렇게 보니까 꼭 걸그룹 같기도 하고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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