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뺑글뺑글 >
고급 외제차 안이 담배연기로 뿌옇다.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최이사.
관자놀이의 핏줄은 툭 불거져 있었다.
“후우.”
핸드폰 화면에는 음원 사이트의 인기차트가 떠올라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박힌 곳은 2위 자리에 있는 김별이라는 이름.
담배 연기가 필터까지 타들어가는 동안, 최이사는 가만히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
얘를 어떻게 해야 할까.
김별과 김유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온갖 더럽고 치사한 수법들.
당하는 입장에선 알고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들.
허나, 그 무엇도 쉽사리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을 터.
지금까지 김별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수작을 부리지 못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수진이···.’
조카, 이수진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름을 알리게 된 순간부터 칼자루는 저쪽의 손에 들어가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 상황에서 김별이 레모네이드의 데뷔조였던 게 밝혀진다면?
그것도 3개월차였던 이수진이 김별 대신에 들어갔다는 게 밝혀진다면?
낭패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소용없다.
이쪽이 쥔 칼보다 저쪽이 쥔 칼이 더 날카롭고 예리하니까.
툭. 툭.
핸들 위에 올려놓은 손이 일정한 박자로 핸들을 두드렸다.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그들.
그런데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핸들을 붙잡은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갔다.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작은 복수라도 해야지.”
마땅한 해결책은 없긴 한데,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작은 복수라도 해야 조금은 성이 풀릴 터.
“···구서연이랬지?”
구태성의 딸 구서연.
이제 막 작곡가로 데뷔한 그녀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재능 넘치는 딸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그들에겐 김유민과 김별이 있는 WE엔터보다, 수많은 스타들이 즐비해 있는 GO엔터가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일 게 분명하다.
최이사는 그들에게서 구서연이라는 작곡가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
원래 아티스트와 작곡가는 잘 맞는 팀이 있다.
이름을 알린 그들이기에, 이제 다른 작곡가를 구할 수는 있겠지만.
구서연을 데려오기만 한다면, 그래도 가장 높은 성공 가능성을 배제시키게 되는 셈.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조카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 어쩌겠나.
당장은 이걸로 만족해야지.
최이사는 신경질적으로 엑셀을 밟으며 회사로 향했다.
***
이제 막 컴백한 4인조 보이그룹, 와인드업.
여기저기 부르는 데가 많아, 그들은 장장 26시간만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나의 방을 옷방으로 두고, 다른 두 개의 방을 두 명씩 나눠 쓰고 있는 그들.
막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막내 장영기는 2층 침대로 향하며 리더를 바라봤다.
먼저 씻고 나와,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 장영기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형, 어떡하죠?”
리더, 송윤황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뭘 어떡해.”
“우리 2위 뺏겼잖아요.”
“금방 따라잡아. 그리고 아직 우리가 1등이잖아.”
담담하고 시니컬한 어조.
2위를 뺏겼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장영기는 2층에 있는 침대에 누우며 핸드폰을 매만졌다.
“우리 팬분들이 드라마 까내리진 않겠죠?”
팬들은 아마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을 터.
팬들의 입장에선 김별이 적이 아니라 드라마가 적일 것이다.
드라마로 얻은 인기였으니 당연했다.
“나 좀 자면 안 되냐? 피곤하다.”
“아, 네. 죄송해요, 형.”
“···걱정 마. 팬들 내부에도 드라마 팬 많을 거야. 그리고 요즘은 드라마 까내리면서까지 이슈 만드는 게 더 손해인 거 팬들도 알아. 우리 이미지만 나빠지거든. 아마 다른 팬들이 유심히 보고 있는 거 알아서 더 조심스럽게 행동할 거야. 넌 이 바닥 몇 년인데 아직 그런 것도 모르냐?”
“유민이 형이 이런 거 몰라도 된다고 했었잖아요. 우린 우리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송윤황은 지금은 떠나간 김유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렇지.”
김유민이 자신들을 맡으며, 그룹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뒤.
기쁨과 함께 스트레스도 증폭됐었다.
뜨기만 하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신경 쓸 게 워낙 많았어야지.’
다른 멤버들도 한창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은 리더로서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김유민은 말했었다.
‘다른 데 신경 쏟지 말고 너희는 그냥 실력 키울 생각이랑 팬들 생각만 해. 그게 너희가 할 일이야. 다른 건 우리가 할 일이니까 너희도 너희 할 일에만 집중해. 그게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야.’
그리고 마법 같이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실력과 팬들만 신경 쓰다 보니, 모든 게 깔끔해지고 손에 성공이 남게 되었다.
물론, 스트레스 받을 만한 모든 일들을 다 처리해주고, 기뻐할 만한 일만 잔뜩 만들어준 덕분이기도 했다.
“형, 그럼 유민이 형한테 축하한다고 연락이나 해볼까요? 연락 안 한지 너무 오래 됐는데. 우리 무대 피드백도 들어볼 겸.”
“그런 걸 뭐 하러 해. 나간 사람한테. 그리고 우리가 피드백 받을 게 뭐가 있어. 지금 우리한테 뭐가 부족한 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데.”
실력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눈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점점 자신들의 부족한 점이 보였다.
그 부족한 점을 노력으로 메꾸는 일.
그렇게 실력을 키우는 게 할 일의 전부였다.
그건 와인드업이라는 그룹이 가진 고유의 색깔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런 마인드 때문에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긴 하지만.
실력이 느는 것도, 느는 실력을 알아봐주는 것도, 너무 중독적이라서 이를 고칠 생각은 딱히 없었다.
“형, 점점 더 시크해지는 것 같아요.”
“···멘탈이 좋아진 거라고 하면 안 되냐? 좋은 말 놔두고 무슨.”
“시크한 거랑 멘탈 좋은 거랑은 아예 다른 의미 아니에요?”
“그냥 좀 자라고. 우리 얼마 못 자고 다시 나가야 되거든?”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잠을 청하려는 송윤황.
그런데 장영기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형,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유민이 형이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한 번도 연락 안 했어요. 적어도 한 번은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역시 유민이 형인가? 우리 도움 없이도 바로 성공해버리네요.”
송윤황은 방금 전의 대화 때문인지 잠이 조금은 달아났고.
자기 전에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에 조금 더 어울려주기로 했다.
이대로 잠을 청하면 머릿속에 상념이 떠돌아다닐 것 같아서.
“어차피 도와달라고 했어도 안 도와줬을 거야. 이제 남이잖아. 전엔 좋았어도 이제 나갔는데 뭐 어떡해. 나쁘게 생각은 안 해도 딱히 도와줄 이유도 없어. 유민이 형 말대로, 우린 우리 일을 한 거고, 형은 형 일을 한 거니까.”
장영기는 쩝, 입맛을 다시며 긍정했다.
“하긴, 우리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저도 주변 사람들 다 챙길 자신은 없는 것 같네요. 이런 거 신경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그래. 우린 형이 말했던 대로,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한 대로, 그냥 우리 할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
상쾌한 아침.
간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별이에게 스케줄이 없는 날이 아니지만, 오늘 별이의 스케줄은 유진이에게 맡겼다.
요즘 유진이가 전담 마크하고 있는 서연이가 오늘 나를 보자고 했으니.
[사장님 내일 뵐 수 있을까요?]
어젯밤 그녀가 보낸 메시지.
드디어 때가 온 것이리라.
생각보다 결심한 시기가 이르지만, 유진이에게 듣기론 서연이가 댄스를 즐기고 있고 재능까지 있다고 했다.
그러니, 기간이 짧다 하여, 무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난 여유롭게 집에서 나섰다.
연습실이 가깝기도 하고,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해 있으면 그녀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난 딱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 연습실에 도착했다.
역시나.
문을 여니 그녀가 거울을 보며 연습실 중앙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허구한 날 보다가 한동안 못 봤으니, 오랜만이라 느껴졌다.
‘그새 앞머리가 저렇게 길었네.’
이제 앞머리가 치렁치렁 거슬리지도 않는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있다.
얼굴이 더 아기자기하게 보여서 그런지, 귀엽고 상큼한 느낌이 배가 됐다.
난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앞머리에 대한 얘기가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지금은 가벼운 얘기를 하며 긴장을 풀어줄 때가 아니었다.
얼마나 힘겨운 결심 끝에 나를 불렀겠나.
나는 지금 그녀의 표정에서부터 보이는 굳은 의지와 마음가짐을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유진이는 잘 가르쳐줬지?”
고작해야 이 정도.
“네.”
평소라면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말이 많았을 테지만, 지금은 짧게 대답만 하고 있다.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아랫입술을 핥기도 한다.
나는 그녀와 마주 보고 서서, 이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왜 불렀는지, 자신은 있는지 등, 지금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그녀는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며 우물쭈물했다.
말이 입에서 맴돌고 있는 모양새.
“···테이블 새로 산 거, 좋은 것 같아요. 크기도 하고 높이도 좋고.”
그런데 눈을 굴리며 저 따위 말이나 꺼내고 있다.
“그렇지. 우리도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저 원형 테이블에서 같이 밥 먹기에는 좀 좁았잖아.”
“맞아요. 그래서 이제 바닥에서 안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젓가락 집을 때마다 허리 안 숙여도 돼서-“
난 그녀의 말허리를 뚝 끊고 들어갔다.
고작 이런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니.
“노래 다시 한번 불러볼 수 있어?”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노래만요?”
“아니. 댄스랑 같이. 거칠게 춰도 되고 가볍게 춰도 돼. 네 마음대로 해. 노래 잘하는 건 알고 있으니까, 노래도 굳이 잘할 필요도 없어. 노래 자체를 할 수 있을 정도면 되거든.”
아직 댄스 없이 노래만 할 수는 없을 거다.
기껏 무대를 다르게 느끼게 하기 위해 댄스를 연습시켰는데, 노래만 시킬 거였으면 댄스를 알려준 이유가 없지.
“불러볼게요. 그런데··· 웃지 마세요.”
“알았어.”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아뇨. 진짜 웃으면 안 돼요. 정말로요.”
“알았어. 약속할게.”
“아니, 정말-“
“알았다고.”
알았다는데 왜 자꾸 아니래.
기분 좋게 왔는데, 슬슬 열이 받으려 한다.
난 그녀와 거리를 벌리고 바닥에 대충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잘할 수 있어. 안 웃으신대. 만약 웃으시면 진짜 너 죽고 나 죽고 하면 돼. 정말 안 웃으신대. 잘할 수 있어.”
자기최면인 모양인데 어째 중간에 이상한 말이 껴 있다.
난 참을성을 발휘하며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기다리니, 이내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할게요.”
“그래.”
“반주 정도는 틀어도 되죠?”
“마음대로 해.”
그녀가 선택한 곡은 제 아버지의 노래인 ‘그대에게’.
퍽 익숙한 반주에 맞춰 끄덕끄덕 고갯짓으로 리듬을 타더니.
이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
문워크.
어설픈 문워크로 제자리를 뺑글뺑글 돌기 시작한다.
“···.”
나는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혀를 깨물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워어! 오늘 밤 나는 그대를 만나러 가요! 어두운 밤을 헤치고 훨훨 날아가요!”
“···.”
뺑글뺑글.
“워어! 그대 마음을 얻기는 참 까다로워요! 그대에게 내 사랑을 바칠 테요! 그대에게!”
“···.”
입안에 살짝 비릿한 맛이 난다.
피가 나나 보다.
난 무대에 집중하지 않고 슬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어느덧, 스피커에서 모든 소리가 뚝 멎었고.
나는 풀린 초점을 바로잡아 그녀를 쳐다봤다.
“흐윽···! 해, 해냈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빙그레 웃고 있다.
“잘했어.”
해낸 게 벅찬 모양인지, 내게 다가오며 점점 웃는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내, 나를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크, 흐윽···. 해냈어요. 이제 저도··· 노래 부를 수 있어요. 흐윽!”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래, 잘했어. 데뷔하자. 이번엔 가수로.”
등을 토닥이는 반대 손으로 혀를 살짝 찍어서 보니.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 뺑글뺑글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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