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7화 (17/124)

< 떡상하겠네 >

VBC의 신규 드라마, ‘어쩌다 입시학원’.

현재 5회까지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서서히 화제작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인기가 붙는 속도가 엄청나서 국장님이 여러 차례 전화를 하며 신경을 쏟으실 정도.

이쯤이면 히트가 확실시되어 힘이 펄펄 날 만도 한데.

정작 PD인 신준혁은 지금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가수를 대체 어디서 구하냐.”

5회까지 방영됐는데, OST를 아직도 다 만들지 못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일 터.

그런데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자면, OST를 다 만들지 못하고 시작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새로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거지.

“아··· 뒷골 땡겨.”

“피디님. 지금 뒷골 잡고 있을 시간에 가수나 구해오세요.”

작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작가의 몰골은 피디인 신준혁보다도 더 처참했다.

언제 씻은 건지 가늠이 안 되고, 눈두덩이는 새까매서 판다가 사람 말을 하는 건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이게 다 작가님이 스토리를 바꾸셔서 그래요.”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그리고 스토리 바꾸자고 피디님 먼저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전 이명선 캐릭터가 조금 매력적인 것 같아서 임팩트 조금만 주자고 했지, 이렇게까지 임팩트를 주자고는 안 했어요. 지금 시청자들 반응 봐요. 주인공 커플 기다리는 사람 없다니까요? 죄다 이명선이랑 주한선 러브라인밖에 안 기다리지?”

말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언성까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런 거 다 예측하고 걸러내는 게 피디님 역할 아니에요? 지금 뒤에 있는 스토리 싹 다 바꾸게 생겼다고요! 피디님이 제 역할을 다 못해서!”

“누가 그렇게 재밌게 쓰래!? 너무 재밌게 쓰니까 내가 못 바꾼 거 아냐! 난 앞으로 다 생각이 있을 줄 알았지! 무턱대고 그렇게 재밌게 쓰면 나보고 어쩌라고!”

피디는 자기가 말하고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턱대고 재밌게 쓴다고 작가한테 뭐라고 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작가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신준혁 PD는 크흠,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게 됐다.

스토리가 너무 바뀌었고, 캐릭터 비중이 너무 바뀌어서, 그에 맞게 OST를 새로 제작해야 했다.

처음엔 음악감독님도 무리한 부탁에 화를 냈지만, 어찌저찌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그는 복수라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인 건지, 신선한 여자 보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독님, 뭐라고요? 신선한 여자 보컬이요? 이 곡을 소화할 만한 신인이···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으니까 말하는 거 아냐. 아무튼 난 만들었으니까 나머지는 신감독이 알아서 찾아. 나도 계속 고민해볼 테니까.’

‘아니-‘

‘그럼 그냥 아무나 쓰든가. 신감독은 그러고 싶어?’

음악감독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곡은 기깔나게 뽑혔고, 자신 역시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불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아.”

신준혁 감독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밖으로 나가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음악방송 PD인 동기와 통화를 하면서.

그런데.

신세한탄과도 같았던 통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기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왜? 바쁘다면서.”

-야.

심상치 않은 목소리.

동기 정요석은 어딘지 모르게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은 것 같은데? 신선한 명가수.

“···뭐?”

***

무대 위에 꽃가루가 터졌다.

이번주 1위를 차지한 가수는 레모네이드.

“그렇지!”

굳이 내 옆에 선 이팀장은 나더러 들으라는 듯 커다란 목소리를 냈다.

누가 왕팀장 아니랄까 봐.

-너무··· 흐윽!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 GO엔터 사장님, 최이사님, 그리고 권본부장님, 그리고···.

이수진의 소감이 스피커를 타고 귀를 파고들었다.

듣기 싫은 목소리에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데, 그랬다간 이팀장이 더 흐뭇해할까 봐 참기로 했다.

“큭큭. 이야. 데뷔부터 1위를 해버리네! 어떤 새끼는 지 때문에 연예인들이 잘나가는 줄 아는데, 이거 봐! 그 새끼 없어도 딱! 1위를 해버리잖아!”

아주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가끔은 유치한 게 더 열받는 법.

만약 그 전화가 없었다면, 나도 지금쯤 열이 뻗쳐 표정관리가 잘 안 됐을지도 모르겠다.

‘OST라···.’

대한민국에서 OST의 파워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드라마가 뜨면 OST도 덩달아 뜨니까.

어느 한 드라마의 OST가 차트 최상위권을 줄세우는 건 꽤 쉽게 볼 수 있는 그림.

그리고 <어쩌다 입시학원>은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 중에 가장 뜨고 있는 작품이었다.

어떠한 OST를 불러도 일단 중박은 확정이라는 것.

‘그래도 아직 우리가 하기로 확정된 건 아니야.’

내게 전화를 건 PD의 말투는 머뭇거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직 긴가민가한 모양.

허나, 별이의 무대를 봤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는 또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바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거 보면 답이 나오지.’

우리에겐 연습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가능하면 최대한 빨리 와줬으면 하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 뜻이 뭐겠나.

직접 들어보고 안 맞는 것 같으면 다른 가수를 구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뭐, 확정만 안 났을 뿐이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별이 라이브를 듣고 다른 가수 떠올리는 건 말도 안 되지.’

나도 모르게 자신만만한 미소가 지어졌는데.

계속 나를 보고 있던 모양인지, 옆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도발은 지가 했는데, 한 번 웃은 것 가지고 열을 내고 있다.

이럴 때 보면 꼭 멧돼지 같기도 했다.

“사장님.”

무대에서 내려온 별이가 환한 미소를 띠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이런 우리 둘을 보고, 이팀장은 우리가 왜 웃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갈까?”

“네.”

이팀장을 보며 작게 코웃음 쳐주는 걸 끝으로 공개홀을 빠져나갔다.

다른 가수들은 방송이 끝나고도 PD와 인사하기 위해 여기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겠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PD가 직접 우리에게 다가와 실실 웃으며 말했었거든.

방송 끝나자마자 그쪽으로 바로 가줄 수 있겠냐고.

그러면서 자기가 추천해줬다고 생색을 내는데, 그런 생색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제발 앞으로도 생색 받아줄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

***

“무리한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여유 부릴 시간이 없어서요.”

신준혁 피디가 기계적인 웃음을 뱉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말은 내게 건네면서 눈은 별이를 바쁘게 관찰하고 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목이 잠길까 봐, 한 숨도 못 잔 별이는 피곤한 상태였는데.

신준혁 피디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저희도 빨리 곡을 들어보고 싶어서요. 이런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신준혁 피디와 마찬가지로 흘끗흘끗 눈을 돌리며 말했다.

다들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음악감독님은 안달이 난 듯 팔짱을 낀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기도 했다.

“사실 우리 드라마의 서브 커플 때문에-“

“신감독!”

차분하게 설명하려던 신준혁 피디의 말을 음악감독이 툭 잘랐다.

“우리 이럴 시간 없어. 설명은 나중에. 응? 일단 가수한테 곡부터 들려줘야 할 거 아냐.”

사실 설명을 안 들어도 대충 예상이 갔다.

인터넷에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인데 사정을 어찌 모르겠나.

아무리 바빠도 챙길 소식은 다 챙겨 보고 있었다.

전화가 온 뒤에 좀 더 자세히 검색해보기도 했고.

‘서브 남녀 커플이 인기라고 했지?’

바로 이 서브 커플 때문에 드라마가 훅 뜨고 있는 거였다.

너무 인기가 좋아서 포기하려야 포기할 수가 없을 만큼.

그렇기 때문에 OST를 새로 만들면서까지 힘을 주려는 거겠지.

‘정아 때랑 비슷해.’

그때도 상황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지금 여기보다 훨씬 더했다.

한창 뜨지 못하고 있던 유정아를 맡게 됐을 때.

내가 추천한 드라마에서 그녀는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며 드라마를 말 그대로 캐리해버렸다.

그러니 시청자들이나 제작진들이 가만히 놔두겠나.

시청자들은 유정아에게 열광하고,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분량을 늘리려고 하는데.

다른 배우들은 이에 비협조적이었으며, 그 배우들의 기획사에서는 현장으로 사람이 뺀질나게 찾아왔었다.

다시 떠올려봐도 고개가 저어진다.

아주 지옥이었지.

“그럼 곡부터 들어보시겠어요?”

피디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녹음실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악감독이 아주 애가 닳았나 보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별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난 그가 어째서 이렇게 안달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우리 별이 맞춤 노래네.’

지금 막 듣기 시작한 나마저 이렇게 기대감에 심장이 뛰는데.

가상의 가수를 떠올리며 곡을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겠나.

곡에 딱 들어맞는 가수가 눈앞에 있으면 저렇게 안달이 날 만도 하지.

‘서정적이고 극적이야.’

악기들의 배치와 반주 자체는 서정적인 느낌을 가득 담고 있는데, 현악기로 극적인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점점 앞으로 배치되며 소리가 강해지는 현악기.

드라마의 극적인 장면에 쓰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신준혁 피디는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과연 별이가 이걸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모양.

아무래도 음악감독만큼의 감은 없나 보다.

‘뭐, 그거야 바로 증명하면 그만이지.’

음악이 끝나기 무섭게, 음악감독은 별이에게 물었다.

“몇 번 더 들어볼래요? 가사지는 여기 있어요. 그리고 됐다 싶으면 말씀하세요.”

난 별이의 표정을 바라봤다.

그저 담담하게 가사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걸 소화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것은 아예 걱정하거나 고려할 만한 것도 못 된다는 듯이.

“조금 더 들어볼게요.”

그렇게 4번을 더 들었을 때.

별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해도 될 것 같아요.”

***

“···.”

“···하아.”

원래 없었던 사람이 갔을 뿐인데.

어쩐지 이곳이 더없이 휑하게 느껴졌다.

신준혁 피디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것 때문에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는데···.”

“정답은 가까이에 있었어. 요즘 화제 되는 가수를 대체 왜 몰랐던 거야?”

“···그러는 감독님도 몰랐잖아요. 제가 말씀드린 다음에나 찾아보셨지.”

“···.”

대화를 주고받아도 여전히 정신은 멍했다.

흡사 태풍이 휘몰아친 현장 같았다.

음악감독은 재차 녹음한 음악을 틀었고.

지그시 눈을 감으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완벽해···.”

“그러게요. 진짜 완벽하네.”

신준혁 피디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어느 장면에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는 듯했다.

만약 생각대로만 된다면.

“떡상하겠네.”

드라마도, 그리고 음악도.

가뜩이나 골치였던 서브 커플이 더욱 훨훨 날아오를 것이고.

음악 또한 같이 비상하리라.

“에휴.”

음악감독과 마찬가지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신준혁 피디.

그 한숨 안에 담긴 감정은 사뭇 달라 보였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

GO엔터테인먼트의 이사실.

최이사는 조카가 마침내 음방 1위를 거머쥐었음에도 전혀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짜증스레 콧잔등을 찌푸렸다.

“김유민···.”

김별과 김유민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듯했다.

아직 스타가 된 것은 아니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너무 매끄럽기만 하다.

최이사의 머릿속엔 아직도 김유민과 대화를 나눴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한정식 집에서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던 일.

그리고.

‘저는 이수진이 아니라 김별을 넣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서로가 참 자랑스럽겠어요. 부럽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집안인 것 같아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그 표정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틀리고 자신이 맞다고 말하는 듯, 깨끗하고 올곧았던 그 눈빛.

김별의 활약은 그의 생각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봤자 여기까지야.”

운이 좋아 이번엔 좋은 곡을 만났지만, 이 가요계를 스쳐 지나갔던 샛별들은 쌔고 쌨다.

지금의 김별보다 더한 페이스로 뜬 가수도 있었고, 데뷔곡으로 시장 전체를 휩쓸었던 원히트원더도 많았다.

아직 그들에 비해서는 김별도 별거 아니다.

한 번의 성공은 운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힘이 필요했다.

‘지금쯤 싱글벙글하고 있겠지.’

최이사의 입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제대로 된 성공을 맛보기도 전에, 거대한 해일을 만나서 휩쓸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것도 자기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운 재앙을 만난다면.

“궁금하네.”

배신감과 절망감을 맛볼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제 너도 나처럼 열 좀 받아야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라이징스타 김별은 얼마 뒤면 소리소문 없이 묻히게 될 것이다.

김유민, 그가 각 멤버들 모두를 슈퍼스타로 키웠던 보이그룹, ‘와인드업’.

그들이 정규 앨범으로 컴백할 시간이 다가왔으니까.

< 떡상하겠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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