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22화 (22/124)

< 안경별 >

구서연의 일상은 이전보다 훨씬 타이트해졌지만, 아주 심플해지기도 했다.

이유진이 있으면 그녀에게 댄스를 배우고, 그녀가 없으면 혼자서 댄스와 노래를 연습한다.

그리고 집에 가면 곡을 만드는 쳇바퀴와 같은 나날.

누군가에겐 지루해 보일 수도 있으나.

정작 구서연은 이러한 일상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작곡은 자신의 곡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아직 무대 공포증을 다 극복하지 못해서, 활동할 시기를 가늠할 수가 없기도 한 데다가.

얼마나 어떻게 개선되는지에 따라, 무대도 달라지게 될 테니까.

‘서연아, 깔끔하게 다 고쳐지면 무대에서 노래만 불러도 되는데, 정 안 되면 댄스 가수로 활동해도 돼. 아니면 간단한 안무 정도면 곁들여도 되고.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극복해보자.’

사장님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김별의 후속곡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가수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된 이상, 작곡도 다시 재밌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작곡이 가수의 꿈을 포기한 대가라고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기도 하고.’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자신의 곡도 잘 뽑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마인드의 변화 덕분일까.

아니면 일상에서 오는 안정감 덕분일까.

서연은 김별의 후속곡을 빠르게 뽑아낼 수 있었다.

“천재들은 한 시간도 안 돼서 히트곡을 뽑기도 한다더니.”

서연은 자신이 만든 곡을 재차 들어보며, 생글생글한 웃음을 지었다.

“내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 거지?”

물론 자신이 듣기에 좋은 것뿐이지, 사장님이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썩 만족스러운 곡이 뽑혔으니, 당장은 기분이 좋았다.

“바로 사장님한테 보내볼까?”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메일함에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보였다.

[GO엔터테인먼트 A&R팀 김선영입니다.]

서연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다.

뭔가 싶어 메일을 열어보니.

‘만드신 곡을 잘 듣고 있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따위의 별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뭐야.”

메일 주소는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다.

서연은 코웃음을 치며 바로 삭제하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사장님한테 일러야겠다.”

아버지를 통해, 그리고 유진을 통해 대부분의 사실들을 전해 들었다.

사장님이 어쩌다가 별이와 함께 GO엔터를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뒤에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근데 이 자식들이 지금 누구한테 이런 걸 보내는 거야. 어이없어.”

데뷔곡을 방해했던 주제에 참 낯짝도 두껍다.

서연은 바로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곡도 들려줄 겸, 이것도 직접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보세요?

***

연예인이 가진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광고’.

우리는 그중에서 나름 대형광고라고 할 수 있는 콜라 광고를 받을 수 있었다.

인기차트 2위였어서 그런가?

콜라도 2위 기업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곡은 곧장 9위로 밀려나긴 했다.

와인드업의 팬들이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화력이 더 강해졌더라고.

아무튼 광고를 찍게 돼서, 그저 기쁘기만 하다.

‘이제부터 콜라는 펩시다.’

컨셉은 하늘색과 파란색.

세트장뿐만 아니라 별이의 착장 또한 블루 계열로 되어 있었다.

스카이 블루, 세룰리안 블루, 로열 블루, 미드나잇 블루 등등 뭐라뭐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그냥 하늘색과 파란색이다.

연하고 진하고 어둡고 밝냐의 차이 정도만 느껴질 뿐.

아무튼 잘 어울리긴 하네.

블루 계열이 별이한테 이렇게나 잘 맞을 줄은 몰랐는데.

아니, 사실 모든 컬러가 다 잘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사장님, 저 이제 앞으로 펩시만 먹어야 되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광고 촬영이 막 시작되기 직전.

별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귓속말로 물었다.

“광고 기간 동안에는 그러는 게 좋지. 왜? 싫어?”

“아뇨, 좋아서요. 오늘부터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료는 펩시예요.”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말하는 별이.

난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광고 콘티를 보고 설명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딱히 신선하거나 특별하다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일 끝나고는 역시 펩시’, ‘영화를 보며 마시는 것으로도 역시 펩시’라는 컨셉이었다.

콘티의 내용은 이러했다.

하늘색과 파란색, 그리고 흰색으로 꾸며진 방 안.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잘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타자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인다.

그러다가 엔터를 누르며, 드디어 끝났다는 듯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다음 장면으로는 펩시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를 열고.

환한 미소를 띠며 캔 두 개를 꺼내 소파 앞에 앉는다.

영화를 보는 건지 뭘 보는 건지, TV를 보며 펩시를 마신다.

OTT와 유튜브를 비롯해, 1인 컨텐츠 소비가 늘어나고 있으니.

신선하진 않아도 나름대로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한 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

‘무난하네.’

그런데,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

이러한 내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분명히 무난했어야 할 광고이거늘.

모델이 별이가 되니, 그 어떤 광고보다 특별하게 변해버렸다.

“커어어엇!”

첫번째 씬부터 호쾌하게 컷을 외치는 감독.

콧김을 내뿜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안경! 누구 동그란 안경 없어!?”

가뜩이나 훌륭했던 장면에 안경까지 추가하려는 욕심.

뭘 좀 아는 감독이었다.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이.

별이는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안경은 왜요? 쓰는 게 좋아요?”

골똘히 머리를 굴려보며 생각을 거듭해봤지만.

나는 명확한 대답을 꺼낼 수가 없었다.

***

광고 촬영이 끝날 즈음, 전화를 걸었던 구서연.

그녀는 대뜸 보여줄 게 있다며 우리집으로 온다고 했고.

난 별이를 집에 데려다준 뒤에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 이거 봐요! 저 만나재요!”

우리집에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얼굴에 들이민다.

아직 신발도 벗기 전인데, 뭐가 그리 급한 지 모르겠다.

“뭔데?”

핸드폰을 받아서 화면을 보는데, 절로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 자식들이 이제 별의별 짓거리를 다 하는구나.

참 추잡스럽다.

“저 잘했죠? 답장도 안 했어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목소리.

내 귀에는 꿀을 바른 것처럼 부드럽게 들렸다.

난 핸드폰을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며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한 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그녀의 표정은 와락 찌푸려졌다가, 이내 음흉한 미소를 띠웠다.

“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세요.”

정확히 보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맞다.

보내긴 어딜 보내. 간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붙잡을 생각인데.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이렇게 곧장 이르는 걸 보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이제 무대 공포증을 극복할 실마리도 얻었겠다, 이득만 보자면 GO엔터의 제안에 흔들릴 만도 했다.

“이런 쫌생이들 절대 안 만날 거예요.”

그런데 적어도 얘한테는 GO엔터보다 우리 회사가 더 좋게 보이는 모양이다.

다 지들이 스스로 이미지를 깎아 먹은 덕이지.

“그래, 잘했어. 그런데 이거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아뇨. 별이 후속곡도 들려드리려고요. 꽤 잘 뽑힌 것 같아서요.”

“···!”

“지금 들어보실래요?”

그걸 말이라고.

정말이지, 복덩이가 따로 없었다.

여기에 찾아왔을 때는 그녀가 마음이 급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마음이 급해졌다.

구서연이 저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니,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난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고.

그녀에게 손짓했다.

“빨리 와, 서연아.”

그녀는 그대로 현관에 서서 이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만개했다.

“그렇게 좋아하시면 또 부담스러운데.”

전혀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으나, 구태여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정말 별로일 수도 있어요.”

“알았어.”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알았어.”

“그래도 제 귀에는-“

“서연아. 우리 그냥 곡부터 들어보면 안 될까?”

“아이 참. 보채시기는.”

그녀는 매우 느긋한 손길로 클라우드에 접속했고.

난 가슴 속에 ‘참을 인’을 세 번쯤 새긴 끝에야 겨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미쳤네, 진짜.

***

서연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선뜻 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어, 혹시 지금 잠깐 나올 수 있어?”

-네. 나갈 수 있어요. 집으로 가면 돼요?

“아니, 너네 집 앞으로 걸어가는 중이야.”

그녀의 집 앞에서 5분 정도 기다렸을까.

그녀는 중무장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왔다.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동그란 안경.

안경이다.

“아까 엄마랑 같이 가서 맞췄어요.”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시선을 피한다.

안경에 알은 없었다.

“잘 어울리네. 예쁘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함께 걸음을 옮겼다.

단지 내에 있는 작은 공원.

가로등만이 비추고 있는 이곳엔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했다.

“여기 앉을까?”

“네.”

벤치에 나란히 앉으며 물었다.

“요새 많이 피곤하지? 힘들진 않아?”

곡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무리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이상, 급할 게 없었거든.

데뷔곡 활동은 이미 끝이 났지만, 우리를 찾는 곳은 아직도 많았다.

OST가 연이어 터진 덕분이겠지.

OST로 음방 활동은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그녀가 피로를 호소한다면 곡은 다음에 들려줄 생각이다.

막상 곡을 듣는다면, 무리해서라도 열의를 불태울지도 모르니까.

“음방 활동할 때는 너무 바빠서 정신없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여유가 조금은 생긴 것 같아요.”

아직 안경이 어색한지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팬분들 덕분에 별로 힘들지도 않았어요. 실제로 본 건 몇 번 없어도 인터넷으로는 매일 보고 있어서요. 그런 거 보면 매일 신기하고 재밌어요.”

“그래?”

“네.”

고민이 됐다. 말만 들으면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좀 애매한 것 같기도 해서.

철인이 아닌 이상 힘든 건 당연하긴 했다.

아무리 데뷔 활동이라도 힘이 펄펄 나는 건 초반뿐.

스케줄에 시달리다 보면 언제나 넘칠 것만 같았던 체력도 고갈이 나기 일쑤니까.

‘그래. 좀 나중에 들려주자.’

요새 스케줄은 음방을 할 때와 비교하면 전혀 빡빡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쉬는 기간을 조금 넉넉하게 갖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판단하며 생각을 정리했을 때.

그녀는 힐끗, 나를 곁눈질로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사장님.”

“응?”

“혹시 컴백 때문에 물어보신 거예요?”

“···!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눈매를 반달처럼 휘며 답했다.

“그냥요. 왠지 사장님이라면 이러실 것 같았어요.”

나랑 많이 가까워지긴 했나 보다.

내가 그렇게 속이 잘 드러나는 사람도 아닌데.

“전 되도록이면 빨리 컴백했으면 좋겠어요. 혹시 곡도 구하셨어요?”

못 당하겠다.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볼래?”

“네.”

주머니에서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그녀에게 이어폰을 건넸다.

그리고 바로 음악을 틀어줬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는 별이.

난 그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이어폰이 그녀의 귀에 꽂혀 있으니, 내 귀엔 조용한 적막만이 맴돌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음악이 끝나자, 별이는 눈을 뜨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이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역시나, 별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난 대답이 뻔한 질문을 건넸다.

“어때? 괜찮은 것 같아?”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때.

지이잉-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 화면이 빛나며, 서연이에게 온 톡의 내용이 보였다.

[사장님 별이한테 곡 들려줬어요? 제가 아까 사장님한테 곡 줬다고 말했는데. 마음에 든대요?]

“···.”

화면에 못박혔던 시선을 천천히 옆으로 옮겼는데.

별이는 모르는 척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세고 있었다.

알 없는 안경 너머로 동공이 떨리고 있다.

그래도 찔리기는 한가 보네.

< 안경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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