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5화 (15/124)

< 제가 TV에 나오고 있어요 >

“서연아. 들어가도 되니?”

구태성은 방 문을 똑똑 두드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며칠째 방구석에 틀어박혀 우울해하는 구서연이 걱정된 탓이다.

“들어오지 마!”

“···회사 가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사장님이 뭐라고 했어?”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내버려 둬!”

서연은 문 밖에 서 있는 아빠에게 소리 치며 이불을 확 뒤집어썼다.

왜 그랬지? 왜 그때 노래 부르라는 말에 거절하지 못했을까.

무대 공포증이 있는 건 자신이 가장 잘 아는데.

가수의 꿈을 깨끗하게 포기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노래를 불러보라는 사장님의 제안에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번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씨···.”

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아빠에게 노래도 배우고 작곡을 배우며 자신감을 키워가던 와중.

학교 축제에 나가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자신에게 꽂히는 많은 시선들.

가슴이 뛰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자신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선배들.

부담감과 압박감이 짓누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레고 벅찬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문제는 한순간에, 아주 갑작스럽게 터졌다.

“까만 드레스 입고오오옥!”

삑사리 혹은 음이탈.

“으하하하학!”

“하하하!”

커다랗게 터지는 웃음소리.

머리는 새하얘졌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한동안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

음이탈이 난 걸 따라하며 놀리기도 했다.

심지어 ‘너희 아빠는 엄청 노래 잘하시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듣기도 했고.

서연의 인생에서 가장 큰 흑역사이자,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었다.

그 뒤로, 친구들과 노래방에 놀러 가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됐다.

“나도 노래 잘하는데.”

이불 속에서 서연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었다.

그리고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본 영상들을 다시 찾아봤다.

영상들의 공통점은 모두 아빠, ‘구태성’이 주인공이라는 것.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가장 닮고 싶은 사람.

구태성은 그 영상 속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축제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였던 자신과는 다르게.

***

금요일의 늦은 밤.

이유진과 김별이 우리집에 모였다.

‘김석희의 아메리카노’를 같이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였다.

대망의 공중파 데뷔.

녹화 때는 엄청 떨렸는데, 이미 잘했다는 걸 두 눈으로 봐서 그런지.

난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입꼬리가 올라갈 뿐이었다.

“멍하니 앉아서 뭐 해요? 노트북 뚫어지겠다. 과일이나 먹어요. 어차피 지금은 모니터링할 것도 없잖아요.”

부엌에서부터 접시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이유진.

매끈하게 깎인 사과와 배가 올려진 접시를 내 앞에 놓았다.

“예쁘게도 깎았네.”

“그럼요. 과일 깎는 건 셰프급이라니까요?”

노트북을 올려둔 TV앞 테이블.

난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는데.

얘도 내 옆에 풀썩 앉으며 포크를 들었다.

“혹시 긴장했어요? 선배답지 않게.”

“긴장은 무슨. 네가 못 봐서 그래. 그 현장을 보면 걱정을 하고 싶어도 못 해.”

“그렇게 잘했어요? 하긴 별이니까.”

그녀는 피식 웃으며 뒤쪽을 향해 말했다.

“별아, 너도 과일 먹어.”

내가 등을 기댄 소파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별이.

가뜩이나 하얗던 얼굴이 더 하얘지니, 거의 창백하게 보일 정도였다.

얘도 중증이구나. 무대에서는 그렇게 날아다녔으면서.

난 별이의 손에 포크를 쥐여주었고.

우리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시.

광고가 끝나고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 잘했던 거 맞아요?”

별이가 문득 물어왔다.

표정을 보니 경직된 느낌이 없다.

얘기를 하다 보니 긴장이 조금은 풀린 모양이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엄청 잘했다니까. 네 눈으로 봐. 얼마나 잘했는지.”

“···그래요?”

첫 번째로 무대를 했던 가수는 별이.

그렇기에 우리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별이가 무대로 걸음을 옮기는 장면이 TV에 나온다.

그녀들을 슬쩍 바라보니, 유진과 별이 모두 숨을 죽이며 TV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다.

이유진은 방금 전까지 태연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지금은 주먹을 꽉 쥐며 미간을 좁히고 있다.

‘So Happy’, 그리고 ‘그대에게’까지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무대.

관객들의 표정만 봐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푹 빠져드는 게 확연하게 보이고 있어서, 내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괜히 회사를 때려친 게 아니라니까?

제정신이면 이런 애를 빼는 게 말이 되냐고.

무대가 끝나자, 방청객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TV너머로도 커다랗게 들리고 있기는 한데, 현장에선 이것보다 훨씬 더 컸다.

“와···. 진짜 잘했다. 별아, 너 너무 잘했는데?”

유진은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뒤를 돌아보니, TV에 못박혀 있는 그녀의 눈은 붉어져 있었고.

숨소리는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장님···. 제가 TV에 나오고 있어요.”

꽉 눌린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문득 GO엔터 앞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런 목소리로 말했었는데.

그녀는 떨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제가 TV에 나오고 있어요. 너무 신기해요.”

그렁그렁 차올랐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서야 데뷔했다는 게 제대로 실감이 나는 모양이다.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있을 터.

이마저도 울음을 꾹 참는 건지, 무릎 위에 올려진 주먹이 피가 통하지 않아 새하얗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주먹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앞으로는 TV에 질리도록 나올 수 있을 거야.”

“···네.”

한 곳에 모여 앉은 우리 사이로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TV를 시청했다.

이제 무대는 없다. 인터뷰만 남았을 뿐.

-구태성 선배 곡은 어떻게 커버하게 되신 거예요?

-제 곡 만들어준 서연이가··· 아, 저랑 동갑 친구라서요. 서연 작곡가님이···

구태성-구서연 부녀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하며 쌓인 에피소드들.

화면에 비치는 중장년층의 방청객들은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것도 누군가에겐 좋은 떡밥이 될 터.

기사 제목과 네티즌들의 반응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이들이 품고 있을 의문을 풀어줄 질문이 나왔다.

구태성-구서연 부녀에 이어, 별이가 화제가 될 수 있는 두 번째 떡밥.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죠. 지금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별 씨를 처음 알게 된 게 사실 유정아 배우 때문이거든요? 회사도 다른데 커버곡을 발매 시간에 딱 맞춰서 올렸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제가 알기로 유정아 배우가 노래 부르는 걸 공개한 건 그게 처음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김석희의 물음에, TV 속 별이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저희 사장님께서 유정아 선배님의 매니저셨어요. 그래서 선배님께서 흔쾌히 도와주신 것 같아요. 저는 선배님을 뵌 적이 없어서,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노래도 너무 잘 부르시고, 너무 예쁘세요.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저 이때 너무 무미건조하게 말한 것 같아요. 많이 도와주셨는데, 선배님이 저 안 좋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눈이 빨간 별이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난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냐, 담백하게 잘했어. 걘 시각이 좀 꼬여 있어서, 저런 감사 인사 말할 때, 귀엽고 이쁜 척하는 걸 엄청 싫어하거든. 진정성이 안 느껴지고 진짜 감사한 게 아닌 것 같다고. 정아 팬들이 보기에도 저렇게 담백한 태도로 말하는 게 제일 보기 좋을 거야.”

유진은 옆에서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내 말에 깊이 공감하는 모양이다.

별이의 인터뷰는 길게 이어졌다.

편집된 게 거의 없다.

덕분에.

무대에서의 멋진 모습뿐만 아니라, 별이의 다양한 표정이 그대로 방송에 탈 수 있었다.

긴장한 모습, 아이처럼 웃는 모습, 당황한 모습, 그리고 행복을 즐기는 모습 등등.

이미 그녀에게 익숙해진 나도 이렇게 함박미소가 지어질 정도인데.

과연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나는 별이의 순서가 끝나자마자,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터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을 야심한 새벽 시간이건만.

인터넷은 활발히 돌아가며 서서히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음악방송의 공용 대기실.

막강한 후보들이 활동을 끝마쳐,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1위 후보에 오른 레모네이드.

그러나, 레모네이드와 그녀들의 스탭들이 있는 이곳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

“···.”

계속 이어지는 활동으로 인해 그녀들은 모두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그래서 눈만 붙이면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상태일 텐데.

지금 그녀들은 핸드폰을 보기 바빴다.

이수진 또한 그랬다.

몸은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인터넷을 살피는 매서운 눈.

꽉 다문 입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신인가수 김별, <김석희의 아메리카노>서 수준급 보컬 뽐내.]

[의 김별. 구태성의 노래까지 소화하다! 구태성과의 특별한 인연.]

[유정아에게 감사 인사하는 김별. 알고 보니 사장이 매니저였다?]

[구태성의 <그대에게>를 완벽 소화한 신인가수 김별. 곡을 만든 구태성의 딸과는 동갑친구 사이.]

이 늦은 시간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기자들.

언제 무관심했냐는 듯 뜨거운 반응이다.

‘분명히 삼촌이 막았다고 했는데.’

막아두었던 댐이 터진 것처럼 기사들이 홍수처럼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이수진의 얼굴은 제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구깃구깃 찌그러졌다.

“짜증나네 진짜.”

“···.”

“···.”

새삼스럽지도 않은지, 이수진의 거친 말에 누구도 반응이 없다.

그런데 수진은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들이 ‘자신 대신 김별이 들어왔으면 어땠을까’하며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

열등감이었고, 자격지심이었다.

수진은 혀를 차며 인터넷을 계속 살폈다.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서서히 김별에 대한 반응들이 줄을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 이게 먼저겠지.

그러니 기사들도 인터넷 반응을 살피곤 이때다 싶어 쭉쭉 기사를 낸 것일 거다.

-김별 얘 왜 이렇게 귀엽냐

-입덕 완료. 라이브도 진짜 깔끔하네. 요즘 아이돌들이랑 비교도 안 됨.

-ㅋㅋㅋ사장이 능력자였네ㅋㅋㅋ 난 김별이 유정아랑 친한 줄 알았는데 아예 일면식도 없다 함ㅋㅋ

-인터뷰 왜 이렇게 솔직하냐ㅋㅋ 근데 그게 또 귀여움. 아니 걍 얘 자체가 귀여움. 매력 터지네.

-뮤비 봤는데 리얼 개미쳤다. 다들 뮤비도 보셈. 꼭 보셈. 100번 보셈.

-우리 아버지ㅋㅋㅋ TV소리 줄이라고 화내서 줄였는데 구태성 그대에게 나오니까 볼륨 높이라고 하심ㅋㅋ 지금 핸드폰으로 김별 검색 중이심ㅋㅋㅋㅋ

열불이 뻗쳐, 얼굴이 시뻘게진 이수진.

이윽고, 그녀는 하나의 댓글을 발견하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대형 기획사에선 요즘 감 떨어져서 아무나 넣어버리던데··· 이게 신생 기획사? 능력 미쳤네ㅋㅋ

누구인지 특정하여 말하지는 않았다.

허나, 이수진은 저기 적힌 ‘아무나’가 바로 자신을 가리키는 말임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런 댓글들이 한창 나오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속보) 김별 공중파 3사, 케이블 음방 출연 확정!

└오!!! ㄹㅇ이네?ㅋㅋㅋㅋ 아 음방 무조건 간다!

└음방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나도 이번엔 늦덕 안 한다. 얘 엄청 성장할 거 뻔함. 1기 팬 바로 간다.

“···!”

김별의 음방 출연이 확정됐다.

만약 김별이 이대로 유명해져서, 레모네이드의 데뷔조였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김별 대신에 연습생 3개월차였던 자신이 들어갔다는 것도 밝혀지면?

지금까지는 김별이 뜨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걱정이 없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굳이 저쪽에서 밝히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말이 새어 나올지도 모른다.

“···.”

가슴 속에 묻혀 있던 두려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고.

이수진의 눈꼬리는 파르르 떨렸다.

< 제가 TV에 나오고 있어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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