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9화 (19/124)

< 당신도 들어봐요 엄청 좋아요 이거 >

유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서연의 표정을 관찰하듯 바라봤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상대는 놀릴 대상이 아니다.

회사에 이미 중요한 인물이자,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를 뮤지션.

생긴 게 너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장난기가 조금 흘러나왔지만.

이제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서연에게 유진은 정식으로 인사부터 했다.

“반가워요, 작곡가님. 전 이번에 WE엔터로 온 매니저, 이유진이라고 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오늘 서연 작곡가님한테 댄스를 가르칠 선생이기도 해요.”

안 웃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감정이 얼굴에 너무 확 드러나서.

‘그럴 만도 하지.’

난데없고, 쌩뚱맞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으리라.

“댄스요? 저한테요?”

“네.”

결국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리곤 한숨 반 목소리 반으로 말했다.

“사장님이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는데 전 노래가 안 돼서요. 전 이만 가볼게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는 구서연의 등 뒤로, 유진의 또렷한 목소리가 꽂혔다.

“이대로 갈 거예요? 이렇게 하면 무대 공포증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

우뚝 멈춘 발걸음.

천천히 몸을 돌린 서연의 눈은 고요하게 불타고 있었다.

“사장님이 그랬어요?”

“네, 선배가요.”

“그걸··· 그걸 정말로 고칠 수가 있다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서연에게, 유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여기서 싫다고 하면 더 이상 붙잡을 생각이 없기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눈에 열망이 넘쳐서 줄줄 흐르고 있다.

서연은 결연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와, 유진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점점 별이에 대한 입소문이 나고 있다.

그렇기에 음방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서서히 반응이 커지고 있었다.

[5. So Happy – 김별]

44위였던 곡이 무려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차츰차츰 올라가고 있기도 했지만, 어제 방송된 예능으로 탄력이 제대로 붙었다.

역시나 별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엄청 좋더라고.

이대로만 간다면 1위를 하는 것도 그리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김별 얘 뭐임? 노래 개잘하는데 춤도 잘 추네? 야식 먹으면서 보다가 개깜짝놀람ㅋㅋㅋ

└나도 부랴부랴 서칭 중이다. 요즘 인기 차트를 안 들어서 몰랐는데 노래 개좋음. 근데 난 갠적으로 뮤비가 더 좋더라. 비주얼이 미쳤어 진짜!!!

-아니 나도 서칭 중인데 얘 스토리가 벌써 왜 이렇게 많음?ㅋㅋㅋ 구태성에 유정아에 사장에 구태성 딸까지ㅋㅋㅋ 되게 많네.

-님들 그거 앎? 김별 얘 GO엔터 출신임ㅋ 그래서 댄스도 잘 추는 거.

└???? ㄹㅇ?

밥을 먹어서 이미 물리적으로 배가 부르지만, 만약 안 먹었어도 이런 반응들을 보면 배가 불렀을 것 같다.

더구나 오늘은 음악방송 1위 후보!

비록 차트 1위는 못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음방 1위만큼은 오늘 당장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주를 놓치면 답이 없다.

다음주부터는 ‘와인드업’의 컴백이기도 하고, 우리는 이번주가 마지막 음방이거든.

제대로 탄력이 붙은 덕분에 음방을 빨리 마칠 수 있게 됐다.

이쯤이면 음방도 나올 만큼 나왔고.

“사장님, 저 괜찮아요? 팬분들이 보시기에··· 이상하진 않겠죠?”

음방 무대에 올라가기 전.

모든 준비를 마친 별이가 머리 끝을 살짝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긴장감보다는 긍정적인 여러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얼굴도 상기돼 있고, 입꼬리도 올라가 있다.

오늘 무대에서는 팬들이 많이 오기로 했으니까.

지금까지 그녀는 팬들과 무대에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음방이 끝난 뒤, 여기에 와주신 팬들과 함께 미니 팬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야외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등, 정말로 소소하다면 소소할 수도 있는 팬미팅.

그런데 우리 팬들이나 별이에게 있어서는 전혀 ‘소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빅 이벤트라고 느껴질 터.

그러니 설레고 떨릴 만도 하지.

난 ‘팬들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 것 같냐’는 그녀의 질문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상해.”

“네···?”

“이상할 정도로 예뻐. 사람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을 정도로.”

스타일리스트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씨구?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당사자인 별이의 반응은 달랐다.

내 주접이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인지,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김별님 스탠바이할게요!”

잠시 기다리니 조연출이 들어와 우리의 차례를 알렸다.

크게 심호흡한 별이.

나와 그녀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복도를 걸었고.

마침내,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꺄아아아! 별아!”

“김별! 너무 예쁘다!”

공개홀을 무너뜨릴 듯한 함성소리.

첫만남이다 보니, 팬들은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별이는 주저앉으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 어? 김별 씨! 울면 안 돼요! 뚝! 뚝!”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음방 피디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지만.

피디의 목소리는, 두 배는 더 커다래진 팬들의 함성에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도 무대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팬들은 무대가 끝나고 나와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유정아의 영상으로 원곡을 찾아봤다가 그대로 김별의 팬이 된 웹소설 작가, 김정민 역시 사정은 같았다.

짙은 여운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가 없다.

“와··· 진짜 라이브 미쳤다.”

“어떻게 바로 전에 울었는데도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다들 실실 웃음을 지으며 감상을 내뱉는다.

이들 모두 김별이 자신들로 인해 감동을 받아 울었다는 것에 묘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노래도 노래고,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인성 역시 너무 좋아 보여서 팬심이 더욱 깊어졌다.

“오늘 1위까지 하면 완벽할 텐데.”

“와인드업 컴백 전이잖아요. 오늘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음방은 1위 충분히 가능해요. 근데 애타는 건 차트죠. 지금 기세로 보면 1위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타이밍이 좀 애매해서···.”

들려오는 말에 공감한 김정민은 쓰게 입을 다셨다.

타이밍이 너무 아쉬웠다.

‘하필이면···.’

1티어 중에 1티어 보이그룹, ‘와인드업’.

이들의 컴백이 다음주에 예고되어 있었으니까.

트레일러가 공개되고, 포토 티저, 뮤비 티저 또한 속속 공개되며 인터넷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아마 컴백하는 순간, 모든 화제를 휩쓸어버리고, 차트 역시 그들의 음악으로 도배되겠지.

이건 예상이 아니라 정해진 미래와도 같았다.

“그래도 이게 어디예요.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면 되죠.”

“맞아요. 별이는 팬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부족한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

그들은 자연재해와도 같았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팬들은 오늘 1위를 차지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이번주가 아니면 그녀가 데뷔곡으로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어지게 되는 셈이니까.

-후보가 정말 쟁쟁하네요! 누가 1위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번주 1위는 과연 누가 될까요?

공개홀 바깥에 모인 팬들.

그들은 핸드폰으로 음악방송을 보며 손에 땀을 쥐었고.

-축하드립니다! 이번주 1위는 김별의 So Happy!

마침내 김별이 1위를 차지한 순간.

“대박!”

“와아! 1위다! 1위 했어!”

“꺄아아! 1위야!”

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방방 뛰며 좋아했다.

하지만 시끄러웠던 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핸드폰 속 김별이 1위 트로피를 들어올린 채, 소감을 말하려 했으니까.

-어어···. 흐윽! 어어, 너무··· 너무 흐으윽! 어떡해!

김정민의 입꼬리가 히죽거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지만 김별이 너무 풋풋하고 귀여워서 광대가 춤을 췄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장님, 저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유정아 선배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유진 언니, 그리고 이 곡 만들어준 우리 서연이, 그리고··· 구태성 선생님, 또··· 흐윽! 우리··· 우리 팬분들.

팬들은 숨소리도 멈추며 귀를 쫑긋 기울였다.

-너무 너무 사랑하고···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더욱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김별 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김별.

곧이어 앵콜 반주가 나오고, 김별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엉망진창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하하하!”

“큭큭.”

실력이 의심되면 라이브를 피하려고 계속 우는 척한다는 악플이 나올 생각에, 이런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을 텐데.

라이브는 이미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와 예능으로 완벽하게 증명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이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진행된 미니 팬미팅은 따스하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자유롭게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비록 이번주가 마지막 음방이지만, 지금 이 순간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가수나 팬들이나 일초일초가 내내 즐거웠던 시간.

“진짜 최고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웹소설 작가 김정민은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팬카페를 둘러봤다.

벌써 장문의 후기글들이 연달아서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모든 후기가 찬양일색.

웹소설 작가 김정민은 목을 옆으로 뚜둑, 꺾으며 손목을 풀었다.

장문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최소 5000자는 적어줘야지.”

팬카페에 첫 번째 네임드 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며칠 후.

GO엔터 권본부장의 아내, 박수아는 TV앞 소파에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

<어쩌다 입시학원>의 광고가 막 끝나고, 이제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간.

집중력을 한창 끌어올리고 있는 그때.

남편인 권본부장이 통화하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어, 와인드업 애들 스케줄 뭐 들어왔어? 차트는 다 줄세웠으니까 자잘한 건 안 나가도-“

“여보! 조용히 좀 해요! 방에 들어가서 통화하든가!”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권본부장은 벙찐 얼굴이 되었다.

“아니. 일하잖아, 일. 지금 얼마나 중요한 시즌인데. 당신이 좋아하는 와인드업 애들 이번에 컴백해서 차트 줄세웠다니까? 지금 글로벌적으로 난리도 아냐.”

“하아. 누가 당신 일하지 말래요? 그냥 방에 들어가서 하라고요. 지금 나한테도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내가 일주일 동안 이것만 기다려요! 나 더 싸울 시간 없으니까 빨리 들어가요. TV 봐야 돼.”

눈에 불을 켜고 말하는 아내.

권본부장은 궁시렁궁시렁 입을 놀리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딸칵, 문 닫는 소리도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박수아는 다시 TV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어머! 어머! 어머!”

시간이 지날수록, 몰입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주인공 커플이 아닌 서브 커플, 아니 이제 이들이 주인공 커플인 듯한 ‘이명선’과 ‘주한선’이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남자로 봐달라는 부탁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래?

-···내가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아? 너야말로 내가 선 긋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래?

-어. 모르겠어. 난··· 널 좋아하고, 너도 날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네 행동이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어디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봐.

-···우리··· 한가롭게 연애나 하고 있을 때가···! 읍!

“꺄아아아아! 어머! 어머!”

‘이명선’에게 ‘주한선’이 기습적으로 키스를 하는 순간.

박수아의 입에서는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TV에서는 서정적이며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짜악!

-···하아.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아니. 미치겠어. 너 때문에.

TV에 들어갈 듯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집중했다.

‘이명선’이 자리를 도망치듯이 떠나고, 그 뒷모습을 ‘주한선’이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처량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 현악기의 소리가 강해지며 멜로디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고.

드라마의 장면과 완벽하게 맞물리는 음악에, 박수아의 몰입도는 절정을 찍었다.

“아악!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

“당신, 너무 시끄러운 거 아-“

“조용히 해요!”

“···물어보는 거야. 오해하지 마. 드라마가 많이 재밌나 봐?”

크흠, 헛기침을 한 권본부장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권본부장 때문에 끊겼던 여운을 다시 즐기고 싶었던 박수아는 드라마의 내용을 떠올려봤다.

그런데, 장면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방금 전 들었던 OST.

“여보! 잠깐만 나와봐요.”

“어, 여보. 왜 불렀어?”

“이거 OST좀 찾아줘요. 오늘 처음 듣는데 확 귀에 꽂히네?”

경험상, OST를 들으면 드라마의 감성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오늘 처음 듣는데 확 꽂힌다고? 와, 노래 엄청 좋나 보네. 조금만 기다려봐. 바로 찾아줄게?”

“고마워요, 여보. 아깐 내가 너무 예민했어요. 미안해요.”

“하하!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

아내의 핸드폰으로 OST를 찾으며 말하던 권본부장의 입이 딱 멈췄다.

[나를 바라봐줘요 – 김별 (어쩌다 입시학원 OST)]

뭔가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온 듯했다.

결국 차트 5위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멈추었던 김별의 이름.

와인드업의 컴백으로 인해 지금은 저 아래로 밀려 있는 그 이름이, 새로운 곡 옆에 보이고 있었다.

“···뭐지?”

느릿한 손길로 음악을 틀어보는 권본부장.

핸드폰으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박수아는 박수를 치며 미소 지었다.

“이거다! 당신도 들어봐요. 엄청 좋아요, 이거.”

“···.”

권본부장은 멍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당신도 들어봐요 엄청 좋아요 이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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