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쇼 >
출연진들 사이에서 바른 자세로 서 있는 별이가 눈에 띈다.
커다랗게 뜬 눈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다.
‘김석희의 아메리카노’가 방송된 뒤에 섭외가 왔던 예능 스케줄.
음방을 제외한, 우리의 첫 번째 예능 녹화다.
비록 주말 예능만큼 인기가 많은 대형 예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우리에게는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나 다름없었다.
촬영은 지금 막 시작됐고.
별이는 긴장 속에서 억지로 쥐어짠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촬영을 지켜보다가 손에 쥔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얘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
구서연.
음방출연이다 뭐다, 연락을 해도 벌써 몇 번이나 했어야 할 그녀가 잠잠하기만 하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그녀가 더욱 신경 쓰였다.
곡은 만들고 있기는 한 건지.
혹시 만들었는데 연락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먼저 연락해볼까?’
원래는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다.
그때 펑펑 울며 뛰쳐나간 것 때문에 민망해서 곡을 못 보내고 있는 거라면, 내가 먼저 연락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흠.”
애초에 구서연과는 작곡가로 만났지만, 꼭 신곡 때문에 연락하려는 건 아니었다.
비즈니스도 비즈니스인데, 친해지기도 해서 걱정이 되는 거지.
또한 작곡가로서든 예비 가수로서든, 아니면 둘 다든.
구서연은 우리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으니, 계속 이렇게 연락을 안 하고 있을 순 없다.
구서연을 한 번 떠올려보니 상념이 그쪽으로 더 이어졌다.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게 할 만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것만 이겨내게 한다면 충분히 가수로 키워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김별’이라는 이름이 귀에 꽂혀서 급히 시선을 돌렸다.
“우리 김별 씨! 라이브가 아주 기가 막히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노래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진행자의 말에 김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녀의 손에는 마이크가 쥐여졌다.
사전에 미리 얘기가 되어 있었던 홍보 시간이다.
프로그램에도 좋고, 우리에게도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간.
마이크를 든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반주가 나오고, ‘So Happy’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분위기가 대번에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첫 예능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찾아볼 수 없었던, 묘한 카리스마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출연자들과 제작진 사이에서도 감탄이 흘렀다.
출연진들이야 방송 리액션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작진들은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 나오는 감탄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볼 때면 항상 이렇게 된다.
역시 별이를 선택한 내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뿌듯하네, 진짜.
노래가 끝나고 수줍게 미소 짓는 별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졌다.
“잠깐만요, 별 씨!”
“네?”
진행자는 다시 자리로 돌아오려는 별이를 막아섰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얘기하지 않았던 것을 시켰다.
“별 씨! 이 기세 그대로 댄스 신고식 가능합니까?”
“···네?”
나이스! 난 조용히 쾌재를 외쳤다.
별이를 더 밀어주는 게 좋겠다고 여긴 모양이다.
우리의 데뷔곡으로 보여줄 수 없었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노래만 부를 줄 안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에게 의외의 모습으로 어필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갑작스레 제안한 댄스 신고식이지만, 진행자의 능숙한 유도에 출연진들은 불타오를 만큼 호응해줬다.
여기서 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별이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에 나는 큭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일반적인 보컬이라면 난감한 상황이겠으나, 별이에게는 아니다.
‘그간 노력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데.’
걸그룹으로 데뷔할 뻔한 그녀에게 있어, 댄스는 또 하나의 무기나 다름없었다.
“오오!”
“오와! 뭐야! 춤을 왜 이렇게 잘 춰!”
“와! 미쳤다!”
별이가 빼지 않고 댄스를 시작하자, 출연진들이 뒤집어질 듯한 리액션을 보였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잘 추는 건 아니었다.
다만, 못 추는 것 또한 아니지.
어느 그룹에 들어가도 중간은 갈 정도의 실력.
‘방송 나가면 팬들 또 많이 생기겠네.’
피디의 입이 찢어지려고 한다.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
오프닝은 그렇게 별이가 주인공이 되다시피 했다.
이 방송이 음식을 먹는 예능이 아니라서 조금 아쉽긴 했는데, 그런 아쉬움은 이 오프닝으로 인해 깨끗하게 씻겨 나갔다.
그래, 다른 무기도 하나쯤 남겨 놓는 것도 좋겠지.
음식 먹는 귀여운 모습은 다른 예능에서 보여주면 되겠다.
오프닝이 끝난 뒤, 잠시간의 쉬는 시간.
별이는 출연진들과 몇 마디를 나누고 내게 쫄래쫄래 다가왔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묻는다.
“괜찮았어요?”
“응. 이대로만 해. 너무 떨지 말고. 긴장은 이제 다 풀렸지?”
“잘 모르겠어요. 노래 부를 때 긴장 풀렸었는데, 갑자기 댄스 신고식 하라고 해서 엄청 떨렸어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새로운 경험 때문인지, 재미 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이 흘러나왔는데.
“···!”
별안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개처럼 번뜩였다.
“노래할 땐 안 떨렸는데··· 댄스할 때 떨렸다고?”
“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미소가 굳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사장님?”
노래를 부를 때나 댄스를 할 때나, 모두 다 같았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주변의 환경도.
분명 이렇게 같은 무대일진대.
그 위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별이는 무대가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혹시···.’
혹시나.
방금 전 별이의 경우를 구서연에게 적용한다면.
그녀 또한 무대를 다르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유레카.”
“사장님? 괜찮아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응,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사실 괜찮지 않았다.
머릿속 행복회로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서, 얼굴에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구서연의 무대 공포증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가수로 데려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만큼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리고 가뜩이나 가수로서의 재능도 충만한데, 그녀는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이미 증명해내기도 했다.
포텐 넘치는 가수, 재능을 증명한 작곡가.
이 둘을 한꺼번에 데려오게 되는 셈이니, 흥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저 이제 다시 가봐야겠어요. 촬영 시작한대요.”
“그래. 잘하고 와, 별아. 파이팅!”
“네!”
나는 촬영이 다시 시작된 즉시.
잠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전화를 걸었다.
내 행복회로를 실현시켜줄 핵심 인물에게.
-네, 선배.
“너 댄스 한 번 가르쳐볼래?”
-···뭐요?
***
“아니, 갑자기 뭔 댄스예요?”
촬영이 끝날 때쯤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유진.
우리 셋은 함께 차에 올라타며 대화를 나눴다.
“너 안무가가 꿈이었다고 했잖아. 그리고 댄스 천재였다며.”
유진의 눈이 흘끗 별이를 향했다.
그녀가 별이에게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그런데 어차피 연습실에서 가르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수밖에 없을 터.
여기서 별이가 나서야 할 것은 없었지만, 굳이 몰래 진행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미리 알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아듣게 좀 말하세요, 선배.”
유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김별은 눈을 깜빡거리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와 유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얼굴에 그대로 써 있는 듯했다.
난 둘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꺼번에 설명했다.
가이드를 듣고 서연에게 가수의 재능을 발견한 것과, 그녀에게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떠올린 해결방법까지.
내 설명을 모두 들은 이유진은 매끈한 턱을 쓸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확실히 현실성이 없진 않은데요? 백프로 될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것 같긴 해요.”
“그래.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해. 댄스 잘 가르칠 수 있지?”
“하!”
유진은 거만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흐른다.
다른 사람이 이러면 재수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얘가 이러니까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역시 예쁜 게 치트키라니까.
“선배,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뭔 줄 아세요? 제 춤 걱정이에요. 제가 괜히 천재였다고 말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렇다고 치지, 뭐.”
“정말이에요. 선배 제 춤 보고 나면 나보고 댄스 가수 해달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애걸복걸할걸요?”
“퍽이나 그러겠다.”
우리끼리 킥킥대며 웃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별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연이랑 같이 활동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그치? 그리고 서연이가 우리 회사에 가수로 들어오면 앞으로 프로듀싱도 계속 맡길 수 있어. 다른 데서 곡 구할 필요 없이 우리 회사 내에서 다 끝낼 수 있다는 거야. 거기다 안무도 짤 수 있다? 여기, 자칭 천재 안무가도 있으니까.”
“제가 언제 안무 잘 짠다고 했어요? 춤을 잘 춘다고 했지.”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반박하는 이유진.
난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너한테 달렸어. 되도록이면 보는 시선이 적을수록 좋을 테니까, 난 어느 정도 배우기 전까지는 옆에 없을 거야.”
“걱정 마요. 선배는 그냥 작곡가님만 연습실로 불러내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데, 본인이 안 하겠다고 하면 저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죠?”
“그래.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설득하려고 들 필요는 없어.”
그런데, 그녀가 안 한다고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 그녀가 얼마나 가수를 하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으니까.
확신하건대.
만약 무대 공포증을 고칠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그녀는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려 할 것이다.
***
사장님이 무작정 불러내서 연습실로 가는 길.
버스에 앉은 구서연은 하얀 후드티의 모자를 쓴 채, 창밖에 시선을 던졌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꿈이 다시 자극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근데 왜 부르셨지? 또··· 노래 시키시려나?’
어쩌면 노래를 부르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파고들려고 부르신 걸지도 모르겠다.
공포증이 어쩌다 생긴 건지, 고치려고 뭘 해봤는지 등등.
‘아니면 그냥 곡 때문에 부르신 건가?’
새로운 곡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서, 혹은 ‘So Happy’가 잘되고 있는 걸 축하하기 위해서.
그런데 작곡한 곡이 잘되고 있어도, 서연은 제대로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하고 싶던 가수를 포기하고 얻은 대가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와···. 나 너무 부정적이네.”
입술을 깨문 서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뻐할 일은 기뻐하자.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류장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린 서연은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원룸촌의 연습실.
문을 여니, 불은 켜져 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가셨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려던 서연은 문득 이 연습실의 고요함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연습실을 빙 둘러봤다.
가수인 김별과는 달리, 작곡가인 자신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
이곳이 익숙하긴 했지만, 이곳에 온 건 모두 가수인 김별 때문이었다.
‘나도···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면···.’
이곳은 김별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공간도 되었을 것이다.
서연은 이전에 자신이 노래하기 위해 섰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결국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던 장소.
벌컥-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절로 움츠러들었나 보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사장님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엄청 예쁜··· 언니네?’
서연은 그리 넓지도 않은 연습실을 괜히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누구세요? 사장님은 어디 계세요?”
그 예쁜 언니는 더욱 예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장님은 안 오실 거예요.”
“네? 사장님이 부르셔서 왔는데요?”
“네. 근데 오늘 안엔 못 올 거예요. 어쩌면 내일도 못 올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어벙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서연에게 유진은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
“사장님, 오늘 노쇼라구요.”
< 노쇼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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